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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박성수 (증언자-박제완)
이름: 관리자
2013-09-16 10:41:45  |  조회: 2152


051014A 박성수 / 2005. 10. 14 채록
// 첨부: 문서 오른쪽 상단 차례로 배치 사진1 (피랍자:박성수), 사진2(증언자:박제완)

피랍자
성명: 박성수 (朴星寿)
생년월일: 1925년생 (인천시 남구 출생)
당시 주소: 인천시 남구 만수동 51번지
피랍일: 1950년 가을로 추정
피랍장소: 인천시 남구 만수동 51번지(자택)
직업: 전매청근무(생산직)
직계가족/부양가족: 배우자1. 자녀1 (직계 4형제와 함께 거주 중)
외모 및 성격 :

증언자
성명: 박제완(1949년생)
관계: 아들
증언 성격: 직접증언 간접증언 V

증언 특이사항 (납치주체, 납치상황 및 원인)
피랍자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인민군이 들이닥쳐 사 형제 중 장남을 빼고 모두 끌고감. 인근 동네 젊은 청년들을 대부분 잡혀서 차로 북송 됨. 탄약 운반 및 보급품 수하 작업에 투입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전해짐

증언자 요청사항
(對정부) 생사 확인 및 유골 송환, 납치자 명예회복










“크게 많이 배우지 않은 양반들이라 (사전에 반공 활동 같은 건)없었을 거고, 젊었으니까…. 인민군들이 와서 젊은 사람들은 다 잡아 갔고, 주로 그 사람을 탄약 나르고 보급품 수하 하는데 썼대요. (도망 나온) 큰 아버지도 그러시더라고. 어디 가서 포탄 운반하러 가는 걸로 얘기 들었다고.”

“나도 천상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진 거 없어서 공장 이런데 가다 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시위하는데 더럭 끼게 되잖아요. 그런데 껴서 걸려서 붙들려 가면 꼭 반공 쪽으로 보더라구요. 단순 집시법 위반자가 아니라 보안법 위반자로 보더라고. 같이 간 사람들은 단순 집시법 위반자로 처리되는데 나는 꼭 그런 쪽으로 연결이 되더라고.”

납북 경위

<피랍자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인민군이 들이닥쳐 사 형제 중 장남을 빼고 모두 끌고감. 인근 젊은 청년들을 대부분 잡혀서 차로 북송됨>

Q:어떻게 납북이 되셨는지?
A: 우리 큰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인천이 그 당시 농촌이었으니까, 일 마치고 돌아와서 저녁 먹는데 들이닥쳐서 아들 넷이 밥을 먹는데 큰 아버지만 두고 삼형제는 잡아갔는데, 둘째 큰아버지는 가다가 도망 나왔고, 둘은 잡혀갔대요. 도망 나온 분이 박창수씨고. 우리 아버지는 박성수, 우리 작은 아버지는 박남수에요.

Q: 박창수씨는 돌아오신 이야기를 해 주세요
A: 차에서 뛰어내려서 도망 왔다고 해요. (북으로 가다가) 우리 컸을 때도 봤으니까. 한 20년 전까지 살아계셨어요. 큰 아버지는 그 때 우리 아버지도 나 하나 있었지만, 큰아버지는 자녀들이 여럿 있었나 봐요. 그래서 걱정이 돼서 뛰어 내려서 논으로 도망을 쳐서 산 넘어 도망 왔다더라구요. 서울 쪽으로 올라가다가 부천이쪽 어디에서 도망 왔대요.

납치이유

<북한의 노동력 확보>

A: 크게 많이 배우지 않은 양반들이라 (사전에 반공 활동 같은 건)없었을 거고, 젊었으니까…. 인민군들이 와서 젊은 사람들은 다 잡아 갔고, 주로 그 사람을 탄약 나르고 보급품 수하 하는데 썼대요. (도망 나온) 큰 아버지도 그러시더라고. 어디 가서 포탄 운반하러 가는 걸로 얘기 들었다고. 가면 포 쏘고 총 쏘니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다 싶어서 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고 하더라구요. 반공 쪽이나 정치적으로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단순인력으로 쓸라고 데려간 거 같아

납치 후 소식

<전혀 알 수 없음>

납북 후 남은 가족의 생활은?

<피랍자의 배우자도 죽고 아들 박제완은 친척집에서 기거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 속에서 살았음>

A: 어머니도 아버지 납북 후 2년 후에 돌아가셨어요. 타살이란 사람도 있고 자살이란 사람도 있고 내가 어리니까 확인도 못했고. 그래서 그냥 큰아버지 집에 얹혀 산 거죠.

A: 형편이야 어려울 수 밖에 없죠. 큰아버지 자녀도 6남매인데 내가 얹혀있으니. 혹 아니에요? 자기 자녀 챙기기도 바쁜데, 풍요롭게도 아니고 농사로 근근히 살 때 인데 그러니까 아무래도 살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일찍 객지 나와서….

호적 정리

<행방 불명으로 처리됨>

A: 나 군대 갈 때가 되니까 호적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갔어요. 그냥 빨간 글씨로 ‘행불’ 되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마을 어른 들한테 인호 보증을 세워서 사망신고를 했어요. 이미 잡혀 간지도 오래됐고 아무 소식도 없었으니까.

정부의 노력

<없었음>

Q: 신고는?
A: 그 당시만 해도 우리마을에만 해도 저희 당숙까지 해서 젊은 사람은 거의 잡혀갔대요 우리 아버지 또래들 그 당시 30세 미만들은 거의 잡혀갔나 봐요. 그 이웃 마을도 그랬고. 생계가 다 그랬죠 뭐. 신고하거나 할 경황이 없었나 봐요.

Q: 일 가족이 다 잡혀간 건데 정부 차원의 보호나 지원은 없었는지?
A: 없었죠.

연좌제 피해

<피랍자의 아들은 70년대까지 해외 취업이 어려웠고, 직장 생활 하는 중 단순히 시위에 가담했을 때도 다른 사람과 달리 보안법으로 처리돼 갖은 고통을 당함. 또한 친척 조카들의 경우도 취업 당시 연좌제로 곤란을 겪음>

A: 제가 나중에 운전을 배워서 공장도 다니고 운전도 하고 하다가 해외 취업 유행할 당시 해외를 가려고 했더니 신원조회에서 걸려서 여러 번 못 가게 하더라구요. 그 당시에 여러 번 리비아 갈 기회도 있고 해서 서류를 넣었는데 결격 사유가 없는데 꼭 최종 신원조회에서 떨어지고 떨어 지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중에 82년도 되니까 사우디 취업 신청하니까 그 때는 되더라구요. 그래서 사우디에는 갔다 왔어요. 또 큰아버지 자녀들은 공무원도 되고 교원도 되고 할 때 삼촌들이 행불자인 것 때문에 상당히 지장을 받는 것 같더라구요. 누이들이나 형들이 (처음엔) 임용되는데도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그런 게 있었어요. 나중에 “야 너희 아버지 때문에 취직도 안되고 그렇다”고 하더라구. 그게 아마 연좌제였던 거 같아요.

Q: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고아로 컸는데?
A: 아버지 없이 여태 큰 거죠. 그렇게 (친척집에) 얹혀서 사회 생활하면서 천상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진 거 없어서 공장 이런데 가다 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시위하는데 더럭 끼게 되잖아요. 그런데 껴서 걸려서 붙들려 가면 꼭 반공 쪽으로 보더라구요. 단순 집시법 위반자가 아니라 보안법 위반자로 보더라고. 같이 간 사람들은 단순 집시법 위반자로 처리되는데 나는 꼭 그런 쪽으로 연결이 되더라고. 경찰 쪽으로.

Q: 납북되신 아버님을 월북하신 걸로 보는 건가 보죠?
A: 그렇죠. 그게 연좌제겠죠. 색안경을 쓰고 보고 너 혹시 이상한 놈 아니냐고 보고. 아니라고 그래도 어디 그 사람들이 믿어요 단순 집시법 위반자는 처벌도 간단한데 보안법 위반자는 매맞고 몇 개월이고 살다 나와야 되요. 불라고 하는데 뭘 알아야 불지. 뭘 불어. 그 때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사회 시끄러우면 간첩 잡았다 하던 시절이니까 간단하게 시위를 해도 잡히면 그런 식으로 몰아 가더라구요.

정부에게 바라는 말

<생사 확인 및 유골 송환, 납치자 명예회복>

A: 생사 여부나 알고 싶고 돌아가셨으면 유골이라도 찾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죠 뭐.
이건 남한이 됐건 북한이 됐건 우리 민족끼리 싸움하다가 생긴 일이니까 어느 쪽이 책임을 지던 져야해요. 어떤 보상이란 것이라기 보다 최소한 명예라도 회복시켜주고 가능하면 생사여부라도 확인 좀 해줬으면. 정말 제삿날도 몰라서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 날로 한꺼번에 제사 지내요. 나 뿐 아니라 우리 당숙과 육촌 팔촌들도 제삿날이 다 한 날이에요. 집 떠난 날이 제삿날이고. 동네가 다 제사 지내요. 생사 여부만 확인 됐으면 다 산 거 이제 뭐 어쨌든 남한이든 북한이든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아요. 군인이나 경찰로 잡혀가면 거기에 해당하는 보상이 있고 뭐가 있는데 이 민간인이 잡혀간 경우는 그 사람들도 생사람을 강제로 끌고 간 거에요 끌고 갔으면서 아무런 것도 없고 피해까지. 어떤 사람은 죽이고 갔잖아요. 연좌제 해서 취직도 제한 받고, 해외 여행도 못했다 그래요. 난 나중에 사우디 가면서 비행기 타고 가니까 담당직원이 당신들을 올해 첫 케이스라고 82년도에. 근데 그 때 교육받으러 가니까 그 직원이 그러더라구요. 여러분 이런 경우가 있었을 거라고. 그래서 이번이 첫 케이스로 갈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품팔이 하러 가는데도 생색을 내고 보내 주더라고

피랍자에게 전하는 말

<생사 확인 및 상봉>
A :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없어요. 그냥 보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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