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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채록

납북자-유동연(증언자-유영한)
이름: 관리자
2016-12-19 11:25:34  |  조회: 1306


피랍인
생년월일: 1929년 3월 25일
출생지: 경북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 104번지
당시 주소: 경북 안동군 풍천면 광덕리 104번지
피랍일: 1950년 7월 10일 ~ 31일(음) 사이
피랍장소: 자택
직업: 농업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모친, 형님가족, 외동딸
외모/성격: 성실, 부지런함
 

증언자
성명: 유영한 (1952년생)
관계: 딸
증언성격:

특이 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증언자는 피랍자의 딸로 생후 3주가 안 되어 아버지가 납북되었으므로 기억이 전혀 없음. 
- 계속 집에 찾아와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들에 못 이겨, 갓 태어난 딸과 부인을 남기고 결국 납치되었음.
- 피랍자 부인의 사촌이 북한에서 피랍자를 목격한 사실이 화상상봉 때 밝혀짐. 


“화상상봉 있잖아요. 적십자사에서 그걸 했잖아요. 바로 옆집에 유도윤씨라는 어머니 사촌도 납북되어 가셨거든요. 그분이 북에 살아계셔서 남한 가족을 찾는다고 해가지고 그 가족들이 화상상봉을 했어요. 상봉을 했는데 그 유도윤씨가 이북에서 화상상봉하기 2년 전에 저희 아버지를 봤대요.”

 “제가 몇 살인가? 할머니 돌아가시고 여섯 일곱 살 되었나? 큰아버지 식구가 떠났어요. 아버지 양자로 삼은 둘째 사촌 오빠를 두고. 다 데리고 가려고 하니까 힘들잖아요. 엄마 혼자 직접 농사를 지어서 남은 오빠와 저를 먹여 살리고 학교도 보내신거죠.” 

 
직업 및 활동

<농사만 지었을 뿐 다른 사회활동은 없었음> 

문_ 피랍인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답_ 농사를 지으셨어요. 큰아버지 가족과 살았는데, 그분은 농사일 열심히 안 하셨고 아버지가 열심히 하시면서 가족 생계를 책임졌어요.


납북 경위

<모르는 사람들이 몇 차례 집을 방문했고 그 이후에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하고 돌아오지 않음>


문_ 아버님만 납치를 당하셨나요?
답_ 제가 태어난 지 3주도 안되었을 때 생긴 일이라 기억이 없어요. 큰아버지는 무사하셨어요. 꾀도 많고 그래서 미리 피하신 것 같아요. 작은 삼촌은 그때 군에 있었고요. 아버지는 농사일만 하다 보니 우직하고 성실하기만 하셨죠.

문_ 아버님을 납치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들으셨나요?
답_ 어머니가 그건 모른대요. 큰아버지가 아셨을 텐데 그분이 돌아가셔서 물어볼 수도 없고요. 또래 젊은이 중에서도 대여섯 명 정도가 없어졌대요. 한꺼번에 사라진 것은 아니고, 아버지는 좀 늦게 납치돼 가셨대요.


납치 이유

<납치 이유는 알 수 없음>

문_ 납치 이유를 아시나요?
답_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실종되기 전에 몇 사람이 자꾸 찾아와서 뭐라고 했나 봐요. 그래서 결국엔 아버지가 집에다가‘어디에 좀 다녀오겠다.’라고만 말을 하시고 나가셨대요. 그러면서 당시 종이돈 100원 짜리 10장인가를 어머니께 주고 가셨어요. 남은 건 아버지 도민증하고 그것뿐이에요.


납치 후 소식

<피랍자 부인의 사촌이 납북되었으며, 그와 화상상봉을 한 남한 측 가족이 피랍자가 북한에 있었다는 정보를 전해줌>

문_ 납치 이후에 소식은 있었나요?
답_ 언제인지 모르지만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을 한적 있잖아요? 엄마 외사촌 중에 유도윤 씨라는 분도 납북되었거든요. 그분이 남한에 있는 가족들과 화상상봉을 했어요. 그때 그분으로부터 화상상봉 당시로부터 2년 전에 저희 아버지를 봤다는 말을 전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어머니나 저나 정말 마음이 들떴죠. 혹시나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런데 이렇게 또 세월만 지났네요.


남은 가족의 생활

<전쟁 당시 피랍자의 동생이 군에 있어 약간의 혜택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피랍자의 부인이 홀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책임졌음>

문_ 납치 후에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답_ 다행히 삼촌이 군에 있잖아요. 그래서 혜택을 받았어요. 그러다가 할머니 돌아가시고 제가 예닐곱 살이 되었을 때 큰아버지 식구가 떠났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농사를 직접 다 지으셨어요. 연세가 84살 인데 지금도 안동에서 농사를 짓고 계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못 본데다가 저도 있어서 그랬는지 엄마는 새로 시집을 안 가셨어요. 제가 결혼해서 남편이 돈을 잘 못 벌고 애들이 네 명이라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런데 만약 엄마가 개가를 했더라면 나도 그 길을 따라갔을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그냥 사셨잖아요. 그래서 우리 엄마 생각해서 참고 살았죠. 지금 생각하면 이런 게 가정이구나 싶어요.

문_ 어머님이 아버님에 대해서 어떤 얘기들을 하셨어요?
답_ 엄마도 부지런하고 성실하시니까, 네 아버지 계셨더라면 우리 부자 됐을 거다.’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할머니는 찾으려고 노력하셨고 큰아버지가 몇 차례 신고를 하셨어요. 


호적 정리

<호적 정리를 하지 않아 생존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음>

문_ 호적정리는 하셨어요?
답_ 지금도 안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딸인 저만 있으니까 큰집에서 양자를 삼으라고 해서 둘째 사촌 오빠를 양자 삼았거든요. 이 오빠가 외국에 간 적이 있는데 아버지 문제가 혹시 걸릴까봐 안한 상태로 지금까지 놔두었어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없었나요?
답_ 우린 조사받고 그런 건 없었어요. 불이익이란 것은 아버지가 군에 가서 전사하셨더라면  혜택을 좀 받았을 것 같은데, 혜택을 못 받았다는 거지요.


정부에 바라는 말

<정부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함. 북한의 태도 변화를 통해 남북 화합이 있기를 바람>

문_ 정부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답_ 정부가 우리에게 혜택을 좀 주었으면 하는 것이 조그마한 바램이죠. 그리고 북한은 왜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좀 변해서 화합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님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세요.
답_ 다른 사람들이 늘 그래요. 아버지가 곱슬머리라 저도 곱슬머리라고요. 제가 아버지 닮았다고 그래요. 그래도 엄마한테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달라고 하는 건 제가 못하겠어요. 엄마 마음이 아플까 봐 못해요. 굳이 한마디 하자면 ‘아버지, 보고 싶어요.’ 그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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