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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윤병구(증언자-윤형섭)
이름: 관리자
2017-01-26 11:24:08  |  조회: 1407

윤 병 구( 尹秉九)
2016. 3. 2.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14년 1월
출생지: 경기도 시흥군 신림동 3호 4번지
당시 주소: 서울 용산구 청파동 1-27
피랍일: 1950년 7월 2일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동회장, 청년단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3녀윤병구
외모/성격: 온순하고 운동을 좋아함.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도움.


증언자
성명: 윤형섭
관계: 장녀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제헌국회 때 사무장을 했고, 정치 활동을 한 경력이 있어 잡혀간 것으로 추정.
• 전쟁이 나자 장녀인 증언자가 15살이었는데 학교에서 좌파 선생들이 학생들을 여러 차례 강제소집하자
걱정이 되어 납북자의 부인이 딸들을 먼저 피난시키고 와보니 인민군과 남로당원 몇 명이 집에 와서 납북
자를 끌고 갔음.
•서대문형무소에 있다는 소문 이외에 소식을 못 들음.


직업 및 활동
<청년단 단장을 하고 동장으로 일함. 제헌국회 때 사무장을 했으며, 원고를 써서 찬조 연
설을 하는 등 정치 활동을 했음.>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제 이름은 윤형섭이고요. 생년월일은 양력으로 1936년 4월 10일. 딸 셋 중에 장녀
입니다.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우리 아버님은 윤병구 씨고요. 1914년 1월 며칠로 생각이 나는데, 음력이죠. 지금
은 서울시지만 옛날엔 경기도 시흥군 신림동이에요. 3호 4번지에서 태어나셨고. 전쟁
당시엔 용산구 청파 1가 27번지에 살았어요.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덕수상고 나오시고. 그 전에는 청년단 단장도 하셨고 동장도 하셨고.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많은 정치활동을 하셨어요. 왜냐하면 제헌국회 때 사무장 하시면서 맨날 글 쓰시기
좋아하셔서 원고 쓰셔서 같이 찬조연설도 하시고 그래서.
문_ 그 당시 가족구성원은?
답_ 어머님하고 딸 셋. 우리 아버님이 아들 다섯에 딸 하나 중에 셋째 아들이에요. 그래
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신림동에 계셨어요.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굉장히 온순하셔요. 운동도 좋아하셨고 한강에 가도 도강할 수 있다 이러셨고 어려
운 사람들을 굉장히 잘 도왔어요. 지나가는 사람, 청년, 집 없는 사람들을 다 데려다가
얼마든지 있어도 좋으니까 취직할 때까지 지내라 이러시고.


납북 경위
<딸들을 먼저 피난시키고 부인이 집에 돌아와 보니 인민군과 남로당원이 집을 포위하여
아버지를 묶어서 감>


문_ 6·25전쟁 도발 전 당시 상황은?
답_ 그때도 참 험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아버님이 지하 빨갱이들이 너무 많다 저렇게 좌
파들이 날뛰고 세상이 이렇게 험해져서 큰일났다 그랬어요. 밖에 나가면 사방에 삐라 뭉
치가 있었어요.
문_ 피난은?
답_ 피난을 못 갔죠. 그러고 그 날 바로 한강이 끊어졌어요. 그러니까 움직일 수가 없었
어요.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6·25나던 해 7월 2일인가에 납치되셨어요. 저는 15살이었고. 6·25가 나니까
아침에 학교에서 좌파였던 선생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선
동을 하길래 저는 피해 나왔어요. 그 다음날은 나가지 않으니까 집을 또 찾아와서 학교
에서 안 나오면 어떻게 하겠다고 위협을 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너희(딸들)가 먼저 피난을 가고 내가 밤이라도 몰래 도망가겠다고 우리들을 먼저 피난을
보낸 거에요. 우리가 용산까지 가서 그 때 용산 다리 끊어진 옆에서 도강할 수 있는 배가
있어서 도강을 했는데 용산 폭격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동네 빨갱이들이 우리가 피난 나
간 걸 알았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우리를 신림동에 데려다 주고 이튿날 와보니까 그 날
우리 아버지를 이미 납치한 거에요.
문_ 납치 방법은?
답_ 인민군 몇 사람들하고 남로당원 누구누구가 우리 가리키면서 우리 집을 포위해서 아
버지를 묶어서 갔다 이러고 소식이 없어요.


납치 이유
<정치 활동을 한 경력이 있어 데리고 가야 한다며 납치함>


문_ 납치 당시 납치자 또는 납북자가 한 말은?
답_ 옛날 대한민국에서 정치 활동을 한 사람이니까 저 집을 데려가야 된다. 이런 소리를
하면서 건넛집에 숨어서 12명이 와가지고, 어느 집에서 숨고, 어느 집에서 숨고 이렇게
해서 우리 집을 겨냥을 하고 그랬다는 소리 밖엔 모르죠.
문_ 납치 당시 납치 된다는 사실을 알고 저항을 했는지

답_ 저항 할 새가 없었죠. 그럴 새 없이 인민군이 뒤로 묶어가지고 갔다니까.


납치 후 소식
<서대문 형무소에 계셨다는 소문 이외에 소식을 못들음>


문_ 전쟁 중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그러고 나서 어머니가 남로당원 박원빈인가 하는 사람이 있었대요. 그 사람이 지하
남로당이었을 때 사상 때문에 잡혀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인데, 그 사람 집을 찾아 가셨
대요. 우리 아버지 소식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그랬더니 걱정 말아라, 대한민국과 다르
게 잘 먹이고 잘 있으니 걱정 말라고 그렇게 배를 내놓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어머니
가 얼마나 우셨는지 몰라요.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 또는 주변의 소문 등은?
답_ 서대문형무소에서 계셨다는 사실하고 괜찮은 사람은 열 두 명씩 묶어서 의정부까지
9월 17일에 갔다는 것. 거기 가서 의정부 학교에다 재우고 그 다음 날 평양으로 끌고 간
다 그러더라는 소식밖에 못 들었어요.
문_ 그 다음 소식은?
답_ 우리 아군 비행기가 평양감옥을 치니까 그 때 그 곳에 있다가 나중에 탈출한 사람 얘
기가 당시 평양감옥에 48명이 있었다고 그러더래요. 오랫동안 감옥에 있었으니까 이름
을 다 알잖아요? 그 명단이 신문 1면에 실렸는데, 그 중에 아버지 이름이 있었어요.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신고는 했죠. 그 전에 남산에 가서도 했고.


남은 가족의 생활
<배급 받은 식량 등으로 생계를 이었고, 딸들은 수도여고 장학생으로 학업을 함. 어머니
는 86세에 사망>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그 당시 1·4 후퇴 하고 나서 와보니까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거에요. 그랬는데

겨 밖에 없었어요. 그걸 물에 타 먹기도 하고 어떻게 해서 배급이라고 줬던 것이 메수수
국인데 원조 받은 걸 주더라고요. 그럼 그걸 갈은 걸 죽을 쒀서 먹고 그렇지 않으면 방앗
간에 가서 쌀겨를 타서 먹었어요. 그러면서도 저희는 학교를 갔는데 있는 사람들은 도시
락을 싸오는데 우리는 도시락을 못 쌌어요. 동생하고 나하고 수도여고를 들어갔는데 걔
도 학교에서 1등을 했는데 반 학기를 못 갔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학교에 가서 이렇게
공부 잘 하는 애를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못 보냈다 그러니까 수도여고에서 그냥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 때 장학생을 하고 공부를 했는데 밥을 못 먹었어요. 어떤 친한 친구
가 도시락 하나를 주면 처음으로 밥을 먹을 정도로 그러면서 공부를 했죠.
문_ 피난은?
답_ 피난은 신림동까지 갔다가 9.28수복 되고 다시 들어왔다가 1·4 후퇴 때 나갔죠.
그 전까지는 아버지를 찾아야 되니까 어머니가 서울에서 아버지를 찾느라고 헤매고 다
니시니까 못 갔었죠. 그래서 제가 인민군들이 와서 이북 노래 가르쳐주고 그러면(반발심
으로) 산에 올라가서 소리 지르면서 ‘이승만 박사’ 외치고 그랬다고요. 할아버지가 너 때
문에 우리까지 다 죽을 것 같은데 제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반항하지 말고 좀 있어라
그러셨죠. 저는 그 전부터 그런 사상이 있었던 데다가 반항을 하고, ‘김일성’ 하고 외치
면 ‘이승만 박사’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그랬으니까. 1·4 후퇴 때 저희가 당진까지 갔어
요. 어머니하고. 거기에서 있다가 수복된 후에 다시 왔죠. 그러고 학교 다니고….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그런 건 몰랐죠. 우리는 떳떳한 사람들이니까.


호적 정리
<호적 정리 안함>


문_ 피랍인의 호적정리는?
답_ 아직 그대로 있어요. 사망신고를 못 했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우리 어머니가 86세에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문_ 남은 가족의 납북자와의 추억?
답_ 저녁이면 우리 찬송 부르자 이러면서 찬송가 부르시고 아버지가 너는 이 다음에 커
서 꼭 공대를 가고 동생은 말을 잘 하니까 변호사가 되고 막내 동생은 꼭 선생을 해라 이
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전혀 없었어요. 납북자에 대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제가 그 전에 장충연맹 회장도
하고 그랬어요. 그랬는데 우리 납북자에 대한 건 전혀 없었잖아요.


정부에 바라는 말
<북한을 도와주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며,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라도 알았으
면 함>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우리 사회가 저렇게 북한을 도와줘서 핵무기를 만들고 우리나라를 6·25 당시와 같
이 또 침략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지금 박근혜 대통
령이 모든 것을 차단하듯이 절대 북한을 도와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북한을 10원 만
큼이라도 도와주는 건 반대해요. 그리고 아버지가 지금이라도 북한에 사셨다가 어디에
서 혹시 노동을 하다 돌아가셨다는지 그런 것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유골이라도 있
으면 어머님의 한을 풀고 아버지하고 합장을 하려고 아버지 이름의 명패를 옆에 놓고 있
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돌아가셨는라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너무 사랑받았던 것을, 저희도 사랑한다는 것을 한 번도 못 하고 살고 아버지 소리
를 못 부르고 산 것이 한이 되었어요. 불러보고 싶었는데. 그냥 저희 이렇게 아버지 생
각하면서 이만큼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우리 삼형제가 다 잘 살고 있
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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