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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주완 (증언자-이옥순)
이름: 관리자
2017-01-24 14:25:35  |  조회: 1429

2016. 10. 31.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23년 11월 25일
출생지: 고양군 지덕면 행주외리 170번지
당시주소: 고양군 지덕면 행주외리 170번지
피랍일: 9.28수복 직전
피랍장소: 자택
직업: 어부
직계/부양가족: 조부모, 부모, 여형제 5명, 남동생 2, 배우자, 1남
외모/성격: 성격이 활발하고 잘생김. 신앙심이 두터움.


증언자
성명: 이옥순 (처), 김피득 (아들)
관계: 처, 아들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어부였으며 청년회 회장이었음.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음.
• 이웃의 좌익이 밀고를 하여 인민군과 동네 좌익 등 세 명이 집으로 와 피난 갔다 돌아온 납북자를 붙잡아감.
동네의 창고에 70여명을 붙잡아두고 종교를 버릴 것을 강요했으나 듣지 않자, 서대문형무소와 미아리 고개를 거쳐 철원으로 끌고 감.


피랍 정보 등재 명부:
- 6•25 사변 피랍치자 명부( 공보처 통계국 , 1952)
- 6•25 동란으로 인한 피랍치자 명부( 내무부 치안국 , 1954)
- 실향사민 등록자 명단( 대한적십자사 , 1956)

직업 및 활동
<어부였으며 고양군 청년회 회장이었음.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음.>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은?
답_ 이옥순. 1925년 2월 15일생.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김주완. 1923년 11월 25일생. 고향은 고양군 지덕면 행주외리 170번지. 전쟁 때
도 거기 살았죠. 행주대교 건너서 행주 나루터에서.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어부였어요. 고양시 청년회 회장이셨어요. 우익 단체죠. 출신 학교는 능곡국민학교.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신앙생활을 오래 하시고 농사지으면서 어부도 하셨죠.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성격은 활발했죠. 외모도 좋아요. 잘 생겼어요.
문_ 아드님의 성함, 생년월일은?
답_ 김피득. 1949년 9월 7일생입니다. 납북된 분의 아들입니다.


납북 경위
<이웃의 좌익이 밀고를 하여 인민군과 동네 좌익 등 세 명이 집으로 와 피난 갔다 돌아온
납북자를 붙잡아감. 동네 창고에 70여명을 붙잡아두고 종교를 버릴 것을 강요했으나 듣
지 않자, 서대문 형무소와 미아리 고개를 거쳐 철원으로 끌고 감.>


문_ 피난은?
답_ 피난 갔죠. 수원으로. 당시 우리 가족이 열 네 식구였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 시
아버지, 시어머니, 시누가 다섯, 시동생 그렇게 열 네 식구가 같이 가다가 제가 젖이 없
어서 암죽을 먹였어요. 그런데 옆집에서 암죽을 먹이고 나오니까 식구가 다 헤어졌어
요. 할아버지, 할머니 다 계셨는데 할아버지는 소금 구해온다고 가서 잃어버리고 나는
아기 젖 먹인다고 갔다가 잃어버리고. 시누가 애기를 낳으러 우리 집에 왔는데 전쟁이
나니까 같이 간 거에요. 그래서 나는 젖을 먹이고 나오니 식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울면
서 집으로 왔어요. 그래서 식구는 다 잃어버리고 집에서 있었는데 할아버지께서 다행히
집으로 돌아오셨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랑 나랑 아들이랑 셋이서 밥 먹고 사는데 얼마 만
에 식구들이 다시 다 집으로 왔어요. 그런데 거기에 나룻배가 있었는데 그 근처를 지키
던 좌익하고 인민군들이 식구들을 쫓아 온 거에요. 그래서 그 놈들이 식구들이 왔으니
까 잡으러 온 거죠. 날짜도 모르고 그렇게 어디로 갔냐고 하니까 능곡에 지도면 사무실
창고로 끌고 갔대요. 며칠 만에 알았죠. 그래서 아침에 밥을 갖다 줬어요. 그렇게 받아
서 먹고 그랬는데 거기 교인들도 다 끌고 간 거에요. 그 사람들 중에 나는 예수 안 믿는
다고 한 사람들은 풀어 줬어. 날더러 하는 소리가 우리 남편 이름을 대면서 그 사람은 정
신이 빠졌다고. 예수 안 믿는다고 하면 빠져 나올 수 있는데 계속 믿는다고 해서 갇혀 있
다고. 그래서 내가 아침에 가서 그랬어요. 그냥 예수 안 믿는다고 말하라고. 그랬더니
날더러 그 소리 하지 말고 피득이나 잘 기르라고 그래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울다가 밥을
아침에 새벽같이 해서 아들을 데리고 남편한테 갔더니 창고 문이 열렸어요. 그런데 사람
들이 그래요. 아침에 수갑을 채워서 싣고 갔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왔죠. 몰려갔
다가 왔다가 그랬대요. 후퇴를 하고 나서 창고에 갔더니 그 놈들이 우리 집에 와서 사진
이란 사진은 다 빼서 갔는데 그게 창고 바닥에 떨어져 있어요. 그걸 가지고 왔어요. 아
무튼 그렇게 얼마 있다가 우리 열 네 식구가 이불을 짊어지고 수원으로 피난을 갔어요.
수원에 시누가 살았거든요. 그렇게 왔다 갔다 했죠. 나중엔 해방된 후에 왔더니 집이 잿
덩어리가 됐어요.
문_ 납치 시기는 기억이 안 나시나요?
답_ 아버지한테 밥 가져다 줄 때가 수수이삭이 있었을 때니까 9월 정도인데 9.28수복되
기 전이지 않나 싶어요.
문_ 그럼 남한 좌익의 밀고가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답_ 행주 나루터에서 보고 신고를 한 거겠죠. 고양군 청년회 회장이었고 군사훈련도 시
키고 그랬대요 우리 아버지가. 그래서 그 사람 보면 신고를 하라고 해서 누군가 신고를
했겠죠. 빨간 완장 찬 사람도 오고 인민군도 오고 그래서 잡아 갔어요. 그 때 본 게 능곡
이라고 하는 곳에 얼음창고가 있는데 거기에 70여 명이 있었대요. 집사님도 있고 여럿이
붙잡혀 갔는데 거기에서 김일성 만세 하고 노래 부르면 내보내 줬대요. 그런데 우리 아
버지는 ‘오직 예수’ 이렇게 썼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안 된다. 그래서 한 6명
뺀 나머지는 다 나갔단 말이에요. 우리 어머니가 두 번 면회를 가서 나오라고 그랬더니
나는 죽으면 죽었지 안 나간다고. 인민재판을 하는데 재판하는 사람이 우리 뜻을 따르라
고 했더니 아버지가 거기에서 나는 ‘오직 예수’, ‘오직 이승만이다.’ 그랬다는 거에요. 그
래서 동네 사람들이 저렇게 미련한 사람이 있냐 했대요. 그리고는 군 트럭이 새벽에 와서
서대문 형무소로 다 싣고 갔대요. 그랬다가 미아리고개로 끌고 갔을 때 철사 줄에 묶여서
간 거죠. 그렇게 철원 평야까지 가셨대요. 거기에서 살아 나온 사람이 있어요.


납치 후 소식
<철원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옆 동네 사람의 말에 의하면 철원에서 기독교인들은 다 죽
였으니 납북자도 돌아가셨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음>


문_ 그 분들의 이야기는 들어 보셨나요?
답_ 성함은 잘 기억이 안나요. 우리 옆 동네 분이었는데, 그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질
에 걸려서 혈변을 누니까 논두렁에 버리고 기관총을 쐈는데, 안 맞은 거야. 그래서 이
분이 죽은 척 한 거에요. 그렇게 해서 철원에서 살아서 왔어요. 돌아 와서 하는 말이 예
수 믿는 사람들은 철사 줄로 손목을 묶고 구덩이를 파라고 한대요. 그리고 눈을 가리고
기관총을 쏴서 죽인대요. 그렇게 걷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죽이고 그랬대요. 너희 아버
지는 철원 평야까지 가서 죽고 나는 살아 나왔다고 하시더라고. 우리 아버지가 거기 있
었는지 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계셨지 않았겠느냐. 하지만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
기 때문에 납북자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그 분의 말씀에 의하면 아마 돌아가셨을 거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문_ 그 분은 언제 만나셨나요?
답_ 제가 어릴 때 만났죠.
문_ 소금창고에서 빠져 나온 분들이 아버님에 대해 한 말은 없나요?
답_ 있죠. 아버지가 그렇게 고집을 피웠다고.
문_ 어머님이 밥을 가지고 가셨을 때 아버님이 다른 말씀은 없으셨는지?
답_ 아버지를 하룻밤 자고 오라고 내보내 줬었대요.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 설득을 하라
고. 그래서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우리 식구들 모두 김일성을 찬양하도록 바꾸자고 그랬
더니 아버지가 싫다고. 그래서 다시 그냥 돌아 간 거에요. 그렇게 도망갈 기회를 줬는데
도 식구들을 죽일까봐 다시 왔다고 하더라고. 아버지가 큰아들이고 딸이 다섯, 밑으로
아들 둘 그래서 10남매에요. 그래서 식구들 생각해서 다시 돌아 가신 거죠.
문_ 아버님을 잡아갈 때 몇 명이, 어떤 식으로 잡아 갔나요?
답_ 인민군하고 동네 빨갱이하고 3명이 왔어요. 총도 메고. 그냥 끌고 간 거죠.
문_ 남편분이 남긴 말은?
답_ 말도 못 하고 그냥 끌려갔으니까. 신발도 벗지 않고 끌려갔어요. 나룻배 타고 오자
마자 쫓아 왔거든요.
문_ 붙잡혀 가신 다음에 아버님이 남기신 말씀은?
답_ 예수 믿으라고. 나는 칼이 목에 들어와도 안 믿는다는 말은 못 한다고. 그런 말만 했
어요. 그 때 아버지를 끌고 간 사람이 우리 동네에 살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몰랐는
데 나중엔 알았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서 그 분이 우리 집에 밤 10시에 찾아 왔어
요.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더라구요. 그 때는 제가 결혼을 한 뒤니까 20대 후반이었어
요. 부인하고 같이 왔더라고. 그러니 어떻게 해. 용서할 수밖에 없지. 그런데 그 분이
위암이 걸렸어요. 원수라도 사랑하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기도를 했어요. 다 같이 울
면서 기도를 했죠. 그러고 한 달인가 두 달 뒤에 또 찾아 왔어요. 위암이 걸려서 시한부
였었는데 어느 날 동생 집에 가서 삼계탕을 먹었는데 속이 괜찮더래요. 병원에 갔더니
위암이 싹 없어졌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찾아 온 거에요. 그래서 또 같이 기도를 했
어요. 그 때 전도를 해서 그 분 가족들도 다 교회를 다니게 됐죠. 잘 끝났죠.
문_ 그 분이 왜 아버지를 잡아 갔다는 이야기는 안 하셨나요?
답_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가 어렸거든요. 그런데 좌익에 들어간 거에요. 그게 옳다고 생
각했던 거지. 인민군이 하는 걸 따라 한 거지 우리 아버지가 특별히 싫어서 그랬던 건 아
니었어요. 아버지를 잡아 가는 데에만 동조를 한 거지.
문_ 아버님이 잡혀간 뒤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전혀 없었어요. 잡혀 갔을 때 고양경찰서에서 위로라고 밥그릇을 줬어요. 거기에 유
공자라고 위로의 밥그릇하고 사발을 준 거 외에 다른 지원은 없었죠.
문_ 당시 납북 피해가족 단체 결성에 참여했는지?
답_ 없었어요. 그런 모임 자체가 없었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납북자의 부인이 시장에서 옷을 팔고, 고기를 잡아 가게에 팔러 다니는 등 어렵게 대가
족의 생계를 이어감>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말도 못 해요. 식구가 많아서 흙을 반죽해서 돌을 주어와 그걸 쌓아서 집을 지었어
요. 그렇게 방 하나 가지고 우리 식구가 사는데 아들하고 나는 부엌에 조그맣게 또 하나
를 지어서 둘이서 잤어요. 어려운 상황이라 학교도 못 보내고. 그래서 내가 남대문 시장
에 가서 옷을 팔러 다니니까 시아버지가 네가 어떻게 식구를 먹여 살리냐고 그만 두라고
해서 그만 두고 고기를 잡아서 능곡의 가게에 팔러 다녔죠. 그러다가 그것도 할 수 없어
서 학교는 못 보내고 일산 홀트 아동복지에 갔어요. 거기에서 7년을 살았는데 결핵에 걸
려서 각혈을 해서 왔어요. 그러다가 돌아 와서 농사짓고 밭에서 품팔이도 하고 그랬죠.
그렇게 공부 시켜서 고등학교 졸업도 했어요.
문_ 할머님, 할아버님은 언제 돌아가셨는지?
답_ 증조할아버지는 6·25때 파편에 맞아서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열병에 걸려서 돌아
가시고.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그건 없었어요.


호적 정리
<행방 불명 상태>


문_ 아버님 호적 정리는?
답_ 행방불명으로 했죠. 국가에서 그렇게 해주지 다르게 안 해줘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못 받았어요.
문_ 현재까지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
답_ 없죠. 알아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번에 가족회가 생겨서 그렇지, 그 전에
는 없었죠.
문_ 아드님은 아버님과의 추억이 있으신가요?
답_ 어머니랑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셔서 가셨잖아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아이를 3명
유산을 하시고 저를 낳으셨죠. 그래서 아버지와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했어요.
저는 아버님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죠. 사진으로만 뵌 거니까.


정부에 바라는 말
<납북자의 존재를 알리고 명예 회복에 힘써주었으면 함>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늦게나마 국무총리실에서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서 활동
도 많이 하고 유인물이나 방송을 통해서 납북자들에 대한 명예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
려주는 게 감사하죠. 다른 사람들은 납북자에 대해 전혀 몰랐잖아요. 머리 좋고 유능한
사람들이 많이 갔잖아요? 그런 사람들 이름도 없이 있는 것 보다 세상에 이런 분들이 있
었는데 희생을 당했다는 것만 알려줘도 감사하고요. 미망인들이 다 돌아가지 않았으니
까 이런 분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 주셨으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함>


문_ 아버님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답_ 제가 젊었을 때는 아버님이 미웠어요. 풀려 나올 수 있었는데 안 그러셨으니까. 그
런데 지금 생각하면 참 훌륭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그 때 그렇게 빠져 나왔다면
그것도 부끄럽지 않았겠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목회 하면서도 우리 아버지 이야기
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감탄을 해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감사하다고 전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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