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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서정선 (증언자-우정희,서보석)
이름: 관리자
2013-09-16 10:45:02  |  조회: 2468


051019A 서정선 / 2005. 10. 19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서정선), 사진2(증언자:우정희 서보석)

피랍자
성명: 서정선(徐廷善)
생년월일: 1925년 12월 5일 (북한 출생)
당시 주소: 경기도 포천군 포천면 송우리 395번지
피랍일: 1950년 8월 22일 밤 10시
피랍장소: 경기도 포천군 포천면 송우리 395번지
직업: 농업(前 원산 철도 공무원)
당시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남 1녀
외모 및 성격 : 온순한 성격

증언자
성명: 1.우정희(1928년생) 2.서보석(1948년생)
관계: 1.배우자. 2.딸
증언 성격: 직접증언 V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인민군이 철수하던 8월 22일 피랍자와 같은 마을에 거주하던 방영섭이라는 인민군 부역자(지방좌익)가 자신의 친척인 방인수를 비롯 마을사람 20여명을 인민군에게 발고해 끌고 감.
당시 그 지역 북한관군이 일반 사람들을 잡아들여 총살을 하기도 하고, 좌익 우익 모두에서 학생들 추출이 심해 마을이 거의 초토화 될 지경이었음. 더욱이 피랍자는 해방 후 북한에서 철도 공무원을 하다가 남하한 상태였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 확인








“우리 경우는 방영섭이 댕기면서 직접 ‘나와라’ 그래서 데려가고 했어. 그 사람이 동네로 치면 먼 친척 뻘 되는 사람들 그 집 형제들 둘도 데려갔어요. 방인수란 사람이고 그 사람도 아들 딸 남매 인화 인숙이 있는데, 그 집도 데려가고 선자 아버지도 잡아가고 일가 친척 동네 사람 열 일곱 명인가를 데려갔어.”

“나이 어릴 때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어. 딸은 지금이라도 아버지 돌아오면 같이 살아라 하는데 미쳤냐구. 자살을 하면 했지 그렇게는 안 살아. (재혼을 해서) 더럽혀진 몸을 가지고 어디를 또 가. 나는 봐도 면목이 없어. 아들이 살았으면 떳떳했을 텐데 아들이 죽었으니 봐도 면목이 없어.”

납북 경위

<인민군이 철수하던 8월 22일 같은 마을에 거주하던 방영섭이라는 인민군 부역자(지방좌익)가 자신의 친척인 방인수를 비롯 마을사람 20여명을 인민군에게 발고해 끌고 감 >
A(우정희) : 하루에 몇 번씩 빨갱이가 데려갈라고 집에 찾아왔어. 그러더니 밤 10시에 잡아갔어. “나오랄 때 나와야지 안 나오면 친척들까지 다 쏴 죽인다고 그러니까 알아서 하라”고 이러잖아. "아니 아까 오라서 갔는데 뭘 또 오래요? 데려다 어떡하고 또 오란데요" 했지. 방에 감춰놓고 그랬지. "찾아서 나오면 어쩔 거냐"고 해서 "찾아보라. 없는 사람이 어디서 나오냐"고 그러고서는 (그 때는) 갔는데, 그러다 밤에 잡혀 간 거야. 그 이튿날 면에다 데려다 놓고 ‘쌀 서 되랑 집세기 3켤레를 보내라’ 그래서 우린 먹을 게 없으니까 밭에 가서 조 이삭 모가지 달린 걸 솥에서 볶아서 신던 헌 고무신짝이랑 줘서 보냈어. 그런데 면에서 이틀 지난 밤에 가니까 벌써 북한으로 잡혀가고 없어. 그러면서 가져갔던 좁쌀을 도로 갔다 주더라고. 8월 22일 밤 10시야 그게.
A(서보석) : 제가 작은 할아버지네 있을 때 작은 할머니가 너네 아버지는 한 번 붙잡혀 갔다가 와서 배고프다고 밥 먹는다고 왔었대요 처음에 다락에 20명이 있었다는 거 같아요. 그러다가 한꺼번에 다 잡혀갔다가 우리 아버지가 밥 먹는다고 왔대요. 그래서 할머니가 산에 누굴 숨겨놓고 해서 밥 같다 주러 가다 보니 (아버지가) 밤을 따고 있더래요. 밤이나 따 주고 간다고. 그래서 내려와 보니까 없어졌더래요.
당시 시대 상황

<북한관군이 일반 사람들을 잡아들여 총살을 하기도 하고, 좌익 우익 모두에서 학생들 추출이 심해 마을이 거의 초토화 될 지경이었음>

Q: 연행해간 사람이 누군지?
A(우정희) : 방영섭. 동네 사람이지. 그 사람이 여러 사람 잡아갔어. 그리고 권가 인가? 거기 빨갱이가 많았어. 내무서 부역하던 사람들. 어느 날 밭에서 조를 자르다가 보니까 젊은 여자인데 새하얀 스커트에 분홍 블라우스 입은 여자가 길가는 걸 잡아 가드라고. 그리고 한 젊은 남자가 감자 두말인가 될 것을 지고 가는데 그걸 또 잡아가더라고. 그래서 우리는 조 자르다가 못 다 자르고 집에 갔단 말이야. 가서 보니까 두 사람이 방죽 뚝에 섰더라고. 빨치산이라고 그러지. 그 사람들하고 거기 섰더라고. 그리고 웃말에 할아버지 둘도 같이 잡아갔단 말이야. 데리고 가다가 벌말이라는 데 가 있는데 거기가 집도 있고 무덤도 있는 곳이 있어. 거기 가서 쪼로미 세워놓고 다 죽여버리더라고. 젊은 사람 둘하고 노인 둘까지 빨갱이들이. 우리 경우는 방영섭이 댕기면서 직접 ‘나와라’ 그래서 데려가고 했어. 그 사람이 동네로 치면 먼 친척 뻘 되는 사람들 그 집 형제들 둘도 데려갔어요. 방인수란 사람이고 그 사람도 아들 딸 남매 인화 인숙이 있는데, 그 집도 데려가고 선자 아버지도 잡아가고 일가 친척 동네 사람 열 일곱 명인가를 데려갔어.

Q: 찾으려는 노력을 해보지 않았는지?
A(우정희) : 없었죠. 미군들이 와서 포 쏘고 총질하는데 무슨. 중고등학교 학생들 전부 붙잡아 갔으니까 .그니까 아주 휩쓸었어. 중고등학생들 젊은이들 다 붙잡혀갔지 마을이 완전 폭락이 됐지. 중고등학생은 빨갱이들이 공비로 쓸라고 잡아가고 또 미군들이 비행기로 공비로 내려 보낼라고 데려가고 양쪽에서 붙들어 가서 홀랑 다 간 거야. 중고등학생이 몽땅 붙잡혀 간 거야.

납치이유

<북한에서 남하한 사람들을 잡아들임. 당시 마을 사람들이 여럿이 함께 잡혀감>
A(우정희): 죽었으면 잡혀가서 죽었을 거야. 왜 죽었냐면 북한에서 반대하고 넘어온 사람은 다 죽였거든. 근데 우리는 북한에서 반대하고 넘어온 거잖아. 가다가 김일성 별장 있잖우. 거기 지하실에 그 쪽에서 말 안 듣는 사람 데려다 놓고, 이쪽에서 말 안 듣는 사람 데려다가 다 그 속에 잡아 넣고 후퇴해서 갈 때 다 총으로 쏴 죽이고 갔단 말이야. 그리고 철문 딱 닫아버리고 갔어. 근데 몇 년 전에 땅굴들 보러 가자고 가자 그래서 갔는데 마침 거기를 가보자는 데 나는 무서워서 안 갔어. 다녀온 사람 얘기 들어보니까 벽이 모두 총 구멍이고 사람 죽어서 바닥은 썩어서 새까맣더래.
납치 후 소식

<없음>

납치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가난으로 인해 고생이 심함, 막내 아들은 기아로 사망, 딸은 식모살이를 전전했고, 큰 아들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과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지 못해 자살함, 부인 유정희씨는 3년 뒤 반공 포로를 만나 재혼을 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원만한 결혼 생활이 안됐음>

A(우정희): 남은 가족이야 얘(딸)오빠하고 얘 하고 얘 동생인데 동생은 굶어 죽었지. 촌에서 일을 해야 먹고 사는데 내가 젖 먹이러 안가고 일 가니까 시들어 말라 죽은 거야. 얘 오빠는 다 커서 내가 돌보지 않는다고 약을 먹고 자살을 한 거야. 첨엔 혼자 농사짓고 살았죠. 얘(딸) 작은 아버지가 38선 넘어오면서 땅 판 것이 있는 데 그걸 갈라 너희를 주마 해서 믿고 살았다고. 그런데 동생이 딸 다섯의 아들 하나 있는 식구가 몽땅 다 넘어왔다고. 그래서 자기 동생을 그 땅을 주고 나는 남이 농사가 안 돼서 내버린 땅을 세를 얻어서 주더라고. 면에서 거름 쌓잖우. 근데 거기 폭격을 해서 거름이 다 타서 그 재를 져다가 뿌리고 6. 25 때 농사 지어서 겨우 사는 데 (주인이) 먼저 해 먹은 농사 값하고 지금 해 먹은 값하고 합해서 내놓으란 거야. 땅임자가 땅 세를 내라 이거지. 줄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어떻게 살아. 그래서 얘네 다 내버리고 간 거지(재혼). 애 작은 아버지가 나를 앉혀놓고 “나도 늙어서 나 살 수도 없으니 너도 너 살 궁리해라. 난 이제부터 못 도와 주겠다.” 그래요. 그거 가란 말이지 뭐. 촌에서 일을 해야 사는데 겨울에 무슨 일 있어? 얘네들 데려가서 밥 많이 먹는다고 싫다고 어린애 젖 먹이러 간대서 싫다고. 그러니까 무조건 붙어서 일을 했는데. 얘네들 내버리고 나오니까 애들 작은 할아버지가 이리저리 애들을 돌린 거야. 그래서 애들이 다 망가진 거지. 그리고 우리 영감(재혼한 남편)이 조금만 도와 줬으면 (아들이)살았을 텐데 아주 지독해서 한 푼도 안주는 거야. 지금도 가슴을 꼭 붙들고 안 놓는 거 같아. 그렇게 해서 식구들 다 잃어버린 거야.

A(서보석) : 첨에 아홉 살 때 서울로 보냈어요. 애 보는 데로. 남의 애 봐주고 그리고 거기서 살다가 또 집에 가고 싶다고 내가 어린 맘에 울었어요. 그랬더니 1년 있다 집에 보내 주더라구. 그때는 작은 할아버지네인데, 오빠가 거기 있으니까 오빠하고 작은 할아버지네 식구랑 살다가 봄 되니까 먹을 꺼 없다고 또 가래요. 그래서 열 두 살 때 또 가서 남의 집에서 애보고 살다가. 남들은 다 학교 가고 그러는데(흐느낌) 나도 입학원서가 아홉 살 때 나왔어요. 우리 엄마가 서울에서 돈을 벌어 내복을 사서 보냈어요. 그걸 입혀 나를 학교를 보내라고. 그런데 우리 6촌 동생,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였는데 작은 할아버지가 하는 말씀이 한 달에 300원인가 월사금을 못 낸다고 나한테 “여자가 무슨 학교를 가냐”고 그래요. 그러면서 엄마가 사준 내복 내 것을 걔를 입혀서 학교를 보내고 나는 안 보내더라구요. 그때 어렸을 때는 맨날 소원이 우리 아버지 돌아오는 것만이 소원이었어요. 우리 아버지 돌아오면 나도 우리 오빠하고 아버지하고 살 수 있으니까 이런 고생 안 해도 된다고. 꿈에도 소원이 아버지 오는 거였어요(눈물). 엄마하고는 제가 일곱 살 때 까지 밖에 같이 못 살았어요. 진짜 죽지 못해 사는 거였어요. 남들은 공부할 나이에 맨날 남의 집 애나 봐주고요. 그래서 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그 때는 남들이 엄마 아버지랑 같이 사는 것만 보면 정말 보고 싶고, 왜 6. 25가 났나 그게 진짜 원망스러웠어요. 그리고 우리 시골에 작은 할아버지도 유식한 분들 같으면 날 학교를 보냈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 &#46468; 당시 오빠가 학교를 다니는데 엄마가 서울에서 돈을 벌어 부쳐주면 그걸로 월사금을 빨리 내줘야 우리오빠가 안 쫓겨오는데요. 월사금을 안주니까 우리 오빠가 맨날 쫓겨오는 거에요.

호적 정리

<행방 불명으로 정리>

A(서보석): 호적정리는 안 했죠. 우리아버지 지금도 살아계신 걸로 있어요. 행방 불명자로

정부의 노력

Q: 신고는?
A(서보석): 제가 남의 집 살고 오빠가 제가 어렸을 때 죽고 하니까 아버지가 날 찾아오리라 생각만 했죠 뭐.
Q: 정부에서 도움은?
A(서보석): 그게요. 6 25지나고 나서 우리들이 시골에 있을 때 아버지 없다고 송우리 지서에서 배급은 나왔어요. 옥수수 가루, 밀가루, 납작보리가 나오다라고요. 그런데 내가 열두 살 때 (서울에)올라와서 아에 안 내려가니까 취소가 됐다고 하더라구요.
정부에게 바라는 점

<피랍자 생사확인>
A(서보석): 나는요 정말 살아 계신지 그게 너무도 궁금해요. (우정희: 기술이 좋으니까 북한에서 살려뒀는지 아니면 북한 배반하고 나왔다고 죽였는지.. )그게 궁금하구요. 살아계시다면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은 게 소원이죠. 지금 같으면 나라에서 얘들 공부나 시키고 하지만, 그때도 군인 가족들, 죽거나 잡혀간 사람 애들은 혜택이 있었나 봐요. 근데 저는 행방 불명자(자녀)니까 그런 것도 없었죠. 나는 왜 아버지가 없을까 맨날 하늘에다 대고 ‘하나님 우리아버지 좀 빨리 보내주세요’ 맨날 그게 소원이었어요(눈물)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우정희): 나이 어릴 때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어. 얘(딸)은 지금 아버지 돌아오면 같이 살아라 하는데 미쳤냐구. 자살을 하면 했지 그렇게는 안 살아. 더럽혀진 몸을 가지고 어디를 또 가
Q: 미안해서 그러시는 거죠?
A(우정희): 나는 봐도 면목이 없어. 아들이 살았으면 떳떳했을 텐데 아들이 죽었으니 봐도 면목이 없어. 만나도 할말이 없지. 사랑은 무척 했지. 나는 나이가 어려서 싫어했는데 나를 아주 대게 사랑 했다고. 예뻐하면 모해 같이 살질 못했는데(한숨).

A(서보석): 아버지 얼굴도 모르지만 아버지 살아계신다면 꼭 한 번 보고 싶어요. 아버지~ 애기였던 딸이 이렇게 늙어서 얼굴도 모르겠지만 보고 싶은 게 소원입니다. 꼭 살아계시기를 너무나 소원하며 기도도 했어요. 정말 이 하늘 밑에 어디 계신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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