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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현일 (증언자-김영희)
이름: 관리자
2013-09-16 10:29:38  |  조회: 1759


050607B 김현일 / 2005. 6. 7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김현일), 사진2(증언자:김영희)

피랍자
성명: 김현일
생년월일: 1922년 음력 2월 2일생(충청북도 엄정면 목계면 출생)
당시 주소: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9번지
피랍일: 1950년 전쟁 이후
피랍장소: 서울시 회현동 (납북자의 처가 지하실)
직업: ㈜대한 산소 영등포지점 총 지배인, 영등포지구 대한 청년단장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남 1녀
외모 및 성격 : 다리에 큰 점이 있음

증언자
성명: 김영희(1948년생)
관계: 장녀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전쟁 직후 일가족이 회현동에 위치한 납북자의 처가로 가서 며칠 머물다가 한강 다리가 끊겨 더 이상 피난을 못 가고 처가 지하에 계속 숨어 지냄. 어느 날 식량을 얻기 위해 피랍자가 옷가지를 팔러 장터에 잠시 다녀 왔다가 인근 여자 동반장에게 발각 밀고 당해, 서너 명의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끌고 간 뒤로 연락 없음. 피랍자는 당시 상업을 하면서 영등포 지구 대한청년단장을 맡고 있었고, 집안이 경제력이 있었음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이산 가족 상봉 시 납북자가 제외된 사실에 대해 매우 유감임. 납북 가족 생사 확인 및 생존 시 상봉을 원함







“나중에 세 들어 살던 사람은 ‘자기 남편은 다행히 목욕탕 갔다가 안 잡아갔다’고 말했다가 인민군이 마루 밑에 숨어있다가 나와서 그 사람도 바로 잡아갔다고 했어요. 여러 명, 세 명 정도가 들어와서 순식간에 뒤져서 데려갔다 그래요.”

“이번에 이산 가족 만남 했을 때 솔직히 우리는 납북된 사람이 첫째로 만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상봉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거의 이북에 남아 있던(살던) 사람 아니면, 여기서 소위 말해 공산당 쪽으로 넘어간 가족이 만나더라구요.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할머니도 그 명단에 끼지 않을까 굉장히 기대를 했었는데, 명단을 보니 납북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어요.”

납북 경위

< 전쟁 직후 일가족이 납북자의 처가로 가서 며칠 머물다가 한강 다리가 끊겨 더 이상 피난을 못 가고 회현동에 위치한 처가 지하에 계속 숨어 지냄. 어느 날 피랍자가 옷가지를 팔러 장터에 잠시 다녀 왔다가 발각, 인근 여자 동반장이 밀고 해, 서너 명의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끌고 간 뒤로 연락 없음>

Q : 아버님이 납치되던 상황은?
A : 할머니한테 좀 들었다가 나중에 엄마한테 들었는데, 6.25 전쟁 나니까 엄마가 외삼촌댁에 가서 같이 (피난)가야 한다고 (가족들이) 영등포에서 회현동으로 왔어요. 와보니까 외삼촌은 떠나셨고, 거기 며칠 있다가 한강 다리가 끊기니까 피난은 못 가고. 거기서 아버님이 라디오 들으며 지하실에 숨어 계시다가 잡혀가셨어요. 첨엔 얼마동안 살았는데 나중에 식량이 떨어지니까 하루는 시장에 옷을 팔러 나가셨어요. 그걸 보고 동네 여반장이 밀고를 했다나봐요. 아버지 잡혀가실 때 우리는 애기들이니까 항아리 뒤에 숨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나중에 세 들어 살던 사람은 남편이 다행히 목욕탕 갔다가 안 잡아갔다고 말하다가 인민군이 마루 밑에 숨어있다가 나와서 그 사람도 바로 잡아갔다고 했어요. 여러 명, 세 명 정도가 들어와서 순식간에 뒤져서 데려갔다 그래요. (납치)이유는 모르겠고, 그 동네에서 외갓집이 큰 댁이고 아버님이 반장인지 하는 분도 잘 아는 분이였대요. 그래서 그 전에 활동한 것도 잘 알고. 날짜는 잘 모르겠어요.
납치이유

<영등포 지구 대한청년단장을 맡고 있었고, 집안이 경제력이 있었음>

납치 후 소식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으로부터 외교관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정확한 근거 없고, 그 외 소식은 전혀 없음>
A : 어떤 분이 이북에서 아버님을 만나셨다는데 뜬 소문 같기도 해요. 아버님이 외교관으로 계신 데 도움을 받아 내려오셨다고 했어요. 그래서 좀 자세히 알아보려고 할머니가 그 사람 고향으로 찾아가셨는데 그 사람은 무서워서 이북으로 도로 넘어갔다고 하더라구요. 그러고는 전혀 소식이 없었어요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자의 아내는 재가하고 자녀들은 납북자의 형님 댁에서 기거하며 생활함>

Q : 아버지가 납치되신 후 가족들의 생활은 어땠나요?
A: 아버지 납치 당하시고는 엄마가 영등포 집으로 와서 사셨는데 양옥집이었는데 폭격에 유리창이 다 깨지고 하니까 큰집에서 혼자 살기도 무서웠겠죠. 열 아홉 살이었으니까. 주변에서 시집가라고 하니까. 당시 피난은 1.4후퇴 때 대구로 갔다가 큰고모부님이 국회의원 하셔서 그 옆에 좀 같이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죠. 올라와서 엄마가 나는 할머니가 계신 충주로 보내고 (재가 하셨고), 큰아버지가 본인 동생들하고, 저하고 동생하고 공부를 가르쳤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호적정리

<미정리>

A : 아직까지 안 했어요. 살아계실 꺼 같아서요.(울음) 제사도 안 지냈는데….

연좌제 피해

<특별한 것은 없었으나 경찰서에서 한 두 차례 확인 작업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함>

Q : 연좌제의 피해는?
A : 제가 스무 살 때쯤 한 번은 경찰서에서 빨갱이 아니냐고 전화가 와서 작은 아버지가 펄펄 뛴 일이 있었어요.

정부에게 바라는 말

<이산 가족 상봉 시 납북자가 제외된 사실에 대해 매우 유감임. 납북 가족 생사 확인 및 생존 시 상봉을 원함>
A: 이번에 (이산 가족) 서로 만남 했을 때 우리는 납북된 사람을 첫째로 만날 줄 알았어요. 솔직히. 그런데 상봉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거의 이북에 남아 있던(살던) 사람 아니면, 여기서 소위 말해 공산당 쪽으로 넘어간 가족 이런 사람이 만나는 것 같더라구요.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할머니도 그 명단에 끼지 않을까 굉장히 기대를 했었는데, 명단을 보니 납북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작은 할아버님 아들이 이북에 공산당으로 넘어갔었는데 제 1차 방문에 온 걸로 알고 있거든요. 사촌인데도 (아버지 소식은)전혀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그 분은 북에서 차관으로 지내고 있고 부인은 의사라고 하더라구요.
만일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어디서 어떻게 되셨는지 알고 싶고 살아계시면 빨리 좀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억에 아버지가 검은 색 코트 입고 들어오시면 제가 뛰어가서 아버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했었어요. 젊으신 나이에 너무 안됐으니, 정부에서 빨리 좀 알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A : 어디서 계시든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계시면 좋겠어요. 빨리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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