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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조완섭 (증언자-이복순,조증헌)
이름: 관리자
2013-09-16 10:49:17  |  조회: 2666


051028B 조완섭 / 2005. 10. 28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조완섭), 사진2(증언자:이복순 조증헌)

피랍자
성명: 조완섭(趙完燮)
생년월일: 1923년 음력 5월 10일
당시 주소: 경기도 여주 북내면 신정리
피납일: 1950년 7월 22일
피납장소: 경기도 여주 북내면 신정리
직업: 농업, (前 동경 유학, 독립 운동, 농촌 계몽 운동)
당시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임신 중), 자녀 1남 1녀
외모 및 성격 : 얼굴이 갸름한 편, 활발하고 씩씩함

증언자
성명: 1.이복순(1924년생) 2.조증헌(1944년생)
관계: 1.배우자. 2.장남
증언 성격: 직접증언 V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피랍자는 7월 22일 오후, 자택에 있다가 북내면 당우리 지서로 연행, 일 주일 정도 조사를받은 후 납북됨. 당시 농촌부흥과 계몽운동, 반공운동, 청년단 조직 군사훈련을 주도하고, 선거 시 웅변가로도 활동했음. 전쟁 이전 일본 유학시절부터 주도적으로 우익계 활동을 하면서 좌익계열에 많이 노출된 상태였음. 기독교인이었고 독립운동을 했으며 5개 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정부의 원칙을 가지고 납북자 문제에 대응할 것,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 지향, 피랍자 생사확인







“우리 아버지가 일본에서 학교 다닐 때 서클활동을 하셨는데 그때부터 좌익 우익이 싸웠대요. 그래서 좌익계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를 잘 아신대요. 아버지가 우익 쪽에서 상당히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이북 사람들도 조완섭하면 다 안대요. 그러니까 6. 25전에 이미 김일성이 리스트 작성해서 초창기에 찍어서 바로 잡아간 거에요. 우연히 이렇게 된 게 아니에요.”

“저녁에는 화가 많아서 숭늉을 큰 대접 양푼이에다 퍼 놓는 다구. 그러면 그걸 어머니 하고 내가 다 먹어요. 속에서 불이 나서. 6.25 나던 해는 나는 꼬챙이처럼 말랐어. 하도 속이 상하고 밥도 못 먹고”

직업 및 활동

<농촌부흥과 계몽운동, 반공운동, 청년단 조직 군사훈련, 5개 국어 사용 및 웅변가>

A(이복순): 어려서 중국에서 살면서 결혼하고, 남편은 동경에서 공부하다가 유학생들 군인 보내고 할 때 도망쳐서 나왔지. 난 중국에서 살다가 8.15 해방되고 한국으로 나왔어. 남편은 나와서 교회 열심히 충성하고 또 청년들 모집해서 청년 운동 시키고 했지. 우리는 농촌에 와서 살았다고. 그 때는 해방되고 어려운 상태니 고향에 우릴 두고, 당신은 혼자 돌아다니며 청년들 모아 (반공)운동하며 집에서는 농사짓고 한 거야. 김구 선생이랑 엄형섭 선생이랑도 잘 알아서 세상 떳다니 우리 집 양반이 꿈에 보인다고 그럴 정도였어. 그리고 이승만 박사가 '조군 나이가 어리니 조금만 기다려' 하던 때 였어요. 초대 국회의원선거를 할 때는 우리 집 양반이 교회란 교회는 다 다니면서 연설하면서 선거운동 했어요. 그래서 믿는 감리사님이 국회의원이 됐지. 여주에서는 웅변을 우리 집 양반이 다하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여주에서 젊은 청년이 나와서 연설을 얼마나 잘하는 지 기운 놓고 봤다고 하더라구요. 어려서부터 웅변가에요

A(조증헌): 아버지는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면서 반공강의를 하시며 주로 반공 청년운동을 하셨어요. 북내면 신정리 들판에 동네 청년을 모아서 군사 훈련을 시켰어요. 총은 목총이었어요. 제식 훈련, 총 쏘는 법 등을 가르쳤던 게 기억이 나요. 중국어를 하시고 일본어는 물론 또 영어도 잘하셨대요. 중국에 있을 때 외교관들, 병원 관계 외국 사람들이 오면 통역을 하셨다고 해요. 러시아어도 잘 하세요.

납북 경위

<7월 22일 오후, 피랍자를 불러내어 북내면 당우리 지서로 연행, 일 주일 정도 조사 후 납북>

A(이복순): 7월 22일쯤인데 그 날은 옷도 허름하게 입었어. 저녁을 먹는데 부르더라고. 나는 어린애 낳고 3일만이라 드러누워 있었고, 몇 명이 왔는지 몰라

A(이복순): 애 아버지 (잡혀)나가고 나서는 빨갱이들이 와서 가택 수사를 어찌나 하는지
도대체 성경 이런 걸 치우느라고 또 우리 아들이 어리니 피난시키느라 그 때 나간 사람도 나갔지만, 집에 있는 아들 때문에 고통이 심했어요. 그리고 피난은 겨울에 나갔죠. 가택수사를 다 뒤지는데 아주 죽겠더라고.

납치이유

<전쟁 이전 일본 유학시절부터 주도적으로 우익계 활동을 하면서 좌익계열에 많이 노출된 상태였음. 기독교인이었고 독립운동을 했으며 5개 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함>

Q: 북한에서 남편이 혹시 언니(피랍자의 처형)를 만나진 않았을런지?
A(이복순) : 황해도에 우리 언니가 살았고, 우리 형부는 암살당했어요. 8.15되고 빨갱이들이 그렇게 한 거에요. 우리 형부는 간도에서 방학이면 학생을 모아 독립 운동을 했었어.
남편은 내가 생각하기엔 죽었다고 보는 거지. 살았다고 보지 못한다고. 예수 믿지, 독립 운동했지. 살기가 쉽겠어? 살지 못하지.

A(조증헌): 아버지가 죽었으리란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중국으로) 갔으니 이북에 친구들이 많대요. 그러니 우리 아버지가 수긍만 했다면 이용 가능성이 있지 않았나 싶지만 죽었으리라 예상하는 건 우리 아버지가 일본에서 학교 다닐 때 서클활동을 하셨는데 그때부터 좌익 우익이 싸웠대요. 그래서 좌익계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를 잘 아신대요. 아버지가 우익 쪽에서 상당히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이북 사람들도 조완섭하면 다 안대요. 그러니까 6. 25전에 이미 김일성이 리스트 작성해서 초창기에 찍어서 바로 잡아간 거에요. 우연히 이렇게 된 게 아니에요.

납치 후 소식

<소식 없음>

A(이복순) : 한 일주일을 북내면 소재 지서에 가둬 놨다가 그 다음은 간 곳을 몰랐어. 어머님이 일주일 동안 밥을 해 날랐거든.

A(조증헌): 북내면 내무서에 할머니와 제가 면회를 갔어요. 갔더니 의자에 앉혀놓고, 그 안에서는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걔네들이 준 사상지인지 뭔지가 앞에 놓였더라구요. 우리 아버지가 잠깐 보시더니 치워 버리고, 거기 있는 사람들은 두셋이서 총을 들고 지키고 있구요. 근데 북내면에는 금당천이란 큰 개울이 있어요. 아버님이 '날씨가 더우니까 얘하고 나하고 목마 좀 하고 오겠다'고 그랬어요 그러니 그러시라고 하면서 개울까지 둘이 따라왔어요. 우리가 목마를 다 하고 내가 "아버지 언제와?"하니까 "아빠 곧 갈께, 가서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엄마 말 잘 들어" 하면서 쓰다듬어 주시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니 죽음에 대한 예고 같아요. 우익계통에 활동했으니 사상전환도 잘 안 되는 거고 기독교적 신앙도 갖고 계시니 쟤네들하고는 하나도 맞지도 않고, 그리고 우리 아버님 성격상 원체 철저해서 사상 전환할 가능성이 없대요.얘기 들어보니까 김일성 얘기하면서도 '그깟 놈' 이래버렸대요. 지식이든 뭐든 그 사람들보다 못할 게 없으니까.
또 하나는 이런 경우가 한 번 있었어요. 여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간첩이 있었어요. 오해수라는 사람인데 월북을 했다가 간첩으로 내려와서 6.25나고 몇 년 후에 잡혔어요. 조사과정에서 우리 아버지를 아느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조완섭은 아는데 이북에 있는 동안 못 봤다'고 하더래요. 물론 설사 살아있었어도 이북에서 신분을 그대로 표현하지는 않았겠지만요. 수사기관에서도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를 데려가서 그 사람한테 물어 볼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었대요. 그 지역에서 꽤나 유명했으니까 그랬지 않았나 싶어요.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난 중 유복녀는 사망하고, 고향에서 피랍자의 부모님과 배우자 및 자녀들이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면서 생활함, 그 과정에서 청산 과부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유산 상속에서도 제외 되는 등 어려움을 겪음. 또한 가장을 잃은 슬픔에 가족들이 홧병에 시달리며 그리움이 컸음>

A(이복순) : 전엔 정미소를 하면서 일보는 사람 해서 10여명 식구들을 거느리고 살았는데 남편 납치되고 큰댁으로 나와서는 다 털어먹고, 힘들게 산 거지. 그 때 난 애기는 피란 갔다가 죽고 아들하고 딸 둘이 다지. 사는 형편은 굶지는 않고 먹고 살았지. 한 10년 동안은 벌어놓은 농토가 있으니 먹고 살고 그 이후는 말하면 뭐하겠어. 동기간도 소용없더라고. 14년 동안 남의 집 일도 하고, 삯바느질, 밭도 메고, 장사도 하고 하면서 억지로 애들 고등학교는 마쳤지. 그리고는 서울로 올라와서 애들이 대학 나와서 여지껏 이렇게 산 거지.
나는 또 어머니를 그냥 열심으로 모셨어요. 우리 어머니 가슴 아픈 건 누가 알겠어. 나는 남편을 잃었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보낸 거 아니야. 나는 남편 보내고 자식이라도 살리려고 큰 집에 맡겨 놓고 오는데 엄마 안 떨어지려고 아들이 울어요. 그러면 몇 대를 때려 큰엄마한테 보내고 돌아서서 오면 (눈물이 나서)땅이 안 보여요. 가슴을 치고 땅을 두드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개울에 와서 얼굴을 씻고 한참을 울고 부은 얼굴을 보면 어머니가 가슴 아플까 봐 동네 몇 바퀴를 돌고 그랬어요. 저녁에는 화가 많아서 숭늉을 큰 대접 양푼이에다 퍼 놓는 다구. 그러면 그걸 어머니 하고 내가 다 먹어요. 속에서 불이 나서. 6.25 나던 해는 나는 꼬챙이처럼 말랐어. 하도 속이 상하고 밥도 못 먹고, 여기가 치밀어서 살 길이 없더라고 그래서 이래가지는 안 되겠다고 기력을 챙겨 살았지. 그 때 같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더라고. 애들은 다 죽어도 그 사람만 있으면 살겠더라고. 아들이 '엄마 내가 크면 쌍가마 태워 주께, 살자' 그래서 산 거에요. 동네에서는 청춘 과부가 있으면 재수가 없다 그러고 그 가슴 아픈 건 말도 못해요.

A(조증헌) : 북내면에 14년 살 때, 그 때는 저희 할머니도 살아계셨지만 항상 따뜻한 밥을 먼저 떠서 부뚜막에 올려놨어요. 그건 안 먹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오시면 언제든지 따뜻한 밥을 드리겠다고 저희 어머님이 하셨죠. 그러다 내가 중학교 들어가고 아무것도 없어졌어요.
큰 아버님이 저희 재산을 당신 걸 만드시고 우리에겐 하나도 안 주시니 거지가 된 거고. 사실 저 같은 경우는 궁극적으로는 6.25가 가져다 준 불행과 고통이지만, 학교 다니면서 교과서를 가져 다니지 못했어요. 노트도 갱지 단권을 엮어서 국어, 영어, 수학 다 했어요. 그러니 선생님한테 맞고 그랬죠. 중학교도 반도 못 다녔어요. 가다가 누가 밭 매라 그러면 밭을 매고. 고등학교를 가야 되는데 3,4개월이 지나도 집에서 보내주질 못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단독으로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한테 찾아가서 무릎 꿇고 공부 좀 시켜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한 나절 말씀이 없으시다가 우리 담임선생님을 시켜 출석부에 넣어달라고 해서 공부를 겨우 했지요. 그 이후 서울 와서도 고생은 말도 못 했죠.

Q: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
A(조증헌) : 한번은 제가 어렸었는데, 그 때가 아버지 나간 때에요. 그렇게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방에서 엎드려서 '아버지 아버지' 하고 한참을 울었어요. 저희 할머니가 그 소리를 듣더니 등어리를 딱 때리면서 '네 눈에서는 눈물이 나지만 내 가슴에선 피가 터져 이놈아' 하시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 소리를 듣고는 정신이 바짝 나더라구요. 그 뒤로는 할머니 앞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지 않겠다 결심했어요.할머니의 땅을 치시며 하는 말씀이 보통이 아니시더라구요. 그리고 저희 할머니께서 6.25나고 몇 해 안되서 환갑 잔치를 하는데 우리 할머님이 자식 잃어버리고 무슨 잔치를 하느냐고 안 하시려고 하는 걸 자리를 만들었는데 할머니가 자식 때문에 웃음이 없으시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할머니, 아버지 대신 춤을 출 테니 웃으세요' 하면서 춤을 덩실덩실 추니까 할머니께서 헥 하고 헛웃음 한 번 치시더라고. 자식을 가슴에 안고 돌아 가신거죠

호적 정리

<행방 불명으로 처리>

A(조증헌) : 실종신고를 해서 행방 불명이 됐다가
일정기간이 되니까 이젠 완전히 사망처리가 됐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신고는?
A(이복순) : 사람이 행방불명이니 신고했지. 나라에서 하라고 소문나서.

Q: 정부의 노력은 없었는지?
A: 우리보다 으뜸 난 사람도 국가에서 원조를 못 받는데 우리 같은 사람 돌아보겠어요? 증거가 없다는데.

연좌제 피해

<피랍자 자녀가 군입대 등에서 신원 조회로 곤란을 겪음>

A(조증헌) : 군대서 첫째도 걸렸죠. 글씨도 잘 쓰고 똑똑하다고 하니까 행정 요원으로 쓰려고 하는데 신원조회를 하면 불가로 뻘건 줄 그어 나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참 억울하다고 부대장한테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결국은 행정 근무를 하면서 비취 인가가 조사 나오고 보안 검열 나오면 나는 딴 데로 슬쩍 빠져 나갔죠. 제대하고 나서는 공무원 시험도 보고 하려는데 그게 걸리는 게 뻔하니 아에 포기를 해 버렸죠. 아에 서울에 와서 내 살 길을 찾는 거죠. 그래도 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취업이 됐어요.

정부에게 바라는 점

<정부의 원칙을 가지고 납북자 문제에 대응할 것,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 지향, 피랍자 생사확인>

A(조증헌) : 제가 바라고 싶은 것은 납북자에 대해서 남북관계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 정부 당국이나 정치인이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원칙은 있어야 되지 않냐는 얘기에요. 우선 미전향수들이 아직도 그 사람들의 체제와 사상이 좋다는 사람들은 보내 달라는 대로 보내 주면서 납북자들 소식이라도 알려 달라는데 그 아는 것 조차 완전히 등한시 해버리면 앞으로 통일이 되는 과정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원칙이 정해져야 자유 민주주의도 지켜지는 것이지 통일도 그렇습니다. 통일에 대한 교육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통일은 지상 과제다 통일만 되면 능사다라고 가르친 거에요. 어떠한 방식에 의한 통일인가는 상관없다고 가르쳤다는 말이에요. 그러나 자유가 완전히 박탈당하는 통일이라면 우리 민족사적으로 볼 때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납북관계에 있어서 납북자 문제는 원칙을 정해서 알려는 노력, 그리고 거기에 대고 강력하고 떳떳이 얘기할 수 있는 정부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이복순) : 하고 싶은 말이 이제 뭐가 있겠어요. 죽었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보고 살아있으면 그 마음을 위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지. 이세상에 살았으면 자식을 떼 놓고 갔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여보 살았으면 그 마음을 하나님한테 위로 받고 살기를 바랍니다. 죽었으면 하늘 나라 가서 만납시다. 가슴 아픈 원한을 누가 풀어주겠어. 풀어줄 자는 하나님밖에 없어. 나는 우리 아들 때문에 눈물을 안 흘리고 살았는데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니 아들에게 미안하네요 혼자서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자식들 공부시킬까 그것만 염두 해 살았지. 그 사람 생각보다는 애들 생각 때문에 잠이 안 오고 그랬어(울음). 어려서는 그렇게 지냈는데 잘 컷으니 감사하지. 나는 하나님한테 감사할 것 밖에 없어. 이제 원도 없고 한도 없어. 그저 하나님한테 자식 축복가운데 하늘나라 가기만 바랄 뿐이야.

A(조증헌) : 참 평생 아버지 많이 그리웠죠. 그리고 남의 아버지 있는 걸 보면 참 많이 부러웠고. 그래도 아버님이 나라를 위해 일하셨는데 나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버님 생존해 계시다면 참 뭐라고 말씀 드릴지. 통일이 돼야 만나도 뵙고, 생사확인도 할 것 같고. 그곳 에서 아버님 살아계시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겠어요? 우리가 한 고생 몇 배나 고생하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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