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께 드리고 싶은 글

“아빠 저-기 갔다 올게.”
세 살 난 어린 여동생을 안고 입맞춤 하시면서 하신 이 세 마디 말씀이 아버님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56년 전 그날, 1950년 8월 8일 아침, 무장한 군인을 대동하고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북의 기관원은, 주무시고 계시는 아버님을 깨워 동행할 것을 요구했고, 이렇게 강제로 납치하였습니다.

서울 중구청장으로 계시던 아버님께서는 6.25전쟁이 나면서부터 줄곧 직장의 정 위치를 지키시다가 서울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더 이상 직무수행을 할 수 없어, 남하하지 못하고 귀가하였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정부는 입버릇처럼 전쟁이 나면 점심식사는 개성에서, 저녁식사는 평양에서 한다는 등, 정부는 절대로 서울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그대로 믿은 국민이 어리석었던 것일까요?
대포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데, 정부는 서울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방송을 계속 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그대로 믿기만 했습니다. 정부를 향한 신뢰,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서울이 수복된 9.28 이후 가장을 잃은 우리가족은 필설로 표현하기 곤란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1.4후퇴 피난시절에는 정부의 구호양곡으로 연명하기도 했고 끼니가 없어 굶기도 했으며, 학업은 중단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54년 서울 천도 후에야 겨우 살던 집에 돌아와, 방마다 하숙생을 받아 생활수단이 해결되었고, 학업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을 졸지에 빼앗긴 가족, 기뻐도 기쁜 줄 모르고, 한 구석이 텅 빈, 메워지지 않는 허전함, 당해보지 않고는 못 느낄 것입니다.

어느 집에서인가 키우던 애완견이 없어졌다고 온 가족이 나서서 없어진 개를 찾는다고 현상금을 걸고 야단법석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물며 가족을 잃은 설움은 어떻겠습니까?
56년이 지난 지금까지 납북된 국가의 공복인 공무원에 대한 정부의 송환대책이나, 연로하여 돌아가셨다면 그 유해인수에 관한 대책을 단 한번이라도 들어 본 일이 없으며, 단 한 줄의 기사도 본 일이 없습니다.

일본의 현 수상이 김정일 위원장과 일본인 납북자문제를 거론하여 그 즉시로 송환을 실행했던 것처럼 우리도 더 이상은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됩니다.

납북자 송환문제는 반드시 우리세대에서 해결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며칠 후면 구정입니다.
저희는 어느 해 부터인가 아버님이 납치되신 날을 기일로 제사를 지내고, 구정과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 된 도리로 분명한 기일도 알 지 못하고 있음은 여전히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제는 정부에서 하루빨리 적극적인 의지로 특단의 조치를 취해 제대로 된 기일에 제사라도 올리고 싶은 저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꼭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 1. 25
6.25전쟁 당시 서울 중구청장 권 태술의 장남
권 영 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