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관6·25전쟁납북이란?

6·25전쟁납북이란?

납북유형 및 경로

(1)『김일성 전집4권』<남조선에서 인테리들을 데려올 데 대하여> - 1946년 7월 31일자

"당면하여 부족한 인테리문제를 해결하자면 북조선에 있는 인테리들을 다 찾아내는 한편 남조선에 있는 인테리들을 데려와야 합니다."


(이 교시문을 내린 후 곧바로 대상자 명단을 작성, 당시 북한이 몰수한 화폐가 남한에서 통용되고 있어 북한은 거금을 가지고 남한으로 와서 대상자에 접근, 감언이설로 회유했으나 대상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한에서 남하한 사람들을 통하여 북한실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하여 별 성과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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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천 주재지 사업 보고서 - 1949년 8월 5일자 (북한문서)

"사업보고 : 적진에 침투하여 진보적인 인사들을 규합하며 반동분자들을 분열 와해시키고 납치함으로써 국토완정의 결정적 역할을 높일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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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러시아 기밀문서 <북조선 군사위원회 결정사항 제18호> - 1950년 8월 17일자

"서울의 식량사정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군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서울시임시인민위원장은 각 부 각 청의 요구에 맞추어 북조선의 농업 및 산업 현장으로 50만 명을 후송하도록 한다"


(혹자는 이송수단이 없어서 실행에 옮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지만, 지리적으로 서울은 북한과 인접해 있어 대부분 도보로 끌고 올라갔으며 실제로 9.28수복 때까지 서울에서 지낸 역사학자 김성칠씨의 저서 『역사 앞에서』에 북한이 내린 서울시민 50만 북송 지시에 의하여 7월부터 서울시민 전출사업이 집행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어 실제로 집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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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북한관계사료집16』<서울시민 전출사업에 관한 협조사에 대하여> - 강원내 제3440호

"해방된 서울 시민(로동자)들로서 공장, 광산, 기업소에 취직을 알선하기 위하여 공화군 북반부에 전출하는 사업이 각 관계 부분에서 집행되고 있는 바 (중략) 모집자 중 도주자가 있을시 체포하라"

(강제성을 띤 납북임을 증명함)

"전출되는 세대로서 로력자가 없는 가족은 북반구에 전출시킴을 엄금할 것이다"

(노동력이 없는 가족, 이를테면 노인, 아동, 부녀자 등은 북반부 전출을 엄금하라"는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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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남북한관계사료집16』 일본 동경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서울상황에 대해 본국에 보고한 서한 - 1950. 10. 11일자 (미국무부문서)

"1950년 9월 17일부터 28일 사이, 감옥에 수감되거나, 억류, 감시를 당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1만명 이상, 적어도 2만명의 정치범들이 서울에서 사라졌다. (중략) 점령 마지막 며칠간 공산당은 대한민국에 충성한 음악가, 목사, 공무원, 사업가와 같은 사람들과 무기를 운송할 수 있는 청년들을 북반부로 전출하는데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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