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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류인홍 (증언자-류무열)
이름: 관리자
2013-09-16 10:47:35  |  조회: 2325


051025A 류인홍 / 2005. 10. 25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류인홍), 사진2(증언자:류무열)

피랍자
성명: 류인홍(栁寅弘)
생년월일: 1902년 7월 7일 (충남 금산군 진산 출신)
당시 주소: 서울시 종로구
피랍일: 1950년 9월 25일경
피랍장소: 서울 종로구 관철동 33번지 8호
직업: 평택경찰서 서장, 한민당 사무국장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5남
외모 및 성격 : 체격이 크고 호남형

증언자
성명: 류무열(1936년생)
관계: 아들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한국 전쟁 직전 평택 경찰서장이자 한민당 사무국장이었던 피랍자는 평택에서 가족이 사는 서울로 올라와 자택에 숨어 지내다가 9월 25일경 사복을 입은 사람에 의해 연행된 이후 소식 없음. 이후 피랍자의 아들 3명도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첫째, 셋째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둘째 류광열은 북에 거주함, 2004년 적십자사 이산 가족 상봉을 통해 가족과 만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전쟁 상황을 겪지 않은 위정자들의 반미, 친북 경향이 매우 통탄스럽고, 하루 빨리 납북자의 유골이라도 모실 수 있도록 내부적인 일들을 처리해줬으면 함








“그 양반이 6.25 사변 나기 전까지 서장을 했어요. 그래서 내가 경찰서로 알아봤어요. 우리 아버지가 거기서 서장을 했는데 재직한 근거가 있지 않느냐 했더니 없대요. 나보고 또 경찰청으로 알아보라 이거야 그래서 그리로 전화했더니 여기도 근거가 없다고 평택으로 알아보세요 하더라고. 제복은 있었는데 6.25때 혹시 걸리면 문제 될까 봐 태워 버린 거죠”

“제일 비참한 것이 금산 경찰서 수사계 아이들이 나한테 와서 묻는 거야. ‘아버지 소식 듣느냐?’ 애들이 나를 의심하는 겁니다. 아버지가 좌익에 있다가 내려와서 활동을 하는가? 그러고 몇 년 동안을 애들이 나는 모르지만 오고 가고 추적을 하는 것 같아. 그러다가 내가 시골에서 군대를 갔다 오니까 내가 제대한 걸 알고 또 온 거야.”

직업 및 활동

<평택 경찰서장이자 한민당 사무국장이었음>

A: 납치 당할 무렵에는 평택 경찰서 서장으로 계시면서 한민당 사무 국장을 겸직하셨어요. 그 당시 야당 총재까지 하신 유진상씨가 우리 5촌 당숙이셨어요. 한국 민주당은 한국 민주 청년단으로 좌우파 갈등이 있을 때 우파로 활동을 많이 했었죠.

납북 경위

<전쟁 직전 평택에서 서울로 올라와 집에서 숨어 지내다가 9월 25일경 아들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그에게 집을 물어 찾아내 연행>
A: 우리 아버님하고 그 밑에 있던 친구들인 거 같아요. 우리 집에 자주 왔다 갔다 하던 사람들인 것 같은데 나는 어려서 잘은 몰랐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나를 보고 "야 너 유인홍씨 자제분 아니냐"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 집이 어디냐 길래 관철동이라 했더니 같이 갈 수 없느냐고 해서 알려줬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신고를 한 거나 마찬가지야. 그것이 지금 한이 되는 겁니다. 사복을 입었으니까 난 누군지도 모르고. 그 때가 9월 25일인가 그랬어요. 우리아버지가 납치당한 날짜가. 그래서 내가 몇 번지다 집까지 알려줬어요. 알고 보니 얘들은 전향 했나 봐요. 나를 아는 것을 보니까. 그 당시 관수 파출소라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그리로 납치당했다고 그래서 깜짝 놀라서 막 뛰어갔어요. 아 이놈들이 조사를 하면서 구두 주걱 같은 걸로 머리를 때리는 것을 유리창으로 봤어요. 바른대로 얘기하라고 그러는 것 같아. 내가 들어가는 못하고, 조사받는 걸 보다 못 봐서 내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랬다가 저녁에 다시 갔어요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디로 갔습니까 하니까 가희동에 2층 건물 그리로 옮겼다 이거에요. 어머니가 옷하고 담배하고 좀 갔다 드리라고 해서 가지고 갔더니 안 계신 거야. 완전 비어 있어요. 알고 보니까 내무부 치안국이 을지로입구에 있었어요. 거기에 소위 반동 분자들 (모인)거기 있다 그래요. 거기 지하실에 가뒀대서 가봤더니 시끌시끌해요 혹시 유인홍씨라고 있냐 했더니 국립 도서관 그리로 갔을 거다 그리로 가봐라 해서 그리고 가봤더니 트럭이 사람들 막 싣고 어디로 가는 거야 그래서 어디로 끌려가는가 싶어서 차 입구 쪽으로 차 입구 쪽으로 갔는데 뵈질 않는 거야. 차가 수십 대 가는 거야. 그래 지금도 내가 왜 그 녀석하고 마주쳐서 그리 됐는지 한이 돼요.
Q: 그럼 집에서 피신 중이었나요??
A: (자택)지하실에 숨어 살다가 수염이 기니까 어머니가 깎아주고 그러기도 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끌려갔어요

Q: 경찰 서장까지 했으면 신변의 위협을 느꼈을 텐데 왜 더 멀리 피난을 가지 않았나?
A: 피신을 가족 때문에 평택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와서는 전쟁이 나고 이제는 내려갈 수 가 없지. 그 때만 해도 몰랐죠. 방송은 애들이 괜찮다 괜찮다 38선을 뚫고 내려왔다만 얘기했지 피난을 해라 그런 얘기는 없었어요. 그러니 그 다음날 한강철도는 폭파됐지 어디로 또 가느냐고

납치 후 소식

<전혀 없음>

Q: 그 이후 찾아보려는 노력은?
A: 사실은 제가 제대하고 하도 맘이 그래서 문산 까지 갔었어요. 넘어가려고. 넘어가서 아버지 좀 만나야겠다는 마음에. 지금도 그래요. 내가 왜 태어나서 아버지 납치되게 했는지. 나만 그 때 동네 안 나갔으면 싶은 게….

호적 정리

<행방 불명으로 정리>

A : 호적정리 안돼있죠. 호적에 아버지는 행불로 돼 있어요.

연좌제 피해

<지속적으로 경찰들에게 감시 당함, 취직 어려움>

A: 시골에 가서 산 후로는 소식을 몰랐는데 제일 비참한 것이 금산 경찰서 수사계 아이들이 나한테 와서 묻는 거야. ‘아버지 소식 듣느냐?’ 애들이 나를 의심하는 겁니다. 아버지가
좌익에 있다가 내려와서 활동을 하는가? 그러고 몇 년 동안을 애들이 나는 모르지만 오고 가고 추적을 하는 것 같아. 그러다가 내가 시골에서 군대를 갔다 오니까 내가 제대한 걸 알고 또 온 거야. 내가 ‘어려서는 몰랐지만 나도 성인이 됐다. 아버지 잃고 맘 좋은 사람이 어딨느냐? 너희들은 집에 납치당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나는 빨갱이 땜에 고생을 숱하게 한 사람인데 알려면 너희들이 직접 추적을 하든지 하지 가족한테 물어보면 이제 겨우 잊을라 하고 있는데 자꾸 물어보면 내가 뭐가 되겠느냐? 나는 몰라 절대 오지를 말아’ 아주 한 마디를 했습니다. 또 취업은 할래야 할 수도 없는 거죠. 근근히 서울 와서 동국대 정외과를 졸업했는데 .그러다 뭘 해도 안돼. 취직이. 오죽해야 제대하고 나서 부산으로 가서 하역 작업을 했죠. 하여튼 고생을 말할 수 없이 하다가 서울로 다시 와서 노동일하고…. 60년도 말 그 때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엉망 이었다구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신고는?
A: 신고는 그 때 중앙청인가 어디서 왔었어요. 12월인가에 나와서 묻더라고 .그래서 전부다 진술을 했어.그걸 집에서 했나 적십자사에서 했나 어쨌든 거기서 그대로 진술을 해줬죠

Q: 경찰서장까지 하셨는데 정부의 도움은?
A: 그 양반이 6.25 사변 나기 전까지 서장을 했어요. 그래서 내가 경찰서로 알아봤어요. 우리 아버지가 거기서 서장을 했는데 재직한 근거가 있지 않느냐 했더니 없대요. 나보고 또 경찰청으로 알아보라 이거야 그래서 그리로 전화했더니 여기도 근거가 없다고 평택으로 알아보세요 하더라고. 제복은 있었는데 6.25때 혹시 걸리면 문제 될까 봐 태워 버린 거죠

정부에게 바라는 점

<전쟁 상황을 겪지 않은 위정자들의 반미, 친북 경향이 매우 통탄스럽고, 하루 빨리 유골이라도 모실 수 있도록 내부적인 일들을 처리해줬으면 함>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 아버님 얼마 안 가서 아버님 곁으로 가게 되면 아버님께 사죄를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세상을 지냈습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이 불효를 용서 하십시요. 머지않아 아버님 곁으로 가서 사죄 드리겠습니다. 저 세상에서 그 동안 편히 지내십시오.
특이사항

<피랍자의 아들 3인이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첫째, 셋째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둘째 유광열은 북에 거주, 재작년 적십자사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만남>
A : 형제가 남자만 오 형제였어. 큰 형, 작은 형, 셋째 형은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둘째는 이북으로 넘어가고 첫째하고 셋째만 안 넘어가고 집으로 시골로 온 거죠. 둘째 류광열은 의용군으로 단국대 3학년인가 재학 중에 끌려 간 거야. 6.25무렵에 큰형하고 이태원인가 살았다고. 나중에 끌려서 의용군으로 간 거를 알았지. 그러니까 6.25 사변 나고 7월 달에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작년, 재작년에 이산 가족 쪽에서 상봉을 했어요. 금강산에서 만났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아버지 소식을 나한테 묻는 거야. 나는 그 쪽에서 있나 했더니…. 둘째 형은 영어를 잘했어요. 그러면서 보니까 미군 잡아오면 통역 시키고 그래줬단 말이야. 그러다가 애들한테 부역했다 그래가지고 9.28수복이 되니까 같이 끌려 간 거 같아요. 그래서 거기서(이산가족 상봉) 만난 거에요.그 양반은 의용군을 끌려간 건 아니고 내무소 통역관으로 있었던 거지. 부역을 한 거지. 그리고 나서 나중에 물어보니까 미군 잡아오면 내가 나쁘게 통역 안 했다 나쁘게 말해도 좋게 말해주고 그랬다고 자기가 실토를 하더라구 그때 금강산에서 만났을 때. 한 사람이 꼭 붙어 다녔는데 없을 때 살짝 그런 비밀얘기도 하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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