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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지영조 (증언자-지석연)
이름: 관리자
2013-09-16 10:51:33  |  조회: 2977


051102A 지영조 / 2005. 11. 2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지영조), 사진2(증언자:지석연)

피랍자
성명: 지영조 (池榮助)
생년월일: 1908년 10월 25일생(경기 고양군 출생)
당시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시도면 164
피랍일: 1950년 8월 20일 오후 6시경
피랍장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시도면 164 집 앞
직업: 농업, 민보단 단장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임신중), 자녀 3남 1녀
외모 및 성격 : 성격이 급한 편.

증언자
성명: 지석연(1937년생)
관계: 아들
증언 성격: 직접증언 V 간접증언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6.25 전쟁이 발발하고 남하하려 했으나, 한강 철교가 끊어져 피난을 실패하고, 안심하라는 인민군의 말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옴. 잠시 숨어있다가 곧바로 감시자들에게 밀고 당해 8월 20일경 소지루(지방좌익) 외 인민군에게 마포경찰서로 연행되어감. 피랍자는 당시 민보단 단장을 하시며 조직적인 단원들의 훈련을 맡아 했고, 지역사회의 어렵고 힘든 사람을 많이 도움. 1사단 감찰부장과 만나면서 군부대와도 관계를 맺으며 활동해 인민군들의 감시를 받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납북자 명예 회복 및 정부의 배려







“당시 6.25가 나니까 대한 청년 단원들이 전화기가 다 끊어지니까 우리 집에 약 50미터 간격을 두고 대원들이 쫙 서가지고는 ‘의정부 들어왔다’ ‘동두천 들어왔다’ 우리집까지 연락이 들어오고 했어요. 그렇게 조직이 있었다구요. 그리고 동네 다니면서 안내도 하고, ‘대처는 어떻게 하라’, ‘피난은 어떻게 하고 배도 어디에 있다’ 알려주고 그랬어요. 그 사람들 일 많이 했어요. 그리고 심지어는 채 후퇴 못한 군인들과 합세해서 난지도 교전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나 그 사람들 지금 아무런 정부의 배려도 없어요.”

납북 경위

<6.25 전쟁이 발발하고 남하하려 했으나, 한강 철교가 끊어져 피난을 실패하고, 안심하라는 인민군의 말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옴. 잠시 숨어있다가 곧바로 감시자들에게 밀고 당해 8월 20일경 소지루(지방좌익) 외 인민군에게 마포경찰서로 연행되어감>

Q: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A: 아버님이 전쟁이 나니까 우리 집에는 12연대 중대장이 살고 있었어요. 그 분이 옹진 전투를 계속 하셨던 분인데 그 가족이 우리 집에서 살았어요. 전쟁이 난 이튿날 군대를 철수하고 중대장이 와서는 아버님한테 계시면 상황이 나쁘니까 식구들도 모두 피하라고 하고…. 그 때 이미 이북 전투기가 폭격을 하고 수색역을 폭파시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들어오셔서 안되겠다 정말 위험하니 일단은 혼란을 피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식구들하고 대충 챙겨서 연희동으로 왔어요. 연희동에 친척집이 생각나서 그 집엘 들어간 거에요 그래서 아버지는 밤에 우리 식구들은 (연희동에) 두고 남하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얼마 안 돼서 창문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한강 철교 끊어지는 당시죠. 그래서 아버지가 한강을 못 건너고 다시 오셨더라구요. 그 때 한강다리가 안 끊어졌으면 납치를 안 당하셨는데…. 그 당시 아버지가 오셔서 하는 말이 아버님이 남의 말을 좀 잘 믿으세요. 그 때 당시 빨치산인 것 같아요 우리 인민군은 들어오면 절대 정치 보복 안하고 여러분 모두를 자기네 식구로 인정하니까 안심하고 피난 가지 말고 집으로 가라고 한 모양이야.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 거기(연희동) 한 이틀 머물다가 덕은리 우리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거에요. 그 때는 벌써 인민군들이 지나가고 1사단 본부는 그 쪽이 모두 진을 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숨어계시는데 치안대, 내무서가 동네에 서 드라구요. 그런데 시골 동네 조그만 곳이니까 누가 어디에 숨어있고 누구 네가 어딨고 다 알자나요. 그런데 치안대 대장이란 사람이 우리 집에 왔는데 그 사람은 생각이 달랐나봐요. 이 사람은 이 전쟁은 (국군이) 다시 들어온다면서 인민군이 진다는 걸 예견을 했어요. 그래서 자기가 있는 동안은 자기가 우리를 도와주고 수복되면 자기를 도와달라는 얘기를 하는 걸 들었어요. 그랬는데 난데없이 해방직후 남로당이니 그런 게 있었는데 우리 집 아래 소 지루라는 사람이 대한 청년단에 잡혀간 거에요 그 집 여자가 아침이면 우리 집에 와서 울고 불며 자기 아들 구해달라고 해서 그 때는 이웃사촌도 친척 같은 정신으로 살았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가 고양 경찰서인지가서 내가 책임질 테니 내 놔라 했어요. 이건 6.25 전쟁 전이죠. 그런데 그 사람이 나와서 바로 이북으로 들어갔다가 6.25가 나니까 바로 내려와 아버님이 집에 있는 걸 알고 집을 급습을 했다구요. 그 옆에 아버님과 형제같이 지내던 분인데 전투경찰 대장이 숨어있었어요. 인민군 대위 정도 되는 사람하고 인민군 두 명하고 내무서원 두 명하고 우리 집에 와서 아버님을 체포하려고 에워쌌어요. 그래서 아버님이 먼저 잡히시고 그 뒤에 전투경찰을 잡았다구요. 그렇게 두 분이 인민군에게 체포가 됐는데 아버지가 가시다가 저한테 "얘 너 가서 내 농구화를 가져오라" 해서 가져다 드리니까 "그래 들어가 봐라" 하시더라구. 그렇게 인민군에서 잡혀서 큰 느티나무 밑으로 가시고 조금 있으니까 전투경찰도 잡혀 오더라구. 그런데 소지루라는 사람도 거기 있구요. 그 사람이 전부 통제를 하는 거지. 엄청난 은혜를 입은 사람인데 그렇게 된 거지. 전투경찰을 한 사람은 근데 벌써 눈이 틀리고 행동이 예민해 지는 게 이상하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동네 저쪽 사상을 가진 사람이 내무서원 서기를 보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와서 인민군 장교한테 잠깐만 얘기하자 하니까 잠깐 얘기하는 사이에 그 전투 경찰은 산으로 탈출하는데 내가봐도 안 보일 정도로 뛰더라고요. 따발총 쏘고 발칵 뒤집히니까 이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한테 대한 감시가 더 심했죠. 그래서 꼼짝없이 걔네들 차에 실려갔죠.

납치이유

<민보단 단장을 하시며 조직적인 단원들의 훈련을 맡아 했고, 지역사회의 어렵고 힘든 사람을 많이 도움. 1사단 감찰부장과 만나면서 군부대와도 관계를 맺으며 활동해 인민군들의 감시를 받음>

A: 그 사람들은 대한 청년단 서북 청년단을 제일 이를 갈던 직책들이고 부서였다고. 제일 악날하게 보복을 당한 사람들이어서 우리 아버님도 그렇게 된 거에요..

납치 후 소식

<처음 연행됐던 마포 형무소 및 집단 학살이 있었던 장소를 모두 찾아봤으나 소식은 물론시신 조차 찾을 수 없음>

A : 그 이후로는 마포 형무소에 계신 걸로 알고 있었죠. 그날 서기가 대신 잡혀갔는데 마포형무소에서 조사를 받다가 서기는 보름만인가 석방돼서 나오는데 형무소에서 아버님 얼굴을 보니까 아버님 얼굴에 뺑기칠이든지 골탄을 칠해놨던지 시커멓고 그걸 본 게 마지막이었다고 하더라구요. 9.28 수복되고는 미아리 고개로 끌고 갔다는 소리도 들리고 그래서 나는 어리니까 큰아버지가 마포형무소에 가보니 학살당한 사람들이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시체로 있더래. 그걸 하나하나 다 뒤진 거야. 그리고 혹시나 서대문 형무소에서 당하진 않았나 해서 찾아보고 여튼 서울 시내 학살시켰다는 곳은 다 찾았는데 아버님 시체는 못 찾았어요.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가장이 납북된 후 유복자였던 동생은 출생 후 일주일 만에 죽고, 어머니가 4남매를 데리고 농사로 생계를 유지, 결국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많이 겪음 >

A: 사실은 아버님 그렇게 되고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우리 어머님이 1.4 후퇴 때 출산을 했어요. 근데 동네 사람들이 여기 있으면 저 사람들(인민군) 오면 다 죽는다고 떠나라고 해서 (출산한 지) 일주일도 안돼서 겨울 피난길, 한강 얼음 길을 넘어 평택까지 가다가 그 아이는 바로 죽었어요. 그러니까 어머니도 산후 조리를 못하시니까 몸이 약해지셔서 병도 있고 고생을 많이 하셨고, 또 돌아오셔서는 그 농사를 어머니 혼자 다 하신 거에요. 집안에 가장이 없고 형님은 군대 가고, 나는 어리고 하니까 어머니 혼자 엄청나게 고생하다가 결국은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일종의 한이 맺혀서 돌아가셨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신고는?
A: 신고는 형님(장남)이 하셨는데, 형님은 목사 생활을 하시면서 요새는 일을 잘 안 하시고 그러셔서 이제는 내가 나서는데 많이 적십자에도 신고도 하고 여러 가지로 다 했는데 지금 별다른 진전도 없고, 그러나 다행이 납북자 협의회가 생기는 바람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하는 일이면 무조건 참석하려고 하고 있죠.

Q: 정부의 지원이나 노력은?
A: 정부의 도움은 전혀 없었고, 기억으로는 고양경찰서장으로부터 감사패가 온 기억이 나요.

호적정리

<사망정리>
A: 실종신고로 됐는데 어느 해인가 자동적으로 사망으로 되더라구요. 형님이 그건 그렇게 한 것 같아요
연좌제 피해

<특별한 피해는 없었으나, 군대 시절 신원 조회로 어려움을 겪었음>
A: 그런 건 없었어요. 근데 그런 거는 우리 형님도 공군에서 근무했고, 나도 해군을 했는데 그 때 훈련 도중에 보안대로 불려갔어요. 그 때만 해도 군함이 몇 척 없었는데 배를 타려면 신원조회를 해야 되는데 아버님이 사망신고가 안 되니까 살아계신 걸로 신원조회가 되고 나는 돌아가신 걸로 썼고 그게 걸려서 잡혀서 혼났어요. '너희 아버지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어 이북에 간 거 아니냐?'는 식으로. 그래서 내가 얘길 했어요. "사망신고 하려고 했는데 되지도 않고 결국 안 계시니까 사망으로 했어요" 했더니 이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고양 경찰서로 연락을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고양경찰서에서 "절대 아니고 조사할 필요도 없고 그 집 신분 참 좋고 자기들이 보증한다"고 했나 봐요. 그러니까 대장이 "우리가 보호해 줄 사람을 곤욕을 치르게 하니 잘못된 것 아니냐"고 차로 훈련소로 데려다 주고 "미안하다"고 하더라구요. 그 때는 자유당 때 따뜻하게 물어보지 않잖아요. 그렇게 대게 혼이 난 기억이 있죠
정부에게 바라는 말

<납북자 명예 회복 및 정부의 배려>
A: 납북길 따라 걷기를 하면서 가족들을 만나보니 전부들 나와 같은 얘기를 하더라구요. 우리는 돈도 싫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나부터도 '아버님이 참 헛된 죽음을 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지금 하도 누가 알아주길 합니까? 자식들에게 혜택이 옵니까? 결국 그것이 자식들에게 엄청난 곤욕만 끼치는데 그리고 지금 현재도 난 바라는 게 아버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셨으니까 명예 회복이라든가 조그마한 정도의 통일부라든가 정부에서 배려를 했으면 좋겠는데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간 사람들만 불쌍하지 않습니까? 우리 그 때 당시 6.25가 나니까 대한 청년 단원들이 전화기가 다 끊어지니까 우리 집에 약 50미터 간격을 두고 대원들이 쫙 서가지고는 의정부 들어왔다 동두천 들어왔다 우리집까지 연락이 들어오고 했어요. 그렇게 조직이 있었다구요. 그리고 동네 다니면서 안내도 하고 대처는 어떻게 하라 피난은 어떻게 하고 배도 어디에 있다 알려주고 그랬어요. 그 사람들 일 많이 했어요. 그리고 심지어는 채 후퇴 못한 군인들과 합세해서 난지도 교전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나 그 사람들 지금 아무런…. 데모하다 죽어도 민주화 운동이다라 하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목숨을 내놓고 가족들까지 피해를 입으며 그렇게 했는데, 지금 정부는 너무 무관심하고, 그런 섭섭한 생각이 들지요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참 아버님이 바쁘진 중에서도 집에 오시면 집안일을 살피고 늘 그러셨는데, 이제야 어떻합니까? 돌아계셨으리란 생각이 들고 같이 살았더라면 비록 내가 못나도 효자 흉내라도 냈을 건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님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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