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께 올립니다

지난 1월 17일 6 ․ 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일원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환갑이 지난 나이에 어려서부터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를 소리쳐 불러보았습니다.


저는 제 주변에 아버님이 안 계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여 이미 작고하신 어머님과 형님을 아버지로 알고 성장하였습니다. 이유는 제 나이 여섯 살 때 6 ․ 25 전쟁이 발발하고 당시 경성전기주식회사의 간부로 근무하시던 아버님(李載寬,1915년생)께서 노조활동을 하시다가 납북되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으로 당시「경전」에는 電車課의 기사중심으로 좌익계열의 노조가 있었고 간부 중심으로 민주계열의 노조가 있었다고 함)

그러함에도 제가 국민의 일원으로 현재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정전 후 「경전」(현 한전) 에서 제 아버님의 납북사실을 확인하고 어머님을 그 회사 식당에 취업시켜 주어서 저희 가족(4남매)이 어려운 시절에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생전에 아버님을 그리며 매일 진지를 준비해 두시곤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둘째는 제가 74년 첨예한 남북간 냉전시대에 공직에 임용되어 30여 년간 봉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압제와 기아선상에 사는 북한 동포를 도울 수 있도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근간으로 여유 있게 생활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관계공무원이나 어떤 이들은 전쟁피해의 보편성으로 死傷者를 거론합니다. 그들 유가족이나 간병가족의 슬픔을 모르는 바 아니나 돌아가신 분은 추모제나 제사를 드릴 수 있고, 치료 중이신 분은 옆에라도 계시지만, 우리 6 ․ 25 전쟁 납북인사 가족들은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가는 세월을 보며 그리움과 恨만 쌓이기에, 우리들 세대가 끝나기 전에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를 기대합니다.

전후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 전쟁의 원인이나 책임을 따지고자 함이 아닙니다. 현재의 참여정부가 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렇게 절규하며 호소합니다.
우리 전쟁 납북자 가족들의 염원은 북녘 땅에 계실 분들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하루 세끼 진지는 드시는지? 난치의 병으로 고생하지는 않으신지? 그 곳 가족들은 어떠한지? 생사확인이 급할 뿐입니다. 만일 돌아가셨다면 日時와 장소, 그리고 유해의 송환을 요구하며 그 곳 가족들의 의사도 알고 싶습니다. 저는 그 곳 가족과 함께 오실 수 있다면 기꺼이 모실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생사여부를 알 수 없어 제사나 추모제도 모시지 못 해 애타는 저희들에게 설이나 추석에 가족들이 모여 추모할 수 있도록 납북 길 주변에 아담한 공원을 마련해 주실 것을 건의 드립니다.
저의 소원중 하나는 제가 태어나 유아시절 아버지 등에 업히거나 손잡고 걸었던 동대문 밖 낙산자락 아래, 창신3동 언덕길에 이제 90세가 넘으신 아버님을 업고라도 가고 싶은 것 입니다.

6 ․ 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배경은 이러한 애달픈 사연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정부의 거짓 성명만 우직하게 믿고 피난가지 않아 화를 당한 전쟁 납북자를 외면하고 전후 납북자만을 거론하는 관계당국에 있음을 海諒해 주시고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금년 한해에도 내 조국 대한민국이 각계각층에서 누리는 평화와 번영이 함께 증진되고 남북관계에서 인도적인 문제와 인권문제가 더욱 진전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설날 아침 어머님 차례상에 이 글을 올립니다.

2006. 1. 29

(사)6 ․ 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 길 용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