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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손해경 (증언자-손해구)
이름: 관리자
2013-09-17 11:48:36  |  조회: 2022
2006. 11. 23. 채록
061123A 손 해 경(孫海境)

피랍인
생년월일: 1925년 4월 19일생
출생지: 서울
당시 주소: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 14번지
피랍일: 1950년 9월 28일경
피랍장소: 충북 충주읍 지곡리 372번지
직업: 운전수
직계/부양가족: 부모, 3형제.
외모/성격 : 외모가 준수하고 두뇌가 명석한 것으로 알려짐.준수한 외모, 명석한 두뇌.

증언자
성명: 손해구(1935년생)
관계: 동생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9.28 수복 때 인민군들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수송 수단 이용을 위해 트럭 운전수였던 피랍인을 자택으로 찾아와 연행해 간 것으로 가족 증언. 감, 자택으로 찾아왔음.
- 피랍인의 큰 형은도 보도연맹에 연루 되어 피살되었음. . 남동생들이 각각 현역, 미군부대 근무 하면서 생계를 도움.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상봉, 당당한 대북정책

“9.28 수복 때 인민군들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빨리 도망가기 위해서는 수송 수단을 이용해야 했는데, 우리 형님이 집에 계시다는 것을 누가 제보를 했나 봐요. '트럭 운전수 하나 똑똑한 사람 있는데 데려가면 어떻겠냐?' 하고 정보를 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새벽에 4시쯤에 와서 느닷없이 끌고 가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소식이 없어요. ”

“당시는 서로 대놓고 말을 못했어요. 워낙 시대가 엄할 때라 말을 잘못하면 여기서 끌려갈 수 있고, 또 저기서 끌고 갈 수도 있으니 서로 비밀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문이 더 퍼지지 않고 집안사람들만 알았죠.”

“추울 때였는데, 어머니는 장독대에 늘 정한수를 떠놓으시더라고요. 그 (납북된) 아들을 위해서. 매일같이 물을 떠 놓으셨어요. 어머니는 밤잠을 잘 못 주무셨어요. 그리고 늘 그렇게 자주 마당에 나와서 서성거렸어려서요. 저는 시집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를 때였는데 문도 잘 안 닫으시고, 문을 열어 놓으시고 그러시더라고요. 나중에 시누이가님이 오시더니 '엄마가 둘째 아들이 6.25때 그렇게 되고 난 다음에 언제라도 들어올 줄 알고 저렇게 늘 문을 열어 놓고 그러신다'고 말해 주더라고요.(증언자의 처 백인희 증언)”


○ 직업 및 활동

<트럭운전수 였음.>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트럭 운전수였어요. 충주에서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회사에서 일했어요.

문_ 청년회 활동 같은 것은?
답_ 그런 건 안 했어요. 우리가 그렇게 여유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일제 적산 땅을 부쳐 먹는 소농이었으니 간신히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식이었죠. 그러다 해구 형님이 운전 하시면서
우리 살림에 보탬이 됐는데 (납치 되고는) 졸지에 다 잃은 거죠. 나중엔 제가 미군부대에서 번 돈으로 살림도 보탰태고 했습니다.



○ 납북 경위

<9.28 수복 때 인민군들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수송 수단 이용을 위해 트럭 운전수였던 피랍인을 자택으로 찾아와 연행해 감. 자택으로 찾아왔음.>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9.28 수복 때 인민군들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빨리 도망가기 위해서는 수송 수단을 이용해야 했는데, 우리 형님이 집에 계시다는 것을 누가 제보를 했나 봐요. '트럭 운전수 하나 똑똑한 사람 있는데 데려가면 어떻겠냐?' 하고 정보를 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새벽에 4시쯤에 와서 느닷없이 끌고 가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소식이 없어요. 누구한테 알아볼 수도 없고, 워낙 상황이 그런 때라 그랬어요. 9월 28일 전후인데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어요. 그 때 형님은 스물다섯 살인데 낮에는 들에 가서 농군처럼 일하며 피신해 있으시다가 밤에는 집에 들어오고 했거든요. 납치 당시 사방을 보니 인민군들이 집 주위에 대기하고 있었어요. 거절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이 속절없이 끌려 간 거죠. 그 이후론 생사 확인 할 길도 없었고요. 인민군이 여러 명이 있었어요. 우리 해구 형님하고 같이 끌려갔던 사람 중에 도망쳐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은 이 세상에 없어 확실한 건 알아볼 수 없었어요.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탈출해 온 분은 뭐라고 하셨는지?
답_ 고향에 누님이 아직 살아계시는데, 그 분을 한 번 만났대요. 그런데 그 분이 오히려 '해경이는 오지 않았냐?'고 묻더래요. 먼저 도망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제가 보기엔이겐 형님이 인민군들의 감독을 피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문_ 어디까지 갔는지도 모르시고요?
답_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어요. 회사 트럭도 아니고 인민군 트럭일 거예요. 인민군들이 퇴거할 때는 낮에는 비행기 (폭격) 때문에 못 가고, 밤에만 행동을 하거든요. 그러니 더 알 수가 없었죠.

문_ 당시 마을 사람들도 다 알았는지?
답_ 그 당시는 서로 대놓고 말을 못했어요. 워낙 시대가 엄할 때라 말을 잘못하면 여기서 끌려갈 수 있고, 또 저기서 끌고 갈 수도 있으니 서로 비밀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문이 더 퍼지지 않고 집안사람들만 알았죠.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큰 형은도 보도연맹에 연루 되어 피살. 남동생들이 각각 현역 또는, 미군부대에 근무 하면서 생계를 도움.>

답_ 또 6.25 때 큰 형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러니 전쟁 때문이 우리 가정은 쑥대밭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분은 이름이 손해서인데, 일본 징용 다녀오셔서 친구한테 도장을 잘못 빌려주는 바람에 보도연맹으로 연루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피살당했나 봐요. 그 때 부터는 큰 형님도 소식이 없고, 여기서 죽었는지 저기서 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셋째 위에 형님은 군대에 가고, 저도 미군 부대에 따라 다녔어요. 처음엔 피난을 안 가고 학교에 갔다가 호되게 혼났어요. 혹시 인민군에게 부역한 사람 아니냐고. 그래서 1.4후퇴 때는 피난을 나갔습니다. 가다가 충북 옥천에 미군 부대가 있었는데 미군들하고 같이 식당에서 일하면서 걔들하고 삶을 같이 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영어에 좀 소질이 있었는데, 거기 있다 보니 소통이 되더라고요. 제가 다녔던 부대는 1선 보병 부대가 아니라 2선 부대라서 전방에서 전투병들이 싸우다 부상을 입으면 후송이 되어 치료해 주고 하던 곳이었어요. 거기는 부상당한 중공군도 있고, 인민군도 있고, 일반인도 있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혹시나 우리 해구 형님이 있으면 내가 빼돌릴 수 있겠다 싶어 계속 따라다닌 겁니다.

제가 학교는 못 다녔어요. 왜냐하면 내가 옥천에서 충주까지 미군 부대 따라다니다가 학교에 갔더니 나이도 안 맞고, 받아주지 않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내가 계속 미군 부대 따라다니면서 해구 형님 찾아야겠다' 싶어서 휴전 때까지 간 거죠. 그러다 휴전 후에는 미군 부대도 질서가 잡혀가면서 저는 그 곳에 정식 종업원으로 취업이 됐어요. 그래서 주둔 부대에 도서실 같은 것이 설립될 때 거기에 들어간 거죠. 거기서 받은 돈을 집으로 보냈어요. 부모님들을 그렇게 뒷바라지를 한 거죠.

문_ 힘들진 않았는지?
답_ 힘들었죠.

문_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답_ (백인희,(1942년생: 증언자의 처) 저희들이 1962년에 결혼했거든요. 그 때는 추울 때였는데, 어머니는 장독대에 늘 정한수를 떠놓으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어요. 한번은 '아가, 네가 한번 물을 떠놓으라' 하고 하셨어요. 그 (납북된) 아들을 위해서. 매일같이 물을 떠 놓으셨어요. 어머니는 밤잠을 잘 못 주무셨어요. 그리고 늘 그렇게 자주 마당에 나와서 서성거렸어려서요. 저는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를 때였는데 문도 잘 안 닫으시고, 문을 열어 놓으시고 그러시더라고요. 나중에 시누님님이 오시더니 '엄마가 둘째 아들이 6.25때 그렇게 되고 난 다음에 언제라도 들어올 줄 알고 저렇게 늘 문을 열어 놓고 그러신다'고 말해 주더라고요.

또 객지에 살다가 명절 때 집에 가서 뵈면, 그래도 자녀들에게 눈물도 안보이시고 대담하셨어요. 그런데 늘 그렇게 깊은 잠을 못 주무시더라고요. 돌아가실 무렵에는 충격 때문이신지
(이유 없이) 잘 웃으셨어요. 진지 잡수시다가도 한참을 웃고. 그러면 저도 어쩌나 짜증을 냈어요. 내가 뭘 잘못해서 저러시나 싶어서. 알고 봤더니 그 때(6.25전쟁) 충격 때문이었는지 연세가 드시면서 정신적으로 공허하셨나 봐요. 누님말로는 둘째 아들 때문에 돌아가실 때 되니까 노인네가 정신이 좀 흐트러진 것 같다고.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웃으시다가 눈물도 흘리시고 하셨어요. 나중에 우리가 가족예배를 드리는데 남편과 형님 기도를 하면서 같이 운 적도 있었어요. 저는 그 분의 얼굴은 모르지만, 그렇게 안타깝더라고요. 이산가족의 슬픔이 남의 일인 줄 알았더니 내 시아주버니가 그렇게 되시니 똑같이 마음이 아프고 쓰리고 그래요. 하루속히 만났으면 좋겠어요.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신고는 안 했죠. 신고를 해도 호적이 없으니 받아 줄 수도 없고. 이번에 남북대화가 트이고 이산가족 상봉을 한다고 하니 제가 서류를 작성해 적십자사에 보내보기도 하고 한 거죠.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그런 건 없었습니다. 제가 중동을 오래 갔다 올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연좌제 피해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호적정리

<말소됨>

답_ 호적이 타는 바람에 부모님들이 해구 형님과 큰 형님 호적을 말소시켰습니다. 그래서 지금 호적에는 해구 형님과 큰 형 이름은 올라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좌제 같은 경우도 저는 증거가 없어 피해를 보진 않은 것 같습니다.



○ 연좌제 피해

<없었음>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상봉, 당당한 대북정책>

답_ 지금 이 정부엔 내가 바라는 것 없습니다. 정부는 이북에 휘둘리지 말고, 할 말은 하고.
'왜 거짓말 하냐? 납북자 문제 해결해라'고 말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정부 당국자들을 보면 이북에 말 한 마디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고, 걔들 협박에 쩔쩔 매고 하는데 거기다 대고 뭘 바라겠어요? 대놓고 납북자를 말하고 보내달라고 해 보지도 않고, 오히려 감추려고 하니 너무 안타깝고. 만일 우리 형님이 살아계시면 80세 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형님이 살아계실 것이라 믿고 기도하고 있는 거죠. 저는 기도하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산에 가서 기도하고 왔습니다만, 피해자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의 여명이 비췄으면 하는 마음, 납북자 가족회에서 고생하시는 것 조금이라도 성과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셨는지?
답_ 1960년대 초반에 돌아가셨습니다. 두 아들을 먼저 보냈다는 한을 가슴에 안고 사시다가 가셨죠.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그렇게 가신 게 안타깝죠. 아버지는 73세, 어머니는 75 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누님한테 그러셨대요. '너는 살아서 해경이를 볼 거다' 라고. 그래서 그런지 우리 누님은 88세인데대도 정정하십니다. 누님은 제가 전화만 하면 '좋은 소식 있냐?'고 해경이 형님 소식을 제일 먼저 묻습니다. 살아 생전 만나는 것이 우리 누님의 소원입니이고 그렇습니다.

문_ 형님에게 하고 싶은 말?
답_ 형님, 살아계시면 만나서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이 험한 세상 이 세대에 우리가 살아왔다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형님, 살아만 계십시오죠. 하나님의 뜻이라면 만납니다. 저는 꼭 살아서 만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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