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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우순 (증언자-김형목)
이름: 관리자
2013-09-16 10:29:01  |  조회: 2401


050607A 김우순 / 2005. 6. 7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김우순), 사진2(증언자:김형묵)

피랍자
성명: 김우순 (金雨順)
생년월일: 1904년 음력 5월 1일생(서울 종로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중구 을지로 1가 23번지
피랍일: 1950년 9월 3일
피랍장소: 서울시 중구 무교동 22번지(남일자동차상회)
직업: 상업(남일자동차상회운영), 前 경기 도청 직원
직계가족/부양가족: 모, 배우자, 자녀 1남 1녀
외모 및 성격 : 도수 없는 안경을 썼고 미남형.

증언자
성명: 김형목(1933년생)
관계: 아들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6월 28일부터 피랍자는 본인이 운영하던 남일 자동차 상회에 숨어 지냄. 그러던 중 9월 2일, 왜정 때 경기도청에서 함께 근무하던 지인이 자택을 찾아와 소식을 물어옴. 다음 날 가족들이 피랍자가 숨어있는 곳으로 그를 데려다 줬는데, 잠시 후 이웃 주민에 의해 그 친구가 피랍자를 끌고 갔다고 전해 옴. 이 후 정치 보위부, 서대문 경찰서 앞에서 포승줄에 묶여 트럭에 태워지던 것이 목격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확인 및 문제의 시급성을 알고 북한과의 회담과정에서도 당당한 요구를 해 줄 것







“6월 28일 새벽에 빨갱이 쳐들어올 때 국군이 그렇게 허망하게 패배할 줄은 아무도 몰랐죠. 라디오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사수한다. 걱정 마라. 내쫓는다' 하고 있고 하니 아무도 상황을 알 수 없었죠.”

“지금 북침이라는 미친놈들이 있지요? 내가 6월 25일 12시에 을지로 1가 23번지에 있었는데 경비행기가 확성기를 달고 채병덕 참모 총장 각하를 찾아서 한 20분 돌아 다니더라고. 그 날 밤에 이 빌어먹을 놈이 이 동네 다방 골 어디 기생촌에 가 있었나보지. 참모 총장을 찾으면서 경비행기가 저공비행을 하며 다녀요. 우리가 북침을 했다면 도대체 참모총장이 모르는 북침이 어딨습니까? 대전에서 전사했길래 망정이지 살아있으면 총살감 아니야. 그런데도 북침이라니. 얼빠진 놈들이. 그리고 얼 빨갱이들이 나와서 자기가 빨갱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놈도 나쁜 놈이다 저놈도 나쁜 놈이다’ 라며 거짓 고발하고 다니는 바람에 더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직업 및 활동

<자동차 부속상 운영>

A : 왜정 때는 경기도청을 다녔고, 해방후에는 무교동 22번지에서 남일자동차상회라는 자동차 부속상을 경영하던 중 사변이 났어요.

당시 시대 상황

<이승만 대통령의 거짓 방송으로 서울에는 전쟁 시작 후 3일까지도 피난을 하지 않은 가구가 허다함>

Q : 전쟁 당시 어떤 일을 하고 계셨는지?
A : 6월 28일 새벽에 빨갱이 쳐들어올 때 국군이 그렇게 허망하게 패배할 줄은 아무도 몰랐죠. 라디오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사수한다. 걱정 마라. 내쫓는다' 하고 있고 하니 아무도 상황을 알 수 없었죠. 그런데 밖이 이상하길래 새벽 6시쯤 골목에서 내다보니 탱크가 지나가요. 포탑에 333이라고 정확히 쓰인걸 봤어. 근데 아무리 봐도 우리 탱크 같지가 않아. 별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기분이 선득해서 도로 쫓아 들어갔더니 우리 면에서는 벌써 붉은 기가 어쩌고 인민군 방송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납북 경위

<6월 28일부터 피랍자는 본인이 운영하던 남일 자동차 상회에 숨어 지냄. 그러던 중 9월 2일 왜정 때 경기도청에서 함께 근무하던 지인이 자택을 찾아와 소식을 물어옴. 다음 날 가족들이 피랍자가 숨어있는 곳으로 그를 데려다 줬는데, 잠시 후 이웃 주민에 의해 그 친구가 피랍자를 끌고 갔다고 전해 옴>

Q : 피난은?
A : 피난은 못 갔죠. 갈 생각을 꿈에도 못했으니까. 송학산 38산 부근에서 꺼떡하면 충돌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그러다 격퇴하고 말겠지 하고 있었지, 사흘 만에 서울까지 밀려들어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지. 2-3일 지나니 분위기가 이상해 빨간 거 메고 달리는 놈들이 보이고, 형무소에서 나온 놈들 별놈이 다 보이고, 정구영이란 놈이 나를 찾아 잡으러 오고 하는 바람에 6월 28일 저녁서부터 아버지하고 나하고는 숨어버린 거에요. 아버지는 가게에 들어가서 숨고, 같이 있으면 같이 죽는다 해서 나는 다른 데 숨고. 그 당시 나도 만 17세 넘었고 건장했으니 붙들려 가면 의용군으로 가는 거야. 그래서 그날 밤부터 우린 숨어버린 거지

Q: 아버지는 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A: 아버지 납치당한 거는 9월 3일 오후 3시쯤 으로 기억해. 납치당하기 전날
9월 2일에 아버지 친구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는 어머니보고 '내가 우순이하고 전에 같이 있던 사람인데 걔도 고생할 텐데 소식을 알고 싶어 왔다' 하더래요. 그래서 '6월 28일 나가서는 소식이 없다' 하니까 '그럼 내일 다시 오겠다 하면서 가더래요. 그날 밤에 아버지가 숨어 계신데로 다음날 먹을 식사랑 요강을 어르신들이갖다 주면서 '아무개라면서 왔더라' 고 전하니까 아버지가 그 친구도 왜정 때 공무원이 돼서 지금 곤란할 것이라며 내일 또 오면 거기로 데려다 달라. 같이 숨어있겠다고 그러시더래요. 그래서 9월 3일날 그 친구가 오니까 '여&#44612;습니다' 하고 아버지 계신 문 앞에다 데려다 주고 온 거야. 그러다 이준범씨라는 동네 분이 오더니 우순이가 누구한테 잡혀가더라고. 밀짚 모자 쓰고 베잠방 입은 놈이 끌고 가더라 해요. 그런데 인상착의를 들어보니 아버지 친구 그 사람이야. 이름도 모르고 그냥 아버지와 경기도청에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인 거로만 알지.

납치 후 소식

<피랍 며칠 후 이웃 주민이 정치보위부,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피랍자가 포승줄에 묶어 트럭에 타는 모습 을 목격해서 전해 줌>

Q: 납치 후에 어디로 가셨는지 전해들은 거라도?
A: A : 아버지 납치 당하고 일주일 후에 동네 노인 한 분이 오더니 본인이 우리 아버지를 봤다 그러더래요. 그래서 어디서 봤냐니까 을지로 입구 국립 도서관 자리 앞에서 줄줄이 오랏줄에 묶여 타는데 아버지가 타는 걸 봤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도 그 사람을 보더니 손가락으로 두 번 손짓을 하길래 ‘아무래도 가족에게 소식을 전해달라 한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한 열흘 후쯤, 동네 어른이 돌아가셔서 동네 사람들이 장례를 지내고 오는데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또 (사람을) 줄줄이 엮어 트럭에 막 태우더랍니다. 묶여 타는 걸 보니까 아버지가 보이더래요. 아무리 봐도 자기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래요. 그래서 자기도 오래 있을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 없어 그냥 왔는데 오면서 보니까 트럭이 홍제동을 넘어가더래요. 그게 마지막이에요

Q: 가족을 찾으려는 노력은?
A:그러다 9월 28일 오후에 국군이 들어왔잖아요. 태극기 들고 옷도 우리 군복을 입고 미군도 있고. 그래서 만세 부르고 소리치며 종로까지 갔어요. 그 당시 보신각에 불이 타고 있더라고. 그 후에 이제 아버지를 찾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국립 도서관 자리, 정치 보위부 지하에 가 봤죠. 가 보니 시체 찾느라 정신이 없어서 냄새가 나는 지도 몰라요. 시체를 장작처럼 쌓아놨는데 이리저리 뒤지다 보면 시체가 &#50026;어서 다리가 뚝 떨어져 나오기도 하고. 남산에도 가고 서대문 형무소도 쫓아 다녀보고 하루 종일 물 한모금 못 먹고 통행금지 되기 전까지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서는 지쳐 쓰러져 울고 그랬어요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본 거주지(을지로)가 인근 고려문화사(붉은 지폐를 찍었다고 전해짐)폭격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음. 한 편, 피랍자의 아들도 장성한 연고로 의용군 차출이 걱정되어, 피랍자가 소유한 다동에 위치한 집 뒷 채에서 가족이 숨어 지냄. 9.28수복 이후 장남은 군대에 입대하고 피랍자의 어머니는 사망. 장남이 제대 후 전에 운영하던 가게(남일 자동차 부속상)를 다시 꾸려 운영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감>

Q: 남은 가족들의 생활은?
A: 아버지가 9월 3일 납치 당해 가셨는데 9월 13일에 우리 집이 폭격을 당했습니다. 지금 시청 앞에 고려 문화사라는 인쇄소가 있었어요. 나중에 보니 그 곳에서 붉은 지폐를 찍었대요. 그래서 거길 폭파하려고 그런 겁니다. 거기 길 하나 떨어져서 우리집이 있었는데 폭탄이 앞집 마당에서 떨어졌어요. 그 폭음에 숨을 못 쉴 정도였는데 우리 식구 모두 부엌 바닥에 엎드리고 숨어있다가 조용해져서 나와보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나오고 하더라고요. 나가 보니 폭탄이 막 떨어지니까 그 땐 사람들이 여기저기 도망가고 난리였어. 나는 다동에도 우리 집이 한 채 있어 그리로 도망갔는데 나중에 폭격 끝나고 집에 와보려 하니까 (인민군이) 골목 끝에 서서 의용군으로 잡아가려고 다 잡더라고. 그래서 나는 다동 집에서 계속 숨어서 안 나오고 있었지. 나중에 어른들한테 들어보니 폭격 때문에 우리 집 2층이 다 날아갔대. 그 사이 도둑도 들어와서 다 털어가고 남은 게 아무 것도 없고, 아버지가 즐겨 타시던 스케이트도 없어지고. 그래서 할 수없이 다동 집 뒷 채에 붙어서 그렇게 네 식구만 남아서 산거죠. 그리고 나는 군대엘 갔는데 가면서 할머니한테 '할머니 저 갑니다' 하고 갔었어. 학도병 가면서 살아올 생각을 못했거든. 그 때 군인 가던 사람들은 제대란 건 모르고 갔어요. 그 후에 내가 간지 달포 만에 할머니 돌아가시고.

Q: 생계는 어떻게?
A:그 때는 생계라는 것이 있는 거... 우선 귀금속은 물론이고 옷이고 양복이고 이불이고 요고 반반한 건 내다 파는 겁니다. 그 때 금반지 한 개 들어가면 보리 한 말입니다. 그러고 겨울 옷도 가져가면 보리 한 되, 미싱도 머리만 뽑아 왕십리에 가면 배추 5포기, 그렇게 9.28수복될 때까지 산 겁니다. 첨엔 피난 못 갔죠. 그 땐 간 사람이 이상한 겁니다. 그렇게 될 지 꿈에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나는 1.4 후퇴 전에 학도병으로 갔고 가족들은 이불보따리와 짐을 싸서 걸어서 피난을 갔다 왔대요. 그러다 내가 1년여 만에 다동 집으로 와보니 빈집이고 허허벌판 이더라구. 거기서 며칠 있으니 어머니가 외갓집 쪽으로 오시더구만. 사변을 그렇게 겪었어요. 그러고는 그 때부터 아버지가 하시던 남일 자동차 부속상에서 물건을 다시 닦아 진열하고 장사를 했어. 나도 사변 전에 면허를 맡았었고 아버지 어깨 넘어 배운 것도 있고 하니 했죠. 물건 판 것이 돈이 되고 한 동안 해서 먹고 살았어요. 장사는 곧 잘 됐어요. 그 후에 내가 중학 6학년에 복교하고, 경기여고 자리에 있는 서울 훈육소를 통해 졸업을 했죠.

Q: 아버님의 대한 그리움은?
A: 그리웠죠. 외아들이었는데. 내 누이동생은 이복 동생이에요. 내가 어렸을 때 생모와 아버지는 이혼을 하셔서 계모가 들어왔는데 아버지 납북 후 계속 연락은 했지만 그 어머니는 사변 동안 재가를 해갔어요. 누이동생은 내가 수성국민학교에 넣어 줬기 때문에 학교 가서 만나고 그랬어요. 지금은 그 애가 벌써 환갑이니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습니다.

정부의 노력

<신고 확인 외에 없었음>

Q : 신고는 하셨나요?
A:9.28 수복 후에 제가 직접 바로 했습니다. 그거 말고 정부 수복 후에 적십사사에 또 한번 했습니다. 그 기록은 지금까지 남아있더라구요.

Q : 정부 조치?
A: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번에 대한 적십자사에서 전화한 번 왔대. 또 통일부에서 공문이 한번 온 적이 있어. 생사확인 할 길이 없다. 다른 건 전혀 없죠.

연좌제 피해

<피랍자 장남의 군입대 시 신원조사가 매우 철저함>

Q : 연좌제 피해를 입은 것은 없었는지?
A: 내가 해군이었는데 그 때 신원조사니 하는 것이 엄청났습니다. 제가 해군 26기 시험을 보는데 제 번호가 없어요. 떨어졌나 보다 했더니 저쪽에 20명을 합격 예정자라고 따로 적어놓은 것이 있더라고. 남들은 그날 다 발표가 되는데 나는 그날 집결을 시키더니 ‘누구는 누구 집을 알아둬라’ ‘누구는 누구 집을 알아둬라’ 면서 20명을 연결을 시키더라고. 그리고 집에 가 있는데 이웃집 아줌마들이 야단이 났어. '그 집 아들이 무슨 일 있어요?'하면서. 경찰이고 헌병이고 별 사람이 다 와서 우리 집 얘길 묻고 가고, 신원조회를 엄격하게 하더라고.
그리고 들어갈 때 신원 자술서라고 8절지 앞뒤로 돼 설문지를 주더라고. 거기에 별에 별 걸 다 씁니다. 성장 과정부터 아버지 관계 등 하여간 내인생의 전부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걸 시도 때도 없이 네 번을 쓰니 조금이라도 거짓말하거나 틀리면 무조건 떨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합격을 시켰어요.

호적 정리

<실종자로 정리됨>

Q : 호적은 어떻게 남아있는지?
A: 9월 3일 납치 당해 가신 날을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내가 결혼할 때는 상관없었지만 내 딸을 시집 보내려니 할아버지가 호주로 있고 복잡해서 실종 신고 신청을 해서 선고를 받았어요. 그래서 호주를 나로 하고 딸을 시집을 보냈죠. 한 20년도 넘었죠. 실종 선고를 했던 것은 생사확인을 하거나 살아있으면 다시 복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 동안은 혹시나 오실까 해서 안 했어. 정리를 해서 내가 뭐 상속받을 재산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런 건 걱정도 안하고 있었죠 모.

정부에게 바라는 말

<피랍자 생사확인 및 문제의 시급성을 알고 북한과의 회담과정에서도 당당한 요구를 해 줄 것>

A: 정부에서 피랍자나 가족을 위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일본 고이즈미는 허리 하나 안 구부리고 북한에 손을 내밀고 악수하는데 이 빌어먹을 나라는 머리를 땅에 대고 빌빌 대면서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소탐대실 어쩌고 하는데 납치자들 찾는 것은 소탐이고 퍼주는 건 대실이에요? 소탐대실이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납북자 가족은 가족이고 납북자 본인들의 생사확인이라도 하고 유해발굴이라도 하자는 말 한마디라도 꺼내봤나 이거에요. 세금을 할 수 없이 내지만 세금내기 아까워 죽겠어요. 하고 싶은 말도 그거에요. 이제 나도 일흔 셋이니 앞으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보는데, 여기 다른 가족들도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이런 말 할 사람도 없을 겁니다. 가족이 납치당해 가고 6.25사변을 알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 북침이라는 미친놈들이 있지요? 내가 6월 25일 12시에 을지로 1가 23번지에 있었는데 경비행기가 확성기를 달고 채병덕 참모 총장 각하를 찾아서 한 20분 돌아 다니드라고. 그 날 밤에 이 빌어먹을 놈이 이 동네 다방골 어디 기생촌에 가 있었나보지. 참모 총장을 찾으면서 경비행기가 저공비행을 하며 다니더라고. 전쟁을 북침을 했으면 참모총장이 모르는 북침이 어딨습니까? 대전에서 전사했길래 망정이지 살아있으면 총살감 아니야. 그런데도 북침이라니. 얼빠진 놈들이. 그리고 얼 빨갱이들이 나와서 자기가 빨갱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놈도 나쁜 놈이다 저놈도 나쁜 놈이다 라며 거짓 고발하고 다니는 바람에 더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같은 납북자끼리 밖에 더 이상 바라 볼 뿐이지 지금 정부가 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이제는 우리끼리 아픈 가슴 묻고 세상 떠나는 길밖에 없어요. 그래도 다행이 가족회가 발족해 탄원도 하고 이런 작업도 하고 해서 다소라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길이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반깁니다.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아버지 형목이에요. 내가 작년 6.25때 우리 가족회에서 마련해서 산에 갔을 때도 술 한잔 올리면서 내가 아버지를 외쳐 불렀지요. 지금은 지나간 얘기를 마치 남의 얘기나 소설같이 얘기했지만 막상 가슴이 미어집니다. 봉양도 못하고 효도를 못하고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저도 얼마 안 남았으니 구천에나 가면 거기서 제가 큰절 올리겠습니다. 아버지 아무쪼록 안녕히 계세요(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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