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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송기준 (증언자-송정일)
이름: 관리자
2017-01-24 14:33:33  |  조회: 1947

2016. 10. 31.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생존해 계시다면 97세 (1920년생쯤)
출생지: 황해도
당시 주소: 서울 영등포구 신길7동 547-3
피랍일: 1951년 1·4 후퇴 시기
피랍장소: 자택
직업: 주물 공장 운영
직계/부양가족: 부인, 2남 2녀
외모/성격: 깔끔하고 잘생김


증언자
성명: 송정일
관계: 아들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황해도에서 살다가 일제강점기에 남한으로 내려와 주물 공장을 운영했고, 청년회장으로 활동함.
• 전쟁 직후는 피난을 가지 않았는데 대방역에서 진을 치고 있던 인민군에게 검문을 당하여 1차 조사를 받고 나
왔음. 그 다음날 새벽 2, 3시 쯤 자택으로 인민군들이 와서 끌고 감.
• 납북자의 처가 행방을 수소문하던 중 포로집결지였던 아현초등학교에서 우연히 납북자를 만났으나 이후로는 소식을 들을 수 없었음. 납북자가 유리 가공과 관련된 최고 기술자였던 것이 납치 이유로 추측됨.


피랍 정보 등재 명부:
6•25 사변 피랍치자 명부 ( 공보처 통계국 , 1952)
6•25 동란으로 인한 피랍치자 명부 ( 내무부 치안국 , 1954)
실향사민 등록자 명단 ( 대한적십자사 , 1956)

직업 및 활동
<황해도에서 살다가 일제강점기에 남한으로 내려와 주물 공장을 운영함. 청년회장으로
활동함.>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송정일입니다. 1946년 3월 25일생. 납북된 분은 제 아버지입니다.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송기준. 생년월일은 잘 기억이 안 나요. 지금 생존해 계셨다면 97세에요. 출생지는
이북 황해도이고요. 서울에서는 사직동 중학동 41번지.
문_ 납북자가 남한으로 내려 온 시기는?
답_ 일제강점기 때 오셨어요. 년도는 모르고 여기 와서 아버님이 장가를 가셨으니까. 그
때 3형제가 있었는데 다 같이 내려왔어요. 그래서 전쟁 때 둘째아버지께서 이북으로 넘
어 가셨지. 조상을 지키라고 해서. 그래서 전쟁 직전에 이북으로 올라 가셨어요. 북한에
서 99칸짜리 집에 사셨대요. 선조께서 정2품을 하셨대.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주물공장을 하셨어요. 거기에서 가공까지 다 하셨죠. 출신 학교는 잘 모르겠고 공고
를 나오신 것 같더라고요.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청년회장이요.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잘생기고 그랬어요. 옛날에 몸빼 바지를 입으시고 미도파백화점 앞에서 찍은 사진
이 있거든요. 그 자세를 보니까 그 당시에 깔끔하고 살기 괜찮으셨던 것 같더라고요.
문_ 피난은?
답_ 아버지가 안 계시고 1·4 후퇴 때 시흥으로 갔죠. 아버지는 이미 포로가 되고.
문_ 그럼 전쟁 직후엔 왜 피난을 안 가셨는지?
답_ 그 때는 가 봐야 소용이 없다고 아버지가 그러셨거든. 한강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거니까 우리는 그냥 있자고. 그래서 그 당시에 피난을 안 갔죠.
문_ 그 당시 거주 지역이?
답_ 영등포구 대방동 199번지. 지역 개편이 돼서 신길동이 된 거에요 그 곳이. 거기는
한강 이남이니까. 그 때 피난을 갔으면 아버님이 잡혀가지 않았겠죠.


납북 경위
<전쟁 직후는 피난을 가지 않았는데 대방역에서 진을 치고 있던 인민군에게 검문을 당하여
1차 조사를 받고 나왔는데 다음날 새벽 2, 3시 쯤 자택으로 인민군들이 와서 끌고 감>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의 나이는?
답_ 1950년도에 전쟁 끝나고 1·4 후퇴 될 때쯤으로 알고 있어요. 중공군하고 같이 들
어왔을 때. 그 때 포로로 납치되어 가신 거죠.
문_ 납치 방법은?
답_ 아버님이 갈월동에 갔다가 오시다가 대방역에서 걸어오시는데 인민군이 언덕 위에
진을 치고 있었던 거야. 우리는 후퇴하고. 그래서 거기에서 검문을 당한 거지. 1차 조사
를 받은 거에요. 그러고 내보내 준 거야. 그랬는데 다음 날 새벽 2시~3시쯤 데리고 간
거야. 그 때 우리 어머님은 아버님을 친구네 집으로 피신시키려고 간 사이에 아버님이 포
로가 된 거죠. 그래서 어머님도 아버님이 끌려가는 건 못 본거지. 그래서 직접 아버님이
끌려가는 걸 본 분이 없죠. 그 때 내가 4살 때였어요. 나는 집에 있었죠. 내가 우리 아버
지 목을 붙잡고 잔 기억이 나요. 그래서 아버님이 나를 베개 삼아 주무신 기억이 나요.
문_ 그 당시 집에는 누가 있었나요?
답_ 다 있었죠. 누나 둘에 아들 하나. 내 동생도 있었고. 총 여섯 식구였어요. 우리 누나
도 못 봤대요 잡혀가시는 걸. 잡혀가셨다는 건 전날 조사를 했으니까 알았죠.
문_ 전쟁 중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예전에 동사무소가 언덕에 있었어요. 거기엘 수소문해서 갔죠. 그랬더니 행방은 모
른대요. 그래도 우리 어머니가 계속 수소문을 한 거죠. 그러니까 아현초등학교라는 데
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봤대요. 거기에 포로 집결지가 있었대.
문_ 그럼 어머님이 거기에서 아버님을 만나신 건지?
답_ 네. 만났죠. 그 초등학교에 하천이 있어요. 그 하천 바깥에서 어머님이 있었고 그늘
밑에 아버지가 누워 있는 것 같아서 불러달라고 다른 사람한테. 그래서 만났다고 해요.
거기에서 아버님이 어머님한테 떠나지 말라고 그랬다고 해요. 내가 언제든 돌아 올 테니
집을 지키고 있으라고. 그게 마지막이었죠.


납치 이유
<납북자가 유리 가공과 관련된 최고 기술자였던 것이 납치 이유로 추측됨.>


문_ 납치 이유는?
답_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우리 아버님이 말하자면 최고 기술자였대요. 옛날엔 유리에
공기가 들어가 있는 걸 제거를 못 했대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최초로 공기를 빼낸 거
에요. 그래서 등 있잖아요? 그 등도 유리를 녹여서 개발하고 그랬어요. 그 전에는 일제
강점기에 대포알 설계도 했었어요. 제가 사는 곳이 일본 저택에 살았어요. 한국인은 우
리 아버지 한 명 뿐이었어요. 저희 아버지의 후배가 서울공고 기계과 주임으로 있었어
요. 그래서 나보고 서울공고 선생으로 오라고 한 걸 우리 어머니가 안 보냈죠. 그렇게
제자들이 여럿 있었어요.
문_ 어머님이 아버님을 만난 뒤에는 다시 아버님을 만나지 못한 건가요?
답_ 그렇죠. 못 만났죠. 그게 끝이었어요.


납치 후 소식
<어머니가 수소문하여 포로집결지였던 아현초등학교에서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났음.
이후 평발이었던 납북자가 원산 집결지까지는 가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마지막임>


문_ 그 후로 아버님 소식은 못 들으셨는지?
답_ 소식을 들었죠. 예전에 6·25 끝나고 나서 포로 교환이 있었어요. 내가 국민학교
5~6학년 때였을 거에요. 그런데 아버지가 평발이셨거든요. 원산 집결지까지 가는 도
중에 발에 병이 나서 도저히 데리고 오지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버님이 낙
오가 된 거지. 친구분들이 계속 거들어주고 하는데도 도저히 안 되니까 낙오가 된 거지.
그 다음엔 소식을 모른 거죠. 원산 집결지에 가 보니까 아버님이 빠져 있더라고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그 후로는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아현동에서 원산까지 끌고 간 거
야. 그러니 엄청나게 고생을 했겠죠. 특히 평발이다 보니 힘도 더 들었을 거고 겨울철이
라 동상도 걸렸을 거고.
문_ 1·4 후퇴 때 아버님을 납치해서 북한군이 다시 북으로 갔다는 건가요?
답_ 그렇죠. 그래서 우리 집에 포탄이 마루를 뚫고 간 흔적이 있어요.
문_ 어머님이 아현초등학교에서 아버님을 만난 게 언제쯤인가요?
답_ 잘 모르겠는데 아마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이었을 거에요. 한 5살 때 같아요.
초여름쯤이었을 거에요. 햇빛을 피해서 누우셨다고 하니까.
문_ 그럼 전쟁 직후가 아니었을까요? 1·4 후퇴가 아니라….
답_ 전쟁 직후엔 우리가 피난을 갔으니까 아니었을 거에요. 시흥으로 피난 갔거든. 아버
지가 잡혀가신 다음에 갔어요. 우마차를 끌고 가다가 바닥이 얼어서 내 동생은 우리 어
머니가 업고 나는 걸어서 가고 있었거든. 그래서 하천으로 굴러 떨어져서 그걸 그냥 버
리자 하고 손 붙잡고 짐은 다 버리고 시흥역으로 갔어요. 예전에 폭격으로 불나고 한 것
도 기억이 나요.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도움은 요청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피해를 엄청나게 봤죠. 나뿐만 아니라 박정희
정권 시대에 피해를 많이 봤죠.


연좌제 피해
<해태제과에 근무했던 증언자는 계속적으로 신원조회를 받았고 일본 연수도 가지 못함>


문_ 연좌제를 많이 겪으셨다는 건가요?
답_ 말도 못 해요. 내가 1972년도에 해태제과를 다녔거든요. 그 때 까지도 신원조회가
나한테 왔으니까. 그래서 내가 기계공학과 나왔거든요. 그런데 일본에서 기술자를 연수
시키는 단계가 있었는데 그걸 못 갔어. 그리고 항상 내 뒤에 신원조회가 따라 붙어. 내
가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파출소 소장이 인수인계를 하는 거에요. 내가 오죽하면 화가 나
서 죽겠다고 그랬다니까. 아버지가 없는 것도 원통한데 왜 자식들한테 피해를 주냐는 거
지. 그런데 사망신고도 못 하고. 그래서 행방불명이 된 거야. 납북도 아니고 행방불명.
나중에 알아보면 그게 납북자에요. 명칭만 듣기 좋게 바꿔놓은 거에요. 파출소 소장이
바뀔 때마다 납북자 가족에 대해 인수인계를 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우리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바깥에 나와서 상 차려놓고 제사상을 먹는데 파출소 직원이 지나가는 거
야. 그래서 나한테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냐고 하기에 내가 멱살을 잡고 네가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그대로 파출소까지 가서 소장한테 물어봤어요. 어
떻게 아느냐 이거지. 그 때 그 사람들이 알려 준 거야. 인수인계가 된다고. 그러면서 앞
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없을 테니 한번만 눈 감아 달라고 하더라고. 그게 1972년도였어
요. 우리 사촌형이 있었는데 공무원 과장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 호적을 빼 가더
라고. 그래서 우리 어머니하고 엄청나게 싸운 거야. 정부에서 아버지가 자진해서 갔다
는 듯이 납북자들을 그렇게 만든 거에요. 생각해 봐요, 마누라하고 자식이 넷이 있는데
아버님이 넘어갈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동네에서도 어렸을 때 내가 기를 못 폈어. 유
언비어가 얼마나 심했냐면 지금 대방역 앞에 미 정보부가 있었어요. 거기 잡혀 갔다는
말까지 있었어요. 또 지금 일본에 있으니 아버님이 한국에 들어오시면 자진해서 신고를
해 달라는 말도 있었고. 나중에 알아보니까 중앙정보부에서 우리를 감시하면서 말을 퍼
뜨린 거더라고. 중앙정보부에 우리 사촌 매형이 거기 있었거든. 나중엔 하도 유언비어
가 나오니까 형이 그냥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 내가 원산에서 돌아온 분 이야기까
지 했는데도 감시를 계속 하는 거야.
문_ 그렇게 유언비어가 퍼지면 믿으셨나요?
답_ 그렇죠. 진짜인 줄 믿었죠. 흘러 들어오는 말이니까.


호적 정리
<사망 신고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사망신고 했죠. 나중엔 행방이 사망신고로 받아 주더라고 정부에서. 그 전엔 안 받아
줬는데 1973년도에 결혼 후에 사망신고를 받아 주더라고. 내가 해태제과 다녔다고 했잖
아요? 해태가 식품 만드는 회사거든. 식품 제조 쪽에 내가 들어가질 못 해요. 그렇게 회
사 내에서도 나의 신원이 밝혀져서 피해를 본 거지. 해태제과에 내 신원이 정부에서 넘어
간 거죠. 그래서 난 정부가 너무 꼴 뵈기 싫어. 내 인생에서 모든 길을 막아 놨으니까.


남은 가족의 생활
<어머니가 고구마를 팔아 생활하였으며 아이들의 끼니를 위해 차라리 고아원으로 보내려
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어려웠음>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우리 어머니가 고구마를 이고 한강을 건너서 팔고 다시 넘어 오고 그렇게 생활하고
신길동에서 관악산까지 나무를 조금씩 지어 와서 불을 때서 먹고 살았어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약을 먹고 자살을 했어. 차라리 내가 없으면 너희들이 고아원에라도 갈 것 아
니냐. 그러면 밥 세 끼라도 먹을 것 아니냐. 그래서 약을 먹고 자살을 했는데 우리 큰누
나가 그걸 발견해서 운 좋게 살아나셨어요. 그래서 거의 병원에서 15년 이상 음식을 잘
못 드셨어. 우리 집 공장 아랫쪽에 방앗간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
거지. 나는 우리 식구가 잘못 됐다는 걸 원망하기 전에 정부가 그렇게 연좌제 압박을 준
것이 비통하고 말도 못 해요. 그렇게 심하게 당한 사람이 나 하나뿐이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나는 이민 가려고 마음까지 먹은 적이 있어.
문_ 아버님은 그 집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답_ 그렇죠. 그래서 우리 어머님은 내가 이민 가도 지키고 있으라고 그랬어.
문_ 그럼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나요?
답_ 1995년에 74세로 돌아가셨죠.
문_ 나머지 형제분들은?
답_ 다 살아 있죠. 내 동생만 죽었죠.
문_ 누님들은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답_ 조금씩은 있겠죠. 나보다 나이가 많았으니까.
문_ 어머님이나 누님들이 아버님에 대해 묘사한 말들은?
답_ 그런 건 별로 없었어요. 우리 아버님이 아들을 굉장히 원했기 때문에 누님들한테는
특별히 말씀을 많이 한다 던가 하는 건 없었어요.
문_ 아버님 얼굴은 기억이 나시나요?
답_ 그냥 둥글넓적하고 그런 형태는 기억나는데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죠. 그런데 우
리 아버지가 일본사람을 그렇게 싫어했대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 관청 등에서 납북자 송환 노력을 했나요?
답_ 전혀 없죠. 내가 그랬으면 왜 대한민국을 싫어하겠어.


정부에 바라는 말
<납북자 가족이 연좌제를 심하게 겪고 출세에 지장을 받은 만큼 국가가 책임을 지고 보상
을 해야 함>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내가 제대로 출세를 못 한 원인이 거기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자식도 여파를 맞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대대로 보상을 해 줘야 한다는 얘기야. 내가 받은 피해는 내 피해
지만 내 자식들한테까지 피해를 주는 거니까. 그러니까 일회성 보상이 아니라 자식들까
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 줘야 되죠.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누가 신고를 하셨나요?
답_ 우리 어머니가 했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아버님한테는 할 이야기가 없고 사실 정부에 할 이야기가 있는 거죠. 이런 피해를
계속 주면 안 된다는 것. 후유증이 없게 했어야 하는데 전쟁 뒤에 엉뚱한 사람들을 잡
고 있냐는 거지. 한창 우리 어릴 때 핏덩어리들을 놔두고 가장이 없어졌는데. 하루아침
에 생계가 달린 문제가 생긴 건데. 왜 그래도 클 수 있는 사람들까지 정부에서 피해를 주
냐는 거지. 내가 알기로 납북자 가족들이 이민 간 경우가 많아요. 한국에서 규제를 하도
받으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고 우리 아버지가 뭘 잘못 했길래 그렇게 가로막느냐는
얘기지. 전쟁은 전쟁으로 끝나야지 왜 하루아침에 사람들을 규제를 하느냐는 말이야.
문_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아버님에 대한 말씀은 안하셨나요?
답_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어요. 그냥 열심히 살라고. 나는 통일이 되면 이북에 올라가보
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우리 작은아버지가 이북에 가셨다고 했잖아요? 만약 생존해 계
셨으면 아버지도 그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어서.
문_ 이산가족 신청은 안 하셨나요?
답_ 안 했어요. 우리나라 정부가 더러워서. 그런 피해를 봤는데 내가 공식적으로 그렇게
또 신청을 해야 하냐 이거야.
문_ 마지막으로 질문 드릴 텐데 아버님이 1차 조사를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그 때 무슨 내
용을 받으셨는지 아시나요?
답_ 아버지 신원에 대해 완벽하게 조사를 했다고 하더라고. 살아 온 과정을. 처음 출생
부터 당시까지 모든 것을 캐물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어머니께서 느낌이 안 좋아서 피
신을 시키려고 하셨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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