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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병곤 (증언자-정문영)
이름: 관리자
2013-09-17 11:34:19  |  조회: 2457


2006. 10. 16 채록
061016A 김 병 곤 (金秉坤)

피랍인
생년월일: 1921년 11월 1일
출생지: 울산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31-45
피랍일: 1950년 8월 3일
피랍장소: 서울 서대문에 있던 중앙청 경리과장 자택(은신처)
직업: 중앙청 공보처 여론조사 정보과장 서리
학력/경력: 일본 중앙 법대 졸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남 1녀.
외모/성격 : 키가 크고 미남형, 쾌활하고 잘 웃음.

증언자
성명: 정문영(1925년생)
관계: 배우자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피랍인은 일본 중앙 법대를 졸업하고 중앙청 공보처 여론조사 정보과장 서리로 근무하고 있었음.
-시장에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1차 연행됨. 다행히 함께 있었던 처남을 보내주는 과정에서 얻었던 통과증을 재사용해 도망함.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직장동료였던 중앙청 경리과장 자택(서울 서대문)에 숨어 있다가 북한군관이 지프차를 타고와 동료들과 함께 납치해 감. 피랍인의 처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여자를 통해 피랍인이 작성한 메모를 받았는데 명동에 있는 보리수 다방에 간다고 적혀 있었음. 행적을 따라 가 봤지만 이후 소식을 들을 수 없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명예 회복

“그 사람이 도시락에 편지를 넣어뒀더라고. '내가 어디어디로 간다. 와 봐라' 라고 적혀 있었어. 그게 명동 보리수 다방이었는데, 내가 찾아가보니까 없더라고.”

“처음 생각엔 ‘내가 장자 며느리니까 살다가 살림 받아서 이 집을 유지하고 자식 공부 시키고 해야겠다.' 생각하고 시집에을 들어갔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남편 잡아먹은 년' 이라는 거야. ”

“정부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내 직장이 있는 방첩대로로서 날 찾아왔더라고. 지프차를 타고 와서 CIC로 나를 데리고 가서 조사한다고 한 거지. 그러더니 남편한테 편지를 쓰래. 그래서 다 썼어. 그리고 끝에 ‘나는 대한민국이 좋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겠다. 당신은 당신 좋은 대로 하라’고 쓴 거야.”



○ 직업 및 활동

<피랍인은 일본 중앙 법대를 졸업하고 중앙청 공보처 여론조사 정보과장 서리로 근무하고 있었음>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경복궁 뒤쯤인가 중앙청 직원들과 찍은 사진이 있어. 중앙청 공보처인지 총무처에서 일을 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 공무원이었지. 일본 중앙대 나왔고, 해방되고 (한국에)나와서
공보처에 이력서를 냈더니 필적이 좋다고 채용이 된 거야.

문_ 기록엔 여론조사 정보과장을 한 것으로 돼 있는데?
답_ 여론조사 정보과장 서리를 하다가 내 동기 남편이었던 정보과장이 신문사로 나가면서,
이 사람이 올라 간 것도 똑똑히 기억해.



○ 납북 경위

<시장에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1차 연행됨, 다행히 함께 있었던 처남을 보내주는 과정에서 얻었던 통과증을 재사용해 도망함.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직장동료였던 중앙청 경리과정 자택(서울 서대문)에 숨어 있다가 북한군관이 지프차를 타고와 동료들과 함께 납치해 감. 피랍인의 처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여자를 통해 피랍인이 작성한 메모를 받았는데 명동에 있는 보리수 다방에 간다고 적혀있었음. 행적을 따라 가 봤지만 이후 소식을 들을 수 없었음>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전쟁이 나고 고향에 내려가려고 하니까 한강 다리가 끊어졌어. 자다가 하도 시끄러워 봤더니 한강 다리가 끊어졌다는 거야. 그러니 내려가려고 해도 갈 수도 없고, 그 때 벌써 애가 둘이야. 그리고 또 고향에서 데리고 온 애가 하나 더 있었고. 애들을그거를 데리고 걸어 내려가려니 엄두가 안 나는 거야. 그래서 보니까 우리 친정식구들이며 다른 사람들도 그냥 살길래 우리도 그냥 있었어. 있으니까 우리가 공무원이라는 걸 동네에서 다 알 꺼 아냐? 그러니 반상회고 어디고 모임이 어찌나 많은지 나오라고 난리야. 그래서 안 나가려고 뒷 집, (친정)할머니 집에 가서 마루 밑이나 장독대 안에 숨어 살다가 시간이 오래되니 먹을 게 없잖아. 그때 공무원 월급이 한 달에 쌀 한 가마니 값도 안 됐는데, 그걸 겨우 받아 살던 때니. 그래서 양식 구하러 간다고 당시 경복 고등학교 다니던 내 동생을 데리고 같이 간 거야. 그러다가 길에서 붙잡힌 거야. 길에서 붙잡아서 군대에 보내던 때야. 그래도 이 사람이 머리가 있어서, 내 동생을 빼내줘야만 자기가 잡혀갈 것을 알릴 것이다 알릴 것이다. 싶어서 '내가 갈 테니 동생은 보내줘야 된다.'고 말한 거야. 그래서 그 사람들이 '통과하라'는 메모지를 하나줘서, 동생은 거기서 빠져나왔어. 집에 헐레벌떡 뛰어온 거지. 듣기로는 효자동에 청운 중학교인지 청운 초등학교인지 그리로 갔다고 해서 쫓아 가봤더니 줄을 서서 교문 밖으로 끄잡고(?) 나오는 거야. 그걸 내가 봤어. (남편과) 눈이 마주치니까 깜빡 깜빡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서 가만히 서 있으니 줄줄이 해서 내 앞을 지나가대. 그래서 내가 슬쩍 (동생이 갖고 있던) 종이를 다시 주니까, 그게 통과증이거든. 그러니 받아서 조금 있다가 그걸 보여주고 나온 거야. 워낙 사람이 많으니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고 그냥 통과증이라고 하니 보내준 거지. 그래서 처음엔 살았어. 전쟁 나고 얼마 안됐을 때야. 한창 북적북적하고 학생들 잡아가고 할 때야.

그 때 우리가 가회동 부자 동네 살았어. 그런데 반장이 빨갱이였나 봐. 더 이상 집에 숨어있을 수가 없는 거야. 집이 내 집도 아니고, 어디 숨을 때도 없고, 빨갱이였던 반장이 우리 집 앞에 사는데. 당시 이북 군인들이 반장 집에 찾아가면, 반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다 잡아가고 쓸어갔었어. 그래서 (중앙청)직원들 몇 명이 그때부터 무슨 과장 집에 모이기 시작했어. 거기가 아지트야. 밥은 못해 먹이니, 도시락을 싸가지고 숨어 있으러 간 거지. 그런데
누가 찔렀겠지. 지프차를 가져와서 한꺼번에 다 실어 간 거야. 우리 주인하고. 밀고를 안 하고는 그렇게 그 자리에 찾아와서 폭삭 잡아갈 수가 없는 거라.

평소에 남편은 참 세밀한 사람이라 자기가 안 오면 이리 이리로 찾아오라 얘기를 해 주더라고. 그 날도 간다 해서 알루미늄 도시락을 싸줬는데, 안 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가봤더니 거기 살던 여자가 '지프차가 오더니 2층에 올라가서 싹 다 싣고 갔다. 갈 때 교육받으러 간다면서 데리고 가더라'고 해. 그런데 그 사람이 도시락에 편지를 넣어뒀더라고. '내가 어디어디로 간다. 와 봐라'고 적혀 있었어. 그게 명동 보리수 다방이었는데, 내가 찾아가보니까 없더라고. 근처에서 빙빙 돌고 있으니까 어떤 여자가 애를 데리고 서 있는데 자기도 남편을 찾으러 왔다는 거야. 알고 봤더니 남편과 같이 데려 간 사람의 부인이야. 그 사람이 알아보니까 화신 백화점 쪽으로 갔다고 얘길 해. 화신백화점 건물 뒤에 보면 골목에 길게 한옥집이 있어. 그게 기생들도 와서 노래도 부르는 음식점이야. 그 여자 말로는 그리로 교육받으러 갔다고 해. 그래서 찾아가 봤더니 방문이 다 닫혀있고, 삐쭉삐쭉 쳐다보다가 '여보세요, 말 좀 묻자'면서 물어보니 '그런 일 없습니다. 아무도 안 왔습니다.'라 하면서 문을 탁 닫아버리더라고. 그게 끝이야.



○ 납치이유

답_ 공무원에 있었으니 무조건 잡아간 거지. 당시만 해도 '나라가 새로 생기니 나라를 위해 살아보자' 이런 생각밖에 없는 거야. 요새처럼 돈이나 좋아하는 공무원이랑은 달라. 한강 다리 폭파될 때까지는 중앙청에 태극기가 걸려 있었거든. 우리 집에서 언덕 위에서 보면 그게 보였어. 그걸 보더니 이 사람이 태극기가 걸려 있으니 직장에 가봐야 된다고 하면서 중앙청에 갔어. 가보니 전부 비어 있더래. 그래서 자기 책상 다 뒤져서 처리하고 불로 태우고 온 거야. 목숨 걸고 그렇게 갔어. 다른 사람 다 겁이 나서 도망가는데. 그만큼 나라를 사랑하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으니 돈이나 누가 뭐라 한 대도 넘어갈 사람도 아니고.



○ 납치 후 소식

<없음>

문_ 정치보위부는 가보지 않으셨어요?
답_ 안 가봤어. 그 때부터는 내가 잡혀갈까봐 겁이 나서. 그때는 여자고 남자고 없거든. 무조건 잡아가니까. 그래서 자식 둘이 굶어 죽을일까봐 걱정이 되는 거야. 당시 장마가 심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고래가 든 모양이야. 젖도 안 먹고 계속 설사를 했는데, 그걸 놓고 영감 찾으러 다니다가 자식 죽이겠다 싶어서 그때부터는 집에 있었지. 그러다 수복될 때 부친이 서울에 올라와보니 애들이고 뭐고 다 굶어 죽게 생긴 거야. 먹을 게 없으니.

문_ 이후 소식은?
답_ 못 들었어. 그게 끝이야. 그래서 내가 점을 한다고 쫓아다녔지. 그때 갈 때 미아리고개에서 어지간한 사람은 다 죽였거든. 잡혀 간 사람은 다 부유층이니까 잡혀갔지. 부유층이 안 걷던 걸음 맨발로 걷다 보니 그게 걸어지나? 못 먹었지.(못 걸었지) (게다가 못 먹어서 더 못 따라가니) . 못 따라가니 다 죽였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그 사람은 풀도 한 번 안 베보고 공부한다고 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니 죽었다 싶었지.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처가 자녀 1남 1녀를 데리고 강동 시댁으로 들어감. 10년 시집살이를 하다가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며 학대가 심해 집을 나와 직장 생활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감. 자녀 학비를 대기 힘들어 극빈자 증명을 받기도 했음. 딸은 19살에 자살함>

답_ 아이들하고 시집에 살았어. 시집이 강동 앞바다에서 어장을 하는데 부자였어. 옛날 시골에서는 아들을 대학까지 보낸다는 건 대단한 거거든. 어쨌든 아들이 처음 생각엔 내가 장자 며느리니까 살다가 살림 받아서 이 집을 유지하고 자식 공부 시키고 해야겠다.' 생각하고 시집을 들어갔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남편 잡아먹은 년' 이라는 거야. 그리고는 학대하기 시작하는데, 그걸 내가 참고 10년을 살았는데 이게 갈수록 더한 거야. 나중엔 쌀도 열흘 만에 오면 열흘 치, 사흘 만에 오면 사흘 치. 조금씩 겨우 먹을 치만 주는 걸 눈치 보면서 주는 그런 시집을 살았어.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것은 워낙 큰 집이라 사랑채가 비어 있었는데 근처 학교 교장이 거기 살았어. 그 부인이 나랑 친구였는데 그 사람이 다 증거를 한다 이거야. 저렇게 어째 사냐고. 그러니 살아보니 도저히 안 돼.

내 딸이 19살인데 고등학교 졸업할 때 자살을 한 거야. 그것도 말도 못한다. 이 얘기 다 하려면 허파 뒤집혀어서 말도 못한다. 세월이 그래서 굶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시댁에서 그렇게 쫓겨나왔으니. 딸애는 약방 하는 고모 집에 가서 식모 노릇을 해줬어.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애 키우고 밥해주고. 우리 아들은 동래중학교 나오고 동래고등학교 들어갔어. 그때까지 둘째 삼촌네 있었거든. 둘째 삼촌이 동래중학교 교편을 잡았거든. 근데 그 집에 있다가 내가 밉다고 애를 쫓아 보낸 거야. 어미한테 보내라고. 그 때 나는 내 동생 자취하는데 살고 있었거든. 그 비좁은 방으로 애를 쫓아 보냈더라고. 그래서 내 동생이 '그냥 삽시다.' 해서 셋이서 한 방에 살았어. 그러다 딸은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한 거지. 졸업반이었는데 나는 선생이라도 시킬까 했는데, 한이 맺혀서. 열아홉 이면 다 알 것 아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학대 받은 거 하며 삼촌, 고모들 하며. 그러니 여북하면 그랬래했겠나. 자기 친구한테 그렇게 말하더래. 그거라도 있으면 내 맘이 덜 할 텐데.

그리고 아들이 학교 다닐 때 등록금을 못 내서 내가 강동면에 면장을 만나러 갔어. 면장이 남편하고 국민 학교 동기였거든. 당시 강동 부잣집에서 며느리 쫓아낸 걸 다 아는 거야. 나는 등록금 때문에 극빈자 증명을 받으러 면에 갔었어. 가니까 면장이 나를 보더니 얼굴을 알거든. 그래서 "우째 오셨능교?" 하길래 사정을 얘기했더니 두말도 안하고 해 주대. 사실 내가 어디 극빈자가 되나? 시댁이 강동에서 제일가는 부자인데. 그래도 사정이 그러니 극빈자 증명을 받아 겨우 동래고등학교를 마치게 한 거지. 나는 그 때 공무원으로 들어갔어. 학력이 있으니 나이는 많아도 뽑힌 거야. 알고 보니 (국회위원을 하셨던)아버지 영향이 좀 있었나봐. 1964년 그 때부터 일을 한 거지. 먹고 살려고. 계를 해서 등록금 내고. 그러니 영감 생각이고 뭐고 없는 거야.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내가 촌에 시집 살 때지만 나는 하루라도 신문을 안보면 속이 답답해서 못 살거든. 신문이 며칠 만에 한 번씩 오는데, 신문 본다고 시어머니한테 글 좀 안다고 나자빠져 누웠다고 욕을 먹고 했었어. 그걸 보니 어느 날인가 대한적십자사에 납북자를 신고하라고 났더라고. 그래서 내가 시아버지에게 '신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했더니 처음엔 ‘신랑 잡아먹고 또 무슨 소리 하냐?’고 난리를 치다가 가만 보니까 해야 할 것 같긴 해서, 다시 ‘신고하라’ 하더라고. 그래서 적십자사에 등록을 했지.

문_ 정부의 찾아보려는 노력은?
답_ 공무원이라도, 정부에서 부산에 내려왔어도, 우리 같은 사람은 찾지도 안하더라고. 정부에서는 잡혀간 사람은 그만이고 명 긴 사람은 살든가 그런 모양이야. 이북 놈은 저거 영토 늘리려는 욕심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자기 국민을 찾으려는 노력도 없고. 어떻게 죽었는지 말도 한 마디 없고, 너희 어째 사노 말 한마디 없고. 그래 놓고 뭐한다고 어떻게 알았는지, 내 직장이 있는 방첩대로서(방첩대로) 날 찾아왔더라고.



○ 호적정리

<사망 처리>

답_ 호적은 사망처리가 된 건지, 정확히 모르겠어. 사망처리가 됐으니까
아들이 군대에엘 안 간 거겠지.



○ 연좌제 피해

<배우자 직장에 찾아와 조사한다며 데려가 편지를 쓰게 한 적이 있었음. 피랍인 자녀의 취업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음>

답_ 아들이 졸업을 해맡아도 아버지가 그러니 취직이 안 되는 거야. 남편이랑 알고 지내던 사람이 조선일보 지부장을 해서 아들이 첨엔 거기를 쫓아다니면서 기자를 하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반대가 심해서 못하고. 나중엔 고등 공민학교를 나와서 일을 하게 됐지. 어쨌든 그 땐 이리 가보고 저리 가보고 아무리 해도 저그 아버지 때문에 취직이 안 되고 하니 사람이 환장을 하겠대. 이북 간 놈 하나도 못 찾아오면서 죄 없는 놈 밑구멍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몰라.

그리고 나도 잡혀 갔었가지. 지프차를 타고 와서 CIC로 나를 데리고 가서 조사한다고 한 거지. 그러더니 남편한테 편지를 쓰래. 그래서 다 썼어. '나는 여기서 잘 사니 당신이 이북에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나는 직장도 있고 애들하고 잘 살고 있으니 당신이나 건강해라. 언제든지 만날 때까지 건강해라' 하고 썼지. 그리고 끝에 ‘나는 대한민국이 좋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살겠다. 당신은 당신 좋은 대로 하라’고 쓴 거야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명예 회복>

답_ 바라는 건 명예회복 해 달라 이거야. 그렇게 억울하게 잡혀간 사람들. 내 국민도 이렇게 저렇게 안 하면서 이북 생각할 겨를이 어딨어? 명예회복 시켜라. 어떻게 해야 명예회복이 되는가는 높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너무 억울하게 갔으니.

문_ 아버님남편분이 많이 보고 싶지 않으셨어요?
답_ 보고 싶은 거야 이제 다 지나갔고. 난 우리 아들한테 지장이 있을까 싶었어. 이놈의 정치, 가만 보니 그렇게 될 것 같아겠는 거야. 자기들 생각이랑 맞지 않는 이런 말들 하면 다 잡아갈 거야. 옛날에 유언비어라면서 잡아 가듯이. 그래서 나는 뭘 하든 내 아들 끼우지 말라는 거였어. 이제야 다 잊고 근근이 밥 먹고 살아가는데 여기다 또 찬물 끼얹으면 못 산다. 그것 때문에 부모 재산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난 것도 억울한데.

부산에 있는 한 사람은 이것저것 해봐도 안 되니 '보상금이나 내 놓으라 하소' 그래. 그 때는 내가 이 영감쟁이가 뭘 해보지도 않고 보상금 얘기부터 한다며, 다른 사람이 들으면 지애비 팔아먹고 자식 팔아먹고 돈돈 한다고 말할까 싶어 더 말을 안 들었는데, 이제 와서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맞다 싶은 거야. 근데 그 때부터 보상금 내놓으라 했으면 무슨 해결이 나도 조금이라도 나지 않았을까 싶고.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하고 싶은 말이 어딨겠노? 간 사람이 고생이지 내가 고생인가. 다만 죽어서 영혼이라도 극락에 갔으면 좋겠지.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걸었지. 끌려가고, 굶어가며 어쨌겠어. 갈 땐 여름옷을 입고 나갔는데 추울 때 옷은 어땠을 지 그게 제일 걱정이더라고. 아휴(한숨) 나이가 있으니 아깝지. 겨우 서른 살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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