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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이타관 (증언자-이덕길)
이름: 관리자
2013-09-16 10:50:08  |  조회: 2712


051031A 이타관 / 2005. 10. 31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이타관), 사진2(증언자:이덕길)

피랍자
성명: 이타관 (李他寬)
생년월일: 1918년 8월 13일생(충북 영동군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종로구 팔판동 5번지
피랍일: 1950년 7월말 경
피랍장소: 서울시 종로구 팔판동 5번지(자택)
직업: 목수, 반공 청년단원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2남 1녀
외모 및 성격 : 성격은 급한 편.

증언자
성명: 이덕길(1946년생)
관계: 아들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피랍자는 7월 말경 미처 피난을 못 가고 다락에 숨어 있다가 새벽에 잠시 마당에 나온 사이 연행되어감. 수성국민학교에 모여 있다는 말을 듣고 도시락을 싸서 건내 준 것이 마지막으로 이후 평양에서 봤다는 증인이 있었음. 피랍자는 당시 반공 청년단으로 활동했고, 이를 동네에 사는 좌익 청년에게 고발을 당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 확인 및 납북자 문제해결을 위한 정북의 적극적 의지









“저는 공산주의라면 아주 싫어요. 6.25때 아버지 납북되셨지, 월남전에서 동생 죽었죠. 대를 물려서 그 사람들하고 싸우다 그렇게 된 거에요. 저는 그 사람들 얘기라고 하면 별로 안 좋고, 지금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같이 융합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하려면 좀 잘 좀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납북 경위

<7월 말경 미처 피난을 못 가고 다락에 숨어 있다가 새벽에 잠시 마당에 나온 사이 인근 주민의 밀고로 연행되어감. 수성국민학교에 모여 있다는 말을 듣고 도시락을 싸서 건내 준 것이 마지막임>
Q: 어떻게 피랍 되셨는지?
A: 7월 말경에 다락에 숨어있었대요. 저희 집이 한옥집이었는데 피난을 미쳐 못 가서 소위 이북사람 들어오고 빨갱이들이 들끓고 하니까 지금은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빨갱이’라 하는 그 사람들이 잡으러 다녔대요 낮에도 와서 "어딨냐?" 그러면 "모른다" 하고 그랬대요. 다락에 짐 뒤에 숨어가지고 있다가 며칠 만에 한 번 새벽에 양치질하러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 나왔는데, 근데 나오자마자 바깥에서 보고 감시를 하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파자마 바람으로 끌려갔답니다. 7월 중순에서 말경에. 그 때 붙잡혀가서 수성 국민학교에 있다 소리듣고서 도시락을 싸서 담 너머로 도시락하고 옷하고 전해준 것이 마지막 본 거래요. 잡혀가서 다음날 전해줬대요.

납치이유

<반공 청년단으로 활동, 동네에 사는 좌익 청년에게 고발당함>

A: 반공청년단에 있었대요. 거기 동네 청년들 좀 산다 하면 다 했었나봐요. 6.25때 제가 듣기로는 그걸 했기 때문에 소위 빨갱이란 사람들한테 찍힌 모양이에요. 종로경찰서에서도 들은 얘기에요. 제 동생이 월남전에서 전사했어요. 그래서 호적 정리하느라 도장을 받으러 다녔는데 당시 경찰 서장 도장도 받더라구요. 동생이 죽으니까 연금이 아버지한테 나올 꺼 아니에요. 그러니까 '정리를 하라' 그래서 69년 초에 (모두) 호적을 정리했어요 그 때 경찰서 가니까 누군지 몰라도 거기 나이 잡수신 분이 "니가 이타관이 아들이냐? 고생 많았다" 그러더라구요. 아버지를 아시는 분이셨나봐요.

A: 아버지는 동네 빨갱이들이 잡아갔대요. 동네 청년인데 아는 사람이래요. 나중에 들으니까 그 사람들이 6.25 끝나고 나서 야반도주 했대요. 집도 놔둔 채 도망갔대요. 잡아갔던 청년은 이북으로 넘어갔고 그 가족들이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야반도주 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빨갱이 가족이라고 하니까 도망갔나 봐요. 내무소원이 아니라 동네 완장차고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잡아간 거래요.

납치 후 소식

<연행된 이후 잠시 수성 국민학교에 잡혀있다가 북송, 평양에서 봤다는 증인이 있었음>

A : 영천에 우리 아버님 이모님이 살고 계셨는데 그리로 지나가면서 이모도 봤었고, 수색으로 간다 하더래요. 이남에서 본 건 그게 마지막이고 납북 끌려갔다가 도망 나온 분이 있었어요 희철이라고 그러든가 희철이 아저씨 하면서 부른 기억이 나는데 그 사람이 이북에 같이 갔다가 도망 나왔는데, 평양에서 이 사람은 왼쪽으로 가고 우리아버지는 저쪽 건너편에서 오른쪽으로 되는데 우리아버지가 형 뻘이 됐나 봐요. 그래서 "형님" 하고 손 흔든 게 그게 마지막이에요. 제가 그 소리는 들었어요. 전쟁 끝나고 나서 들은 얘기에요. 안 죽고서 거기까지 간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그 다음부터는 몰라요. 전혀 여지껏 들은 것도 없죠..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가장이 납북된 후 피난 생활로 가족이 흩어 지냈고, 이후 가족이 모였으나 경제적으로 궁핍해 그나마 있던 집마저 팔게 됨>

Q: 전쟁 중에 피난은 안 가셨는지?
A: 아버지 납북되시고 그 해 겨울 피난을 간 거죠. 서울역까지 작은 구루마를 끌고서 기차위에 지붕에서 이불 쓰고 가던 생각이 나요. 그리고 저는 할머니를 따라서 부산을 갔고 저희 어머니와 누나와 동생은 충청도 영동 외갓집으로 갔죠. 그 때 저도 어머니랑 헤어져서 부산 큰 아버지 댁에 살다가 삼청동에 사는 작은 아버지 앨에 와서 있다가 아홉 살 때 저희 어머니를 처음 봤는데 가지도 않았대요. 아줌마라고.

Q: 나중에 생활은 괜찮으셨어요?
A: 어머니 혼자서 애들 셋 키우며 사시니까 아버지가 남겨 준 집 하나인데 제가 중 3 때인가 들어먹었어요. 어머니가 일은 한다고 하는데 여자 혼자 힘에 부치니까 나중에 집을 팔 게 된 거에요.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줄여나가게 된 거죠. (아버님 계실 때는) 먹고 살만큼 됐었대요. 주의에서도 부러워할 만큼 괜찮게 살았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납북되신 후) 재산을 버는 사람이 없고 어머니 혼자 재단 기술을 배우셔서 하다 보니 점점 까먹고 나중엔 집까지 팔게 되고 그렇게 된 거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신고는?
A: 저는 어렸고 저희 어머니는 무지해서 몰랐죠. 지금 그런걸 물어봐도
그 당시에 그런 걸 몰랐대요.

Q: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A: 없었죠. 정부서도 무관심하고 우리도 6.25때 납북돼 간 것이기 때문에 통일되지 않는 다음에야 아에 생각도 안 한거죠

호적정리

<행불로 정리>
A: 호적정리는 69년도 초에 했어요. 가정법원에서 행불로 하라 하더라구요.
연좌제 피해

<여러 차례 신원조회 과정이 필요했으나 특별한 피해는 없었음>
A: 피해 입은 건 별로 없고요. 저도 공군 나왔는데 저도 활주로 근무, 비행기 정비사로. 그 때도 정부에서인지 어디서 조사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외갓집까지 조사가 나오더래요. 비행장 근무하다 보면 같이 근무하던 사람도 아저씨가 빨갱이로 이북으로 넘어갔나 봐요. 그래서 그 친구 거기서 일하다가 행정직으로 빠지더라구요. 그런걸 봤는데 저는 그런 피해는 없었어요. 제 동생도 월남 갈 적에 그 조사가 나왔는데 저희 아버지가 사상이 나빠서 넘어간 게 아니니까 그런 피해 없이 월남 갔고 다녀와서 호적 정리할 때도 아무 이상 없었고요. 그리고 제가 지금 출판사를 하는데 출판사도 신원조회 있어요. 출판사 대표는. 그래서 경찰서에서 조사하는 데도 아무 피해는 없었어요
정부에게 바라는 말

<피랍자 생사 확인 및 납북자 문제해결을 위한 정북의 적극적 의지>
A: 뉴스에서 보고 그러는데요. 정부에서 조금 소극적인 것 같아요. 지금 전부 다 개방적으로 뭘 하고 그러는데 다른 일처럼 좀 적극적으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개인이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가족협의회도 있지만 여기서 혼자서 해도 되는 게 아닌 듯 싶고,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되는 일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우선 생사확인부터 해야죠. 돌아가셨는지 안 돌아가셨는지... 돌아가셨다고 하면 지금 상황에서 되는 게 없잖아요. 순리적으로 해야 되는데 정부에 바라고 싶은 건 좀 적극적으로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다른 것처럼 지원하는 것도 좋고 이북사람들 도와주는 것도 좋은데 이런 일도 병행해서 같이 좀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그 전부터 생각이 제 동생 죽고 나서 더 그런데 하여튼 저는 공산주의라면 아주 싫어요. 6.25때 아버지 납북되셨지, 월남전에서 동생 죽었죠. 대를 물려서 그 사람들하고 싸우다 그렇게 된 거에요. 저는 그 사람들 얘기라고 하면 별로 안 좋고, 지금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같이 융합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하려면 좀 잘 좀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피랍자 생사 확인 및 생존 시 상봉>

Q: 아버님 보고 싶지는 않으셨어요?
A: 어릴적에나 그러죠. 남들 아버지 있고 아버지 얘기 나오면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커서는 별로 그런 생각은 없구요. 제가 결혼하고 나서 부터는 제사라는 건 없구요. 명절날 설날하고 추석에 남들 차례 지내듯이 해요. 그럴 때마다 조금씩 생각나는 거죠.

Q: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A: 살아계시면 직접 대화 좀 해 봤으면 하는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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