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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유계식 (증언자-유종근)
이름: 관리자
2013-09-16 10:42:16  |  조회: 2192


051014B 유계식 / 2005. 10. 14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유계식), 사진2(증언자:유종근)

피랍자
성명: 유계식 (兪烓植)
생년월일: 1923년생추정 (전북 완주 출신)
당시 주소: 서울시 이태원동(용산구)
피랍일: 1950년 8월 4일 새벽 4시
피랍장소: 서울시 이태원동(용산구) 자택
직업: 미 8군 통역관
직계가족/부양가족: 여동생과 거주 중(고향에 부모님, 형1, 남동생 있음)
외모 및 성격 : 미남형

증언자
성명: 유종근(1934년생)
관계: 동생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피랍자는 호남 지주의 아들로 동경을 유학하고 당시 미군 통역관 근무 중, 인근 주민의 취직 청탁을 거절한 것이 개인적인 원한이 되어 전쟁 후 고발 당함. 8월 4일경 함께 거주하던 여동생과 함께 중앙청까지 잡혀 갔다가 여동생은 귀가 조치되고 피랍자는 소식 없음. 피랍 열 흘 후 집에 있는 악기(아코디언)을 가지러 인민군과 다녀간 적이 있음. 피랍자의 가족 모두 심정적으로 힘들 시기를 겪었고, 경찰서 등에서 지속적으로 감시를 당해 곤란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피랍자 생사확인, 및 유골 송환









“알고 보니 동네 사람이 전에 우리 형님에게 취직을 부탁했는데 거절당한 적이 있대요. 그래서 그 원이 있어서 '저 사람은 미군하고 통역하며 잘 살았다' 고발을 했대요. 우리 형님은 중앙청까지 작은 누나와 동행해서 그 때 당시 내자 파출소 지금도 있는 청와대 근처까지 갔대요. 거기서 누님은 풀어주고 작은 형님은 그 때 이후로는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당시 사상계 지금으로 치면 정보부 뭔데 (그 사람이) 와서는 동네 시골 핫바지(잘 모르는 사람)한테 "저 분 아들이 납치당했는데 압니까?"라고 물었대요. 그 사람이 건성으로 그냥 "월북한 거다"라고 말한 것이 또 그대로 기록이 됐네요.”

당시 시대 상황

<인근 주민(좌익)의 밀고가 많이 있었음, 국가 공무원(경찰관)이나 민주 계열 인사가 확실할 경우 본인 및 가족까지 즉각 처형 단행>
A:이태원에서 아침에 일어나니까 6월 28일에 벌써 인민군 탱크가 와 있더래요. 3일만에 서울이 점령이 된 거에요. 미아리 고개를 넘어왔는데, 대한민국 정부 관료는 수원 대전으로 도망가고 '염려 없다'고 허위 방송을 하고 말이야.
형이 납치될 때 그 옆에 사는 사람 동네의 경찰이 있었는데 '저 분은 대한민국시절에 경찰관을 했다'면서 그 분도 납치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관은 안 끌어가고 ‘너는 대한민국의 앞잡이다’ 면서 경찰관 집에서 죽여버렸대요. 막내 아들은 항문에 뭘 찔러서 죽였답디다. 잔혹한 놈들입니다. 그리고 9. 28 이후 밀고자를 잡았는데 그 이후에도 밀고를 했나 봐요. 동네사람들에게 잡혀 끌려가서는 이 분이 정신 이상 행동을 해서는 조금 있다 풀려 났다고 하더라구요.
납북 경위
<피랍자는 호남 지주의 아들로 동경을 유학하고 당시 미군 통역관 근무 중, 인근 주민의 취직 청탁을 거절한 것이 개인적인 원한이 되어 전쟁 후 고발 당함. 8월 4일경 함께 거주하던 여동생과 함께 중앙청까지 잡혀 갔다가 여동생은 귀가 조치되고 피랍자는 소식 없음>
A: 알고 보니 동네 사람이 전에 우리 형님에게 취직을 부탁했는데 거절당한 적이 있대요. 그래서 그 원이 있어서 '저 사람은 미군하고 통역하며 잘 살았다' 고발을 했대요. 우리 형님은 중앙청까지 작은 누나와 동행해서 그 때 당시 내자 파출소 지금도 있는 청와대 근처까지 갔대요. 거기서 누님은 풀어주고 작은 형님은 그 때 이후로는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우리 형님은 음악도 잘하고 영어도 잘했고, 전주에서 호버 였어요. 호버라는 것이 유지 급이에요. 저희 형님이 그 때 당시 동경으로 유학을 했어요. 당시 동경 유학을 했으면 좀 알아보지요. 동경 유학을 한 사람이 전라에 몇 명 안 된데요. 그래서 동경 유학을 하고 돌아오면 경찰서장이 무릎을 딱 꿇는다고 소문이 그랬어요.
납치 후 소식

<납치 10일 후 집에 아코디언을 가지러 인민군과 정치 보위부 사람과 함께 다녀감. 이후 소식 두절>

A: 끌려가서 몰랐는데 우리 형님이 부전공으로 음악을 했어요. 당시 집에 악기가 많았어요. 아코디언도 이태리제로 한국에서 제일 좋은 거에요. 그래서 10일 후에 인민군하고 무슨 정치 보위부 셋이 (서울 이태원 집에) 악기를 가지러 왔었대요. 그래서 아코디언을 가져 갔죠.

Q: 그 이후 찾아보려는 노력은?
A: 제가 정보를 알려고 도문까지 간 적이 있는데 이북에 갈 수도 있다고 하대요. 용정역에 갔는데 거기 조선족하고 술도 먹고 하니까 그 사람들이 사흘에 한 번씩 이북에 들락거린대요. 그래서 공한증인가를 400인가 액수가 (정확히) 없는데 800만원만 있으면 이북도 간댔는데 가서 어떻게 찾냐 말이야? 그런 방법도 연구를 하긴 했어요. 그렇지만 뭐 믿기도 힘들고 나 혼자 이렇게 비공개적으로 갈 수 있다 한들 이북 어디서 찾겠느냐고.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고향(호남)에서 거주, 납치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별로 없었지만 심정적으로 부모님의 괴로움이 심함>

호적 정리

<행방불명자로 정리>

A: 호적정리 안 했어요. 왜냐면 그냥 호적정리를 하려면 형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호적정리를 하면 영원히 형님이 죽었구나 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감시를) 견디다 견디다 못해서 그냥 사망이 아니고 행불행자로 늦게 했지요

연좌제 피해

<지속적으로 경찰들에게 감시 당함, 사촌 형 아들 사관학교 입학 어려움>

A: 형사 놈들이 공산주의로 몰아요. 좌우간 우리 동네에서 자랑 같지만 우리 집이 인심을 잃지 않았어요. 근데 그 때 당시 사상계 지금으로 치면 정보부 뭔데 (그 사람이) 와서는 동네 시골 핫바지(잘 모르는 사람)한테 "저 분 아들이 납치당했는데 압니까?"라고 물었대요. 그 사람이 건성으로 그냥 "월북한 거다"라고 말한 것이 또 그대로 기록이 됐네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당시 쌀이 귀할 땐데 내가 그 형사한테 술도 주고 하면서 '왜 그러시냐?'고 '일등 유지가 다 안다'고 하면 '여기 훌륭한 집안인데 우리도 밥 먹고 살랑게 (그런다며) 다시는 안 올랍니다' 그러고. 그래서 아무 조건 없이 술값도 내가 내고, 우리 집은 그 때 잘 사니까 인사 치레로 쌀 한 가마니고 두 가마니고 주고 그랬어요. 우리 집에 온 손님은 밥은 꼭 해 먹입니다. 가풍이 그래요. 그러면 (그 사람이) 고맙다고 해요. 그리고 1년 후면 또 그 사람이 오는 수도 있고, 아니면 직원이 바뀌어요. 한 번은 고함을 질렀어요. "어떻게 너희는 우리 형님이 이북에 있는 증거가 있느냐 이북서 간첩으로 살아있는 거냐 죽은 거냐 간첩이라도 안 죽고 살아있으면 좋겠다" 했더니 그것은 저들도 모르고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저들도 오는 거라며 둘러 붙여요. “만약에 이북서 밤에 형이 오면 달래서 이북을 찬양을 하면 나도 따라 같이 찬양하는 척하고 형님하고 동조해서 안심시키고 같이 이북에 가자면 간다고 하면서 하고 살짝 신고하라”며 이런 회유책을 당하고 아주 성가셔서 혼났습니다.
그러고 말이야. 우리 사촌 형님 아들이 사관학교 시험을 보는데 사촌간인데 안 된다 하드래. 입학자격이 아니다 이거지. 그리고 우리 집이 잘 살고 하니까 심심하면 형사가 오고, “왜 공산주의 아닌 사람을 공산주의를 만드냐?” 하면 갔다가 또 심심해 지면 오고 말이야.

Q: 혹시 형님이 그럴(월북) 가능성이 있나요?
A: 아니요. 절대 그럴 사람도 아니고. 우리 집이 호남지역 지주에요. 저것들이 지주는 A급으로 싫어한다고. 저것들 핑계가 미군 앞잡이다. 대 부호다 지주다 해서 그런거에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신고는?
A: 신고는 했지요. 10~20년 전에 신고한 것이 있고, 여기(가족회도)도 있고.

Q: 신고하고 나서 정부에서 도움은?
A: 아무것도 없지요 지원 같은 거 안 바래요 만에 하나 살았는가 어디서 죽었는가 또 혹간 운명을 해서 유골이라도 있으면 혈육간 도리로 어떻게 그걸 그냥(눈물)

정부에게 바라는 점

<납북자 생사확인 및 유골 송환>
A: 정부가 노력 해야 해. 생사확인이라도. 이거 벌써 오십 몇 년 되가지고. 내가 알기로는 납북된 사람이 8만 명인가 10만 명인가 되는데 이북서 없다고 했다가 3,4만 명인가 했다가 가들 말만 듣고 지금 뭐 하는지 모르겠어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 아버님이 74세에 운명하셨는데 2년 동안 아프시면서 저한테 ‘야 이놈아 형님 찾아내라’ 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이게 얼마나 비극이에요. 근데 이제 나이도 먹어 가고, 요새 이제 남북이 화해도 한다 하고 그래도 가끔은 원망이 나요. 여기 다니면서 행여나 행여 하게 되니까. 속에 있던 것이 생각이 나서.

형님, 만일 살아계시면 중국을 통해서 이남에 오는 교포한테 얘기를 하면 내가 중국 땅에 가서 형님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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