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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3회 1962. 3. 31
이름: 관리자
2005-10-05 14:03:31  |  조회: 2163
첨부 : 19620331-3.pdf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3

이름 : 관리자 번호 : 20
게시일 : 2001/01/08 (월) AM 11:20:25 (수정 2001/01/26 (금) PM 01:25:31) 조회 : 46

동아일보 62년 3월 31일자에서..


죽음의 歲月 ③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撤低한 洗腦敎育
파리를 먹으면 살이된다고..
自敍傳도 쓰도록 강요..


국회의원들 중 그리 저명치 않은 인사들은 箕林里 뒤쪽에 있는 커다란 三층 건물 西平壤 「인민학교」에 별도로 임시 수용되어 있었다.

金長烈, 金義煥, 柳翼秀, 金用鉉, 崔丙柱, 許永鎬, 鄭仁植, 辛容勳, 崔錫洪, 趙玉鉉, 金禹植, 具中會, 洪淳玉, 申錫斌, 趙鐘勝, 鄭光好, 曹圭卨, 吳宅烈, 趙重顯, 李宗聖, 李龜洙, 金景道, 宋昌植, 張連松 등 五0여명이었는데 그 동안 계속 먹어온 썩은 명태에 중독되어 모두 설사에 걸려 변소를 찾아다니느라 겨를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張連松과 曹圭卨은 그 도가 심하여 변소에 가는 도중에서 바지에다 설사를 하기까지 하였다.

약 보름 후 이들은 平壤 시오리 밖 坎北동근처 민가로 이동 수용되었다.

학교에 수용되어 있을 때보다는 훨씬 자유스러운 편이었다. 그 대신 철저한 세뇌교육과 각자에 대한 신상조사가 시작되었다. 당간부들은 『수년 전부터 대한민국 쪽에서 자꾸 북으로 쳐들어 와서 하는 수 없이 그것을 막기 위해 싸웠으며 六·二五만 해도 대한민국이 먼저 쳐들어와서 부득이 막다보니 남반부를 해방하여 인민들이 잘 살게 하기 위해 진격하기에 이르렀다』고 되풀이 강조하였으나 아무도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없었다.

특히 상세하게 자서전을 쓰게 하고는 당간부와 정치보위부원이 그것을 들고 한사람씩 불러다 놓고는 『모두들 자본가에다 지주고 보니 참 잘도 해먹었소』하고 비웃어 가면서 동산·부동산 등 재산목록까지 일일이 따지는 바람에 자꾸 거짓말이 튀어나와 애들을 먹었다. 또한 그들은 혹시 거짓을 하는가하여 같이 수용해 있는 딴사람에 대하여 꼬치꼬치 캐어묻기도 하였다.

하오 휴식시간이 되면 개천으로 가서 목욕을 하고 옷들을 빨아 입었는데 비누가 없어 짚을 태워 재를 내가지고는 재물대신 빨곤하였다. 때로는 여윈 알몸들을 홀랑 내어놓고 빨래한 옷들을 풀 위에 널어놓고 말리다가는 경비원이 빨리 가자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젖은 옷을 그냥 주워 입고 돌아오곤 하였다.

민가에 수용되어 있으므로 동네 할멈들이 엿, 떡 같은 것을 팔러 오곤 하였는데 돈들이 없어 하루는 張炳晩이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주고 떡과 바꿔 먹기까지 하였다. 당시 북한에서 가죽구두란 참으로 귀한 물건이었다.

이때 경비를 보던 한 젊은 대원은 이 사실을 알자 자기한테 그 가죽구두를 팔라고 할 정도였다.

끼마다 주는 된장국에는 파리가 수없이 빠져 죽어 있으므로 모두들 먹지를 못하였는데 그럴 때면 내무서원들은 『파리도 고긴데 먹으면 살이 될 거요』하고 비웃어대었다.

한편 반동문화인으로 납치된 金起林, 柳子厚, 方漢駿, 李白水, 金憶, 李明雨, 金炯元, 金東煥외 八0여명도 처음에는 西平壤「인민학교」에 임시 수용되었었으나 곧 坎興里근처 민가로 이동 수용되었다. 이들은 철저하게 반동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자서전 외에 남한에 대한 미군의 만행을 수필로 쓰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金東煥은 신병을 구실로 전연 쓰지를 않았다.

특히 柳子厚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며칠씩이나 단 한마디도 말이라곤 하지를 않았다.

六·二五전에 월북하여 金日成대학 교수로 있던 申南澈이란 자가 세뇌책임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申이 『왜 말이 없소?』하고 묻자 柳子厚는 『나는 이왕 당신들이 나를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으니 말할 필요가 없지 않소. 구찮게 자서전 수필 같은 것 씌우지 말고 이왕 죽일 사람들이니 빨리 처치해 주시구료』하고 딱 잘라서 말하였다.

方漢駿은 가족생각을 하며 늘 눈물져 있었고, 金起林은 밤만 되면 조용히 앉아 자작시만 읊조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서로 갖고 있던 소지품들을 팔아 젊은 경비원에게 특별히 부탁을 하여 닭과 소주를 사다 놓고 오랜만에 술판을 벌리었다. 시도 읊고 서로 지난날과 가족들 이야기도 하며 술잔을 기울였는데 마침내 모두 취하고 보니 술판은 깨어지고 울음바다로 파하였다.

모두가 소리내어 서로 껴안고 엉엉 우는 바람에 젊은 경비원이 달려와 『누구의 목을 자를 판이냐!』고 펄쩍뛰며 고레고레 소리쳤으나 밤 깊도록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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