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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박기성 (증언자-박금석)
이름: 관리자
2013-09-16 10:26:57  |  조회: 2131


050527A 박기성 / 2005. 5. 27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박기성), 사진2(증언자:박금자)

피랍자
성명: 박기성 (朴基成)
생년월일: 1920년경 (서울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양평동
피랍일: 1950년 7월경
피랍장소: 서울시 양평동
직업: 제재소 운영
직계가족/부양가족: 장모, 배우자(임신 중), 자녀 2녀
외모 및 성격 : 키가 크고 미남형

증언자
성명: 박금석(1948년생)
관계: 딸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피랍자의 장인이 운영하던 제재소에서 책임을 맡아 근무하던 중 전쟁을 맞음. 직원들을 공장에 피신시켰다가 장인 최종환씨는 인민군에서 총살 당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직원의 밀고와 협박으로 박기성씨도 연행, 영등포 얼음 창고로 끌려가 머리를 삭발 당한 뒤 이튿날 포승줄에 묶여 납북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 확인 및 대북 관계에 적극적인 태도로 임할 것, 하루 빨리 남북통일이 돼서 피랍자는 물론, 피랍자의 북한 가족이라도 살아 있다면 상봉했으면 하는 것이 바램임








우리 제재소에 직원들이 많았는데 전쟁이 나고 다 피신을 해야 되니까 외할아버지가 제재소에 톱밥 쌓아놓은 데다가 직원을 다 숨겨놓고 있었대요.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밖을 내다보니까 국군이 오는 것 같아서 ‘만세’ 하면서 나간 거야. 그런데 적군들이어서 그 자리에서 총살을 당하신 거에요. 저희 외할아버지는 최종환씨라고 그 당시 제재소 일하시면서 당시 독립운동에 자금조달도 좀 하시고 언제든지 그런 투사적인 마음이 있는 분이었어요. 그리고 며칠 안돼서 아버지도 우리 공장에 일하던 직원이 밀고하고, 협박해서 끌고 간 거에요.

“정부에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게 알면 우리를 협박하러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외부 사람을 안 만났어요. 혹시라도 그 남아있는 돈까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그런 요청을 안 하셨어요.”

“빨리 남북통일이 돼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으면 만일 우리 아버지가 장가를 가서 가족이 있다고 생각하면 형제라도 만나면 너무 반가울 것 같아. 그 이상 더 바람은 없죠.”

납북 경위

<피랍자의 장인이 운영하던 제재소에서 책임을 맡아 근무하던 중 전쟁을 맞음. 직원들을 공장에 피신시켰다가 장인 최종환씨는 인민군에서 총살 당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직원의 밀고와 협박으로 박기성씨도 연행, 영등포 얼음 창고로 끌려가 머리를 삭발 당한 뒤 이튿날 포승줄에 묶여 납북됨>

Q: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A: 아버지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오셔서 양평동에서 제재소를 하고 계시는 외할아버지의 공장 관련 일을 도왔어요. 우리 제재소에 직원들이 많았는데 전쟁이 나고 다 피신을 해야 되니까 외할아버지가 제재소에 톱밥 쌓아놓은 데다가 직원을 다 숨겨놓고 있었대요.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밖을 내다보니까 국군이 오는 것 같아서 ‘만세’ 하면서 나간 거야. 저희 외할아버지는 최종환씨라고 그 당시 제재소 일하시면서 당시 독립운동에 자금조달도 좀 하시고 언제든지 그런 투사적인 마음이 있는 분이었어요. 그러니 국군 같아 보여서 바로 뛰어 나갔는데, 적군들이어서 그 자리에서 총살을 당하신 거에요. 그 때는 외할아버지 장사를 치를 수도 없어서 저희 아버지가 싣고 가서 염창동에 묻으셨어요. 거기에 옹기 두 개를 엎어 표시를 해 놓고. 그래서 나중에 어머니와 시신을 찾아서 장례를 치뤘죠. 외할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큰댁으로 잠시 갔다가 돌아오셔서는 그 길로 잡혀가신 거에요. 우리 공장에 일하던 직원이 밀고하고, 협박해서 끌고 간 거에요. 잡혀가셔서 영등포 얼음창고에 집합했다가 그 이튿날 보니 끌어가려고 다 머리를 삭발시켰대요. 그리고 포승줄을 해서 거기서 끌고가는 거지. 엄마가 쫓아 나와서 살라 달라며 아버지를 부르니까 너네들도 총 다 쏘기 전에 빨리 비키라고 그랬대요. 엄마는 그 때 끝까지 못 쫓아간 게 한스럽다고 하더라고요.

납치 후 소식

<없음>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외할아버지도 총살 당하고, 가장도 피랍된 터라 남은 가족들이 집을 버리고 나옴. 집에 있던 돈을 몸에다 챙겨 나와서 생계는 유지했지만, 자녀들의 교육을 많이 할 수 없었음>

Q: 피난은?
A: 그 당시는 정말로 남자들을 다 잃어버리게 되니까 그 집을 버리고 나오신 거에요. 그러다 피난을 가야 되니 중요한 건 구루마에 싸고 우선 사무실에 있는 걸 정리하면서 돈을 자루에 담아 나오시는데 우리 외할아버지 영전을 방에 모셔놓고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나더래. '어서 돈을 챙겨 엄마하고 너하고 몸에다 차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래. 그래서 외할머니하고 엄마하고 돈을 방에서 챙겼고 그 사이 중요한 걸 실은 구루마는 작은 할아버지가 챙겨 가버리고. 우리는 이제 돈하고 몸뚱이 밖에 없어서 울면서 울면서 경기로 화란으로 피난을 가셨대요

Q: 생계는?
A: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산다고 해서 그냥 보리밥 먹은 것 아니고 이렇게 저렇게 살았어요. 먹고 사는 건 했지만 공부를 많이 못한 게 가슴 아프죠. 할머니가 많이 힘드셨고, 너무 가슴이 아프고 해서 다들 오래 살지 못하셨어요. 여자끼리만 살아야 되니까 엄청 어려운 일이 많은 거죠. 돈도 유지도 못하고 갖은 험한 소리들 다하고 그 서러움은 말도 못한 거죠.

Q: 그리움도 많았을 텐데?
A: 우리 어머니는 맨날 아침이면 밥해서 밥을 떠 놓으면서 뚜껑을 열면 습기가 차서 물이 떨어지는 걸 보고 매일같이 '네 아버지가 배고파서 운다'고 그러곤 했어요. 나도 양평동이 집인데 그 집을 버리고 근처 여기로 와서 지금까지 우리 아버지가 나를 찾을까 봐 이사를 못 가. 제가 여기(양평동) 산 지 50년이 넘었어요. 혹시라도 내가 멀리 가면 못 찾을까 봐.
참 바보 같은 얘긴데 이때까지 여길 지키고 있는 거에요.

정부의 노력

<없음>

Q : 신고는 하셨나요?
A : 신고를 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어요

Q : 가족을 찾고자 정부에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는지?
A :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게 그 당시 돈이 조금 있었으니 우리를 협박하러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외부 사람을 안 만난 거죠. 혹시라도 그 남아있는 것까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그런 요청을 안 하셨어요. 그냥 제가 성장하면서 지금은 자유총연맹이 됐지만 반공 연맹일을 봐 왔어요. 언젠가 통일이 되면 우리 아버지부터 찾으러 가야 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거기 일은 보고 있어요

Q : 그럼 정부 차원의 도움을 받지도 못했겠네요?
A : 정부에서 도움 줄 게 뭐가 있어요.그런 건 들어본 일도 없어요.

호적정리

<유복자가 성장하면서 군입대 문제로 피해를 입자, 향후 피해를 받지 않고자 사망 신고함>

연좌제 피해

<피랍자의 자녀가 군입대 과정에서 헌병 훈련을 받고도 섬으로 발령 나서 고생을 함>

A : 유복자 동생이 있었어요. 그 아이가 성장을 하고 군대를 보냈는데 헌병대 훈련까지 다 받았어. 헌병대에서 차출을 했는데 헌병 훈련을 다 받고는 갑자기 저기 먼 교동, 섬으로 보낸 거야. 그래서 내가 군위관을 만나서 해군본부에서 그 어려운 훈련을 다 받고 얘가 왜 여기까지 왔냐고 물으시니 아버지가 납북자라는 것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정부에게 바라는 말

<피랍자 생사 확인 및 대북 관계에 적극적인 태도로 임할 것, 피랍자의 북한 가족이 있다면상봉>

A: 정부가 그렇게 힘이 없느냐고 묻고 싶어요. 다른 일은 다 하면서, 납북자 가족 우리는 너무 억울하잖아요. 우리 나라도 이만큼 컸는데 하루라도 빨리 찾아주면 좋겠어요. 그 당시 납북자 명단을 지하에 파묻고 있었고, 우리는 명단을 찾았지만 그 중에는 훼손돼서 없어진 것도 있다고 하는데 그걸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파요. 정부가 너무 미진하다는 거야. 빨리 남북통일이 돼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으면 만일 우리 아버지가 장가를 가서 가족이 있다고 생각하면 형제라도 만나면 너무 반가울 것 같아. 그 이상 더 바람은 없죠.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아버지라고 불러 보고 싶어요. 앞에 계시면 불러보고 만져보고 싶은 거 그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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