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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최돈걸, 최돈기(증언자-최돈해)
이름: 관리자
2021-09-16 14:57:00  |  조회: 329
최 돈 걸 ( 崔燉杰)

생년월일: 1925년
출생지: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언별리
당시주소: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언별리(현재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
피랍일: 1950년 음력 8월 15일 이전
피랍장소: 자택
직업: 농업
직계/부양가족: 부모, 4남매
외모/성격: 성실하고 온순함

최 돈 기 ( 崔燉起)
생년월일: 1931년
출생지: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언별리
당시주소: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언별리(현재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
피랍일: 1950년 음력 8월 15일 이전
피랍장소: 자택
직업: 농업
직계/부양가족: 부모, 4남매
외모/성격: 성실하고 온순함

증언자
성명: 최돈해(1939년생)
관계: 남동생
증언성격: 간접증언


증언자
성명: 최돈해(1939년생)
관계: 남동생
증언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추석 전에 아는 이웃 사람과 모르는 사람 댓 명이 밭에서 일하고 있는 증언자의 큰형과 둘째 형 둘을 데리
고 집으로 와 옷을 갈아입히고 동시에 끌고 감.
• 연좌제에 걸려 집 근처에서 모르는 사람이 감시를 했고, 이사를 가도 감시는 계속 되었으며 회사 취업도
안 되어 탄광에서 일함.

직업 및 활동
<일본 징용 갔다가 해방 직후 돌아옴. 경제적으로 어려워 남의 집일을 하다가 6·25전쟁
났을 때 집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었음.>
문_ 납북되신 형님들은 무슨 일을 하고 계셨나요?
답_ 해방 전 일본 지원 갔다가 해방 후 1948년도 쯤 귀향했고 집이 매우 가난하여 귀향
후 남의 집 일을 했는데, 전쟁이 나자 가라고 해서 도로 집으로 와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었고 다른 활동은 없었어요.

납북 경위
<이웃 사람과 모르는 사람 네다섯명이 집으로 찾아와 형들이 일하는 곳을 알려 달라고 해
서 데리고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힌 후 데려감.>
문_ 어떻게 납북되셨나요?
답_ 아는 이웃 사람 한 명과 모르는 사람들 네다섯명이 집으로 찾아 와 이 집 아들들이
어디 있는지 찾았고 당시 아버지와 함께 농사하러 간 형님들이 일하는 곳에 가서 데려와
흙 묻은 옷을 빨리 갈아입으라고 하더래요. 옷을 갈아입고 나니 형님들 두 분 다 데리고
가 가지고는, 그러고는 뭐 모르죠. 형님들 끌려 가고 얼마 안 있다 추석이 돌아 왔어.

납치 이유
<전쟁에 젊은 사람들이 필요해서 데리고 간 것으로 추정함.>
문_ 왜 납치해 갔나요?
답_ 요 근처에도 어느 집 아들도 가고 어느 집 아들도 갔다. 그런 얘기는 듣고. 우리 어
머니 말씀이, 그때 어렸을 때는 모르고 나중에. 우리 형하고 누구 아들하고 같이 끌려갔
다. 끌려간 집들하고 우리 집하고 통했던 건 아들 소식 들었냐, 뭐 서로 물어보는 거고,
그렇지 뭐. 그건 어른들끼리 하고 그 땐 나 초등학교 다닐 땐데 아나? 뭘. 모르지. 이유
는 모르지만, 마을 다른 젊은이들도 납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해요.

납치 후 소식
<없었음.>
문_ 형님 두 분 찾기 위해서 알아 보셨나요?
답_ 나중에 어머니, 어른들 말씀이 ‘너네 형 갈 때 누구 집 아들도 갔다. 누구 집 아들도 붙
잡혀 갔다.’ 그런 얘기하면서 서로 아들 왔느냐 소식 서로 묻고 그랬다 하더라고. 항시 이
달 아니면 내달이나 혹시 돌아올까 기다리는 것뿐이지. 뭐 다른 게 있어요?
우리 어머니 때문에 하도 속을 썩어서. 형님 두 분 때문에 한 달에 네다섯 번씩 감자랑 보
리싹 가져가서 점보고. 그러면 내달이면 다음 달이면 소식이 오거나 아니면 틀림없이 살아
올 것이다. 그렇게 수백만 번 속고 하다 보니 나는 안 믿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졸지에 가장이 되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게 살았고 연좌제로 취업도 힘들어 석탄공사
에서 이십년 근무하여 현재 진폐증 환자임.>
문_ 남은 가족들의 생활은 어떻게 하셨나요?
답_ 언별리에서 6·25 끝나고 삼년인가 있다가 같은 면인데 다른 곳으로 이사했어요. 그
때 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버지 64년도에 일찍 돌아가셨지, 형님들은 없지, 누님 시집갔
지, 그 가난한 살림을 제가 맡아서 했을 때… 말도 마요 말도 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말하자면 내가 가장이 됐지. 가장이 되면 말도 못합니다. 참 기가 막히죠.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고생한 얘길 또 하지만. 요즘은 뭐 좀 잘 먹어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아침,
점심 안 먹으면 배고파, 배고파 하는데 나는 지금도 이틀삼일 굶어도 배고프단 소리를
안 해. 그때 너무 고생하고 했기 때문에… 나는 서른두살 석탄공사에서 이십년 근무한
후 진폐증으로 고생하고 있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에서 도와주거나 신고를 받은 적이 있나요?
답_ 없어요. 우린 계속 경찰한테 감시만 당했어요.

호적 정리
<사망신고 했음.>
문_ 호적을 어떻게 하셨나요?
답_ 투표권도 한두 번 나왔더라고. ‘형님들이 다 의용군 갔는데, 그게 나오니?’ 동네에서
도 다 알고. ‘너희 형님 잡으려고 그러니?’ 이러고 갔는데, 몇 십 년 지났는데 ‘정리하라’
이거야. 그래서 어떻게 해? 사망신고를 내가 했어요.
연좌제 피해
<모르는 사람이 집 근처에서 감시를 했고, 이사를 가도 감시는 계속 되었으며 회사 취업
도 안 되어 탄광에서 일함.>
문_ 혹시 가족이 북한에 있는 거 때문에 불이익을 받으셨나요?
답_ 그 후에 간첩이 우리나라에 어마어마해. 간첩 보낼 때에는 한국에 연고가 있는 자,
뭐 의용군으로 붙잡혀 갔다거나 그러면 많이 보낸다. 그 지역을 알고 하니… 그래서 간
첩만 왔다 하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 근처를 꼭 감시를 했어요. 얼마나 감시
를 당했는지 몰라.
문_ 이사를 가도 그랬나요?
답_ 그렇죠. 나중에는 그 동네 반장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 가지고 ‘너희 형들이 혹시 안
왔다 갔느냐?’라고 은근히 묻기도 하고.
문_ 취업하는 거는 문제없었나요?
답_ 그 회사에서 안 된다 하는 거야. 그때 당시에는 내가 뭐가 부족했거니 해서 안됐겠
거니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형들이 의용군 갔다는 그 조건이다 이거야. 형님 두 분이
북한에 갔으니…

정부에 바라는 말
<정부가 납북자 신고를 받아줘서 납북된 것으로 알아주기만 해도 감사함.>
문_ 정부에 바라시는 바가 있으신가요?
답_ 글쎄… 저는 지금 솔직히 말해서 우리 형님 살아 계시다고는 꿈에도 생각 안 해요.
살아 계셔서 백 살 되든 얼마 되던 간에 살아서 만나본다는 천 번, 만 번이라도 그런 생
각 없어요. 그리고 그저 저는 국가에서 그때 6·25때 끌려간 사람들 신고해라 해서, 이
렇게 알아주기만 해도 감사하고. 저는 기념관에 초청할 때 솔직히 한 번도 안 빠졌어요.
꼭 갔습니다. 꼭 가고 그랬지만. 그때도 뭐 사람들이 뭐 그런 거 보상 어쩌구 했는데, 저
는 하등 바라는 게 없어요. 다만 뭔가 좀 뚜렷하게 형 두 분 확실히 억울하게 가 가지고
이렇게 됐다. 그것만 해줘도 감사하고 그렇지요. 저는 뭐 형들 이런 얘기하고 뭐 바라고
이런 거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뭐 아까도 그랬지만 우리 한국군이라면. 한국군으로 가
서 뭘 했다고 하면 유골이라도 다시 찾을 수 있어. 그러나 이건 막막한 일이예요. 어떻
게 된 일인지도 모르고. 이건 막막한 일이예요. 괜히 어디 가서 누구한테 하소연하고,
찾아 달라 할 수 있느냔 말이야. 어느 누구라도 이건 막막해. 우리 한국군 같으면 전사
했다 하면, 형님 유골 아니더라도 거기서 할 수 있지만. 이건 그때 끌려가서 어디서 어
떻게 된 줄 알아요? 아무것도 모르지.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전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디부터 해야 할지…>
문_ 마지막으로 형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해주시겠어요?
답_ 전하고 싶은 말이야 많죠. 엄청 많죠. 어디부터 말할 수가 없고. 아까도 말씀드리지
만. 형님 모습이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른다, 지금도. 기억이 안나요. 큰형님 어떻게 생기
고, 작은형님 어떻게 생기고, 모습조차 모르는데. 지금 솔직히 십년 전만해도 좀 기대했
는데. 지금은 완전 포기했어요. 살아있었다. 살아있을까? 백 살 정도에 한 번 만나보고
싶다 하는 그런 것조차 포기를 한 상태입니다. 내가 지금 팔십하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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