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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경도 (증언자-김재관)
이름: 관리자
2013-09-16 10:41:06  |  조회: 2120


051012B 김경도/ 2005. 10. 12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김경도), 사진2(증언자:김재관)

피랍자
성명: 김경도(金景道)
생년월일: 1905년 4월 7일(경남 함양 출생)
당시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피랍일: 1950년 7월초로 추정
피랍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직업: 2대 국회의원 낙선 후 내무부 차관 추천 기다리던 중, 前 함양 면장, 제헌 국회 의원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2남 1녀
외모 및 성격 :

증언자
성명: 김재관 (1943년생)
관계: 차남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피랍자는 오랜 기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함양 면장으로 초대, 해방 후 제헌 국회 의원에 당선 돼 서울에서 의정 활동을 하다가 2회 국회 의원 출마, 낙선하고 다른 정치 활동을 전개코자 서울 삼청동에 혼자 거주함. 전쟁이 나고 인근 지인 집에 숨어있다가 제헌 국회 의원임을 알고 거주를 파악한 서울 내부 좌익에 의해 연행됨. 이후 언론 매체를 통해 북한에서 생존, 조국 평화 통일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탄광으로 갔다는 소식 이후 연락이 두절됨.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확인 및 유골 송환








“어버님은 기 삼청동 주변 아시는 분 집에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주위의 북한군들이, 특히 북한군보다 서울 내부에 있는 북한 좌파들이 아버님을 몇 번 추격했대요.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와서 신분을 확인을 하더래요. 서울에 있는 좌파들이 벌써 신원 파악을 다 하지 않았습니까? 전 의원을 하셨으니까.”

“1980년에 우리 형님이 미국에 가기로 돼 있었어요. 그 때 신원조회에 걸려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중앙 정보부에 가서 확인을 했었어요. ‘왜 여권이 안 나오냐?’ 했더니 ‘아버님이 살아계시다’ 더라구요. 그래서 그 때 까지는 아버님이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가졌죠.”

직업 및 활동

<오랜 기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함양 면장으로 초대, 해방 후 제헌 국회 의원에 당선 돼 서울에서 의정 활동을 하다가 2회 국회 의원 출마, 낙선하고 지인을 통해 내무부 차관 추천 기다리던 중이었음>

A: 아버지는 진주 사범 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오래 잡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함양 면장으로 초대되셔서 함양 면장을 하고,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고향에서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되셔서 2년 동안 서울에서 국회의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2대 국회의원에 출마를 하셨는데 낙선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 1950년 서울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마무리 작업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나서 납북되셨습니다. 아버님만 혼자 청와대 바로 밑 삼청동 독신자 아파트에 계셨고, 가족은 고향 경남 함양에 있었습니다.

납북 경위

<당시 서울시 삼청동 인근 지인의 집에 머무르며 정치 일을 준비하던 중 서울 내부 좌파들에 의해 연행>
A: 외삼촌이 비서를 해서 계시다가 외삼촌은 마지막 기차를 타고 오시고 아버님은 무슨 다른 특별한 일이 있겠냐 하시며 안심을 하고 계셨는데, 거기 삼청동 주변 아시는 분 집에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주위의 북한군들이, 특히 북한군보다 서울 내부에 있는 북한 좌파들이 아버님을 몇 번 추격했대요. 왜 아버님이 거기 계셨냐면 같이 납치 당하신 경남 합천출신 김효석 의원이 그 당시 내무부 장관을 하셨는데 아버님하고 절친하셨다고 해요. 그 분이 아버님께 강원도지사로 가라고 추천을 했는데 강원도지사는 못하겠다 했더니 그러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내무부 차관으로 추천을 하겠다고 해서 발령을 받는 시점이라고 해요 그래서 지인 집에 계셨다가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와서 신분을 확인을 하더래요. (함께) 계시던 분이 고향에 내려와서 6. 25 이후에 만났어요. 그래서 그 분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서울에 있는 좌파들이 벌써 신원 파악을 다 하지 않았습니까? 전 의원을 하셨으니까. 그래서 신원을 파악하고 계신 곳을 확인하고는 2,3일 후에 다시 와서는 같이 동행을 하자 해서 그 이후부터는 소식을 몰랐다고 해요
Q:그게 언제쯤이죠?
A: 1950년 6월말 7월초 정도 됐다고 해요
납치이유

<제헌 국회 의원의 경우 민족주의 계열의 사람도 많았을 뿐 더러 북한 정부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정치적 목적으로 납치당한 부류가 있었음>

납치 후 소식

<북한에서 생존, 조국 평화 통일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탄광으로 갔다는 소식 이후 두절>

A: 1962년도 동아 일보의 '죽음의 세월들'이란 납북 인사들의 시리즈가 게재되었어요. 그 때 아버지 성함을 거기서 발견했어요. 보니까 아버님이 이북에 납치돼 가셨더라구요. 생활상과 탄광에 가서 고생한 이야기 등이 상세하게 나와서 ‘아버님이 살아계시구나’ 생각을 했었어요. 그 이후는 추격을 하려도 해도 할 수가 없다가 1970년도 북한 연감이 발행됐었어요.그 당시 납북되셨다가 조평통의 중앙위원으로 계신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 정도 같으면 거기에 나올 것 같아서 북한 연감을 찾아보니 거기 나와 계시더라구요. 조국 평화 통일 위원회 중앙 위원회에 계시다가 탄광으로 추방됐다는 짧막한 것이 씌여 있었어요.
또, 1980년에 우리 형님이 미국에 가기로 돼 있었어요. 그 때 신원조회에 걸려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중앙 정보부에 가서 확인을 했었어요. ‘왜 여권이 안 나오냐?’ 했더니 ‘아버님이 살아계시다’ 더라구요. 그래서 그 때 까지는 아버님이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가졌죠. 그게 1980년 2월 이었죠.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제헌 국회 의원 가족이라 잡히면 죽는다는 위협 속에서 피해 다니기도 하고, 나중에는 집도 모두 부셔져서 상당히 어렵게 생활함>

A: 6.25 사변 터지고 국회의원 가족이 남아 있으면 잡혀 죽는다고 해서 피난을 갔다가 추석 무렵 돼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그 이후 상황은 엄청나게 많이 나빠졌죠. 왜냐면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작전하고 갈라버려서 남아있는 빨치산들이(공산군들이) 지리산하고 소백산으로 다 숨었어요. 지리산이 특히 아지트가 돼 있었죠.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그 놈들이 내려왔어요. 그때가 제가 2학년 지나고 3학년 때였는데 밤 12시 1시라도 저희들이 담을 몇 번을 넘었어요. 제헌 국회의원 가족이라서 잡히면 죽는다고. 그래서 제일 허름한 초가집에서 3년 동안 어머니하고 숨어 있었어요. 어떤 때는 남의 집 배 밭에 숨어 있기도 하고 그런 악몽을 상당히 겪으면서 생활했었어요. 고생 많이 했죠. 저희들 고향에 집이 참 좋았는데, 반동 분자집 이라 해서 집을 다 부수고, 간장 된장을 우물에 다 집어넣고 엉망을 해놨더라고. 그걸 보고 우리 어머니가 미치더라고.

연좌제 피해

<없었음>

A: 저희는 연좌제로 감시 당하고 그런 일은 전혀 없었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신고는?
A: 1970년도 가까이 됐을 때 적십자사에 신고를 하고 지방 자치부에서도 신고하래서 하고 요 앞에 조선일보 명부 확인하래서 가보고.

Q: 신고하고 나서 정부에서 도움은?
A: 전혀 없었다. 바라지고 않고.

정부에게 바라는 말

<납북자 생사확인 및 유골 송환>
A:. 미국 사람들 보십쇼. 전쟁 났는지 50년 됐는데 지금도 땅 파면서 시체를 발굴하고 있는데. 돌아계신 분들은 차지하고라도 지금 어부들 잡혀간 사람들도 못 데려오는 정부 아닙니까? 이건 정부가 아니죠. 대한 민국 정부란 것이 무엇이냐? 링컨이 말한 for the people of the people by the people에도 나오듯이 국민을 위해야 정부지. 자기 자신을 위한 정부가 아니거든요. 정부가 이때까지 납북자를 위해 무엇을 노력했냐? 그런 말입니다. 오늘도 조선일보 보니까 미전향수 한국 전쟁 때 한국 국인들 다섯 명이나 사살한 이런 놈들도 이북에 구경하고 돌아다닌 다는데 이거 참 통탄할 일이고 정부에서도 크게 반성할 일이라 생각한다. 이건 정부가 아니다. 어디에 이런 정부가 있겠는가? 국민을 위한 정부가 돼라 특히 50여 년 동안 원한 맺힌 납북자 가족들, 만나진 못하더라고 생사 확인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 생사확인이 되면 돌아가신 분은 무덤을 찾도록 노력해주고, 살아계신 분은 가능한 빨리 송환해서 자유의 품에 안겨 주는 것이 정부 책임이죠. 마땅히 해야 할 정부의 책임인데 전혀 못하고 있죠. 자기들 사리 사욕 채우는 데 빠져 국민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어요.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 아버님 어머님을 위시해서 저희 삼 남매 잘 컸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님 부르시며 그리워하며 못 잊고 결국 눈을 감으시고, 누님도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뉴욕에 형님이 계시고 아들도 남자가 셋이 있습니다. 그리고 막내 재관이도 아들 딸 있어서 결혼 시키고 다 잘 살고 있습니다. 아버님 보고 싶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셨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아버님 무덤에 흙이라도 한 줌 대한민국에 가져와서 어머님 옆에 모시고 싶습니다. 아버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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