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국립 6·25전쟁납북자 기념관. 이곳에서 10여 명의 납북· 억류자 가족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만났다. 이도운 대변인에 따르면, 김 여사는 "너무 늦게 찾아뵈어 죄송하다"며 가족 한 명 한 명의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 

1977년 아들이 납북된 한 노모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과 자유를 빼앗기고 이들의 생사도 모른 채 수십 년을 지내야 하는 아픔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우리 국민의 일이고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수십 년 동안 한이 됐을 것"이라며 "이제는 정부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납북자·억류자의 생사확인과 귀환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납북·억류자 가족들이 "오늘의 따뜻한 위로가 버텨낼 힘이 될 것"이라며 작년 11월 프놈펜 한미일 정상 공동성명 등을 통해 정부가 납북자와 억류자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여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했다고 전했다.

“정부 (측 인사)로부터 위로 아닌 위로를 받은 것은 (6·25전쟁 이후) 7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희망을 가져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성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건강 문제로 자리를 떠난 이미일 전 이사장과는 20년 이상 함께 활동하며 동거동락해온 사이라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부친이 북에 납치되는 아픔을 겪었다./사진제공=이성의 이사장
이성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건강 문제로 자리를 떠난 이미일 전 이사장과는 20년 이상 함께 활동하며 동거동락해온 사이라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부친이 북에 납치되는 아픔을 겪었다./사진제공=이성의 이사장

 이날 자리에 함께했던 이성의(70)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 이사장이 전한 소감이다. 전쟁 발발 70년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납북자 가족의 슬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정부의 우선 관심 대상에서부터 늘 후순위로 밀렸기 때문이다. 

납북·억류자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관심은 미국 정부가 자국민 보호와 그 적들에 보여준 단호함과 늘 비교 대상이 된다. 단적인 예가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이다. 

호기심에 북한을 방문했다 혼수상태로 돌아온 오토 웜비어가 숨지자 그의 부모는 김정은 정권과 맞서겠다며 전 세계 곳곳에 숨은 북한 당국의 자산을 샅샅이 뒤지는 일을 시작했다. 웜비어 부모의 끈질긴 추적을 미국 정부는 ‘오토 웜비어법(Otto Wambier Countering North Korean Censorship and Surveillance Act)'을 미국의 2023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포함시킨 것으로 화답했다. 

자국 청년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 분열된 미국 의회도 이때만큼은 한목소리를 냈다. 당시 존 매케인(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 시민인 웜비어가 김정은 정권에 의해 살해당했다(murdered). 인생 마지막 한 해를 북한 주민들이 70년간 갇혀 있었던 악몽-강제노동, 극심한 기아, 조직적인 잔학행위, 고문, 살인 속에서 살아야 했다”며 “미국은 적대세력에 의한 시민의 살해를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벤저민 카딘 민주당 의원도 “웜비어는 억압적이고 살인적인 김정은 정권 때문에 죽었다”며 “북한은 그들의 지속적인 야만적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쟁의 한 가운데서도 자국민 안위에 관해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일치단결하는 미국 의회의 모습은 한국 의회에도 시사점을 던져줬다. 

납치된 남편·아들 생환을 위해 달려온 가족들의 눈물겨운 싸움

가족협의회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후 10만여 명에 달하는 전쟁납북자의 존재와 이들의 생사 문제를 알리기 위해 그해 11월 만들어졌다. 전쟁 중에 조직된 6·25전쟁피납치인사가족회를 계승해 재결성된 조직이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지난 해 초 매년 개최해 온 사진전시회를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는 전시납북자사이버기념관을 오픈, 북한의 강제 납북 실상을 널리 알렸다./사이버기념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메인페이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지난 해 초 매년 개최해 온 사진전시회를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는 전시납북자사이버기념관을 오픈, 북한의 강제 납북 실상을 널리 알렸다./사이버기념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메인페이지

 이성의 이사장은 “1950년도 7~9월에 북에 의해 민간인 납치가 빈번히 발생했다. 이듬해인 1951년도 남편이 납치된 어머니들이 모여 피납치인사가족회를 만들어 남편과 아들들을 돌려보내라는 구호를 외치고 덕수궁 앞에서 피켓시위도 하면서 활발히 운동했다”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납북인사 송환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도 전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월북과 납북이 뒤섞여 관리되면서 간첩 사건 등으로 인해 연좌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활동이 위축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가족회 활동이 흐지부지 상태로 이어오다 이미일 전 이사장님 주도로 2000년도에 다시 결성된 것”이라고 했다. 

재결성 이후 단체를 이끌던 이미일 전 이사장이 건강악화로 사임한 후 가족협의회는 올해 4월부터 현 이성의 이사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끌려간 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 전 이사장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검사 출신의 엘리트였던 이성의 이사장의 부친도 당시 북한에 납치된 뒤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아버지가 북한에 납치당한 후 소식이 끊겨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가 2000년도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재결성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가 오늘까지 이르게 됐다”며 “가족회의 토대를 일군 이미일 전 이사장님은 작년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동안 간호하느라 건강이 안 좋아져 회의 끝에 제가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 많이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협의회는 그간 납북인사 송환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것이 전신인 6·25전쟁피납치인사가족회의 ‘납북인사 송환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이다. 1964년 6월 25일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대한적십자사 협력으로 박정희 대통령 부부와 정일권 국무총리 등이 서명에 나서면서 언론을 통해 크게 조명됐다. 2000년 11월에 재결성된 후에는 전쟁납북자의 존재를 입증하고, 납북 관련 자료 발굴 및 납북자 가족들과 납북 후 탈출자 증언을 영상으로 채록하는 등 자료 축적에 집중해왔다. 

2005년에는 가족회 부설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을 개설, 축적한 자료들을 자료원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전쟁납북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료집 두 권을 발간하는 등 꾸준히 관련 도서를 출판하고 있다. 

이후 가족협의회는 납북피해진상규명 특별법 입법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10년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에 관한 법률」(2010년 3월 26일 제정, 법률 제10190호, 2010년 9월 27일 시행·2014년 11월 19일 개정)을 제정, 시행하게 됐다. 

또 2017년엔 2010년 12월 출범한 국무총리 산하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가 그동안의 활동 성과를 담은 「6·25전쟁납북피해진상조사보고서」와 「6·25전쟁 납북자 명부」, 그리고 방대한 분량의 국내외 6·25전쟁 납북 관련 자료집을 동시 발간했다. 가족협의회가 그간 국내외 사료들을 모아 발간한 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 등 밑 작업을 해온 것을 정부 차원에서 확대, 집대성한 것이다. 

아울러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의한 기념사업으로 파주 임진각에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은 납북사건을 기억하고, 연구·전시하며 추모하는 공간으로서뿐만 아니라 내부 다양한 자료 전시를 통해 역사적·교육적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6년 있었던 임진각 망배행사. 사진 아래 맨 왼쪽은 이미일 전 이사장의 모습./사진출처=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2016년 있었던 임진각 망배행사. 사진 아래 맨 왼쪽은 이미일 전 이사장의 모습./사진출처=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2013년 5월 1일 서울 광화문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진행한 납북자이름부르기 행사./사진출처=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2013년 5월 1일 서울 광화문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진행한 납북자이름부르기 행사./사진출처=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전쟁의 아픔과 교훈 후대에 알리는 것이 인권교육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는 활동기한이 종료됐다. 하지만 기존 연구 활동과 미진했던 부분이 남은 만큼 미래 해결을 위해 기념관을 통한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이 모두 납북자 문제를 평생의 사명처럼 받들고 달려온 가족협의회가 흘린 피땀 눈물로 이룬 성과라 할 수 있다. 

이성의 이사장은 “2010년 특별법이 제정됐을 때, 진상조사보고서 발간했을 때 가장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면서 “저희가 노력해 특별법이 제정되고 기념관이 지어져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많은 국민이 알게 되고 진실이 알려질 수 있는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협의회가 갈 길은 아직 멀다. 북한 당국은 여전히 민간인 납북자 존재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생사확인조차 해주지 않고 있어서다. 이 이사장은 “4·3사건이나 5·18 유가족들처럼 우리 가족들도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이 때마다 찾아 위로해주면 얼마나 좋겠나”라며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정부 주도의 기념일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북한이 죄를 인정하게끔 하는 일이다. 전쟁범죄가 인정돼야 배상도 청구할 수 있고 종전도 될 수 있지 않나”라고 했다.
이 이사장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전범인 김정은 정권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고 단죄하는 것이라고 한다./사진제공=이성의 이사장
이 이사장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전범인 김정은 정권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고 단죄하는 것이라고 한다./사진제공=이성의 이사장

 이성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마침 지난달 마지막 주 '국제 강제실종주간'을 맞아 이화여대에서 열린 '북한강제실종 국제청년포럼'에 참석해 북한을 다시 한번 성토했다. "이 이사장은 북한의 6·25전쟁 민간인 납북은 분명히 1급 전쟁범죄이며 반인권범죄"라는 가족협의회의 외침이 더 크게 더 넓게 더 깊은 울림으로 퍼지길 바라고 있다.

그는 “앞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은 우리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국가가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이라며 “6·25전쟁 때 민간인 10만여 명이나 북한에 납치됐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이 거의 없다. 심지어 제 세대조차 당사자 가족이 아니면 잘 모른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교과서에 넣어 청소년 젊은 세대에 알리고 교육해야 이런 비극이 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