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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유재옥 (증언자-유남종)
이름: 관리자
2017-01-24 12:23:32  |  조회: 1297

피랍인
생년월일: 1927년 3월 15일
출생지: 충남 부여군 규암면 내리 160 번지
당시 주소: 충남 부여군 규암면 내리 160 번지
피랍일: 1950년
피랍장소: 자택
직업: 면사무소 서기
직계/부양가족: 부모, 배우자, 외동딸, 남동생, 여형제 셋
외모/성격: 성격이 착하고 머리가 좋았다 함.


증언자
성명: 유남종
관계: 외동딸
증언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부여군 규암면에서 면서기로 근무하며 대한청년단 활동을 했는데 누님 집에 숨어있다 잠시 집에 와 있는
사이 인민군에 의해 붙잡혀감.
•동네에 좌익이 많았고, 당시에 집 밖에 항상 여러 명이 감시하고 있었음.
• 수원까지 끌려갔다가 탈출해온 친구 한 명이 납북자가 수원까지 온 것을 보았다고 하나 그 밖에 다른 소
식은 듣지 못함.


직업 및 활동
<면사무소 서기로 일하면서 군청 서기로 발령을 기다리는 중이었음. 대한청년단원으로
활동함.>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유남종. 생년월일은 1950년 10월 21일. 음력이에요. 저희 아버지가 납북자시고,
저 하나밖에 안 낳으셨어요.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유재옥. 생년월일은 3월 15일입니다. 출생지는 부여군 규암면 내리 160번지이고.
살던 곳은 같은 곳이에요.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저희 아버지 직업은 면사무소 서기로 계시다가 군청 서기로 발령 대기 중이었는데
전쟁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출신학교는 부여고등학교 자리에 옛날 일제 고등학교를 졸
업하셨고요. 교복 입은 사진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걸 챙겨왔어야 되는데 그게 없
어요. 그게 아쉬운 거에요, 진짜.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 옆에 있었는데요.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할아버지, 할머니, 저희 엄마, 고모들이 한 세 명. 그리고 작은 아버지도 계셨고.
작은 아버지는 결혼 안 하셨죠. 저는 한 8, 9개월? 돌 좀 못되었대요.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서기 발령받기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우리 할아버지가 이장을 하셨고. 배급 오는 거
그런 걸 학교로 다니며 나눠주셨다고 해요. 면에도 나눠주시고…. 사회활동은 그 당시
에 청년단원이셨다고.


납북 경위
<누님 댁 장독대에 숨어 지내다가 누님이 화를 입을까봐 잠시 집에 와 있는 사이 새벽에

인민군이 와서 끌고 감.>
문_ 6·25전쟁 도발 전 당시 상황은?

답_ 옆집 얘기 들어보니 엄청 앞집, 옆집에 좌익들이 많았대요. 옆집에 면에 다니시는
분이 계셨는데, 작은아버지 클 때 보니까 전쟁 난 후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가 면에서 일
하던 그런 걸 다 부셨다고 그래요. 그렇게 바로 옆집에 좌익이 있었다고 그래요. 아래,
윗집에서 담 너머로 아주 그런 사람이 많았대요. 바글바글 했대요, 거기는.
문_ 피난은?
답_ 그 전쟁 나기 전에 내가 들으니까 아버지는 그 당시에 어떻게 되는지 아셨겠죠. 그
래서 고모네 집에 쌀독에 숨으셨었대요. 숨어서 며칠만 더 참으면 되는데 하던 중에 나
중에는 누님까지 큰일 나게 생겨서 마지막엔 나가셨다고 그러대요. 나가시고 집에 있다
가 새벽에 있는데 집에서 좌익들인지 인민군들이 끌고 갔다고….
문_ 납치 시기는?
답_ 그건 모르겠어요. 새벽에 끌려갔다고만….
문_ 납치 장소는?
답_ 집에서.
문_ 납치자의 용모 및 신분 확인은?
답_ 저는 모르겠고. 그 당시에 고모들 얘기 들어보면 매일 집 바깥에서 여러 명이 불을
쬐었다고 그러더라고. 그렇게 보고 있는 거지. 그런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고 그러대. 두
세 사람이 매일 감시하고 그랬대요.
문_ 그럼 그 사람들이 아버지를 끌고 간 것인지?
답_ 잘 모르겠어요 그건. 작은아버지 말씀은 연좌제 때문에 나를 밖으로도 못나가게 했
대요.
문_ 납치 방법은?
답_ 잘 모르겠어요. 나 어렸을 때는 상처받을까봐 대충만 들은 기억이 나요.
문_ 납치 당시 납치자 또는 납북자가 한 말은?
답_ 엄마는 그 얘기를 들었죠. 엄마 말이 잠깐 갔다 올게 라고 한 게 마지막이래요. 그리고

그 다음부턴 소식이 없었대요.


납치 이유
<그 당시에 인민군들이 엘리트들을 잡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음.>
문_ 납치 이유는?
답_ 우리 작은아버지 얘기로는 그 당시에 엘리트들만 데려 갔다대요. 그 소리는 들었어요.
납치 후 소식
<수원까지 끌려갔다가 탈출해온 친구 한분이 수원까지 온 것을 보았다고 하나 그 밖에 다
른 소식은 듣지 못함.>
문_ 전쟁 중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작은아버지는 농사지으셨고 그 당시엔. 고모들은 찾으려고 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
었죠. 큰아들이니까 우리 할아버지한테는. 할아버지가 이장이시고 그랬으니까. 진짜 매
일 바깥에 나가서 부채질하고 먼 길만 바라보시는 거에요. 평생을 그러고 사셨대요. 그
리고 할머니도 말할 것도 없고요. 들은 말로는 김해까지 갔다 왔다고 해요. 할머니가 그
당시에 얼마나 한이 됐으면 논 세 마지기 값을 점 보는데 썼다고 하더라고요. 어디에 있
나. 금방 올 것 같은 마음에. 그래서 김해까지 가셔서 삼일인가를 가셔서 할머니 할아버
지 고생은 말 할 것도 없어요. 그렇게 노력해도 못 찾으시고 한이 되고 그렇게 가신거야.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 또는 주변의 소문 등은?
답_ 없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친구 분 얘기만 들었죠. 성함은 잘 모르고 작은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아버지가 수원까지 오셨다는 거에요 이제. 묶여서 왔나 봐요. 그런데
그분은 몰래 탈출한 거에요. 이북으로 끌고 가려고 그랬는지 그런 걸 그분은 탈출해서
부여까지 오셨는데 3일 걸리셨대요. 수원에서. 그래서 그분은 그 동네에서 사시다가 가
신거야. 그분이 마지막 증언을 하신 분이에요.


남은 가족의 생활
<어머니가 병약하여 걱정이 된 할아버지는 어머니를 재가시키고 농사 지어 손녀를 키우

심.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모두 사망.>


문_ 피난은?
답_ 그냥 그 집에서 고모들하고 살았었어요.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시골에는 그때 할아버지가 농사지으니까 땅은 있었죠. 그래서 먹고 사는 건 살았죠.
그러고 일체 가르치고 하는 건 끝난 거에요. 누가 해줄 사람도 없고. 시골에서 농사지어
서 뭐가 있겠어요? 어머니는 저 8살까지 같이 사셨어요.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요. 그런
데 나하고 엄마하고 병이 많아서 할아버지가 아들도 없는데 다 죽게 생겼다고 걱정이 되
신 거에요. 내가 생각하기에 엄마가 스물 여섯, 일곱 쯤 되었는데요. 모녀가 죽게 생긴
거에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방에 우리 둘을 죽을 것 같다고 따로 갖다 놨었대요. 이거
큰일 나겠다 아들도 소식 없는데 며느리하고 큰손녀 어떻게 하냐고. 그래서 서둘러서 면
에 있는 분하고 중매를 서신 거에요. 그래서 엄마를 바로 옆 동네로 결혼시키셨어요. 그
쪽 분은 개성 분이셔요. 마누라가 배가 불렀는데 못 데리고 내려왔대요. 엄마하고 비슷
하잖아요 처지가. 그래서 엄마하고 옆 동네에서 사신 거에요.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고
모 작은엄마 작은아버지가 키워주셨고. 작은아버지도 전쟁 끝나고 바로 군대 가셔서 제
대하셔서 유공자시죠. 그거 혜택을 받으셔요 지금. 그래서 시신도 거기에 모시려고 그
래요 나중에. 엄청 고생하셨대요, 바로 군대 가셔서.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할아버지는 60년대에 돌아가시고. 제가 열 한살 때. 일찍 돌아가셨는데 제가 돌아
가시는 것까지 보고 할아버지 큰아들 노릇하느라 상복 다 입고. 할머니는 제가 서울 와
서 결혼하고 애 하나 낳고 그랬을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아들 생각하느라
심장마비로 가셨고. 어머님은 애들 몇 남매 낳았나. 사남매 낳고 지금 생각하면 잘 하셨
다 생각이 들어요. 70대에 가셨어요 엄마는. 엄마는 한 17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엄마는 저한테 미안해서 얘길 안 해요. 엄마 딸한테 들은 얘기가 있어요. 엄마 딸이
있어요. 저하고 배다른 동생이죠. 그 딸한텐 다 얘기하는 거에요. 저한텐 미안하니까.
뭐라고 말했냐 하면 열 일곱에 시집을 와서 열 아홉에 나를 낳으니까. 연애도 못하고 결
혼하니까 정이 좀 들만 하니까 소식이 없대요. 그러니 안타까운 일이잖아요. 북한으로
어떻게 잡혀갔는지 그런 얘기는 잘 못 들었어요.
문_ 다른 가족 분들은 아버님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셨는지?
답_ 좋은 일 하셨다고 그러죠. 동네에 유지고 모든 일을 다 싫지 않게 잘 하셨다고 소문
나셨더라고요. 성품은 착하셨다고 그래요. 똑똑하셨다고 그러대. 머리가 좋으셨다고.


정부에 바라는 말
<납북자 가족에게 보상이 되기를 바라고 기념관도 빨리 세워져 납북자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싶음.>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에서 납북자 송환 노력 또는 납북자 가족의 생계 지원 등은?
답_ 작은아버지가 계셨으면 더 잘 아셨을 텐데 돌아가시니까 아무것도 모르겠네. 그 당시에 집안 친척 중에 경찰서에 계신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유명하신 분이야. 제가 서천까지 찾아가 봤어요. 아버지가 이러이러해서 군청에다가 내가 신청했는데 맞냐고 그랬더니 맞대요. 하여튼 통일이 되어야지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이북으로 가셨다 라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아 그때부터 아버지가 이북에 가신 분이구나 해서 마음을 정리한 거에요. 그분도 돌아가셨어요.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지금 우리 나이가 다 70이 넘었잖아요. 제일 적은 사람이 70이고 아니면 80대고 그런데 이건 그 당시에 자식된 입장은 안 당해보면 몰라요. 진짜 가슴 아프고 말할 것도 없어요. 그런데 정부에서도 너무 우리들한테 무관심한 것 같아. 그러니까 그 당시에 부모 자식된 입장에서 한이 되는 건 정부에서 혜택이 있던지 뭐가 있어야지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서. 그런 일도 빨리 처리되어 진실규명이나 여러 가지가 말로만 하지 말고 빨리 해결이 되고 모든 처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당시에 젊은 사람들이니까 평생에 자기가 일할 수 있었을 만큼의 노동의 대가가 있다든지 그런 게 있을 것 아니에요. 자식들 입장에선 너무 혜택이 없고 요즘 복지부 같은 데서 혜택도 있고 그런데 너무 우리는 없잖아요. 그게 없으니까 그런 걸 바라는 거에요. 그리고 임진각에 빨리 설립이 되서 가서 기도도 드리고 그러는 게 평생의 소원이에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제 소원. 아버지. 저는 돌도 안 되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참 행방도 모르고 그랬
청년단원들도 가르치고.
문_ 남은 가족의 납북자와의 추억은?
답_ 추억? 저는 너무 어려서. 추억은…. 사진 한 장 가지고 있었어야 되는데 그게 제일 서운하네.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결혼사진도 저한텐 안보여주셨어요. 상처받을까봐.


연좌제 피해
<어렸을 때 아버지 납치 후 집 앞에 감시하는 듯한 사람들을 여러 번 본 기억이 있고, 다른 사촌들이

취업 시에 어려움을 겪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사촌들이 어디 가서 직장을 가려고 해도 못 가고. 고모네 애들이 청와대 같은 데

가도 걸려있고. 항상 저희 아버지 문제 때문에 걸려있는 거에요. 그래서 고통을 많이 받았대요. 저는 뭐 부모가

없으니 엄마도 없고 할아버지도 없고 그러니 초등학교 나와서 뭐 할게 있어요? 그 당시에 학원에서 양재를

배우겠다고 해서 서울 왔어요 한 열 여덟 살에. 저는 연좌제 피해는 잘 모르겠대요. 그런데 시골에서 클 때

내가 애들하고 놀다 오면 우리 집을 감시하는 사람을 봤어요 내가. 키가 큰데 한 두 번을 본 것 같아. 내가 직접

봤어요 그건. 그땐 어리니까 모르죠. 나중에 보니까 감시하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걸 느낀 거에요.


호적 정리
<사망 신고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여태까지 있다가 군청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하라는 대로 다 했어요. 사망신고 하라고 하고 공주에서 할거냐 서울에서 할거냐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광명시청에다가 사망신고까지 다 했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납북자 가족에게 보상이 되기를 바라고 기념관도 빨리 세워져 납북자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싶음.>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에서 납북자 송환 노력 또는 납북자 가족의 생계 지원 등은?
답_ 작은아버지가 계셨으면 더 잘 아셨을 텐데 돌아가시니까 아무것도 모르겠네. 그 당시에 집안 친척 중에

경찰서에 계신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유명하신 분이야. 제가 서천까지 찾아가 봤어요. 아버지가 이러이러해서

군청에다가 내가 신청했는데 맞냐고 그랬더니 맞대요. 하여튼 통일이 되어야지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이북으로 가셨다 라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아 그때부터 아버지가 이북에 가신 분이구나 해서 마음을 정리한 거에요.

그분도 돌아가셨어요.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지금 우리 나이가 다 70이 넘었잖아요. 제일 적은 사람이 70이고 아니면 80대고 그런데 이건 그 당시에

자식된 입장은 안 당해보면 몰라요. 진짜 가슴 아프고 말할 것도 없어요. 그런데 정부에서도 너무 우리들한테

무관심한 것 같아. 그러니까 그 당시에 부모 자식된 입장에서 한이 되는 건 정부에서 혜택이 있던지 뭐가

있어야지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서. 그런 일도 빨리 처리되어 진실규명이나 여러 가지가 말로만 하지 말고 빨리

 해결이 되고 모든 처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당시에 젊은 사람들이니까 평생에 자기가 일할 수 있었을 만큼의 노동의 대가가 있다든지 그런 게 있을 것 아니에요. 자식들 입장에선 너무 혜택이 없고 요즘 복지부 같은 데서

혜택도 있고 그런데 너무 우리는 없잖아요. 그게 없으니까 그런 걸 바라는 거에요. 그리고 임진각에 빨리 설립이 되서 가서 기도도 드리고 그러는 게 평생의 소원이에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제 소원. 아버지. 저는 돌도 안 되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참 행방도 모르고 그랬

는데 아버님한테 하고 싶은 얘기는 그 당시에 무슨 일 때문에 행방불명이 되셨는지 그게
제일 궁금하고 어떤 일을 그 당시에 제대로 하고 계셨는지 그것도 궁금했고. 그렇죠 뭐.
아버지가 진실규명을 보니까 그 당시에 너무 지역으로 일을 하셨더라. 그런데 정말로 대
가를 아직도 없는데 아버지한테 그 얘기를 묻고 싶어요. 무슨 일을 어떻게 하셨는지. 동
네 사람들이 전부 유지로 알고 그랬는데 난 아버지한테 직접 듣고 싶어요. 그게 다에요.
그 얼굴 보고 싶고 그런 건 말할 것도 없죠. 보고 싶고 아버지가 있으면 내가 이 고생을
안 했을 텐데. 내 뒷바라지도 해주고 그랬을 텐데. 난 열여덟에 서울 와서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저는 지금 감사하죠. 그 당시에 할아버지는 내가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건강해서 아버지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죠. 저는 허리만 안 좋
을 뿐이지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게 아버지한테 감사하죠. 얼마나 기쁜 일이고 그래요. 아
버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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