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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서병호 (증언자-서재설)
이름: 관리자
2013-09-16 10:44:08  |  조회: 2351


051018A 서병호 / 2005. 10. 18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서병호), 사진2(증언자:서재설)

피랍자
성명: 서병호(徐丙昊)
생년월일: 1908년 6월 16일
당시 주소: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 61-5
피랍일: 1950년 7월 14일경
피랍장소: 경기도 고양군 능곡
직업: 대한청년단장, 서대문을구 이시형씨 선거 사무장, 은평국민학교 사친회장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2남 2녀
외모 및 성격 : 신장 175cm, 갸름한 얼굴형, 활동적임.

증언자
성명: 서재설(1939년생)
관계: 차남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평소 활동적인 성격으로 대한 청년단 은평지구 단장으로 국민학교 사친회장을 할 정도로 윤택한 생활을 했던 피랍자는 전쟁 발발 직후 친척집에 피신했다가 본인 대신 처남을 잡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진해서 녹번동 내무소 은평출장소로 찾아가 자수한 뒤 소식을 들을 수 없었음. 가장 납치 이후 가족이 오랜 기간 뿔뿔이 흩어져 생활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납북자 명예 회복 및 유골 송환









“아버지가 피신했기 때문에 인민군 내무소원이 와서 우리 외삼촌을 대신 잡아갔어요. 그리고는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으면 외삼촌을 죽이겠다고 해서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고 인민군에게 와서 자수를 했어요. 결국 아버님이 잡히시고 우리 큰외삼촌은 풀려놨죠.”
“어떻게 저 사람들이 와서 부르주아와 비 부르주아로 구분했을까? 그건 증거가 있을 꺼 아녜요. 그 증거는 학교 밖에 없다 이거야. 관청에도 직업, 재산 이런 내용은 알 수 없어요. 학교 라는 데에 학적부가 있으니 그걸 보고 유산 계층의 자손이다 구별해서 싹 잡아 들인거죠. 그리고 단 열흘 만에 여기 와서 지금 같으면 시민증이죠 그걸 주기도 하고, 열흘 만에 인민 회의를 실시하고 요주 인물을 잡아내서 인민재판을 했는데 곡갱이로 막 떼려 죽었다구요. 못사는 사람들이 완장차고 광목으로 때리고 곡갱이로 찍어 죽이는 것을 우리도 봤어요.”
납북 경위

< 전쟁 발발 직후 친척집에 피신했다가 본인 대신 처남을 잡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진해서 내무서로 찾아감>
A: 그 때 당시 6 25 당일 대포 소리가 쾅쾅 나는데 그 해가 가물었어요. 학교 선생님이 천둥 치는 거라면서 안심하고 집에 가라고 했어요. 그러고 다음날 아이들을 불러서 지하실에 가서 물건을 꺼내오는데 인공기며, 장백산(악보)이런 거를 들고 와서 6월 26일 오후서부터 우리가 그걸 배웠어요. 그 때 당시 아버지는 대한청년단 단장이라는 완장을 차고 국민들이 동요하고 하니까 단원들을 전부 통솔하시고 군병과 같이 했을 때였는데 26일 날 내가 장백산 줄기 줄기 하는 노래를 배우고 하면서 아버지 완장을 뺐었어요 빼시라고, 큰일난다고. 그런데 아버지는 완강하게 청년 단장을 주장하시고 진두 지위하시고 그런 활동을 하시다가 그 이후로 아버님이 피신하셨어요. 아버지가 피신했기 때문에 인민군 내무소원이 와서 우리 외삼촌을 대신 잡아갔어요. 그리고는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으면 외삼촌을 죽이겠다고 해서 외삼촌은 지서에 붙잡혀 있었고, 외숙모가 울며 불며 우리 어머니 찾아 다니면서 이렇게 돼서 억울하게 죽는다며 얘기하고 했어요. 그 때 아버님은 능곡(피랍자의 처제집)에 피신해 있다가 그 소식을 듣고 인민군에게 와서 자수를 했어요. 아버님이 잡히시고 우리 큰외삼촌은 풀려놨죠. 그게 1950년 7월 14일인가 15일인가 그랬죠
납치이유

<활동적인 성격으로 대한 청년단 은평지구 단장을 역임하고 서대문을구에 출마했던 이시형씨 선거 사무장을 하는 등 활동 범위가 넓었고, 국민학교 사친회장을 할 정도로 윤택한 생활을 했음>

A: 사친회장이면 유상계층이고 모든 재단을 간섭하고 기부하고 교장들 관리하고 하니까 그럴 수 밖에 없죠.

납치 후 소식

<없음>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오랜 기간 남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음>

A: 나는 5촌 당숙 네 가서 농부 일을 했고, 형은 이모 집에 있었고, 여동생 둘은 어머니가 있으면서 여기 저기 다니며 온갖 노동일을 다하셨죠. 특별한 직업이 없으니까. 밭일도 하시고 김도 매시고 채소를 염천에 가서 파시고 친척집 일 봐주시고 그래서 공부를 제대로 못했어요

Q: 가족이 모여 살지 못하셨다구요?
A: 어머님이 부양능력이 없으니까. 어머니가 여동생 둘만 책임을 진 거고, 나는 5촌 당숙네서 농사지었고 형은 이모집에 있다가 와서 심지어 다방 가서 일들을 하고 야간학교를 다니고 그랬죠

Q: 아버님이 계실 때는 부유하게 사셨는데?
A: 몰락한 거죠. 그래도 어머님이 아버님 친구 댁에서 절대 아쉬운 소리, 도와달라 하지 말고 너네 스스로 일어나라 하시는 게 지침이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노동하고 모으고 그랬죠. 아마 사죄하는 의미에서 그랬을 거에요. 그 전에는 잘 살았으니까. 그러다 어머니 정부에서 빈민 구호물자를 좀 타서 쓰시고 그랬대요. 미국에서 480구호물자가 나와서 통 반장이 “구호물자 나왔습니다” 하면 나가서 타서 쓰고 그러면서 제일 가슴이 아프셨대요. 어머니의 생활은 말도 못했던 거죠. 주변에서 개가하라고 해도 듣지 않고 수절하면서 자식들을 키우신 거죠

연좌제 피해

<없었음>

A: 연좌제 피해는 하나도 없었어요. 우리는 명확하게 아버지가 대한 민국 위해 일하다 가신거니까. 다 아는 사실이고 하나 그런 걸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도움을 받은 건 없지만 바대로 제약 받은 것도 없었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정부에서 도움은?
A: 하나도 없었죠. 없었으니 자식들에게 올바르게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셨죠.

호적 정리

<사망으로 정리>

A: 호적정리는 사망으로 해서 여동생이 80년도에 간첩으로 넘어왔다는 소문 듣고 해서 정리했습니다. 이상한 소리 안 나게 아버님 호적을 사망으로 정리해라 했었죠. 그 때 날짜로 사망일자로 해서. 그 자손들이 두려워서 그 말을 퍼뜨린 것 같습니다. 역선전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때 우리가 기독교에 있고 우리 형이 절대 개의 말고 용서하자 해서 그 때는 제가 나서지 않았죠.

정부에게 바라는 말

<납북자 명예 회복 및 유골 송환>
A:. 만약 납북된 자손이기 때문에 도와달라 이런 말은 안 했어요. 단 아버님이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신 거에 대해서는 명예회복을 해야겠다 싶어서, 단 유골이라도 있으면 DNA라도 해서 찾아야겠다 그 마음 밖에 없어요.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 아버지. 어머니가 눈물 흘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가 무릅쓰고 아버님을 부릅니다. 어디에 유골이 있는지 찾아서 아버님의 묘소에 모시겠습니다. 이게 둘째 아들의 소원입니다.
기타 &#8211; 시대 상황

<6. 25 전쟁 직전의 사상이 모호한 상황. 이미 학교 선생님들도 조용히 좌익 활동을 벌이고있었고, 시간과 정황상 인민 재판에 나올 사람이나 납치인의 명부 역시 전쟁 전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A:그 때 당시는 북한 신문도 여기에 넘어왔었어요. 북한 신문도 구입해서 볼 정도였어요. 스탈린에 관한 거나 신탁 통치 등 당시는 사상이 모호했어요. 남북한의 신문이 왔다 갔다 했고 동양극장에서 12용사 같은 것도 학교에서 열람 많이 했어요. 수류탄 투척하고 북괴군이 내려와서 소 끌고 가고 양민 학살하는 그런 전쟁 장면 많이 봤죠. 그 때도 조그만 전쟁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었죠.
그러면 어떻게 저 사람들이 와서 부르주아와 비 부르주아로 구분했을까 그건 증거가 있을 꺼 아녜요? 그 증거는 학교 밖에 없다 이거야. 관청에도 직업, 재산 이런 내용은 알 수 없어요. 심지어 면이나 구청 가서도 안 해줘요. 호적 초본에도 누구 자손, 본관 등 뼈대만 나오지 거기야 직업란도 없어요. 그럼 이 사람이 직업이 뭐고 재산이 뭐고(어떻게 아느냐)와서 열흘 만에 잡아 들이기 시작했는데 그 근거가 어디서 나왔겠냐 그건 학교밖에 없어요. 학교 라는 데에 학적부가 있으니 그걸 보고 유산 계층의 자손이다 구별해서 싹 잡아 들인 거죠. 그리고 단 열흘 만에 여기 와서 지금 같으면 시민증이죠 그걸 주기도 하고, 열흘 만에 인민 회의를 실시하고 요주 인물을 잡아내서 인민재판을 했는데 곡갱이로 막 떼려 죽었다 구요. 못사는 사람들이 완장차고 광목으로 때리고 곡갱이로 찍어 죽이는 것을 우리도 봤어요.
그러면 어떻게 체포될 리스트가 열흘밖에 안된 시점에서 난중에 어떻게 작성이 됐나 이거야? 그것은 뭔가 미리 작성이 돼있었기 때문에 와서 잡아들이라는 명부가 하달됐겠지 그걸 여기서 누가 일일이 작성할 사람이 누가 있고 조직력이 뭐가 있었겠습니까? 명단은 평시에 작성해서 북한에 보냈기 때문에 내려오자마자 명부보고 다 잡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명확한겁니다. 전쟁 난 지 일주일만에 인민 회의를 하고 7월 3일쯤에 인민증인가 뭔가 인쇄된 걸 다 나눠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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