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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희진 (증언자-손수현)
이름: 관리자
2013-09-16 10:46:12  |  조회: 2133


051021B 김희진 / 2005. 10. 21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김희진), 사진2(증언자:손수현)

피랍자
성명: 김희진(金熙鎭)
생년월일: 1922년 음력 8월 11일 (전남 강진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돈암동
피랍일: 1950년 8월 28일
피랍장소: 서울시 돈암동 (자택)
직업: 경찰관(관수동 파출소 주임)
당시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임신 중), 자녀 1남 2녀
외모 및 성격 : 남성스러운 외모, 성실함

증언자
성명: 손수현(1924년생)
관계: 배우자
증언 성격: 직접증언 V 간접증언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관수동 파출소에서 주임으로 근무 중이던 피랍자는 6.25발발 직후 고향으로 피난을 갔다가 서울에 두고 온 가족 걱정에 2개월 만에 다시 상경, 잠시 집에 머무르다가 8월 28일 새벽에 두 명의 인민군이 찾아와 곧바로 연행해 감. 이후로는 소식을 알 수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 확인 및 공무원 가정 보상 해결










“인민군들이 불도 못 켜게 하고, 불만 켜면 신호불인줄 알고 총을 탁탁탁 쏘고. 거리에 나가보면 맨 송장이야. 동대문 경찰소 앞에 가보니까 경찰관이 이 놈들하고 싸워가지고 많이 죽었어. 그 앞에 경찰관들을 죽여서 쌓아놓고 가마니로 덮어놨어. 나가면 송장이고 다리 밑에도 송장이고 탱크 부서진 거 군화 벗어놓고 도망간 거 투성이야.”

직업 및 활동

<당시 관수동 파출소에서 주임으로 근무 중이었음>

납북 경위

<피랍자는 6.25발발 후 고향으로 피난을 갔다가 서울에 두고 온 가족 걱정에 2개월 만에 다시 상경, 잠시 집에 머무르다가 8월 28일경 새벽에 곧바로 연행되어감>

Q: 6. 25가 난 건 언제 아셨어요?
A: 내가 계란을 사왔는데 계란이 곪았더라고. 돈암동 시장에 그래서 계란을 갔다 주러 갔는데 사람들이 수군수군하더라고. 지금 이북에서 쳐들어 온다고. 그러더니 그날 밤에 이 양반 이 집에 왔어. 지금 쳐들어오니까 빨리 애들 데리고 피난을 가래요. 자기네 집으로. 근데 그때 세 살 네 살, 애들이 어리니까 애들을 데리고 내가 장거리를 어떻게 가느냐고 못 간다고 했어. 남편은 그날 옷을 속에다가 와이셔츠하고 딴 거를 또 입었어. 급하면 벗어 내버린다고. 경찰복을 위에 입고 속에. 어떤 사람은 적삼만 입고 간 사람도 있어. 달밤인데 그 날 저녁에 참 안됐더라고. 마지막인가 싶고. 그날이 마지막이었지. 그러면서 호외가 돌더라고. 우리 집 앞쪽에 대포도 갔다 놓고 그랬거든. 그때는 정말이지 이제 죽는가 했지. 그 놈들이 벌써 점령을 다했고 새벽에 돈암동 돈암 국민학교에 인민 공화국기를 꽂았어. 이놈들이 어떻게 들어오나 싶어서 봤더니 여군들이 권총 하나씩 딱 들고 큰 건물은 사람 있을까 봐 다 쏘는 거야. 그 순간 무서워서 나도 엎드렸지. 엎드리면 산다고 해서 그리고 걔들 지나간 다음에 들어가서 피난을 가려고 했는데 27일날 비가 왔어. 그래서 어디로 가지도 못하고 반공호 속에 들어갔어. 포를 막 쐈거든. 포 쏠 적이 제일 무서웠어. 큰 개천가에 이불 가져가서 자고 그랬거든. 나는 반공호가서 애들하고 울었어. 나는 이만큼 살았지만, 요 인생들이 못살고 죽나 싶어서. 근데 요로케 보면 포가 빨간 불이 휑하고 날아와. 돈암 국민학교도 탔을꺼야 아마. 거기 떨어졌었어. 맥아더 장군 들어와서는 조용해가지고서는 그 때 보면은 들어올때는 산에다가 불을 확 켜대. 그럼 대낮 같애. 그로고 서울서 이럭저럭 견디다가 1.4때는 제일먼저 내빼왔지. 애들 데리고.

Q: 납치될 때 상황을 말씀해주세요.
A: 6.25사변 나고 두 달 동안 전라도 자기네 집으로 피신을 했어. 무서우니까. 그 때는 떨어져 있었어. 자기는 직장에서 가고 나는 집에 있어왔었고. 그런데 두 달 만에 돌아왔더라고. 그 때 내가 임신 중이고, 세 살 네 살짜리 애기들이 있는데 와서 보니까 비참하지. 그런데 누가 신고를 했는지 집에 온지 사흘 만에 괴뢰군한테 붙들려갔어 그리고 나서는 알아 볼라 해도 그 사람들은 한번 데려가면 안 알려주더라고. 그래서 전혀 소식을 몰랐지.

Q: 몇 명이나 왔던가요?
A: 당시에 두 명인가가 나오라 하더니 데려갔지.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나갔는데 그 이후로 소식이 없어. 잘 무렵 새벽이지.

Q: 남편이 피신했을 때 생활은?
A: 자는 데 한강 다리가 끊어졌잖아. 그런데 일어나보니까 피난을 다 갔더래. 우리 그이는 잠귀가 어두워서 깨보니까 아무도 없더래. 그래서 그 길로 막 가서 자기말로는 수영을 해서 건너 갔다 하대. 처음에는 충청도로 피난을 했지. 그러다가 헌병한테 붙들려서 이도 두 개가 부서졌어. 맞아서. 그 길로 아마 자기네 고향으로 갔는가 봐. 거기서도 방 하나에 가둬놓고 숨겨놓고 문을 잠그고 식사 조금 넣어 주고 그러다가 두 달 만에 걸어서 강진이 여기서 천리는 될 거야. 천리 길을 인민군 행세를 하고 온다고 머리를 삭발하고 조카 애들 옷가지를 가지고 저쪽에서 넘어온 것처럼. 밥이 없으면 논밭에서 가서 일을 해 주고 밥 얻어먹고 이러면서 한 달을 걸어왔대. 우리가 어떻게 됐을까 봐. 그래서 만일 처자식을 인민군들이 헤쳤으면 자기도 총칼 들고 그 놈들 가만히 안 둔다고 하면서 오긴 잘 왔는데 그렇게 됐어

납치 후 소식

<소식 없음>

Q: 찾아보진 않으셨나요?
A: 홍제동 절 뒤에다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그리고 성신여대 뒷산에도 많이 죽었다고 그래서 찾아갈라 그랬어. 그랬더니 여자는 가 봤자 여름이라 (시체가)부패가 돼서 겹겹이 쌓아놨는데 그걸 다 뒤적거려야 되는데 누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가지 말라 하더라고 그래서 못 가고선 말았는데….

Q: 당시에 경찰들도 많이 죽였나 보죠?
A: 인민군들 글쎄 그 놈들 불도 못 키게 하고 불만 켜면 신호불인줄 알고 총을 탁탁탁 쏘고. 거리에 나가보면 맨 송장이야. 아무나 경찰소에서 감옥에서 납북했다 그러면 죽어
동대문 경찰소 앞에 가보니까 경찰관이 이 놈들하고 싸워가지고 많이 죽었어. 경찰들. 그 앞에 경찰관들을 죽여서 이렇게 쌓아놓고 가마니로 덮어놨어. 나가면 송장이고 다리 밑에도 송장이고 탱크 부서진 거 군화 벗어놓고 도망간 거 투성이야.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당시 아들 딸과 임신 중이던 피랍자의 아내는 처가에서 해산을 하고, 친정 언니와 함께 함께 장사를 하며 고생스럽게 살았음. 돈암동에 집이 있었는데, 시댁에서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현재까지도 형편이 넉넉치 않음>

A : 고생이라는 거는 이루 말할 수 없지. 잡화상 장사하고 가게보고. 안 해본 거 없지 뭐. 혼자 사는 데 오죽하겠어? 처음엔 노점 장사도 하고 애들 끌고 다니면서. 미아리 가서 파를 갖다 팔고 밀 죽 끓여 먹고…. 지금 유복녀가 벌써 55살이야. 근데 하나 잃었어. 큰 딸을. 15년 전에 아파서

Q: 피난은 언제 가셨어요?
A: 내가 1.4때 피난을 갈 적에 시댁으로 가려고 했는데 막혔어 그래서 충청도 언니 집으로 가서 (유복녀를) 낳았지. 그때는 기차도 못 타고 구루마 같은 차 그 위가 가서 타고 갔지
거기 가는데 사흘 갔어. 돈암동에서 영등포까지는 걸어가고. 지금 같으면 걸어도 못 가지.
애기 하나를 업었지. 아들 업었지. 앞은 이만하지. 하나 끌었지. 보따리 하나 이고 그 때는 다리가 끊어졌으니까 한강 다리를 이렇게 놨더라고. 그 위를 건너갔어 그게 무서운 것도 모르고 영등포까지 걸어갔지. 가서 차를 탔는데 처음엔 탄알 실은 차인지 몰랐어. 빤빤하고.
얼마나 무서웠겠어. 우리 좀 태워달라고 애기도 있고 배도 부르고 하니까 했더니 담배 피우는 사람은 안 된대. 그래서 그걸 타고서 가는 데 사흘을 갔어. 돈암동 집은 없어졌어. 팔았어. 우리 시아버지하고 시숙이 가서 팔았어. 그래서 아무리 남편이 없지만 그래도 본인 말도 안 듣고 집을 팔았냐고. 그때 방 세 개 짜리였어. 그랫더니 그걸 가지고 땅을 사놓는다고 해. 그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상속을 안 해줘. 그리고는 시숙이 차지해서 재산도 하나도 못 받았어. 그래서 그 큰집이랑 밭이고 논이고 다. 그래도 언젠가는 한 몫을 줄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번은 고향에 작은집에 가보니까 아들이 넷인데 토지세에 다 나와있더라고. 그때서야 알았어. 그래서 참 이래 억울하고 저래 억울하고

Q: 언니네에서 오래 사셨나요?
A: 언니네 집에서 언니도 보니까 혼자 된 거야. 남편이 잡혀갔어. 거기는 또 보도연맹으로 잡혀갔어. 보니까 또 언니도 임신을 했네. 나는 열 달 되고, 언니는 아홉 달 되고. 그래서 거기서 얹혀서 13년을 살았어. 그러다가 서울로 와서 살았지

호적 정리

<실종 정리>

A: 근거가 없어 사망이 안 된다대. 그래서 실종으로 돼 있어

정부의 노력

<전혀 없었음.>
A: 내가 연금 때문에 종로 서에도 찾아가보고, 원후처에도 찾아가봤는데 명단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고 그래요? 명단이 없는 거라. 우리 신랑 명단이. 근거가 없어. 그런데 그것도 (연금을) 탄 사람은 타고, 없는 사람은 없고 그런가 봐.
정부에게 바라는 점

<피랍자 생사 확인 및 공무원 가정 보상 해결>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막내딸이 그래. 언니하고 오빠는 아빠라고 불러보고 아빠 손도 잡아봤지만 나는 아빠 한번 불러보지도 못했다고 가슴 한이 맺히는 거 말도 못해. 바라는 점은 그 전에 통일이 돼서 한 번 만나나 보고 내가 살아온 얘기라도 하고 싶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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