제 2회 6.25전쟁 납북길 따라 걷기 후기

스물일곱에 과부소리 들으며 오늘까지 험난한 길을 걸어오신 어머니

6월은 참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한편 6.25 한국전쟁이 남긴 자국과 상흔으로 우리 납북피해자 가족들에겐 참 슬픈 달이 되어왔다. 6월 25일의 기막힌 역사로 인해 나는 평생 아버지 없는 아이가 되었고 나의 어머니는 27세부터 과부소리를 들으며 험난하게 살아오신 것이다. 아무리 힘든 비극적 사건도 세월의 흐름으로 아물어지는 희망이 있는데, 왜 6.25 전쟁 피해는 한(恨)으로만 남아야하는 걸까? 이런 슬픈 역사를 가진 이 나라가 점차 부강해졌고 여유 만만해졌으나 아직도 아니 한 번도 이 비극의 희생자 가족들을 챙겨주지 못하고 오히려 역으로 나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배신감마저 드는 요즈음이다.
내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에 가입하고 여러 활동에 동참하게된 것은 6.25의 희생자인 아버지보다는 (사실 내가 아버지 납북시 생후 6개월 정도였기에) 그로 인한 어머니의 슬픔이 너무 컸고, 노령이 되시면서, 허망해하시고, 55년의 기다림이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 버리고 마는 것에 대한 어머니의 안타까움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산가족이 아니면서도 이산가족 상봉주선이 한창이었던 남산의 적십자사무소를 찾아가 보시고 붙잡을 끈도 못 찾은 채 허탈하게 돌아오시던 모습. 국군포로 귀환 제1호였던 조 상호씨의 자서전을 사 읽으시면서 그 안에서 뭔가를 찾으시던 어머니셨다.
2002년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때 같은 형편에 처한 6.25 전쟁 납북피해자들이 모여 가족협의회를 만들어 정부가 모른 체 하는 엄청난 일을 이미 시작한 것을 우연히 신문에서 알게 되었다.
2000년 말에 발족된 이 단체는 6.25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차원의 피해를 규명하고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받으려고 힘겹게 많은 활동을 이어왔다. 뒤늦게 이런 단체가 생긴 것만도 감개무량할 정도로 반갑고 뭔가 어머니의 쌓인 슬픔과 한이 제대로 풀릴 통로를 만난 느낌이었다.

“6.25전쟁 납북 길 따라 걷기”에 참여하여..

‘6. 25 납북 길 따라걷기’ 행사는 단체 창립시 1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참여 못한 관계로 2차 행사가 너무나 기다려졌다. 우리단체는 재정관계로 일반광고는 엄두도 못 내고 각자 친지를 통해, 속한 교회를 통해 참가자들을 동원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행히 경찰 선교에 참여하시는 어느 목사님 덕분에 일찍이 ‘경찰 미션투데이’에서 제일 먼저 홍보를 시작해준 것이 고마웠다.
‘6.25납북 길 따라 걷기’는 55년 전 서울에서 주로 7-8월에 납치되어 끌려가신 우리 가족들의 족적을 더듬어서 그 끌려간 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이모들로부터 들었다. 너희 아버지가 포승줄에 묶여 무리를 지어 대로변에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아마도 ..남대문 길이었던 것 같은데 ..옛날 시경 앞.. 거기서 서대문형무소로 가셨나보다. 어쨌든 우리가 재현한 것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끌려나와 대학로 (마로니에거리)를 거쳐 미아리고개까지 가고.. 계속 우이동 솔밭까지 걷는 것으로 그 당시 그들이 당한 고통을 감히 조금이라도 체험해보고.. 시위도 해보고 관심도 끌고 ..마지막까지 희망을 챙겨 보고자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이제 다 죽어 가는데 .. 정부가 안하는데... 하지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죽어간 사람은 너무 불쌍하고, 혹시 이북 어느 곳에 아직도 희망을 갖고 살아계신 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렇게 한 걸음씩 우리는 우리의 숙제를 풀어가고 있다.

어쨌든 우리 가족들이 풀어야할 숙제이다. 이것은 힘겨운 시위이다. 우리 단체 이미일 회장은 말한다.
“이제 다시 이 행사는 못할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
이번 행사는 힘들게 치러진 만큼 그 성과도 컸다. 이번 걷기 행사는 시위적이면서, 문화적이며, 역사체험의 현장이었다. 통과지역에서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15km를 무난히 끝낼 수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직터널을 거쳐 정부종합청사 앞길로 계획했던 것을 광화문 길로 바꿔야했지만 더 많이 시민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게 되었다. 큰 사거리에선 구호도 외쳤다. 납북인사!! 생사확인!!! 정부는 이미 오래전에 남북대화가 가능해진 시기부터 우선적으로 6.25전쟁 납북인사 송환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많은 세월이 흘러 버린 지금, 유해송환이라도 이루어졌으면 원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제사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외로운 외침이었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아니 통한의 외침이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한걸음씩 우리의 숙제를 풀어 갈 수 만 있다면....

한 많은 미아리고개에 도착 북녘을 향해 풍선 날려....

우리들의 걸음은 다시 대학로에서 멈춰서 주먹밥 두 덩이씩 먹고 쉬면서 납북되었다 탈출해서 이번에 코스길 정보에 도움을 준 ‘김용준’ 할아버지의 탈출기도 들었고, 계속 다시 걷기를 시작해서 미아리고개에 도착 북녘을 향해 풍선을 날렸다. 예전 모습과 달리 많이 변해있는 미아리 고개에서 ‘한 많은 미아리고개’ 노래를 들으며 그 아픔을 기억해내고 울부짖는 가족들을 위로하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구호를 허공에 토해내고... 다시 신일중고등학교를 거쳐 우이동으로 전진... 희끗희끗 머리의 나이 많으신 어른들은 묵묵히 따라가셨다. 한 분은 맨발로 걸으셨다. 이들의 대부분이 십대에 아버지가 잡혀가는 것을 본 분들이다. 힘들게 생계를 꾸려오신 분들. 여태껏 아무런 보상도 기대해보지 못하고... 지금도 최우선으로 바라는 것은 소식이다.
첫날 약 200여명이 참여했고 한탄강까지 가서 둘째 날 행사(민통선 안 월정리까지 가기, 망배행사, 북한의 옛 노동당사 유적 가보기, 나무심기 등)까지 참여한 가족은 40여명이었다.

그날 저녁 뉴스에 납북자 문제로 남북장관급회담/적십자회담 의제로 다룬다고 보도

우리들의 이번 행사의 피크는 둘째 날 돌아오는 길에 워커힐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북장관 회담장에 가서 시위하는 것이었다. 남북한 정부를 동시에 겨냥하며 그들에게 쏠린 보도진의 관심도 끌자는 것. 하나님이 도우셔서 무사히 호텔 회담장 앞까지 들어갔고 모두 내려서 손으로 급히 쓴 구호를 들고 실컷 외쳐보았다. 55년 전 끌려가서 소식 없는 우리의 부모형제를 위해 기껏 할 수 있는 것. 쫓겨서 버스에 강제로 태워질 때까지 소리쳤다.
남북장관들은 시위자들을 피해 한강 선착장으로 일정을 바꿨다지만 우리는 회담장에 대기 중이던 보도진들의 집중 카메라 세례를 받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그날 저녁 우리 뉴스는 TV 한 귀퉁이나마 차지했고 다음날 뉴스에는 앞으로 남북장관회담 적십자회담 의제에 6.25전쟁시기 납북자문제를 의제로 다룬다는 소식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우리는 이렇게 한 걸음씩 우리의 숙제를 풀어가고 있다.
(사단법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 하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