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납북자 김현일님께 동생 김현우 가올리는글
이름: 김 영 희
2015-09-28 22:09:27  |  조회: 4697

나의 63년 전을 돌이켜 보면서..

 

아버지김영식

어머니조간란

김 현 일

김 현 주

김 현세

김 현 길

김 현 우

김 현 규

김 현 유

 

오랜세월 속에서도 지금도 생생 하게 떠오르는

그날 들을 기억 하면서

내나이 11살 6.25란 생각지도못한 전쟁이일어나.

우리가족은 영원히 함께 할수없는 납북자가 되고 말았다.

충북 엄정면 목계리에서태어나6.25 난리때

아버지는 집에계시고

어머니.내바로언니..동생둘 은 가금면 선들이라는

곳으로 이고 지고 피난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에와보니 인민군들이 쳐들어 와있었어요

연세가많으신아버지를 인민군들이 문초를 하곤했어요

목계오빠도 고향에서 에서 청년단장 이었구요

서울 에 오빠도 산소회사임원 으로 있으며 영등포지부 청년단장 이엇고 큰언니 남편되는 형부 김.철 님도 충주에서 청년단단장 이쎴어요그때당시 동네 인민군 앞잡이들이 아들들을 찾아 오라고 고문을 했어요

그때고통은 말로 표현할수가없었어요

어머니도 이상할정도로 변하셨어요 오빠들이 서울에 있으니 연락이 않되며 말도 못하고 있는데 작은 오빠가 내려와서 큰 오빠가 납치됬다고 하셨어요 작은오빠가 영등포에서 쌀응갖이고 갔을때 효자동 산소회사 사장신광식 오빠 동서 집 지하에 숨어있었는데 동네 빨갱이 반장이 인민군에게 고자질을 해서 오빠가 납치당했다고 했어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그때 어찌할지 모르고 많이 괴로워 하셨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막하고 어떻게 살았 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름 피난에 큰아들들은 다 없고 남은 우리들 을 보며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살아갈지 정신이 없게 살으셨어요

하루도 조용한 날없이 폭격에 인민군이 집뒤에 숲속에 다니니까 폭격은 매일같이 퍼붓고 집도날아가고 밭과 논에는웅덩이가 파여있고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국군들이 온단다 하시면서 언제 그려 놓았는지 태극기를 준비하셔서우리집 창으로 보면 쪽방머리라는곳이 국도 지만 한눈에 보이는 곳인데 우리집유리문에 온가족이 다 내다보며 있는데 산위에 불이 올라가는게 보였어요

아버님께서 그불이 신호탄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조금있다가 말을탄 군인들이 오셨어요

그리고 며칠후 서울 영등포 성남중학교5학년 현세오빠가 학도병으로 군에 입대를 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큰아들 현일 오빠는 납치를 당하고현세 오삐는 군에 자원입대 큰언니 형부는 소식두절 이니

그리고 김현일 처인 올케 언니 김희동 과 영희 명배 소식이 궁굼 하였어요

 

우리집에 는 과일 나무 가 살구 자두 복숭아 .참외. 수박 등을 골고루 심어 놓으셨다

나를보고 인민군이 5학년책을 갖어오라해서 갖고오니 이북에서는 5학년 이되면 이북에서는 중학생공부를 한다고 하며 과일나무를 처음 본사람들 인지 살구나무.자두나무 가뭔지 모르고 살구.가뭐냐고 자두가뭐냐고모르고 물어보며 .나무에달린 것을 다세어놓으라고하면서

아바이 동무 나무 열매에 손대지 말라요 했어요

너무몰라도 모르는 사람들이 었어요

지금같으면나도 말을 막할걸 그랬어요

오늘 와서 그때생각을 하면 속이 많이 상해요

 

어머님이 서울에 다녀와야 겠다고 살아도 사는게아니고

매일 근심이 셨어요

9.28수복이후 몇 달않도어 겨울피난을 가게되었어요

서울 올케 김희동 언니가 목계집에 명배만데리고 왔어요

피난을 함께가자하니까 언니는 주덕 언니네 집에 가야 한 대서 어머니가 네가 언니를 따라가라고 친척들이 올케언니를 모르니 아버지께서도 따라가라해서그날 주덕 에가서 막

잠이 들려다보니 밖에 사람소리가들려 일어나보니 서울에서 기차지붕을타고 왔다며 가정부 19살 (원순이) 와 영희 가 왔어요

나도 조카지만 영희를 처음 만났어요

주덕에서도 모두 피난을 간다하여 우리도 김희동 언니 . 영희.명배.나 19살 원순이 .6명이 함께 피난을 시작 했어요

추운 날씨에 올케언니는 명배를 업고 나는 영희를 업고 왜냐구요 19살 가정부가 영희 궁둥이를 자꾸꼬집어 서 시퍼렇게 멍이들어 있었어요 그래서 내게 업힌다고 하여 주덕에서 부터영희를 계속 업고피난길을 갔어요

아버지.어머니..언니.동생들과 헤어져 저는 올케언니와 계속남쪽으로 피난을 가고 있는데 함창이라는 곳에 도착하자 명배와 영희가 다리가 동상 이 돼어 있었어요

마침 집주인이 한약방을 하여 이대로가면 않된다고 응급 처치를 하였어요 약물에 아이들을 목욕시키는것을 반복해서 치료를 받았어요

아이들이 몸이 좋아져서 또 피난을 가는데길가에 이불덥고 죽은사람.아이젖 을주든채로 죽은사람.저는죽은사람 처음으로 많이 보았어요 한참을가다보니 길가에 크게 김 현 우

우리가족은 대구를 향해 떠난다 .

어디로 오너라 한발늦어서 도착되니까 올케언니는 하루만더 기다리지 하면서 대구를 향해 계속 걸어가고 있는데 가는곳 마다 내이름 이 똑같이 걸려 있었어요 너무 속상했어요

상주인가 어느곳에 또우리가족 은 대구로 오너라 온가족은 대구로 간다 고...

걸어서 어찌하여 낙동강까지 왔는데 강가에는 피난민들 이 가족끼리 이불을 뒤집어 쓰고 너무 많은 사람 들이 있었어요

강을 건너야 대구를 가는데 할도리가 없는데군인아저씨가 무언가 들고 다니는 아저씨가있었는데 그 국군 아저씨가

충주에 오신분들 있습니까

그래서 나는 정말 이제는 살았구나 생각되서 아저씨 우리가족이 충주에서 왔는데 대구에 가족이 있다고 하면서 아저씨께 공군 정훈감 이신 김..환 씨 충주에서 오신 김..철 씨가 계시다고 하였드니 그군인 아저씨가 무전 연락을 하더니 잠간기다려요 연락이올것이라고 하였어요그순간 너무나 기뻣어요

얼마나 시간이지난지는모르지만 국군아저씨는 학생 가족들이 강건너에 와계십니다

그런데 강에는 고무로 된배가 오더니 우리 가족을 태워 주었어요

웬짚차가 군인들이 있는데 타세요 우리는 차를 타고가니 충주에 피난민 수용소 에 형부 김.철 씨가 청년단장이셨으니 충주 시민들을 찾아모으 셨어요

우리는 언니댁으로 갔어요

언니는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옷이랑 모든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셨어요

1개월동안 입은 옷에는 옷냄새 와 이가 버글 버글 했어요 옷을 갈아입고 언 니가 여기는 단원들도 많고 식구가 많으니 따로 방을 얻어야한다고 근처에 방을 얻어 주었어요

언니댁에는 마당에 가마때기를 쳐남자들만50명이 넘게사용하고 안채에는 가족들 여자들 이 있었어요

대구에 처음 온 우리는 언니 가 사는곳은 통인동이고 우리는 삼덕초등 학교 교문앞에 왼쪽 세 번째집 나 와같은또래 점순 이란 애의 뒷 방이었다

어머니.아버지.언니.동생들의소식은 모르는체 살고 있었다

그렇게지나던 어느날 언니댁에 어떤군인이 서성이고 있어보니 학도병에 갔던 오빠 김현세 (나이 19세) 였다

삼덕국민학교에 다쳐서 후송됬다가 신문을보고 형부댁에 찾아온것이었다

그때 삼덕 초등학교가 병원이 되었든것이다

여름에보고 오빠를 대구에서 몇 달만에 만났던것이다교문에는 헌병이있었다현세오빠는 청진 까지갔다가 척추를 다쳐서 후송 온것이라 했다

얼마 있다가 오빠는 다른곳으로 가시고 삼덕학교에는 헌병들이 없었다

그렇게 오빠와 헤어져얼마를 지났을 까

우리도 피난길에 서 충북 엄정면 목계 따듯한봄날에 올케언니랑.영희.명배와 아버지 어머니 계신곳으로 왔어요

올케언니는 서울 영등포집에가봐야 한다면서 명배 만데리고 서울로 갔다. 어린마음 으로 아버님 어머니 우리가족모두 서울로 올라갔으면 했는데 아버님께서 아들이 납치되고 없는데 가면안된다하시며 목계에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목계국민학교를 졸업하게되었고

같은 반이엇던 조카는중학교를갔는데 나는 중학교를 목가고 집에 있었어요

오빠가제대를하고 목계집에 와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오빠가 여기있지말고 큰누님 있는 충주로 가자고하여 큰언니가살고있는 충주에 살게 되었어요 충주에서 살면서 아버님은 현영오빠집이있는곳이니까 충주에 오시지않고 목계에남아계시고 어머니가 목계까지가셔서 잡곡이랑 온갖과일 농사를 지어 이고지고 현영오빠가 버스회사를 사장인데 버스도 안타시고 걸어서 우리들에게 갔다주셨어요

참고로 큰오 빠와 같은 어머니가 아니었던 관계로 우리들 남은 식구들은 모두 현영오빠가 돌봐주지않은 상황

큰 아들이 제사를 담당 하는터라 모든 재산도

터하나 살던집 까지도 팔아서 현영 오빠가 갖고간 상황 이었어요 우리들은 현영 오빠와는 아주 다른 식구 들이나 다름 없었어요

식구들 살아가는 것에 아무런 영향 을 받은 사실이없고 현영 오빠 애들은 우리집에 하숙? 을 했었었어요

20세된 현세 오빠가 취직을 했어요

충주세무서에 언니 동생 현길.현유.조카영희.이렇게 온가족이 살고있었어요

현영 오빠가 목계에서 아버지를 모셔가라고 하여 아버지도 모시고와서 단란한 생활을 하며 살았어요

현세 오빠가 저희들 공부를 다시키고 고생을 얼마나 많이 하며 어깨가 무거웠을까요

지금 두세명자식들키우기도 매우 힘든 세상인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현일 큰 오빠가 납치만 않되었더라면 우리들 의 인생 이 달라졌지않았나 생각 하면 할수록 6.25가 우리에겐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어요

오빠(현세) 혼자서 우리 남매들 또 조카 까지도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커주어 다들 잘살고있는것이 현세 오빠의덕인데

지금도 현세 오빠께 고맙고 감사하고 늘 마음 아프고 몸도불편 하시게 되어 우리 모두 다들 안타까운 마음 뿐이어요

내가 어느덧 74살이 되고보니 뒤늦게나미 11살 때부터 겪은일을 현일 오빠께 얘기 하고 싶어 적어 보았어요

오빠 어디계셔요 ..보고 싶어요...많이

 

김 현 우 올림

 

 

  목록 수정 삭제  
댓글  총0
 
덧글 입력박스
덧글모듈
0 / 1200 byt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40 북한인권운동의 선구자 임영선위원장
인권투사
16-01-31 2455
239 납북자피해유가족여러분들게 호소합니다 [4]
이자원
15-11-15 2472
238 납북자 김현일님께 동생 김현우 가올리는글
김 영 희
15-09-28 4696
237 납북신고자 5,200명에, 납북결정자가 3,999건이라....
윤정우
15-09-04 2206
236 [잊혀져 가는 그 날의 기억] 6.25참전용사 후원 프로젝트
강태훈
15-05-17 3595
235 625납북자.명예회복 위원회 발행... 납북과 진실...게간을 볼수 있습니다.
윤정우
14-11-07 3201
234 8만여 납북자중 3,375명이 납북자로 확정..신고접수는 년말까지라는데...
윤정우
14-11-07 3189
233 성공개최 축하합니다
박문실
14-11-03 2435
232 함흥차사 돌아오다 (수정분)
권영환
14-10-13 2614
231 한강교 끊고 도망친 대통령, 역사적 사실과 맙지 않아 // 조선일보를 읽고,..
윤정우
14-10-11 2603
230 秋月
김상용
14-09-21 3256
229 납북자 추모공원 및 추모비 건립은 안되는지요? [1]
이종산
14-09-19 2816
228 함흥차사(咸興差使)
권영환
14-08-25 2612
227 아버지 전상서
권영철
14-08-05 2935
226 [8/13]경실련 연속토론회3탄 <통일환경의 변화와 통일방안의 재검토>
(사)경실련통일협회
14-07-23 2908
225 공지사항, 조선일보]6.25납북자 신고를 도와드립니다를 보고....
윤정우
14-07-02 2965
224 통일협회 연속토론회 2탄 "통일원칙을 재검토하다" 내일 15시 국가인권위에..
이승철
14-07-01 2841
223 가족회 노래 - "만나야 하리" 악보
관리자
14-06-30 5014
222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 홈페이지에 아래 추모의 글을 올렸습니다. [1]
윤정우
14-06-11 2510
221 납북자신고결정자가 3,000명 돌파/5월로/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 홈페이지를..
윤정우
14-06-10 2556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