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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공이식(증언자-공영일)
이름: 관리자
2021-09-16 14:52:05  |  조회: 565
공 이 식 ( 孔利植)

생년월일: 1918년 09월 16일
출생지: 경기도 인천시 용현동 702번지
당시 주소: 경기도 인천시 용현동 702번지
피랍일: 1950년 9월 28일 이전
피랍장소: 신흥국민학교 운동장
직업: 정미소
학력/경력: 모름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남 1녀
외모/성격: 남에게 베푸는 걸 좋아하는 성격
증언자
성명: 공영일(1943년생)
관계: 차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동네 빨갱이들이 젊은이들 모두 나오라고 동원하는데 함께 끌려가 납북됨.
• 아버님 형제가 모두 여섯 명인데 이중에 세 명이 6·25때 실종되었으나, 납북된 장면을 분명하게 본 아
버지 공이식만 신고하였음.

직업 및 활동
<정미소에만 매달려서 일하시고, 선한 성격으로 그 외 다른 활동은 없었음.>
문_ 아버님의 당시 직업과 사회활동은 어떤 것을 하셨나요?
답_ 방앗간 있죠. 지금은 정미소죠? 옛날 방앗간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학력은 모르
겠어요. 내가 알기론, 방앗간. 정미소 하는데 거기만 매달려서 일을 하신 걸로 알고 있
고. 다른 활동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문_ 아버님의 외모 및 성격을 말씀해주세요.
답_ 아버지가 약주를 좀 많이 하셨는데 우리 살던 집 내려오기 한 200m 쯤 잔디가 좋은
데가 있어요. 거기 누워서 날 불러요. “영일아 영일아.” 그러면서 날 데려가라고. 절대
술 먹고 어디가서 큰 소리치고 남한테 피해주는 거는 안하시는 거예요. 넷째 작은아버
지가 그전에 일본제국시대 때 좀 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6형제가 있어도 한 사람
도 도와준 사람이 없고 우리 아버지가 집 팔고, 땅 좀 있는 걸 팔고 해서 그걸 무마를 시
켜줬어요. 그때부터 우리가 집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거예요. 남의 집으로 돌아다니면
서… 없으면서 남 주는 걸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내가 알기로는 집에 돼지, 닭 이런 걸
많이 키웠는데 그걸 팔고 그러는 게 아니라 동네에서 동네 어른들 대접하고, 잡아가지고
큰일 때고 뭐고 좋은 일을 많이 하셨어요. 아버지가.
문_ 피난은 가셨는지요?
답_ 피난을 인천상륙작전 때도, 6·25때 인민군이 쳐들어왔을 때도, 안산까지밖에 못
갔어요. 넷째 작은아버지 처갓집이 거기 있기 때문에 거기까지만 피난을 갔었고, 인천
상륙작전 때는 청룡산 그 산 넘어까지 갔었고 피난을 안 갔어요.
그 산 넘어 인천상륙작전 그 전투하는 걸 팔미도에서 다 봤어요. 내가. 팔미도라고 아시
죠? 인천 앞바다에 팔미도. 등대 있는데, 그거를 저기해 가지고 싸울 때, 길바닥에 막
쓰러져서. 비행기에서 보고 막 쏘고 도망가는 거 보고. 그래서 동네에서 길가에 보면 자
고나면 시체들이 그냥 길 행렬가운데 즐비하게 있는 거야. 그게 왜 그러냐면 늑대나 여
우들이 밤이면 끌어내와. 우리 동네에서 보기 싫으니까 길옆으로 다 치워놓으면 밤에 그
걸 끌어다 길에다 놓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야 이거 보기 싫으니까 어따
묻어버리던가 매장을 해버리던가, 없애버리자.’ 하는 소리를 듣고 그랬는데. 인천 상륙
작전 때 거기서 등대 가지고 신호하면서 저쪽 넘어서 함포로 사격을 하고, 함포 사격을
많이 한 다음에 비행기로다 인천을 부순 거예요. 왜냐면 거기 인민군들이 많았기 때문
에. 송도에도 우리 동네에도 인민군들이 말 타고 거기까지 내려왔어요. 하여튼 많았었
어요. 내가 알기로 인민군들 죽어 나간 게 엄청 많아요.

납북 경위
<방앗간에서 일하다가 강제로 실려감.>
문_ 어떻게 납북 되었는지요?
답_ 방앗간에서 일 하시다가 완장 찬 사람들이 갑자기 동원을 시키는 거예요. 사람들 다
동원시켜서 송도에서 다 집합시켜가지고, 신흥국민학교로 다 집합을 시키더라고요. 그
래서 어머니하고 나하고 거기를 따라갔어요. 강제로 차에다 막 싣더라고요. 작은 트럭
에다가 막 싣고, 강제로 몽둥이로 막 패서 싣고, 가는 거 까지만 제가 본 거에요. 그러니
깐 완장 찬 사람들이 다 똑같은 인민군이야.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동네
에서 조금만 어느 집 누구가 좀 이상하다고 하면 인민군한테 일러서 금방 잡아가고. 그
런 식으로… 그 사람(완장 찬)들한테 꼼짝을 못 한 거지. 강제로 집합시키니 사람들이 말
을 들으려고 하겠어? 그러니까 강제로 끌어다 차에 막 싣더라고. 작은 트럭에다가…강
제로 몽둥이로 막 패서 싣고 가는 거 까지만 제가 본 거예요.
그 당시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거지. 인민군들하고 동네 완장 찬 놈들하고 똑같이
그 지랄들을 한 거예요. 우리 아버지도 같이 끌려가신 거지 다. 그때 다 봤으니깐. 학교
에 가서. 그러니깐 내가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 거지. 그래서 끌려가고 찾을 길이 없잖
아.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근데 인천 학익동이라고 해서 지금 인하대학교 앞이 굉장
히 넓은데, 거기가 임시 포로수용소였어요. (학익동 포로수용소에) 그 인원이 엄청 많았
어요. 겉에는 철조망을 쳐놓고 사람들이 철조망으로 나와서 이렇게 쳐다보고 이러는데,
혹시나 끌려가서 거기 있을까. 뭐 찾아봐도 아는 사람 하나도 없고. 근데 우리 납북자들
은 안 데려다 놨을 거라고. 나중에 보니깐… 바로 이북으로 끌고 갔겠죠.
문_ 포로수용소가 있었어요?
답_ 아 집이 있지. 집이 있는데, 겉에는 철조망을 쳐놓고, 사람들이 철조망으로 나와서
이렇게 쳐다보고 이러는데. 혹시나 끌려가가지고 거기가 있을까. 아버지가. 매일 거기
가서 살다시피 했어요. 혹시 거기 계실까. 뭐 찾아봐도 아는 사람 하나도 없고. 근데 우
리 납북자들은 안 갖다놨을 거라고. 나중에 보니깐 갖다 놓질 않았지. 얼른 이북으로 끌
어갔겠지. 그건 이제 포로들이니깐 거기다 갖다 집어넣어 놓은 건데…

납치 이유
<인력 동원을 위해 끌고 간 것으로 추측함.>

문_ 왜 납치되셨을까요?
답_ 사실 그걸 몰랐어요. 몰랐는데, 동네에서 갑자기 완장 찬 사람들 있잖아. 완장 찬사
람 얘기 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동네 빨갱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갑자기 동원을 시
키는 거예요. 그 당시에 아버지 형제가 식구들이 다섯 명이 있었어. 같이 나오라니까 안
갈 수가 없잖아. 거기 송도에서 다 집합시켜서. 동인천 가기 전에 신흥국민학교라고 있
어요. 신흥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지만. 그리로 다 집합을 시키더라고. 그래서 어머
니하고 나하고 거기를 따라갔어요. 따라갔는데, 진짜 거기 운동장에 가보니까 말도 아
니지 뭐, 담요 끌어다 놓고서, 뭐. 말 안 듣는다구 막 구타를 하는데. 거기서 (내가) 그
걸 다 보고 있었어요.

납치 후 소식
<아무 소식을 못 들음.>
문_ 전쟁 중 납북된 아버지를 찾기 위한 노력은 하셨나요?
답_ 신고를 하지도 못했죠. 주변 사람들한테 수소문이나 도움도 못 청하고. 근데 그 당
시에는 전부 다 어렵고, 쌀 있는 것도 인민군들에게 다 뺏겼어요. 서로가 어려우니깐 서
로가 도와준다는 자체가 참 힘든 거예요.
문_ 이산가족 찾기를 안하신 이유가 있나요?
답_ 일가 친척이 완장을 차기도 했고, 또 한 가지는 아버님이 쉽게 얘기해서 속병이라고
그러죠. 지금은 뭐 병명이 다 나타나지요. 옛날에는 무조건 아프면 다 속병이라 그랬단
말이야. 그게 좀 있었어요. 속병이라는 것만 알지. 집에서도 만약에 이게 발작이 되면
지금은 뭐 심폐소생을 한다던가 하는데 그 당시에는 코를 빨더라고. 어른들이 코를 빨면
또 괜찮아져요. 속병이 발작이 되면 그런다고 하더라고, 그런 지병도 있고 나이도 있고.
그래서 (이산가족찾기) 하고 싶어도 못 했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학교가 없어져서 공부를 하지 못했고, 어머니가 송도 유원지 내 미군부대 식당에서 설거
지를 하며 생계를 유지함.>
문_ 아버지의 납북 이후 생활은 어떠했나요?
답_ 그 후에는 사는 게 말이 아니였었죠. 6·25때 북한에서 쳐들어와 가지고, 내가 거기
서 살면서 인민군들한테 밥을 많이 얻어먹었어. 아침이면 인민군들이 반으로 자른 드럼
통에 국이랑 밥이랑 담아서 지고 간다고. 식당에서 지어가지고 중대본부로 가져가다보
면 우리가 살던 집 앞으로 지나가는데, 어리니까 쫓아가서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아저
씨, 밥 좀 주세요.’ 그러면 걔들이 또 밥을 줘요. 그러면 주로 전투 식량이니까, 비상식
량이 전부 건어물, 멸치, 김, 뭐 생선 종류가 많아. 말린 게. 그런 걸 해서 반찬을 해서
먹는데, 달래면 주고 그래서 인민군한테 많이 얻어먹고 그랬지.
인민군이 내려오자마자 동네사람들은 다 잡아 간 거야. 나하고 동생하고 어머니하고 셋
이 살면서 고생을 한 거죠. 송도 유원지 정문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6·25때
폭격으로 학교가 없어져버렸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공부를 했어요. 제대로 공부를 못
한 거예요.
그렇다 보니깐 1학년, 3학년, 5학년, 3년을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를 갔어요. 중학
교에 가서 엄청 고생했지. 공부를 못해서 그걸 따라가려니깐. 나중에는 뭐 졸업은 했지
만 진짜 공부는 제대로 못 한 거예요. 그 당시 우리또래 친구들이 다 그랬어요.
그러다 송도에 부대가 들어왔어요. 유원지 안에. 송도 유원지가 서울 창경원보다도 더
좋다 그랬데. 둑으로 다니는 열차를 만들어 놓고… 아무튼 창경원보다도 시설이 더 좋
았대요. 그런데 인천상륙작전 때 폭격으로 다 무너졌단 말이야. 그러고 나서 몇 년 있다
가 미군부대가 들어왔어요. 그러다보니 한국 사람들을 많이 쓰잖아. 어머니가 그 당시
에 그 부대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하셨어요. 그렇게 먹고 살은 거지. 어머니가 아침에 일
찍 나가니까. 아침밥을 내가 해야 돼. 그때만 해도 수인선이라고 기차가 다니는 게 있어
요. 수원부터 인천까지 소금 싣고 다니는 건데 송도역전까지 걸어가서 그걸 타고 통근을
하고 그랬는데 그걸 타기가 참 바빴어. 여동생은 어리니까 내가 밥을 차려서 밥상을 들
고 들어가면 저기서 기차오는 소리가 빽빽 소리가 나. 그럼 물 말아서 부랴부랴 먹고 뛰
어가서 그거 타고 학교 가고… 그니깐 내가 그렇게 밥을 해먹으면서 학교를 다니니깐 어
머니도 나한테 참 미안하셨겠지. 자식들 먹여 살리려니까 어쩔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내가 부엌에 들어가는 걸 싫어하셨어. 그래서 지
금도 절대 부엌에 가서 뭐 안 해.
문_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어요?
답_ 지금 7년 됐나? 그러니깐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셔가지고 진짜 고생 많이 하셨어요.
내가 객지에 나와 살면서도 어머니를 내가 못 모셨어. 내가 군대에 가게 되니까 어머니
가 누가 소개를 해서 재혼을 하신거야. 그래서 아들을 하나 낳았어. 그 아들하고 같이
오래 살았지. 그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하다보니까. 진짜 고생 너무 하셨어. 어머니 돌아
가시기 전까진 자주 다녔죠. 어머니도 아버지에 대해선 얘기도 안 하시고. 뭐 특별하게
한 것도 없고…
문_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하거나 도움을 청하셨나요?
답_ 근데 그 당시에는 전부 다 다 어렵고, 쌀 있는 것도, 막말로 쌀 있는 것도 인민군들
에게 다 뺏겼다고. 서로가 어려우니깐 서로가 도와준다는 자체가 참 힘든 거예요. 내가
집 없이 살면서 지금도 안 잊어 먹는 게 수수 있잖아요, 그거를 가을에 털어가지고 겉껍
데기를 벗겨서 밥을 해먹는 거예요. 겉껍데기를 안 벗기면 깔깔해서 못 먹어요. 근데 우
리는 뭐 먹고 살았냐. 털어가지고 맷돌에다가 그냥 갈아. 갈아서 죽을 쒀요. 죽도 멀건
풀 쑤듯이… 그렇게 쒀서 그걸 먹으면 진짜 목구멍에 안 넘어가 깔깔해서 그걸 얼마를
먹고 살았는지. 그렇게 아버지 잃어버리고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렸
어요. 생각도 안 해봤고 생각해봤자 소용없는 거고. 그래 살다 임진각에 명패해 놓은 거
보고, 그걸 보니깐 눈물이 팍 쏟아지는 데… (눈물) 처음으로 아버지 때문에 내가 울었어
요. (흐느끼심) 마음이 너무 약해져가지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어디 신고를 하거나 조사 나오거나 하셨는지요?
답_ 그 당시에 신고가 어디 있어. 없어. 아무것도 없어.
호적 정리
<정리 안함.>
문_ 아버님 호적은 정리하셨나요?
답_ 지금 이게 사망신고가 안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제 추석 때하고 명절 때만 제사를
그냥 지네요.

연좌제 피해
<뒤를 밟는 사람이 있었지만 군대를 갔다온 후에는 사라짐.>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내 뒤를 항상 밟는 사람이 있었어요. 동네 사람이 너하고 누구하고 뒤를 밟는 사람
이 있다 항상 조심해라 그런 얘기를… 내가 뭐 어디 가서 나쁜 짓 안하고, 사실 동네에서
는 좀 싸우고, 옛날에는 싸우지 않는 놈들이 어딨어. 왜냐면 그 송도가 유원지다 보니까
항상 거기서 싸움이 나요, 유원지니까. 철조망 넘어서 애들이 수영복입고 밖에 나온다
고. 동네로. 그럼 우리가 왜 나오냐 여길, 수영복은 수영장에서 입어야지 하면서 우리가
두들겨 패고 그랬어. 나오지 말라고. 경찰들도 못 말리는 거지. 경찰한테 우리가 단속하
겠다고 하면서. 우리 또래가 동네에 스무명 있었어요. 그때부터 우리가 그런 걸 단속을
해주고 그러고 나서 내가 해병대를 지원해서 간 거지. 64년 1월에 제대하고 65년도에
내가 서울로 올라와버렸어요. 그때부터 계속 서울에서 살았는데… 그래서 뒤를 따라 다
닌다는 걸, 나하고 둘째 큰아버지 아들하고, 사촌 형이지. 나보다 두 살 더 많은데. 항
상 그 형이 조심하는 게, 동네에서 싸움 꽤나 하고 주먹 꽤나 쓰고 그러니까. 형이 항상
우리한테 따라다니면서 조심하라고, 군대 갔다 와서는 그게 없어진 거야. 내가 이제 특
공사수라, 눈이 좋아서 사격을 잘해. 내가 메달을 달고 다녔는데 휴가 나오니까 경찰이
부르더라고. 고생했다, 사격시합 하러가자고 해서 무슨 시합을 하냐 그랬더니 ‘돼지 내
놓기’ 하재. 경찰하고 해가지고 내가 이겨서 돼지고기를 경찰한테 얻어먹었는데. 그 후
부터는 이제 그런 건 전혀… 누구한테 들어봐도 아마 군대 갔다 왔으니까 없어졌을 거다
누가 뒤를 밟거나 그런 건 없을 거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사회생활 하는 데는 크게 제
재 받거나 그런 거는 없었어요. 말로는 내 뒤를 따르는 누가 있었나본데 별 제재는 없었
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들이 제대로 명예회복을 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함.>
문_ 정부에게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생사확인 한다는 게 지금 아까도 얘기했지만, 연세 때문에 더는 살아계신다는 보장
은 못하고… 가끔 유골이라도 찾아야 된다. 뭐 그런 얘기를 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남
한에 북한군들이 와서 죽인사람도 엄청 많아요. 시신이 내가 알기로는 우리 동네만 하
더라두 엄청 많은데 찾아가는 사람이 없단 말이예요. 그럼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DNA 검사해 가지고 찾는다 어쩐다 하는데, 내가 생각할 때는 그 많은 인원을 다 찾는
다는 게 참 힘든 거 같아요. 그런거 보다도 제대로 명예회복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
죠. 정부에서 제대로 하기를…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슬프다.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음.>
문_ 아버님은 살아계시지는 않겠지만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지금 와서 뭐 아버지한테 할 얘기라던가 그런 거 말이 나오지를 않아요. 제가 할 말
도 없고, 살아계셨으면 좋겠지마는 살아 있다고 장담도 못 하는 거고. 그 동안에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서 본인도 고생하고 자식들도 고생을 하고 살았지만 지금에 와서 누구
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거고, 아버지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눈물이 먼저 나
요. 그전엔 안 그랬는데 아버지 소리를 하지도 않았지 할 일도 없었고, 이젠 나이가 들
어서 그런지 텔레비전 보면서도 울고. 눈물이 많아져서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하도
내가 슬프게 울어 가지고, 동네가 울음바다가 되다시피 그런 적도 있는데. 이젠 뭐… 그
렇다고 단념할 수도 없는 거고, 고생하시는 분들 생각을 해서라도 앞으로 좋은 소식 있
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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