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17. 채록
061017A 김 길 원 (金吉源)

피랍인
생년월일: 1920년
출생지: 경남 밀양
당시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천연동 1통 8반
피랍일: 1950년 7월경
피랍장소: 자택 근처
직업: 공무원(치안국 경감)
학력/경력: 일본 메이지명치대 졸업, 2대 국회의원 출마출마했음.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4남매
외모/성격: 미남형, 온화함.

증언자
성명: 김억(1940년생)
관계: 장남
증언 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상황/원인)
- 치안국 경감으로 재직중이던 김길원은 서울 함락 직후 2대 국회의원 박종환, 변호사 강병철과 함께 피신해 있던 중 1950년 7월 경 가족이 걱정돼 잠시 집에 왔다가 집 근처에서 잠복해 있던 인민군에게 곧바로 연행되어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 감. 인민군들이 1차 후퇴 시 미아리 고개로 넘어 북송된 것으로 추정.
- 피랍인이 납북된 후, 1950년 추석 전 인민군 후퇴 과정에서 부인 허남도도 납치, 시체는 찾지 못했지만, 인근 금와산 개울에서 단체 피살이 있을 때 사살된 것으로 추정. 살던 집 역시 폭격으로 폐허가 됨. 공직자의 아내였다는 이유로 피랍된 것으로 보임.

- 자녀들이 오랜 기간 경찰 기관에서 감시를 받았고, 진학, 해외출장, 공무원 취업 등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당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인 생사확인 및 송환

“인민군들이 서울 함락하지마자 바로 우리 집을 예의 주시하고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니까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못하고, 서울 시내 어디에 피신해 가 계셨지. 그러다 아버지가 내 동생이 보고 싶어서 집에 오시다가 집 근처에서 붙들렸어요.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계시다가 인민군들이 1차로 서울에서 쫓겨 갈 때 묶여서 미아리 고개로 넘어가신 거지.”

“나에 대한 감시가 계속 있었어. 뭐 특별히 해롭게 하진 않아. '별일 없습니까?', '잘 삽니까?' 하고 묻는 정도야. 근데 그게 그런 게 아냐. 내가 민간 회사에 취직해서 다행이지, 나는 공무원이 될 수 없었어. 그리고 내가 회사 있을 때 외국에 출장갈 일이 있었는데, 여권 신청을 하니까 안 되는 거야. 그게 전부 연좌제 아닙니까?”

“인민군들이 급하게 새벽녘에 도망가면서 최악의 발악이지. 대문을 막 두드리드래. 그리고서는 구둣발로 방에 쳐들어와서 엄마를 붙잡아 간 거지. 뒤에 소문을 들어보면 집 뒤에 금와산이 있는데, 그날 잡아간 사람들은 거기 산의 개울에서 전부 총살을 시키고 도망갔다는 거야. 그래서 친척 어른과 산에 올라 가 봤어. 보니 개울이 피바다야. 전부 여자들만 다 죽여 버리고 도망간 거야. 수백 명이 죽어 있었어. 그러니 우리 엄마는 내가 못 찾아서 그렇지 거기서 총살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 직업 및 활동

<치안국에서 경감으로 일하던 공무원이었음>

문_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답_ 당시 경무대, 요즘 말하면 청와대에 계셨어요. 그 때 정부 수립하고 얼마 안됐을테니 모든 행정은 내무부 치안국에서 했어요. 거기 경무대에 계시면서 직위는 당시 계장인지 과장인지 높았어요.

문_ 다른 사적인 조직 활동은?
답_ 전혀 공직 외에는 안 하셨고, 6.25나던 해 4월 쯤 2대 국회 선거가 있었어.
그 때 밀양에서 입후보를 하셨지. 불과 30세였는데, 그 때 낙선하고 다시 공직에 그대로 가셨지.


○ 납북 경위

<서울 함락 직후 2대 국회의원 박종환, 변호사 강병철과 함께 피신해 있던 중 1950년 7월 경 가족이 걱정돼 잠시 집에 왔다가 집 근처에서 잠복해 있던 인민군에게 곧바로 연행되어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 감. 인민군들이 1차 후퇴 시 미아리 고개로 넘어 북송된 것으로 추정>

문_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답_ 인민군들이 들어와 서울이 함락되니까 아버지가 집에 계실 수가 없잖아요. 인민군 쳐들어오는 날, 우리 집에 있는 모든 서류며 사진을 불태웠던 기억이 나거든. 또 이북에서 '이 집은 누구집이다'라는 것을 사전에 알았던 것 같아요. 인민군들이 서울 함락하지마자 바로 우리 집을 예의 주시하고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못하고, 서울 시내 어디에 피신해 가 계셨지. 한강 다리가 끊겨 피난은 못 가시고. 내가 기억하기론 제헌 국회의원, 2대 국회의원 하셨던 청도의 박종환씨와, 당시 변호사 국장이었던 강병철씨와(고종사촌간) 함께 숨어 계셨어요. 그러다가 당시 내 동생이 2살 생일이 5월이니 갓 돌 지난 막내 동생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내 동생이 보고 싶어서 (눈물) 집에 오시다가 집 근처에서 붙들렸어요. 그리고는 서대문 형무소에 곧바로 투옥이 됐어요. 내 어릴 적 기억으로는 엄마가 형무소에 면회 가고 했던 기억이 나.

문_ 납치된 것은 언제 즈음 이었는지쯤?
답_ 7월쯤 됐을 거야.

문_ 붙잡혀 가는 것을 직접 보셨나요?
답_ 나는 (그 후엔 아버지를) 못 봤지. 엄마가 서대문 형무소에 갔다왔다고 하고 하니까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들었지. 갔다 온 이야기를 막내 삼촌에게 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지.

문_ 어머니는 면회를 하셨던가요?
답_ 만나볼 수는 있었는데, 그게 당시 서울에 있던 공산당 지하 조직 한 분이 엄마와 가까운 친척이었어. 그 할아버지가 상당히 고위직 공산당 간부였거든. 6.25나기 전에는 우리 집에 피신도 하고 그러셨지. 그래서 아버지는 서울이 온 사방 공산화 됐을 때는 그 양반 빽을 좀 믿었지. 크게 도움은 못 받아도 면회 정도는 할 수 있었어.

문_ 형무소에서 나오진 못하신 거죠?
답_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계시다가 인민군들이 1차로 서울에서 쫓겨 갈 때, 그 때 전부 형무소 문 열고 잡아다가 미아리 고개로 넘어 데려간가신 거지.



○ 납치이유

<엘리트 계층의 사람이라 납치한 것으로 추정>

답_ 당시 엘리트층,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납치해 간 거지.



○ 납치 후 소식

<지인을 통해 납북자가 북한에서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으나 사실 확인 안 됨>

문_ 들려오는 소식이라도 없었는지?
답_ 그 뒤에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에 내가 직장에 있을 때인데, 내 위의 상사가 군대에 계셨던 분인데, 그 양반이 우리 집 사정을 아니까 "국방부에 대공과장이 내 친군데, 너희 아버지 소식 알아봐 줄게" 그래요. 그러더니 그 양반한테 연락이 오기로는 '(아버지가) 이북의 청진인가에서 여기로 말하면 한국은행인데 거기에 지점장으로 있다. 이북에서는 상당히 서열이 있는 자리다다' 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내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대공과장이라니 그 양반 말만 듣고 그런 줄 알았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인의 납북 이후, 그의 아내도 연행된 후 소식이 없어 자녀 4남매만 남음, 이후 친척들에 의해 길러졌으나 제대로 학업을 할 수도 없었고, 가난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 속에 어렵게 생활함>

답_ 내가 열한 살 때고 동생이 셋인데, 막내는 갓 돌 지난 놈이고. 뭐 말도 못했지. 집은 불바다가 되고 엄마는 잡혀 가고, 그 후에 먹을 게 없었잖아요. 굶었지. 양곡 창고에 불타다 남은 밀을 양동이바께스에 담아 와서 맷돌에 갈아서 풀해서 먹고. 동생들도 주고. 내가 막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나. 엄마도 없고 해서 우선은 옥천동의 외삼촌 집에 살았는데, 가끔 막내를 업고 천연동의 폭탄 맞아 없어진 집에 오면, 조그마한 놈이 고추장하고 된장하고 흐르는 걸 하도 먹으려고 해서, 내가 할 수 없이 주면 그걸 막 받아먹는 거야. 그러다 조금 있으니 맵고 짜다고 막 우는 거야. 그러면 물 먹이고. 휴~…, 그 때 처참한 건 말도 못하지. 그러고 조금 있으니, 밀양에 백부님도 계시고 중부님이 계셨고, 대구에도 있고 했는데, 피난 내려간 사람들이 '다 붙잡혀 가고 애들만 남아있다'고 하니까 삼촌 두 분이 완행열차를 타고 올라 오셨더라고. 그래서 삼촌 따라서 대구로 내려왔지. 그 때부터 삼촌 집에서 우리 4남매가 있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삼촌 집에 있으니까, 중학교도 보내 줄 것 같지도 않고 해서 '나는 외갓집에 가겠다'고 하고 진주로 갔어요. 그렇게 나는 진주에에,서 동생들은 대구에서 쭉 컸어요. 내 여동생 둘은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고, 남동생은 내가 커서 공부 시켰어요. (눈물) 이런 이야기 하면 아이고 내가 참. (한숨)

문_ 부모님 많이 그리우셨겠죠?
답_ 그거야 어릴 때 수없이 많았죠. 이제는 휴…(한숨) 너무 오래된 세월이고. 난 내가 고생한 것보다 동생들 생각하면 참 눈물이 나요.

문_ 동생들은 어땠는지?
답_ 그래도 철없는 어린애라 해도 눈치가 다 있어요. 어리광을 피우거나 억지를 부리려면 부릴 만 하니까 그러는 거지, 내 동생들은 아주 어릴 때 눈치만 보고 살았어. 그러니 그게 더 맘 아파요. 겨우 돌 지난 애가 엄마 한 번 안 찾았다고. 주위가 두렵고, 배고픈 게 제일 서럽지. 부모 못 봐 그리운 건 걔들한테는 뒷전이야. 배고픈 거 때문에 실제로 나도 그랬으니까.



○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신고는 하셨나요?
답_ 어릴 때 내 삼촌이 이산가족 신청을 했지.

문_ 직접 신청은 해보진 안 했않았는지?
답_ 내 자식보고 해보라고 하긴 했는데, 큰 기대도 안 해. 연세가 올 해 여든 일곱 인데 살아 계시리라곤 생각지 않아요. 그 당시 납북되신 분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다가 죽고 고약한 데에 가서 노역하다 죽고 하는 소리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서른 살에 결혼을 했는데, 그 해부터 '생사가 확실치 않은 고인에게는 음력 9월 9일에 기제사를 모신다' 는 풍습을 따라 제사를 드리고 있어요.

문_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답_ 대한민국 정부는 잘못해도 엄청 잘못하는 나라죠. 일본 하는 것 보세요. 이북에서는 아직도 우리는 납치해 간 사실이 없고, 있다면 자기들 발로 공산주의 사상이 좋아서 걸어갔지, 우리는 붙잡아 가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잖아요. 정부에서 납북이라는 사실은 정부 요직이 다 알고 있는 엄연한 사실인데, 그러면 그 당시 공직에 있던 분들은 국가에 몸담고 있던 분들이 납치됐다면 거기에 대한 보상이라면 치사스럽겠지만, 응분의 사과나 명예 회복이나 이런 등등은 해야 한 나라의 정부지, 이승만 대통령 이후 오늘날 노무현 대통령까지 거기에 대해 유가족에게 공식적인 말 한마디 없잖아요. 이거 정말 속된 말로 하면 내가 이 나라 국민이 된 게 너무 한스러워요.



○ 호적정리

<그대로 있음>

답_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아직도 사망 신고는 못하고 있지.



○ 연좌제 피해

<오랜 기간 경찰 기관에서 감시를 받았고, 진학, 해외출장, 공무원 취업 등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당함>

답_ 많이 당했지. 내가 서른에 결혼을 했는데, 회사에 갔다 오니까 집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오늘 파출소에서 누가 왔는데, 왜 왔는지도 모르고, 그냥 인사만 하고 간다는데 왜 그래요?" 그래요. 집사람은 신혼여행 다녀와서 첫 살림 하는데.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대충 이야기 했지 않느냐? 그 사람들 일상 업무다. 높은 데 보고하기 위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온다. 혹시 아버지가 간첩이 되어 내려왔을까 싶어서 그런다.' 그런 얘기를 했어. 무슨 말이냐면 그만큼 나에 대한 감시가 계속 있었다는 거지.
뭐 특별히 해롭게 하진 않아. '별일 없습니까?', '잘 삽니까?' 하고 묻는 정도야. 근데 그게 그런 게 아냐. 내가 민간 회사에 취직해서 다행이지, 나는 공무원이 될 수 없었어. 그리고 내가 회사 있을 때 외국에 출장갈 일이 있었는데, 여권 신청을 하니까 안 되는 거야. 그게 전부 연좌제 아닙니까? 그리고 내가 사관학교에 가려고 했다고. 어릴 때 공부를 잘했어. 당시 사관학교는 가기도 힘들었지만 공짜로 공부하고 공짜로 밥 먹여 주고 했었지. 그런데 연좌제 때문에 못 간 거지.

문_ 감시는 언제까지 당했는지?
답_ 한 20년, 25년 전부터 그게 없어졌어. 내가 부산에서 본사에 발령에 받아 서울로 올라 가는데, 그 기차간에 형사가 따라왔더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렇게 감시가 심했어. 아까도 말했듯이 국방부에 대공 과장이 말한 것처럼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그렇게 감시가 심한가 싶기도 하고. 또 그 당시 실제로 납북돼 간 사람 중에 간첩이 돼서 내려온 사람이 더러 있었어. 내 주위에도. 그러니까 그런 걸 요감시 하려고 그랬지 않나 싶어.

문_ 아버지가 사상적으로는 어땠는지?
답_ 사상적으로 전혀 공산주의하고는 멀지.



○ 정부에 바라는 말

<피랍인 생사확인 및 송환>



○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답_ (눈물) 아버지, 어머니 정말 살아계신다면, 살아계신다면… (흐느낌.). 지금 남북관계를 보면 살아 계셔도 만나 뵙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지금 저하고 동생들 나름대로 잘 커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애들, 동생 애들 다 훌륭하게 키워서 사회생활 하는데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아버지,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하는 일도 2,3년 내로 다 접을 것이고. 지금은 고향인 밀양에 서당을 내고 맡아 한 달에 한두 번은 집사람과 가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곤 하는데, 이번 가을쯤엔 집을 하나 지어서 부산에 왔다 갔다 하면서 제가 고향을 지킬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 엄마, 하도 뼈에 사무치는 한이 있어 두 분 추모비라도 세우려고 뒷산에 터를 닦아 놨습니다. (눈물) 제가 죽기 전에 꼭 추모비 세워드리겠습니다. (흐느낌) 돌아 가셨다면 그 영혼이 이북에서 얼마나 쓸쓸하셨겠습니까? 제가 꼭 추모비 세워서 고향땅에 계시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늦어졌는데, 이제나마 그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문_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받으셨나 봐요.
답_ 어느 부모가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딨겠어요? 내가 그래도 6.25 나기 전까지는 상당히 귀공자로 컸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밀양에서 이름난 부자였고, 아버지가 그 정도 되셨으니까. 그 당시 애들은 무명 바지도 못 입고 클컷을 때, 나는 비단단 옷 입고 컸습니다. 6.25나고 나니 완전히 천애의 고아가 된 거죠. 극과 극을 살아왔죠.



○ [별첨]증언자의 모친 허남도씨 납북에 관한 증언특이사항

<납북자가 납북된 후, 1950년 추석 전 인민군 후퇴 과정에서 부인 허남도도 납치. 시체는 찾지 못했지만, 인근 금와산 개울에서 단체 피살이 있을 때 사살된 것으로 추정. 살던 집 역시 폭격으로 폐허가 됨. 공직자의 아내였다는 이유로 피랍된 것으로 보임.>

문_ 어머니의 인적사항은?
답_ 이름은 허남도, 진주 출생, 배화여고를 졸업한 신여성이며, 전쟁 당시는 전업주부였어요음.

문_ 어떻게 납북됐는지?
답_ 어머니 이야기는 참 눈물 나는 이야기야. 인민군들이 서울을 철수할 때, 그게 아마 1950년 추석 전일거야. 그날 저녁에 인민군들은 후퇴하고. 아군하고 유엔군이 진격하고 하니까 온 하늘에 총알이 날아다니고 해요. 그 때 내 동생 셋과 식모 애도 하나 있었다고. 당시는 워낙 전쟁이 거치니까 옥천동에 막내 삼촌 집이 있어서, 엄마가 내 동생하고 나하고는 '삼촌 집에 가서 피해있다 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는 삼촌 집으로 갔지. 그랬는데, 옛날 집들은 전부 한옥이 돼서 나무 문 아닙니까? 새벽에 누가 삼촌 집 문을 막 두드리더라고. 그래서 내가 나가보니 밥 하는 애가 온 거라. 왜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잡혀갔다 이거야. 첨엔 '잡혀갔으면 좀 있으면 돌아오겠지' 했어요. 왜냐면 수시로 잡혀갔다가 오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게 알고 보니까 그 전의 잡혀갔던 상황이 아니고 이것은 완전히 끌고 가든지, 총살을 시키려 했든지 최후로 우리 엄마를 붙잡아 거야. 그렇게 좀 있으니 인민군이 다 도망가고 서울이 조용하더라고. 그제서 옥천동에서 우리 집이 있는 천연동으로 오니까 집 흔적이 하나도 없는 거야. 어제 밤에만 해도 집이 있었는데, 그 일대가 폭탄에 맞아 완전히 잿더미가 돼 있는 거야. 우리 집이 한옥인데 집으로 올라가는 돌계단만 남고. 그런데 보니까 우리 앞 집의 나랑 같이 뛰놀던 애가 다 불타버린 자기 집 대문 앞에 눈을 딱 뜨고 앉아있는데, 보니까 팔 두개가 없고 다리 두개가 없고 죽지는 않고 머리하고 몸뚱이가 데굴데굴 구르는 자세에서 나를 쳐다보는 거야. 내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문_ 이 후 소식은?
인민군들이 급하게 새벽녘에 도망가면서 최악의 발악이지. 대문을 막 두드리더드래. 그리고서는 구둣발로 방에 쳐들어와서 붙잡아 간 거지. 뒤에 소문을 들어보면 집 뒤에 금와산이 있는데, 그날 잡아간 사람들은 거기 산의 개울에서 전부 총살을 시키고 도망갔다는 거야. 그래서 친척 어른이 나보고 '너희 엄마 찾으러 산에 가 보자' 해서 산에 올라 가 봤어. 보니 개울이 피바다야. 전부 여자들만 다 죽여 버리고 도망간 거야. 수백 명이 죽어 있었어. 그러니 우리 엄마는 내가 못 찾아서 그렇지 거기서 총살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90%는 그렇다고 보는 거지. 나는 어리니 무서워서 더는 못 보겠더라고.

문_ 왜 납치했다고 생각하시는지?
답_ 우리 엄마는 아무 이유 없이 공직에 있던 사람 부인이라고 해서 죽이고 간 걸로 보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