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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오상용 (증언자-오동일)
이름: 관리자
2017-01-24 12:45:43  |  조회: 1223

2016. 11. 2.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18년 12월 21일
출생지: 경기도 개성시 운학동 449번지
당시 주소: 경기도 개성시 운학동 449번지
피랍일: 1950년 7월 10일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공장 운영
직계/부양가족: 부모, 부인, 남동생, 여동생, 2남 1녀
외모/성격: 단정한 외모. 온화하고 내성적인 성격.


증언자
성명: 오동일
관계: 장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납북자는 개성에서 철공과 목공을 겸하는 공장을 운영하였고, 대한청년단 운학동 단부 단장으로 활동했음.
• 외갓집에 은거해 있었는데 주위의 불만세력들이 밀고하여 전쟁난 후 보름 정도 지났을 때, 내무서원으로
추정되는 사람 두 명이 와서 조사할 것이 있다고 하며 데려감.
• 개성 형무소에 있었던 다른 사람을 통해 납북자가 그곳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면회를 요청했으나 만나
지 못함.


피랍 정보 등재 명부:
- 6•25 사변 피랍치자 명부 (공보처 통계국 , 1952)
- 6•25 동란으로 인한 피랍치자 명부 (내무부 치안국 , 1954)
- 실향사민 등록자 명단 (대한적십자사 , 1956)


직업 및 활동
<납북자는 철공과 목공을 겸하는 공장을 운영하였는데, 대한청년단 운학동 단부 단장으
로 활동한 경력이 있음>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저는 1941년 7월 26일 생이고요. 납북되신 분의 아들입니다. 이름은 오동일 입니다.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오상용. 1918년 12월 21일 생입니다. 출생지는 개성입니다. 경기도 개성시 운학
동입니다. 6·25 전부터 계속 거기 살았죠.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공장을 하셨어요. 철공과 목공을 겸하는 공장. 학교는 잘 모르겠는데 기억하기로는
고등학교를 다니시다가 가정형편 때문에 그만 두시고. 저희 아버지가 둘째라 첫째 아드
님이 거기에서 공장을 크게 하다가 강화도로 이사를 가시게 됐어요. 그래서 둘째 아드님
인 저의 부친이 인수받아서 하셨는데 그 때가 고등학교 졸업 직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
습니다.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인원이 많았죠. 저를 중심으로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님, 어머님, 동생이 여동
생 하나, 남동생 하나 있습니다. 또 삼촌, 고모가 계셨어요. 저는 2남 1녀 중 장남이죠.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대한청년단을 하셨어요. 운학동 단부 단장을 하셨어요.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외모는 단정하셨고요. 성격은 온화하고 내성적인 면이 많으셨다고 해요.


납북 경위
<외갓집에 은거해 있었는데 주위의 불만세력들이 밀고하여 내무서원으로 추정되는 사람
두 명이 와서 조사할 것이 있다고 하며 데려감>

문_ 피난은?
답_ 피난은 안 갔어요. 그 이유는 가족이 모두 피난을 가지 않고 있었고 본인은 공산주
의에 나쁜 일을 한 적이 없으니 가족을 두고 피난을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머물러 계셨는데 외갓집에 은거해 계셨죠. 그런데 주위에 불만세력들이 아
버님을 밀고 해서 내무서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두 명 와서 ‘조사할 게 있으니 갑시다.’
그래서 연행되어 갔어요. 저도 목격을 했죠.
문_ 그 때가 언제인가요?
답_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전쟁 후 보름 정도 됐을 때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버님
이 가시면서 조사받고 나올 테니 걱정 말고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가셨어요. 그리고 그
이후로 소식이 없죠 지금까지.
문_ 내무서원의 복장은 어땠는지?
답_ 제가 어려서 복장까진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문_ 협박이나 위협은?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그냥 조사할 것이 있으니 가자고 연행해 간 거죠. 제가 보기에 아버
님은 가서 조사받아도 큰 잘못을 한 것이 없으니 돌아올 거라고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문_ 연행 당시 납치된다는 생각은 못 하신 거겠네요?
답_ 그런 것 같아요.


납치 후 소식
<개성형무소에 있었던 다른 사람을 통해 납북자가 그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면회를 요
청했으나 만나지 못함>


문_ 전쟁 중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어머님하고 할머님이 찾아 다니셨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죠. 그러다가 개성형무소에
있던 다른 아는 분을 만났는데 현재까지는 잘 있다. 건강하게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얘길 하더래요. 그것이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입니다.
문_ 연행되어 간 장소는?
답_ 개성형무소에 계셨던 것 같아요. 면회는 요청했지만 만나지 못했죠.


남은 가족의 생활
<강화도에 공장을 운영하던 백부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가 행상을 하여 생활함>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왜냐하면 할아버님은 전쟁이 나자마자 강화도의 큰 아들네로 가
셨고 할머님하고 어머님이 남았는데 삼촌들이 전부 군에 입대했고 셋째 삼촌은 육군에
입대했고 막냇삼촌은 헌병대에 있었어요. 그래서 집안에 애들하고 여자들밖에 없었죠.
그래서 할머니하고 어머니가 백방으로 알아만 봤지 어떤 기관에 요청하거나 그런 건 없
었던 것 같아요. 삼촌들은 군에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납북된 것을 몰랐죠.
문_ 그럼 전쟁 후에도 계속 개성에 계셨던 건가요?
답_ 그렇죠. 아버님 소식을 알려고 계속 있었죠. 그러다가 할머님이 저를 데리고 강화도
로 넘어 가셨어요. 12월로 기억하는데 어머니는 아버지 소식을 더 듣겠다고 남아 있다
가 1·4 후퇴 때 동생들을 데리고 넘어 오셨어요. 못 넘어오신 분은 어머니의 친정, 외
갓집의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께서만 못 넘어오셨어요.
문_ 그 뒤로 쭉 강화도에 사셨나요?
답_ 그렇죠. 강화도의 산골에 들어가 있었죠. 산 속에 들어가면 인적이 드물어서 안 왔
거든요. 거기는 전략적 문제가 있는 곳도 아니고 인구도 얼마 없었기 때문에 인민군이
얼마 안 왔어요. 그래서 저희는 수복이 될 때까지 거기에 있다가 그 뒤에 읍으로 나와서
살았습니다.
문_ 아버님 납치 이후에 누가 또 가족을 찾으러 왔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는지?
답_ 네. 그런 건 없었고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 소식을 알려고 물어보고 다니셨죠.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저희 백부가 강화도에서 잘 사셨어요. 공장을 크게 하시고. 그래서 거기 있다가 6개
월 정도 머물다가 전쟁이 길어지는 것을 아시고 독립해서 살라고 하시면서 약간의 지원
을 해 주셨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3남매를 데리고 나와서 행상을 하셨어요.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다니다가 나왔는데 그 이전에 1951년도에 학교에 이야기를 해서 다시
4학년부터 다녔죠. 그래서 강화도에서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 왔
죠. 제 동생들도 학교를 다 다녔고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중학교 졸업할 때 강화도에서
학교를 나와서 무얼 하겠느냐면서 행상은 서울이나 강화도나 마찬가지니까 서울로 다
같이 이사를 왔어요. 그래서 어머님께서는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서 행상을 하시고 저
는 서울상고를 다녔죠.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호적 정리
<사망 처리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어머니가 동사무소에 가서 올리는데 잘 모르시니까 동사무소 직원이 물어보는 대로
답변을 하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한자를 잘못 쓰시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호
적은 사망으로 정리했습니다.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어머님도 생존해 계십니다. 95세시고요. 제 밑에 여동생은 미국에 이민을 가 있습
니다. 어머님께서는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누워만 계시고 대소변이 자유롭지 못합니
다. 밥은 잘 못 드시고 미음을 드세요.
문_ 어머님이 아버님에 대한 말씀은 하시는지?
답_ 자주 하시죠. 어떻게든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적십자사에도 젊었을 때 자주
찾아 다니시고. 신고도 하고 상담도 하고. 별다른 소식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쳐서
포기했다고 봐야죠. 본인이 연세가 많으셔서 돌아가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문_ 남은 가족의 납북자와의 추억은?
답_ 저와 아버님은 추억이 있죠. 제가 어렸을 때 상당히 개구쟁이였어요. 말도 안 듣
고 집안에 첫째 아들이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뻐해 주셨고 아버님도 첫째 아들이라 감
싸주셔서 버릇이 없이 자랐습니다. 그래서 아버님 속을 많이 썩였죠. 특별히 기억나는
건 제가 한 8살 때로 기억하는데 할아버님이 마당에 화초를 정성껏 가꾸셨거든요. 그런
데 거기에 예쁜 꽃이 펴서 그걸 제가 꺾었거든요. 그래서 할아버님께서 노발대발 하셨
어요. 그래서 개나리를 꺾어서 저를 많이 때렸어요.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이 맞았
죠. 그 이후로 제가 지병이 생겼어요. 자다가 일어나서 뛰쳐나가고, 자다가 소리를 지르
고. 그래서 한 스무 살 될 때까지 그게 반복이 되고 전쟁 후에 강화도에 와서 생활을 하
는데 어머니가 돈이 없으니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그냥 지내면서 성인이 됐어
요. 성인이 된 후에 그게 차츰 줄어들면서 없어졌습니다. 아버님께서 또 개성에서 공장
을 하셨는데 시내에 점포도 내셨어요. 그래서 제가 학교에 다녀오면 아버님 몰래 서랍에
서 돈을 꺼내서 과자를 사먹고 동네 아이들도 사주고 그렇게 속을 많이 썩였죠. 그만큼
첫째 아들이라 귀여워서 많이 봐주셨죠.
문_ 납치 이유는?
답_ 대한청년단 때문이죠. 지금 생각하면 북에서 가장 싫어하는 집단이잖아요.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악랄함을 몰랐어요. 그래서 개성에서 피난 나오면
서도 한두 달 있으면 다시 돌아갈 거라고 할 정도로.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도움을 준 것도 없고 와서 괴롭힌 것도 없고. 아무런 영향이 없었어요. 어머님은 행
상을 하며 지내셨고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서 쭉 일을 했으니까요. 다른
데는 관여한 적이 없으니 정부에서 도움을 주거나 한 건 없었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더 늦기 전에 납북자의 흔적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주기 바람>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저희들이 많이 지쳐있어요. 아버님 연세가 많으니까 살아계시리라고 생각하기는 어
렵죠. 그래서 저희들이 소망하는 건 아버님 소식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건데 알 수 있겠
어요? 통일되도 힘들 것 같아요. 개성에 있는 사람들을 분단 뒤에 이주시켰다는 이야기
도 들려오고 그러니까. 집이 남아 있겠습니까, 흔적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버님
흔적이라도 찾고 싶다는 거죠. 언제 돌아가셨는지, 어디에 살다 돌아가셨는지, 개성에
서 후퇴할 때 죄수들을 죽였다던데 그 때 돌아가셨는지 같은 걸요. 그래서 제사 날짜도
정할 수 없고 그렇게 지내 왔기 때문에 지금 소망이라는 게 거의 사라져 가는 상황이죠.
정부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서둘러 줬으면 소식이라도 들을 텐데 이제는 어렵지 않겠습
니까?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돌아가셨는지 살아 계신지 모르겠지만 보고 싶은 한이 맺힌 건 말할 수도 없고요.
제가 소망하는 것은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에 소식이라도 알았으면 하는데 그나마도 어
렵지 않을까 해서 별달리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어머님 돌아가시면 저희들 기억에도
점점 멀어지겠죠. 사실 10살때 헤어졌기 때문에 아버님에 대한 정 같은 건 적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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