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관리자
2013-09-16 10:52:05 | 조회: 3844
051103A 양승욱 / 2005. 11. 3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양승욱), 사진2(증언자:홍양선)
피랍자
성명: 양승욱(梁承旭)
생년월일: 1918년 11월 18일(서울 출생)
당시 주소: 서울 성동구 신당동
피랍일: 1950년 7월 14일 경
피랍장소: 서울 성동구 신당동 자택 인근
직업: 외자청 구매 국장 (고시 출신, 前 평북 좌성 군수)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4녀
외모 및 성격 : 미남형
증언자
성명: 홍양선(1922년생)
관계: 배우자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고시에 패스해 평북에서 군수를 하다가 6. 25 당시에는 외자청 구매국장으로 근무 중이었음. 피랍자의 처와 자녀들은 전쟁이 나자마자 친정의 도움으로 수원으로 내려가고, 피랍자는 서울에 계신 부모님과 직장 때문에 잠시 서울에 머물다가 한강 다리가 끊어져 남하하지 못함, 도중에 부하로 있던 김모씨에 의해 정치 보위부로 끌려갔다는 후문이 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음.
“일본 간 사람들은 왜 독립운동을 했냐면 제국주의가 싫은 거야. 그래서 일본 회사는 안가. 자유업을 했지. 우리 삼촌도 법대 나와도 공무원안 하는 거야. 그래서 은행에 다니고. 결국 사상은 독립 쪽으로 기울고 제국주의 반대하고. 그러니 월북한 사람들도 다 공부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결국 한 집안에서 납치 당해가고 월북하고. 오빠는 월북했거든. 그러니까 뭐 엉망이지.”
“동기들도 여수 순천서 고시파들이 아주 혼났어. 여순사건 때 처갓집 갔다가 강창구란 사람은 학살당하고, 이병순이란 사람도 6.25때 없어졌고, 우리(남편)도 없어졌고, 남은 사람이 김영선이라고 통일원 장관 하던 사람이랑 서울대 동기 박동식이란 사람이고.”
납북 경위
<피랍자의 처와 자녀들은 6.25 전쟁 직후 수원으로 내려가고, 피랍자는 서울에 계신 부모님과 직장 때문에 잠시 서울에 머물다가 한강 다리가 끊어져 남하하지 못함, 도중에 부하로 있던 김모씨에 의해 정치 보위부로 끌려갔다는 후문이 있음>
A: 신당동에서 살고 있었어요. 우리 큰딸이 청구 국민학교를 다녔거든. 근데 6.25가 나니까 동생 남편이 전화를 걸어서 (인민군이) 오지는 못할 테니… 믿었으니까 정부를… 얘들하고 아우성 치는 거 듣지 말고 빨리 수원으로 가서 기다려라 검찰청 서류 가는데 차가 가는데
태워가지고 갈테니 해서 가는데 남편은 나중에 오라고 하고 우리는 먼저 간 거지. 그랬는데 한강 다리가 끊긴 거야. 그러니까 아무리 오려고 해도 못 온 거지. 그리고 직장이 있으니까 그 때 김우평씨가 청장이었는데 그 분이 ‘나하고 같이 가자’ 하니까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나오니까 한강 다리가 끊겨서 도로 들어 간 거야. 그러다가 길에서 외자청의 과장을 만났는데, 그게 빨갱이란 말이야. 몰랐지. 전혀 몰랐지. 그 때 연탄 땔 때니까 숯도 한 가마 가져다 주고 그랬어요. 유독 참 친절하게 하니까 '그 과장 사람 참 괜찮다' 생각만 한 거지. 근데 그 사람이 "국장님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나하고 같이 가자" 하면서 정치 보위부에 넘긴 거야. 김 과장이 그랬다는 건 나중에 풍문으로 들었어요. 나는 피난민들이 계속 내려오니까 수원에서 매일같이 기다리고만 있는 거지 처음 그날은 같이 있었어. 나 데려다 주고 온다고 (차를)탔더니 부모님이 '우린 어떡하냐?' 하셔서 외아들이니까 내렸지. 내리고 나서 (한강이) 끊어진 거야.
납치이유
<고위 공무원이었기 때문으로 추정>
Q: 납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무조건 공무원이니까 고관. 그 때 국장이면 일본 아이들 틈에서 힘들 때야. 근데 이 사람 얘기는 같이 공부를 해야 걔네들을 이긴대. 일본 간 사람들은 왜 독립운동을 했냐면 제국주의가 싫은 거야. 그래서 일본 회사는 안가. 자유업을 했지. 우리 삼촌도 법대 나와도 공무원안 하는 거야. 그래서 은행에 다니고. 결국 사상은 독립 쪽으로 기울고 제국주의 반대하고. 그러니 월북한 사람들도 다 공부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결국 한 집안에서 납치 당해가고 월북하고. 오빠는 월북했거든. 스탈린 전집 번역하고 그랬어. 그러니까 뭐 엉망이지
Q: 오빠가 월북이면 혹시 북한에서 남편 분을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을지?
A: 그거는 안 된대. 아는 척을 안 하기로 돼 있대. 소식에 들으면. 오빠도 몰라. 오빠는 나중에 사람들 시켜서 얘들 셋이랑 다 데려갔어.
납치 후 소식
<소식 없음>
Q: 찾아보진 않으셨나요?
A: 없지. 국장급이라도 아주 높은 사람 장관급 소식은 들려요. 근데 안 들려. 동기들도 여수 순천서 고시파들이 아주 혼났어. 여순사건 때 처갓집 갔다가 강창구란 사람은 학살당하고
이병순이란 사람도 6.25때 없어졌고, 우리(남편)도 없어졌고, 남은 사람이 김영선이라고 통일원 장관 하던 사람이랑 서울대 동기 박동식이란 사람이고.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시댁과 처가 모두 부유한 편이라 큰 생활고는 없이 살 수 있었음. 부모님들은 점도 보고 했으나, 홍양선씨는 자녀교육에만 매달려 살았음>
A : 나중에 서울 수복되고 올라와서 친정에 와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강원도 화성에 살자고 해서 가서 살다가 큰 딸이 학교를 다녀야 할 때가 된 거야. 그러니까 시아버지가 아이들 대학까지 보내 준다고 해서 서울 통위동으로 왔어. 그리고 혹시 내가 어딜 갈까 봐 시아버지가 취직하지 말라 해서 나는 취직을 안하고 그냥 시댁에서 있는 땅 거의 헐값에 팔아가면서 아이들 공부시키신 거지. 또 남편 간 후로 양쪽 부모님 맨날 점 보러 다니는 거라. 그 때는 몇 월이면 통일 될 거다 몇 월에 해방된다 그렇게 몇 년을 속아가며 산 거지. 나는 오거나 말거나 애들만 기르면서 살고. 그래도 나는 별로 고생 안 했어요. 우리 친구네도 납치자가 많아. 일류 서울 법대, 서울 의대 다녔던 신랑을 다 데려 간 거야. 근데 엄마들이 학교 선생도 하고, 별 짓 다해서 얘들은 일류로 만들어 놓은 거지. 나는 성당에만 다니고, 애들 잘 자라준 거 고맙고 그렇지
연좌제
<없었음. 오히려 고관에 남편 동기들이 많이 재직 중이라 납치된 사실을 인정받고 도움을 입기도 했음>
A: 6.25 때는 납치자들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어. 애들 공부할 때도 무슨 명예직처럼 대우를 받았다구. 월북한 사람하고 납치자하곤 차이가 나니까. 동료들이 있으니까 (납치된 걸) 다 알지.그 때 김영선이라고 동기는 통일 장관 했었고, 박종식이라고 정일권씨 장인어른도 있었고. 내가 증명해달라고 쫓아 다녔지. 증명 받아서 아들 군인가도 받고.
호적 정리
A: 호적은 아버님이 없앴나 봐.
정부의 노력
<전혀 없었음>
Q: 신고는?
A: 신고도 없어. 그때는. 그러니까 증명할 길이 없다고. 동기들이나 알지. 신고하면 뭐해. 나라가 맥을 못 추는걸 뭐. 적십자사에 신고된 것은 시아버지가 했나 봐.
Q: 정부의 노력은?
A: 전혀. 나라가 맥도 못 추는데 뭘 줘
정부에게 바라는 점
<없음>
A: 내 머리에서 다 정리해서 바라지도 않아. 내 머리에서 지우고 싶어서. 이젠 완전히 잊어버리려고 나 죽으면 사진이랑 모두 태워서 납골묘에 넣어달라 하고.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몰라. 어떻게 살아졌는지도. 잊어버리는 데 한 10년 걸리더라구. 잊어버려야 살지 그 생각 하면 미치지. 살아? 만날 일도 없고 그런 가상도 안 해요. 맘에서 꼭 지워버렸다니까요.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양승욱), 사진2(증언자:홍양선)
피랍자
성명: 양승욱(梁承旭)
생년월일: 1918년 11월 18일(서울 출생)
당시 주소: 서울 성동구 신당동
피랍일: 1950년 7월 14일 경
피랍장소: 서울 성동구 신당동 자택 인근
직업: 외자청 구매 국장 (고시 출신, 前 평북 좌성 군수)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4녀
외모 및 성격 : 미남형
증언자
성명: 홍양선(1922년생)
관계: 배우자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고시에 패스해 평북에서 군수를 하다가 6. 25 당시에는 외자청 구매국장으로 근무 중이었음. 피랍자의 처와 자녀들은 전쟁이 나자마자 친정의 도움으로 수원으로 내려가고, 피랍자는 서울에 계신 부모님과 직장 때문에 잠시 서울에 머물다가 한강 다리가 끊어져 남하하지 못함, 도중에 부하로 있던 김모씨에 의해 정치 보위부로 끌려갔다는 후문이 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모든 것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음.
“일본 간 사람들은 왜 독립운동을 했냐면 제국주의가 싫은 거야. 그래서 일본 회사는 안가. 자유업을 했지. 우리 삼촌도 법대 나와도 공무원안 하는 거야. 그래서 은행에 다니고. 결국 사상은 독립 쪽으로 기울고 제국주의 반대하고. 그러니 월북한 사람들도 다 공부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결국 한 집안에서 납치 당해가고 월북하고. 오빠는 월북했거든. 그러니까 뭐 엉망이지.”
“동기들도 여수 순천서 고시파들이 아주 혼났어. 여순사건 때 처갓집 갔다가 강창구란 사람은 학살당하고, 이병순이란 사람도 6.25때 없어졌고, 우리(남편)도 없어졌고, 남은 사람이 김영선이라고 통일원 장관 하던 사람이랑 서울대 동기 박동식이란 사람이고.”
납북 경위
<피랍자의 처와 자녀들은 6.25 전쟁 직후 수원으로 내려가고, 피랍자는 서울에 계신 부모님과 직장 때문에 잠시 서울에 머물다가 한강 다리가 끊어져 남하하지 못함, 도중에 부하로 있던 김모씨에 의해 정치 보위부로 끌려갔다는 후문이 있음>
A: 신당동에서 살고 있었어요. 우리 큰딸이 청구 국민학교를 다녔거든. 근데 6.25가 나니까 동생 남편이 전화를 걸어서 (인민군이) 오지는 못할 테니… 믿었으니까 정부를… 얘들하고 아우성 치는 거 듣지 말고 빨리 수원으로 가서 기다려라 검찰청 서류 가는데 차가 가는데
태워가지고 갈테니 해서 가는데 남편은 나중에 오라고 하고 우리는 먼저 간 거지. 그랬는데 한강 다리가 끊긴 거야. 그러니까 아무리 오려고 해도 못 온 거지. 그리고 직장이 있으니까 그 때 김우평씨가 청장이었는데 그 분이 ‘나하고 같이 가자’ 하니까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나오니까 한강 다리가 끊겨서 도로 들어 간 거야. 그러다가 길에서 외자청의 과장을 만났는데, 그게 빨갱이란 말이야. 몰랐지. 전혀 몰랐지. 그 때 연탄 땔 때니까 숯도 한 가마 가져다 주고 그랬어요. 유독 참 친절하게 하니까 '그 과장 사람 참 괜찮다' 생각만 한 거지. 근데 그 사람이 "국장님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나하고 같이 가자" 하면서 정치 보위부에 넘긴 거야. 김 과장이 그랬다는 건 나중에 풍문으로 들었어요. 나는 피난민들이 계속 내려오니까 수원에서 매일같이 기다리고만 있는 거지 처음 그날은 같이 있었어. 나 데려다 주고 온다고 (차를)탔더니 부모님이 '우린 어떡하냐?' 하셔서 외아들이니까 내렸지. 내리고 나서 (한강이) 끊어진 거야.
납치이유
<고위 공무원이었기 때문으로 추정>
Q: 납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A: 무조건 공무원이니까 고관. 그 때 국장이면 일본 아이들 틈에서 힘들 때야. 근데 이 사람 얘기는 같이 공부를 해야 걔네들을 이긴대. 일본 간 사람들은 왜 독립운동을 했냐면 제국주의가 싫은 거야. 그래서 일본 회사는 안가. 자유업을 했지. 우리 삼촌도 법대 나와도 공무원안 하는 거야. 그래서 은행에 다니고. 결국 사상은 독립 쪽으로 기울고 제국주의 반대하고. 그러니 월북한 사람들도 다 공부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결국 한 집안에서 납치 당해가고 월북하고. 오빠는 월북했거든. 스탈린 전집 번역하고 그랬어. 그러니까 뭐 엉망이지
Q: 오빠가 월북이면 혹시 북한에서 남편 분을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을지?
A: 그거는 안 된대. 아는 척을 안 하기로 돼 있대. 소식에 들으면. 오빠도 몰라. 오빠는 나중에 사람들 시켜서 얘들 셋이랑 다 데려갔어.
납치 후 소식
<소식 없음>
Q: 찾아보진 않으셨나요?
A: 없지. 국장급이라도 아주 높은 사람 장관급 소식은 들려요. 근데 안 들려. 동기들도 여수 순천서 고시파들이 아주 혼났어. 여순사건 때 처갓집 갔다가 강창구란 사람은 학살당하고
이병순이란 사람도 6.25때 없어졌고, 우리(남편)도 없어졌고, 남은 사람이 김영선이라고 통일원 장관 하던 사람이랑 서울대 동기 박동식이란 사람이고.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시댁과 처가 모두 부유한 편이라 큰 생활고는 없이 살 수 있었음. 부모님들은 점도 보고 했으나, 홍양선씨는 자녀교육에만 매달려 살았음>
A : 나중에 서울 수복되고 올라와서 친정에 와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강원도 화성에 살자고 해서 가서 살다가 큰 딸이 학교를 다녀야 할 때가 된 거야. 그러니까 시아버지가 아이들 대학까지 보내 준다고 해서 서울 통위동으로 왔어. 그리고 혹시 내가 어딜 갈까 봐 시아버지가 취직하지 말라 해서 나는 취직을 안하고 그냥 시댁에서 있는 땅 거의 헐값에 팔아가면서 아이들 공부시키신 거지. 또 남편 간 후로 양쪽 부모님 맨날 점 보러 다니는 거라. 그 때는 몇 월이면 통일 될 거다 몇 월에 해방된다 그렇게 몇 년을 속아가며 산 거지. 나는 오거나 말거나 애들만 기르면서 살고. 그래도 나는 별로 고생 안 했어요. 우리 친구네도 납치자가 많아. 일류 서울 법대, 서울 의대 다녔던 신랑을 다 데려 간 거야. 근데 엄마들이 학교 선생도 하고, 별 짓 다해서 얘들은 일류로 만들어 놓은 거지. 나는 성당에만 다니고, 애들 잘 자라준 거 고맙고 그렇지
연좌제
<없었음. 오히려 고관에 남편 동기들이 많이 재직 중이라 납치된 사실을 인정받고 도움을 입기도 했음>
A: 6.25 때는 납치자들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어. 애들 공부할 때도 무슨 명예직처럼 대우를 받았다구. 월북한 사람하고 납치자하곤 차이가 나니까. 동료들이 있으니까 (납치된 걸) 다 알지.그 때 김영선이라고 동기는 통일 장관 했었고, 박종식이라고 정일권씨 장인어른도 있었고. 내가 증명해달라고 쫓아 다녔지. 증명 받아서 아들 군인가도 받고.
호적 정리
A: 호적은 아버님이 없앴나 봐.
정부의 노력
<전혀 없었음>
Q: 신고는?
A: 신고도 없어. 그때는. 그러니까 증명할 길이 없다고. 동기들이나 알지. 신고하면 뭐해. 나라가 맥을 못 추는걸 뭐. 적십자사에 신고된 것은 시아버지가 했나 봐.
Q: 정부의 노력은?
A: 전혀. 나라가 맥도 못 추는데 뭘 줘
정부에게 바라는 점
<없음>
A: 내 머리에서 다 정리해서 바라지도 않아. 내 머리에서 지우고 싶어서. 이젠 완전히 잊어버리려고 나 죽으면 사진이랑 모두 태워서 납골묘에 넣어달라 하고.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몰라. 어떻게 살아졌는지도. 잊어버리는 데 한 10년 걸리더라구. 잊어버려야 살지 그 생각 하면 미치지. 살아? 만날 일도 없고 그런 가상도 안 해요. 맘에서 꼭 지워버렸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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