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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가 아닌 지금의 비극”-수잔 숄티 초청 연세대 발표[누락분]
이름: 관리자
2009-10-06 14:53:49  |  조회: 2255

“옛날 얘기가 아닌 지금의 비극”


사단법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이미일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존경하는 수잔 여사께서 특별히 이 시간을 할애하여 6.25전쟁납북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이 남한을 적화하려고 기습 남침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한국전쟁 16개 유엔참전국들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유엔이라는 깃발을 걸고 이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맞서기 위해서 젊은이들을 보냈습니다. 이들의 희생으로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를 헌신적으로 도와준 참전국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6.25전쟁은 더 처절한 분단을 낳은 채 1957년 7월 27일 승자도 패자도 없이 휴전협정을 통해서 끝났습니다. 끝난 것이 아니라 쉬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지만 저희 전쟁납북피해자 가족들에게 이 전쟁은 아직 끝나지도 쉬고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전쟁 중 가족을 빼앗긴 저희들에게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고 빼앗긴 가족들을 찾기 위한 전쟁 또한 시작되었기 때문에 삼중의 전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세 번째 전쟁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이미 역사가 되어 버린 너무 낡은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분들은 북한의 인권문제라고 하면 현재 너무도 다급하고 힘든 일들이 많기 때문에 반세기가 지난 이 문제는 이제 잊어도 된다고 충고하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정부를 포함한 한국의 보통사람들의 정서가 실제로 그렇다고 느껴왔습니다. 이러한 편견은 저희 가족들이 싸워야 할 또 하나의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이 문제를 리더로써 다루어온 저는 참 외롭게 싸워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납북자는 그 수가 8만 여명이나 됩니다. 이 중에는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하고 각 분야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지식인들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 직후 납북자의 아내들이 중심이 되어 평양에 조사대를 파견하고 납북자 명단을 작성하는 등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1951년 8월 부산에서 초대가족회가 공식적으로 결성되었습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아내들은 졸지에 남겨진 어린 자녀들을 돌보며 오직 남편의 송환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구출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납치해간 청년들을 간첩으로 교육시켜 남한으로 내려 보내기 시작하자 우리정부는 오히려 납북피해 가족들을 감시하고 사회활동을 제한하는 등 연좌제를 적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초대가족회는 60년에 그만 활동을 중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연좌제는 1990년대 들어 해제되었지만 아직도 살아계신 저희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혹시 아버지 납치문제로 또 다시 불이익을 당할까 염려하고 계십니다.

2000년 우리정부는 북한과 화해하기 위하여 다양한 대북지원을 하면서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먼저 해결해야할 이 전쟁납북자 문제는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휴전 후에 납북된 주로 어부들인 480여명만을 납북자 문제로 제한하였습니다.

우리 정부에 생사와 소식이라도 알려 달라고 요구하기 위하여 저희 한국전쟁납북자가족회는 2000년 11월에 재결성되었습니다.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지만 명부도 없다며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당했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어머니들의 대를 이어 우리 자녀들이 남은 힘을 모아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회는 정부가 없다고 주장하던 당시 정부가 작성한 납북자명부를 4종이나 찾았습니다. 또한 납북관여 국내외문서자료들을 발굴 수집해왔습니다. 그리고 가족회 부설 자료원에서는 납북피해가족들로부터 납북 당시 증언을 채록하여 증거자료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이 증언 자료들과 함께 발굴 수집한 명부를 비롯한 국내외문서자료들을 정리하여 각각 2006년과 올해에 1200페이지에 달하는 한국전쟁납북사건사료집1권과 2권을 발간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현재 국회에 전쟁납북자 특별법안이 상정되어 제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회는 국제 활동에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완고한 북한집권세력이 전쟁 납북사실을 시인하고 정직하게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을 주도적으로 수행했고 1953년 휴전협정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였던 유엔과 미국의 도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뜻밖에 여기 계신 수잔 솔티 여사의 주선으로 2006년 4월 미 하원 청문회에서 지금도 계속되는 비극이라는 주제로 한국전쟁 납북자에 대하여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납북피해자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지난 2007년 7월에 워싱턴 National Press Club에서 한반도 평화의 선결요건은 전쟁납북자 문제해결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할 수 있어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는 여러분들은 저를 포함한 저희 납북자 가족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 문제가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보시는 것처럼 키가 아주 작습니다. 목소리도 아주 작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척추를 다쳐서 장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열이 펄펄 끓으면서 앓아 누었던 그때 제 아버지는 이미 전쟁 중에 북한으로 납치되어 가고 없었습니다. 그때 제 아버지는 30세의 청년사업가였고, 어머니와 저희 딸 셋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아마 의사였던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저는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전쟁이 끝나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었고 그때 건강한 제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 절망하지 않고 저를 살려내셨다고 합니다.

제 어머니는 무척 아름답고 유능하신 분입니다. 지금도 역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지난 59년 동안 어머니의 마음속에 유일한 사랑은 아버지뿐이셨고, 그래서 재혼하지 않고 지금도 아버지가 잡혀가신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88세가 됐습니다. 10년 전에는 stroke로 쓰러졌고 이제는 연세가 많아 거동이 자유로운 편이 아니지만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고 살아계시면 모셔오고 돌아가셨으면 유해라도 모셔오려고 이렇게 전쟁납북자 송환운동을 하고 있는 저를 열심히 지원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잊고 산 적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아버지를 위해 이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제가 가고 싶은 중학교에서는 몸이 불편하다고 입학도 거부했지만, 저는 어머니의 희망을 먹고 살아났고, 또 제 어머니의 희망이 끝나지 않는 한 제 아버지도 살아오시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듣기에 불편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작은 목소리로 제 아버지를 찾기 위해 활동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 그 분의 힘에 의지해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의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서울을 UN군과 국군이 되찾은 후 당시 제 어머니는 아버지 시체만 찾으면 딸 셋과 함께 죽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잡혀간 감옥에 갔을 때 감옥은 텅 비어 있었고, 아버지는 북한으로 끌려가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리라는 희망 때문에 어머니는 다시 살 희망을 가지셨고 그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오셨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께서 제 아버지를 찾는 일을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핵문제나 인권문제로 북한을 압박할 수도 있는 나라는 어쩌면 미국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미국과 유엔이 함께 도왔던 그 한국전쟁 때 납치돼 북한으로 간 분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미국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남편을 빼앗기고 당시 남은 아내들은 경제 능력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자녀들을 고아원에 맡겨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납치되어간 남편과 아들을 찾기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해 노력을 하였지만 북한의 시종일관 ‘납북자는 없다’라는 말에 아무 성과가 없었습니다. 눈물과 땀과 피의 추억으로 얼룩진 인생은 우리 납북자 가족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 가족들이 아직도 납북된 그분들을 기다리고 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언제나 절망을 이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납북자 문제를 이미 옛날이야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남한에서 아직도 가족을 찾는 목소리가 이렇게 큰데 어째서 그 일들이 역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2002년 9월 북한의 통치자 김정일은 전쟁 중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 사람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사람들이 합심하여 자국민들을 구출해온 일에 몹시 고무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절망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흔한 격언이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죽어갈 때입니다. 6년 전에는 94세의 어머니가 납북된 두 아들을 기다리다가 돌아가셨고, 4년 전에는 남편을 기다리며 6남매를 홀로 길러낸 90세난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생사여부도 모른 채 세상을 떴습니다. 이제 생존한 납북자의 아내도 몇 분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찾아 우리와 같이 활동하던 60대 70대 아들도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몹시 급해져서 작년부터 가족들의 증언들을 채록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마음이 결코 희망으로만 넘치지 않는 것은, 시간을 더 끌면 정말 우리는 결국 유해를 모셔오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작년 이맘때 납북 당시 학생이었던 아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노모가 세상을 떴습니다. 미국 하원 청문회장에서 증언할 때 부디 이 어린 학생의 노모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사랑하는 아들의 따뜻한 손을 만져볼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청했던 그 어머니입니다. 남은 가족들 중에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던 납북자의 노모마저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한 채 보내 드려야 하는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참담하기만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 아버지가 살아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제가 그 전쟁 통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렇게 살아있다고 제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 어머니가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했고, 여전히 곱고 아름답지만 아버지만을 위해 살아오신 것을 아버지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 얘기는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끌려간 사람은 8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 한반도가 극단적 냉전의 격전지가 되는 바람에 우리 가족들은 북한에 가족을 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남한 정부로부터도 감시와 차별을 받았습니다.

남한은 그동안 경제적으로도 민주적으로도 발전했으므로 이제는 그런 문제를 걱정하지는 않지만 선뜻 우리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희미한 빛이라도 보이는 곳은 열심히 달려갑니다.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가장 기초적인 인권에 관한 것으로 지극히 상식적인 것입니다. 먼저 납북된 가족의 소식을 듣기 원하며 다음으로 돌아가셨다면 유해송환을, 살아 계시다면 서신교환과 자유로운 왕래를 원합니다.

끝으로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미국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쩌면 제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날쯤에야 저 자신의 전쟁은 물론이고 한국과 미국, 그밖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피를 흘린 수많은 희생자들의 전쟁이 비로소 끝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돌아오시고, 핵문제도 해결되며, 요덕과 같은 정치범수용소도 사라지는 그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제 작은 목소리를 참아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참고>
전쟁 중 불특정다수의 일반적인 피해와 무엇이 다른가
북한의 이 전쟁 중 납치는 전쟁 중에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일반적인 재난과는 그 양상이 확연히 다릅니다. 전쟁납북자명부들을 종합하여 낸 통계에 의하면 북한은 치밀한 사전계획 하에 필요한 대상자를 선별하여 조직적으로 납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북한의 남한민간인 납북사건은 비록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민간인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것입니다.

왜 뒤늦게 활동하는가
1951년 납북자의 부인들과 어머니들이 모여 처음으로 결성된 납치인가족회가 남편과 아들의 송환을 위하여 있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1950년 9월 28일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한 직후 무초 주한 미국 대사가 미국무부에 보낸 서울 상황에 대한 전문이 있습니다. 이 전문에는 북한의 남한민간인 납북상황을 상당히 비중있게 보고하면서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남한의 지식인들을 모두 납북해 가서 마치 한국에 지식인들이 한명도 없었던 것처럼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에 당시 각 분야의 지도급 지식인이셨던 아버지의 자녀들로 현재 저희 가족회 임원인 몇 분이 함께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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