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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최진, 최휘(증언자-최인숙)
이름: 관리자
2016-12-19 11:15:57  |  조회: 1525


피랍인

생년월일: 1915년 5월 10일

출생지: 함경남도 장진군

당시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41

피랍일: 1950년 7월 27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민간항공 비행사(최휘)

직계/부양가족: 어머니, 최진의 딸, 남동생 최주기, 최주기의 처, 최주기의 1남 2녀

   

증언자

성명: 최인숙 (1946년생)

 관계: 조카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피랍인 최진과 최휘 형제는 공산주의 국가가 된 북한을 피해 온가족이 남한으로 넘어온 경우였음.

- 피랍인 두 명은 일본 항공학교에서 비행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귀국하여 각각 공군과 민간항공사에서 비행사로 활동하던 중 좌익으로 생각되는 동창생의 밀고로 인해 납치를 당하였음.

- 피랍 후 두 사람의 생사여부 및 소재지를 알 수 없었으며, 남겨진 가족들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피난을 다니다 겨우 사천에 정착해 생활하게 됨.


업 및 활동

<피랍인 두 형제는 일본 항공학교에서 비행사 자격증을 딴 재원이었으며, 그를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와 각각 공군 조종사와 민간항공 조종사로 활동을 하던 중 피랍되었음>

문_ 납치되신 두 분 큰아버지의 직업은 무엇이지요?

답_ 우리 가족들은 함경남도 장진에 살다가 공산주의가 싫어서 서울로 왔습니다. 친정아버지가 목재 나르는 트럭 일을 하셔서 돈을 많이 버셨고 그걸로 두 형님의 일본 항공학교 학비를 대주셨다고 들었어요. 학교 졸업 후 큰 아버지는 한국으로 와서 공군 비행기를 탔고 둘째 큰 아버지는 공군에 있다가 나와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여객기 운전을 하셨어요. 일본에 갔다 오시면서 초콜릿 같은 것을 사다 주신 것이 기억나요.

문_ 다른 사회 활동은 하셨나요?

답_ 공산주의가 싫어서 우리 가족이 모두 남한으로 왔거든요. 그래도 우익 청년단체 활동 같은 것은 안 하셨어요.


납북 경위

<피랍인들은 서울시내 모처에 피신을 했지만, 옷을 갈아입으러 잠시 집을 방문한 사이에 갑자기 들이닥친 인민군들에 의해 납치됨>

문_ 어떻게 납북되셨는지요?

답_ 제가 눈물 나고 억울한 게 그 부분이에요. 피난을 가지 못하고 친구들 몇 명이서 모처에서 숨어 지내고 계셨는데 집에 잠깐 왔다가 잡혀갔어요. 우리 큰 아버지가 설사병도 나고 옷도 좀 갈아입기 위해서 집으로 왔던 거예요. 그런데 누가 밀고를 했어요. 아침에 옷 갈아입고 밥을 먹으려 하는데 총을 맨 괴뢰군복 입은 사람 서넛이 대문을 발로 차고 들어 왔어요. 크게 놀란 두 분이 같이 담을 뛰어 도망치려 했지만 그만 잡히고 말았어요. 그날 한 분만 오셨으면 한 분이라도 무사하셨을 텐데 두 분 다 잡혀가셨어요.

문_ 피랍장면을 직접 목격하셨죠?

답_ 그랬지요. 어릴 때지만 기억이 나요. 두 분이 그렇게 끌려가신 후 괴뢰군복 입은 사람들이 방문에다가 빨간 딱지 붙이는 것을 봤어요. 방에 있는 담요, 큰 아버지들 옷하고 구두를 다 가져갔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이 이불도 없이 마루에서 잤어요. 그때가 여름이기는 했지만 밤에는 좀 썰렁했거든요.

납치 이유

<피랍인들 항공학교 동창 중에 좌익이 있었으며, 그 사람이 밀고했다고 추측>

문_ 왜 납치되셨을까요?

답_ 누가 밀고를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우리 아버지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큰 아버지 두 분이 일본 항공학교에 있을 때 같이 공부한 사람이 있는데 우리 아버지에 의하면 그 사람이 밀고한 것 같다는 거예요.

문_ 아버님은 당시에 어디 계셨나요?

답_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피난을 가느라 서울에 안 계셨어요.


납치 후 소식

<종로서를 거쳐 서대문 형무소로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그 후 소식을 알 수 없었음. 납북자 신고를 하였으며 KBS 이산가족 찾기 운동에도 참가 신청을 하는 등 계속해서 노력을 하였음>

문_ 어디로 끌려 가셨지요?

답_ 처음에는 종로서에 있다가 서대문 형무소로 끌고 갔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엄마가 계속 서대문 형무소로 찾아갔대요.

문_ 서대문 형무소로 가신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답_ 듣고 아셨나 봐요. 가서 기웃기웃 거리면 어디로 갔다 이렇게 했을 것 아니에요? 그래서 엄마가 서대문 형무소 갔는데,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대요. 어떤 여자는 군인 부인 같은데 애기를 업은 상태에서 총에 맞아 죽어 있기도 했대요. 그래서 큰 아버지들 시체라도 확인하려고 사흘인가 갔다가 결국은 포기하셨어요.

문_ 납북자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신고는 제가 하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정부 기록에 몇 차례 한 걸로 되어있어요. 그리고 사촌 언니가 적십자에 신고를 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이 온대요. 또 KBS에서 이산가족찾기 운동할 때도 신고를 했고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만나지를 못했지요. 이북에서 호응을 하고 찾아야지 찾을 수 있다고 그러더래요. 

 

남은 가족의 생활

<1․4 후퇴 후 대구와 제주를 거쳐 사천으로 피난을 갔으며, 그곳에서 피랍인들 친구의 도움을 받은 피랍인의 동생인 증언자의 아버지가 공군 군속으로 취직해 생계를 이어감>

문_ 아버님은 두 형님 일로 상심이 크셨겠네요?

답_ 이북에서 내려올 때는 ‘형님들 덕에 걱정안하고 살 수 있다. 두 형님이 조종사도 되었으니 서울 가면 편안히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내려왔는데 그렇게 된 거예요. 6․25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망한 거지요.

문_ 납치 후에 나머지 가족들은 피난을 가셨나요?

답_ 1․4후퇴 이후에 대구로 피난을 갔어요. 할머니, 엄마, 사촌 언니와 우리 3남매 이렇게 갔어요. 아버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대구에서 큰아버지 친구 분들 도움을 받아 제주도로 비행기 타고 피난을 갔다가 다시 사천에 와서 살았어요.

문_ 생활은 어떻게 하셨지요?

답_ 큰아버지 친구 분들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사천 공군부대에서 군속으로 일한 것은 기억나요. 군부대 짬밥 있잖아요. 그걸 운반하는 운전을 하셨어요.


호적 정리

<기억 못함>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가호적을 해서 경남 사천군 사천읍 선인리 535번지에 살았어요. 그때 ‘이제는 통일되기는 힘드니까 이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호적 정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신고하셨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큰 아버지 두 분의 호적 정리를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었나요?

답_ 아버님이 공군에 계셨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큰아버지 두 분의 지인들이 우리 사정을 잘 알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정부에 바라는 말

<명예회복과 생사확인>

문_ 정부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답_ 두 분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면 제일 좋겠어요. 6․25때 납치당한 사람도 전쟁 때 죽은 것과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큰아버지 동기들은 다들 부자로 살고 공군의 고위 관직도 하고 정계 진출도 하셨어요. 그런데 두 분은 끌려감으로서 다른 분들과 비교해 완전히 하늘과 땅 사이가 되어 버렸어요.

그리고 큰아버지 두 분이 돌아가셨으면 돌아가셨다는 것을 북한에 확인해서 제사라도 지낼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한 번에 두 분이 그렇게 잡혀 가셨다는 것이 한스러워요. 당시 유명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많이 잡아갔잖아요. 살아 계셨으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다 훌륭히 일할 사람들이잖아요. 가족들 한이라도 풀게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납치되신 두 분의 큰아버님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답_ 한동안 큰아버지 두 분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못했어요. 이유는 아버지가 아닌 큰 아버지니까, 또 살기가 너무 급박하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큰아버지들은 잊고 살았어요. 그런데 2011년에 동사무소에 걸린‘납북자 가족 신고를 받습니다’ 현수막을 보고 신고를 했었거든요. 나라에서 이렇게 해주신다니 너무 감격스럽더라고요. 하루 속히 납북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납치되었고 어떻게 사망했는지 이런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납북자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는데, 볼 때마다 울었어요. 우리 큰아버지들은 어떻게 돌아가셨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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