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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이 헌 (증언자-이무헌)
이름: 관리자
2013-09-16 11:20:42  |  조회: 2356


060524A 이헌 / 2006. 5. 24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이헌), 사진2(증언자:이무헌)

피랍자
성명: 이헌
생년월일: 1895년생 (정읍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종로구 신교동 6-30
피랍일: 1950년 9월 초순
피랍장소: 서울시 종로구 신교동 6-30(자택)
직업: 한국 민주당 중앙 집행위원 대의원 (前 독립운동가, 조선노동동맹 실행위원)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아들 내외, 손자, 손녀
외모 및 성격 : 고집이 세고, 보수적임, 단정한 외모

증언자
성명: 이무헌(1938년생)
관계: 손자
증언 성격: 직접증언 V 간접증언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확인, 사망 시 사망일자 및 경위 조속히 확인해 줄 것
(對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피랍자 생사확인에 힘써줄 것














직업 및 활동

<독립 운동가, 일제 때 조선 공산당원으로 있다가 1926년 모스크바에 다녀온 후 출당당한 경력 있음. 한 편, 전쟁 시에는 한국 민주당 중앙집행위원 대의원으로 한국 초기 정치계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던 인물이었음 >

Q: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A: 일제 때 기미 삼일운동에 가담하셔서 투옥되셨어요. 그 이후에는 일본 동경에서 조선인 고학생 동호회를 결성, 고학생을 도왔어요. 그리고 조선 노동 동맹 실행위원을 하셨구요. 6.25 당시에는 한국 민주당 중앙 집행위원 대의원으로 계셨어요.

Q: 독립운동을 하셨다면 유공자 지정이 안되셨는지?
A: 독립 운동 근거가 되는 것은 일제 때 투옥 돼 1년 간 옥살이한 자료가 있어요. 숨은 유공자 발굴 공문이 있어서 유공자 신청을 했는데 안 됐어요. 무슨 이유로 안됐는지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어요

납북 경위

<9월 초순 경, 자택에서 밤 중에 인민군 대좌가 찾아와 이헌과 그의 아내 황기성을 지프차에 태워 감>

Q: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A: 6.25 당시 우리 집은 대로변에 있는 적산가옥 2층집이었는데 아래 층은 뺏겨서 내무소가 들어왔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2층에 기거하고 살으셨죠. 그 때 저와 동생은 할아버지 댁에 가 있었어요. 그러다 그 때가 9월 초순 쯤이에요. 인민군 대좌가 왔더라고요. 지금은 대령이라고 하죠. 한밤중에 지프차를 가지고 와서 가자고 해서 그 때 두 분을 다 데려가셨어요. 지금도 생각나는 건 인민군이 와서 신발을 벗고 예의로 갖춰서 들어왔어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계실 때 사상이 좋지 않은 국회부의장하던 김약수라는 분이 전쟁 전에 할아버지를 가끔 찾아왔었어요. 제가 알기론 그 사람이 사상이 불순해서 월북했다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김약수 그 사람이 두 분을 데려가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걸로 끝이에요.

Q: 피난은 왜 안 가신 건지?
A: 3일만에 갑자기 들어와서 피난 갈 시간이 없었어요. 그리고 정당인이라고 해서 데려갈 줄은 아무도 몰랐죠. 잘못한 게 없으니까. 할머니는 대한 부인회 부인잡지사 부사장을 하셨었고, 언론계에 계셨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아마 마음 놓고 있으셨던 것 같아요.

납치 후 소식

<서대문 형무소에 며칠간 구금된 후 북한으로 갔다는 소식 외에는 들을 수 없었음>

Q: 찾아보려는 노력은?
A: 찾으려고 노력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구금됐다가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얘기해주셨던 게 기억나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서대문 형무소로 찾아가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납치 이후 이북으로 곧바로 데려간 건 아니고 며칠 서대문 형무소에서 머무르다가 갔다고 전해 들었어요. 그 후에는 일절 못 들었어요. 저는 가자마자 걔네들이 죽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희 할아버지가 일제 때는 공산당원으로 있었어요. 그 일로 모스크바에 갔다가 거기서 스탈린하고 얘기 중에 뭐가 잘못돼서 공산당에서 출당처분을 받아요. 그게 1926년, 그 때 공산당은 나쁜 게 아니었어요. 자료를 보면 이 헌; 제일 조선 노총 위원장, 조공 당원이었거든요. 여기서 코멘테르로 파견됐다가 모스코바에서 잘못했다고 해서 조선공산당에서 출당처분을 받아요. 그리고는 1945년 9월에 한국 민주당 결성에 참여하게 되요. 이것이 ‘한국 사회주의 인명 사전’에 나오는 얘기에요. 그리고 ‘독립운동사집’에도 나오구요.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자의 자녀가 피랍자의 자택을 팔고, 화공약품점을 경영하면서 자녀들과 생계를 유지>

A : 신교동 집을 팔고 어렵게 어렵게 살아온 거죠. 1.4 후퇴 때 걸어서 피난을 갔었죠. 어디 어머니가 쌀을 구하러 갈 때도 언제 어디로 가서 언제 오는지 신고를 하고 내무서에서 출장증명서를 끊어야 움직일 수 있으니 전쟁 당시는 억압이 심했죠. 사람이 움직일 수를 없으니 하도 디여서 1.4 후퇴 때는 피해서 내려 갔어요. 그땐 서울엔 사람이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었어요. 저는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1952년인가에 올라왔죠. 와서는 우리 집으로 들어가서 아버지가 화공 약품점을 하면서 살았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A: 6.25 끝나고 나서 혼란기이고, 군사 정권 들어서고 하는 통에 납북 인사에 대해서는
정부에서도 거의 신경을 안 썼죠. 도움 같은 건 없었던 거죠. 왜냐면 대한민국 경제가 도움을 주고 받고 하는 경제 체제가 아니었거든요. 서로가 먹고 살기 힘들고 보릿고개가 있었으니까요

호적정리

<사망 정리>
A: 제가 신고를 해서 호적 정리했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할아버지를 살아계신 분으로 남겨둘 수 없잖아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A: 그런 건 없어요. 납북이니까. 강제로 데려간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반공과 반일로 살아왔어요. 사상적으로 오해가 있었다면 우리가 연좌제 등으로 제재가 많이 있었겠지만
할아버지는 한국 민주당원(정당인)이고 납북이란 사실이 분명하니까요.

정부에게 바라는 말

<납북자 생사 확인, 사망 시 사망일자 및 경위 조속히 확인해 줄 것>

A: 이북에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돕는데 납북자 문제는 생사도 알 수 없어요. 돌아가신 분이라도 언제 어떻게 죽었다는 거 그것만이라도 알려주는 건 이북에서도 돈이 드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만 확인되면 좋겠어요. 현정부도 그래요. 어차피 언젠가는 이북하고 통일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이북도 정치하는 사람이 있고 부모가 있고 다 있는데, 이북에서 확인하게 해 주는 게 뭐가 그리 힘드냐구요? 반세기가 지났어요. 이건 말이 안되죠. 살아계시는 분 우선 만나는 거 좋아요. 그러나 생사확인은 자기네들이 서류만 들쳐보면 되는데 그거 뭐 대단한 거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내가 김정일한테 가서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살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을 해 주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현대통령님이 임기중에 납북자만은 해결해주셨으면 감사하겠어요. 그리고 이번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때 납북자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종용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저한테 유언을 하셨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납북되셨으니까 생사확인이 되는 그 날을 기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 차례를 같이 지내라고 하시는 바람에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차례를 못 지냈어요. 그 약속 때문에 제가 지금 몸부림치는 거에요. 차례라도 한 번 지내고 가는 게 좋지 않겠나 해서요. 다른 거 없어요. 다른 건 필요 없고 그거 하나에요. 우리 아버지는 인왕산에 저와 함께 올라가셔서 사람은 죽어서 고향으로 새가 돼 온다며 할아버지, 할머니 소식이 확인되면 납북돼서 돌아가신 그날을 기일로 잡아
차례를 지내야 한다고 늘 그러셨어요. 저도 이제 병들어서 얼마 안 남았는데 같이 차례라도 한 번 드리고 갔으면 좋겠어요. 그거 밖에 바라는 거 없어요.

특이사항

<피랍자의 처 황기성(1900 서울 출생)도 동반 피랍됨. 당시 황시것은 대한 부인회 부회장, 부인 잡지사 부사장을 맡아 언론계에 활동적인 역할을 하던 인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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