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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이각의 (증언자-이기정)
이름: 관리자
2013-09-16 10:47:04  |  조회: 2008


051024B 이각의 / 2005. 10. 24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이각의), 사진2(증언자:이기정)

피랍자
성명: 이각의 (李珏儀)
생년월일: 1922년생 (경기 양주 출생)
당시 주소: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 22번지
피랍일: 1951년 1월경
피랍장소: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 22번지(자택)
직업: 장흥 국민학교 교사
직계가족/부양가족: 부모님. 형 내외. 조카 4
외모 및 성격 :

증언자
성명: 이기정 (1940년생)
관계: 조카
증언 성격: 직접증언 V 간접증언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당시 장흥국민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던 피랍자는 전쟁 발발 직후 한강 쪽으로 피난 갔다가 12월에 다시 고향 장흥으로 돌아옴, 이후 1월 초 지방 좌익과 함께 서너 명이 찾아와 피랍자를 연행해 간 뒤로 소식 없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민주적 통일, 피랍자 생사 확인 및 가족 상봉











“우리가 지주 였어. 근데 할아버지 삼형제가 모아서 몇 백석 하신 분이야. 그 통에 그렇게 됐으니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 아니야. 그래서 그렇게 된 거 같아.”

“우리 할머니에겐 셋째 아들이잖아(울먹). 아무 때라도 그 생각만 하시면 코피를 흘리시더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고통을 당하셨어”

납북 경위

<당시 장흥국민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던 피랍자는 전쟁 발발 직후 한강 쪽으로 피난 갔다가 12월에 다시 고향 장흥으로 돌아옴, 이후 1월 초 지방 좌익과 함께 서너 명이 찾아와 연행해 감>

Q: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A: 6, 25나가지고 젊은 아저씨들과 형님은 모두 나가시고 할머니, 할아버지, 나, 동생이 살고 있었는데 삼촌도 나가셨어요. 왜냐면 젊은 사람들은 다 잡아간다고 해서 한강 건너로 모두 나가셨거든. 피난 나가셨다가 12월에 들어오셨어. 저는 어렸을 때라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1월에 밀려 나갈 적에 1,4후퇴 즈음해서 잡혀가셨거든. 겨울인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집에 계셨냐면 다른 사람도 다 나갔지만 우리 집을 못 벗어 나셨어. 그런 줄 아시면서 아저씨가 피난을 가셨다가 오셨단 말이야. 오셨는데 나중에 완장을 차고서 3-4사람이 와서는 우리 삼촌을 찾는 거야. 그 때 숨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다른 데로 가야 하니까 숨바꼭질 하는 사람처럼 계속 왔다갔다하다가 아저씨하고 맞닥드린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들키셨으니까 이제는 할 수 없다면서 나가셨는데, 그 사람들은 뒤에서 있고 삼촌은 가운데 서더니 나가더라.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이런 분들은 멍하니 보고 있고. 구타는 안 했어요. 잠깐 면에 좀 가자고 해서 가셨는데 그리고는 소식이 없어요.

납치이유

<당시 집안이 지주였음>

A: 우리가 지주 였어. 근데 할아버지 삼형제가 모아서 몇 백석 하신 분이야. 그 통에 그렇게 됐으니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 아니야. 그래서 그렇게 된 거 같아.

납치 후 소식

<전혀 알 수 없음>
A: 아주 꽁꽁 무소식이야. 돌아가셨는지 혹시 거기 사셨으면 누구에게 말을 해서 우리 집에 연락이 됐을 것 같은데 아무 소식이 없어. 그 때 당시 나가실 적에 다른 사람과 나가시지는 않았어. 동네 여러 사람이 같이 나갔지만 아저씨는 면에 좀 같이 가자고 해서 그리로 갔는데 나중에 알 수 있어야지
Q: 북쪽으로 간 건 확실한가요?
A: 그건 단정할 수 있지. 그 때 같이 와서 아저씨를 모시고 간 사람이 이북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거야. 동네 사람. 김씨인데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 때 당시 동네가 무척 시끄러웠지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A: 어려웠죠. 다른 사람들도 똑같겠지만, 살아남은 목숨만 있었지 그렇게 호화롭게는 못살았죠. 우리 할머니에겐 셋째 아들이잖아. 그 셋째 아들이니까(울먹). 아무 때라도 그 생각만 하시면 코피를 흘리시더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고통을 당하셨어. 다른 사람들은 다들 생활에 쫓겨서 우리는 그런 어려운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찾아볼)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고.

연좌제 피해

<조카가 취직이 어려운 경우를 당한 적이 있고, 정부의 감시가 있었음>

A: 작은 형님이 피해를 보신 거 같아. 젊었을 적에. 이북으로 넘어간 사람이 있으니 따로 분류 했을 거 아냐. 그래서 취직이 안되고 그랬어. 다른 가족은 없었어.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신고는?
A: 신고는 우리 집에서 아버지가 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때 당시 박정희 대통령 때든지 이승만 대통령 때 그 때 (정부에서) 많이 우리 집을 찾아왔어요. 아저씨 때문에. ‘어떻게 나갔는지 어떻게 됐느냐?’ 그러니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그 때도 있는 그대로 말씀 하셨죠. 아저씨가 이북 빨갱이처럼 나서서 한다고 했으면 모르지만 그냥 교사하다가 끌려갔는데 뭐, 그 사실 외에 거기다 덧붙이고 빼고 그럴 수 있나 뭐.

Q: 신고하고 나서 정부에서 찾으려는 노력이나 공무원 퇴직금 같은 건 없었는지?
A: 그 때 뭐 나라에 그런 게 있었겠어? 퇴직 정리가 어떻게 돼? 삼촌의 신상명세는 붕 뜬거지 공무원이었는데 그 때 당시 퇴직금이라든가 이런 건 하나도 없었다고. 그 때 당시에도. 나라에서 지원금이 어디서 나오겠어. 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어떻게 해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른다고.

Q:오히려 월북이라고 생각한 건 가요?
A:그렇죠. 잡혀간 건 분명한데 나라에서 월북 가족이라 생각하고 낙인 찍었던 거 같아

정부에게 바라는 말

<민주적 통일 및 가족 상봉>
A: 정부에 바라는 것은 무조건 통일이요. 어떻게 됐던 간에. 근데 자유로운 통일이 돼야 해. 지금 이북처럼 요리조리 피해가지고 생활을 하는 것 보다 모두 까놓고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통일이 돼야 하는 거지 이 나라는 다 개방이 됐는데 김정일 정부는 아직도 안됐다 말이야. 육해 공군만 박수치고 열병하는 그런 식의 통일은 아니야 아주 톡 까놓고 서로 우리나라하고 다 얘기해야 한다고.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 아저씨 어떻게 생활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남쪽으로 오십시오. 오시면 잘 모시려고 합니다. 싶고 어떻게 된 건지 그 결과를 알고 싶어서 이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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