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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세월 7회 1962. 4. 5
이름: 관리자
2005-10-05 16:27:43  |  조회: 2091
첨부 : 19620405-3.pdf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 죽음의 歲月 7

이름 : 관리자 번호 : 24
게시일 : 2001/01/18 (목) PM 06:06:33 (수정 2001/01/19 (금) PM 05:09:35) 조회 : 31

1962년4월 5일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歲月 ⑦


납북인사 북한생활기


또다시 암흑의 행열
「유엔」軍에 밀리자 赤都옮기며
北으로… 소·돼지 몰 듯



인민군패잔병과 무명납치인사들의 무질서한 대열이 주로 平壤으로 들이 밀리기에 앞서 平壤시내에는 이미 뒤숭숭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10월 8일 밤 10시쯤 중앙당간부와 「祖統會」간부가 「고노골」인민병원으로 달려와 수용주인 협상파 및 자진출두 저명인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미군이 무력을 총동원해 가지고 무기도 없는 우리 인민군을 공격해왔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수도를 임시북쪽으로 천도하게 되었으니 곧 출발준비를 해주시오.』

고혈압으로 몸이 불편한 趙素昻은 『蜀나라 당 重慶까지 걸어서 망명생활을 했는데 내땅에 돌아와서도 가장 험한 산악지대인 북쪽을 가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게 평생우리에게 불 씌워진 운명인가 보구나.』 하며 쓸쓸히 웃음을 죽였다.

이를 본 嚴恒燮은 도리어 『모두 평화를 찾기 위해 그러는 것이니 복된 날이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하는 바람에 오히려 趙素昻의 쓴웃음을 샀다. 그러나 그 밖의 인사들은 모두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각기 자기들 방으로 돌아온 납치인사들은 보따리를 꾸리기 시작하였다 보따리라야 배급받은 운동화 무명으로 만든 발싸개 등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피우다버린 종이로 만 담배꽁초들을 주워 모으기에 바빴다.

신병이 부자유스럽던 金奎植, 趙琓九, 吳夏永은 부축을 받으며 문 앞에 대기한 소련제 「스리코타」에 오르고 각기 분산하여 몇 대의 차에 올랐다. 그래도 이들 인사만은 차를 탈수 있는 대우를 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반동으로 낙인이 찍혀 제 一八인민학교에 수용되어 있던 저명납치인사 崔麟, 孫晋泰, 白寬洙, 徐延禧, 玄相允, 高元勳, 鄭寅普, 白鵬濟, 吳龍國, 姜 澤, 刑德基, 李潭, 金尙德, 金昌德등은 다음날인 10월9일 밤 걸어서 安州방면으로 떠나갔다.

崔麟, 高元勳, 鄭寅普는 이때 병으로 잘못 걷기 때문에 인민군장정이 업고 두 명이 뒤에서 떠받들고 하였다. 방향도 알길 없는 캄캄한 平壤시가에 나섰을 때 崔麟은 뒤를 둘러보며 『春園과 奎東이 보이지 않으니 이 사람들은 어디 갔느냐?』하고 몹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몇 발자국 가다간 되묻고 되묻고 하는 바람에 경비원이 『당신네들은 그런 것 알 필요 없지 않소, 여기 있으면 죽으니 업고 가는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시오』하고 오히려 핀잔을 퍼부었다.

납치되어 갈 때도 같이 갔고 또 같은 교실에 수용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春園과 崔奎東이 자기보다도 중환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崔麟이 그들이 보이지 않자 염려스러운 나머지 이렇게 묻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뒤이어 中和일대의 농가에 수용되었던 저명종교인들 具滋玉, 南宮赫, 吳澤寬, 朴炫明, 韓致明, 宋昌根, 方勳, 金東哲, 奇圭福등이 북쪽으로 끌려갈 차례였다.

이들 인사는 밭두덕에 모두 집합되자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화가 난 경비원은 기도를 중단하라고 소리치며 마구 총대로 등어리를 밀어댔다. 그러나 총대에 밀려 끌려가면서도 이들은 그대로 기도를 계속하였고 기도가 끝나자 찬송가를 소리 맞춰 불렀다.

이들 인사에 대한 경비는 각별히 엄중하였고 만일 「유엔」군의 급격한 진격에 부딪칠 경우엔 모두 쏘아 죽일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평양에 납치 되어간 인사들 중 맨 나중에 江界방면으로 끌려간 것은 坎北里 민가 일대에 수용되었던 金禹植, 李宗聖등 그리 저명치 않던 국회의원 五십여명과 坎興里에 수용 중이던 소위 반동문화인 金起林, 柳子厚, 金憶, 李明雨등 80여명이었다. 『도대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거요?』 하고 하나 같이 물어도 인민군경비병들은 다만 『상부의 명령에 의하여 이동할 뿐』이라고 답변하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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