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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염준모(증언자-염세환)
이름: 관리자
2017-01-26 11:37:44  |  조회: 1855

염 준 모( 廉準模)
2016. 3. 7.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17년 5월 23일
출생지: 서울 관수동 55번지
당시 주소: 서울 종로구 가회동 1번지 110호
피랍일: 1950년 9월 3일 새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서울중앙전신전화국 근무
직계/부양가족: 부모, 배우자, 4남매
외모/성격: 성격이 샤프하면서도 고지식함.


증언자
성명: 염세환
관계: 3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체신부 소속 단파 기술 계장으로 근무하였음.
• 아버지의 친구 한 명이 이북 사람이 하는 강연회를 들으러 가자고 했는데 이를 거절하자 내무서원에게 밀
고하였음. 이후, 내무서원 서너 명이 집으로 와 조사할 것이 있다며 아버지를 트럭에 태우고 지하실에 있
던 단파기계들도 뜯어서 차에 싣고 감.
• 끌려간 지 일주일 만에 총살당했다는 소문을 적십자사를 통해 고모가 들음. 죄명은 말을 듣지 않고 남한


직업 및 활동
<체신부 소속 단파기술계장으로 근무함>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제 이름은 염세환 입니다. 생년월일은 1946년 8월 4일 생이구요. 양력입니다. 납
치자가 제 부친 되시는데 제가 4남매 중 셋째입니다.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고향은 제가 서울 6대손입니다. 그러니까 저희 아버님도 서울이시구요. 본적은 서
울 종로구 관수동 55번지이고 성함은 염준모입니다. 납치 당시에는 체신부 소속으로,
지금은 그게 중앙방송국이지만 체신부 소속 단파 기술 계장으로 계시다가 납치당하셨
습니다. 생년월일은 1917년생 5월 23일이시고, 1950년 9월 3일날 납치되셨습니다.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출신은 제가 알기로는 경성사범이라는 얘기만 들었는데 확실한 것은 얘기를 못 들
었습니다.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제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고모님이 두 분 계십니다. 아버님 밑으로 누
이동생 두 분이 계셨어요. 두 분 다 출가하였었죠 그 당시에. 같이 안 사셨습니다. 할
아버지, 할머니하고 어머님하고 4남매. 큰 형님, 둘째 형님, 제가 셋째고 밑으로 누이
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누이동생 돌날인 9월 3일 납치당하셨습니다.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그 당시 사회 활동에 대해서는 이야기 들은 바는 없고, 1943년도에 일본 경시청에
서 경성방송국을 습격해서 몇몇 사람들, 아나운서들까지도 구속을 시켰습니다. 그 당
시에도 단파방송을 한 것으로 해서 혹시 해방 운동이라던가 이런 것들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이유로 구속됐다가 풀려나셨죠.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아버님 성격은 정말 요즘 말로 하면 샤프하셨고 성격은 외고집 통으로 늘 말씀하셨
어요. 그 날 납치당해 가실 때에도 할아버님이 꿈을 꾸셨는데 꿈자리가 좋지 않으니까
아범아 나가지 말거라 그랬더니 ‘제가 뭐 잘못한 게 있습니까?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회사에 출근을 하셨다고 그래요. 그 날 나가지만 않았으면 아마 지금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문_ 6·25전쟁 도발 전 당시 상황은?
답_ 제가 그 당시 다섯 살이었으니까, 저는 잘 모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늘 저한
테 형제들 중에 네가 애비를 닮아서 성격이 곧고 고지식하게 커가고 있다고 하시는 것
을 보면 저의 아버님 성격이 그러하셨는가 봅니다. 48년도에 정부수립이 되었기 때문
에 그 전, 후가 혼란기였지만 아버님은 회사에 충실하게 다니시면서 업무에 임하셨던
것 같습니다.
문_ 피난은?
답_ 저희는 가회동 1번지 110호에서 피난을 맞이했는데, 제가 본적이 관수동 55번지
였고요. 그런데 피난을 가면서 그 집을 봐 줄 분한테 맡겨놓고 이사도 가재도구도 모두
놔두고 할아버지하고 작은 고모하고 큰 형님하고는 수원 쪽으로 가셨었고, 큰고모하
고 어머니하고 나머지 작은형님하고 제 누이동생은 수원 봉당면 쪽으로, 이렇게 같은
수원 지역인데 조금 분리되어서 옮겼죠. 저희 가족은 집이라던가 그런 것은 피해 본 것
이 없었고. 그 당시 저희가 가회동에서 부유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은 없었습
니다. 그런데 그쪽 할아버지하고 할머니하고 작은고모님하고 제 큰형님하고는 할아버
지가 잘 아는 미군 상사가 모시고 가서 영내에 급할 때는 그 쪽으로 피신시켜 드렸습니
다.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만난다고 찾아가보니 상당히 큰 한옥집이었는데
거기에서 전체 가족이 상봉을 한 적이 있었죠, 피난 시절에. 1950년도에는 아버님도,
저희도 피난을 가지 않았습니다. 전쟁 초에는 그대로 있다가 그 이후로 전쟁이 점점 격
화되고 그러니까 피난을 갔어요. 그 전에는 정상적으로 아버님은 회사도 나가셨고, 그
러다 이런 변을 당하게 됐던 거죠. 피난 갈 생각을 안 했습니다.


납북 경위 및 납치 이유
<아버지의 친구 한 명이 이북 사람이 하는 강연회를 들으러 가자고 했는데 이를 거절하자
내무서원에게 밀고하여 내무 서원 서너 명이 집으로 와 조사할 것이 있다며 아버지를 트
럭에 싣고 감>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1950년 9월 3일 이고 제 나이 다섯 살입니다.

문_ 납치 장소는?
답_ 가회동 1번지 110호에서 납치당하셨습니다.
문_ 납치자의 용모 및 신분 확인은?
답_ 저희 아버님이 납치당해 가신 것은 나중에 들었습니다만 그 당시에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도 신뢰하시는 아버지의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와서 이북사람들이
와서 강연회를 하는데 아버님보고 들으라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아버님이 내가 그걸
들을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안 듣는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저희 아버님을 내무서원한테
찔렀습니다. 그래서 내무서원 서너 명이 집을 급습했어요. 그 날이 제 누이동생 돌날이
라 고모들이 마루에 와서 앉아계셨는데 내무서원들이 오더니 아버님 방이 어디냐고 우
렁차게 묻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인 데도 겁이 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아버지 방
에서 지하로 들어가는 곳이 있는데 저희 아버님께서 방송국에서 단파방송을 주로 하는
계장으로 계셨었기 때문에 그곳에 단파기계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것들을 전부 뜯어서
아버지를 데리고 회사에 가서 조사할 일이 있으니 데리고 가겠다며 모시고 갔어요. 그
런데 저희 할머님이 장에 갔다가 오시다가 큰 트럭을 타고 아버님이 가시는 걸 보셨어
요. ‘아니 아범이 왜 저 차를 탔나?’ 그래서 집에 들어와서 ‘아범 들어왔나?’ 하시던 것
까지 제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요. 아직 안 들어왔다고 그러니까 빨리 회사 가봐라,
무슨 트럭을 타고 가더라고 해서 어머니가 부리나케 저녁 준비를 하시다가 회사로 갔더
니 이미 넘어갔고 회사에는 안 계시더래요. 그 날이 저희 집으로써는 가장 우울한 날이
되었죠. 소식을 기다리고 그 친구를 찾고 그랬는데 한 일주일 정도 지난 뒤에 그 친구
가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 왔더랍니다. 와서는 ‘준모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그
래서 ‘잘 있으면 데리고 와야지 어떻게 너만 왔느냐?’고 그랬더니 그 놈들이 ‘뭐 조사한
다고 그래서 조사 받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뒤에는 그 친구도 안 오고 연락이 없
었는데 한 몇 년 지난 뒤에 적십자사를 통해서 얘길 들었어요. 어떤 경로로 들었는 지
는 모르지만 저희 형님이 들었다는데 끌려가셔서 일주일 만에 총살 당하셨다고. 죄명
은 말을 듣지 않고 남한에 협조했다고…. 총살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저희 아
버님 소식으로는 마지막이었습니다. 소문만.
문_ 납치 방법은?
답_ 총을 거꾸로 메고 있는 내무서원을 본 것을 기억합니다. 아버님 방까지 신발도 신고
들어가서. 기계 뜯는 소리, 쾅쾅 소리가 나서 저희는 겁에 질려있었고. 할아버지가 너
희들 무슨 짓 하는거냐 그랬더니 할아버지를 밀치시고. 그 이외에는 제가 할아버지께
자세히 여쭤보거나 들은 건 없습니다.
문_ 납북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씀은?
답_ 다녀오겠습니다고 하셨답니다. 죄 지은 것 없으니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가셨답
니다.
문_ 전쟁 중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적십자사를 통해 열심히 알아보고 했는데 알 길이 없었습니다. 또 제가 아버님 납
치 관계로 체신부에 가서 아버님이 여기 단파방송국 계장으로 계셨다는 얘길 듣고 왔는
데 아버님 자료를 보여주면 좋겠다 그랬더니 체신부에서도 전쟁 통에 그 자료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럼 방송국에 넘겼느냐 그랬더니 그것도 자기들은 모르
겠다고 해서 방송국에 가서 알아보니까 방송국에서도 그런 자료를 받은 게 없다고 하더
라고요. 그만큼 우리나라가 전쟁 통이라 그런지 참 허술했고 지금 생각하면 지금 나이
정도의 성인이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납치 후 소식
<끌려간 지 일주일 만에 총살당했다는 소문을 고모가 들음>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 또는 주변의 소문 등은?
답_ 밀고한 친구로부터 잘 계시다는 소리 들은 걸로 끝났는데 나중에 고모님 말씀이 일
주일 만에 총살당하셨다는 것을 적십자사를 통해 들으셨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조
카들한테만 얘기 해주셨는데. 아마 그 친구가 와서 잘 있습니다 할 때가 돌아가셨을 때
인 것 같습니다.
문_ 시신확인은?
답_ 그냥 끌려가서 총살당하셨단 얘기만 들었지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
서 지금까지도 사망신고를 못 하고 있습니다. 태어나신 날을 기일로 해서 제사도 지내
라고 하지만 못 지내고 저희들이 되새기고 있을 뿐입니다. 저희 어머님은 그로 인해서
젊은 나이에 혼자 몸이 되시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어렵다는 시부모님 모
시고 사는 생활을 하셨는데 상당히 힘드셨던 모양이에요. 아버님 납치당해 가신 뒤 10
년도 안 되서 돌아가셨죠.


남은 가족의 생활
<할아버지가 금은방을 하셔서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함>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할아버지께서 금은방을 하였었고 여주 이천에 땅이 있어 농산물이 올라와 그걸로
생활하였습니다.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어머님은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뇌출혈로 돌아가셨고 할아버님은 중학교 3학년 때
에, 할머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2년 터울로 돌아가셨습니다. 생활은 할아버님 유산으
로 학업도 마치고 생활도 할 수 있었습니다.
문_ 할아버님께는 아버님이 외아들이셨는지?
답_ 아닙니다. 저희 아버님 밑으로 누이동생, 그 밑으로 남동생 (작은아버지)이 계셨는
데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결국 4남매를 두셨던 것 같은데, 제가 호적등본을 보니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어렸을 때 듣기는 작은아버지가 있었는데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
고 이전 호적등본을 보니 사망이라고 나와 있더라고요.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어머님도 워낙 얌전하고 조용하신 분이라 활달하고 그러셨으면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을 겁니다. 현모양처셨고 조용한 분이셨기 때문에 혼자 삭이면서 생활하시다 돌
아가셨는데 제가 성인이 되어서 그 당시 어머님 모습을 돌이켜 보면 짝 잃은 외기러기
모양으로 항상 기운이 없고 풀 죽어 계신 것을 느꼈어요. 그 당시에는 그런 느낌 없이
봐 왔던 건데, 성인이 되어서는 어머님이 그래서 일찍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문_ 남은 가족의 납북자와의 추억?
답_ 어렸을 때 붕어과자라고 하는 과자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형들이 달라고 그러면 안
주고 저만 회사 갔다 오시면서 이만한 나무상자에서 꺼내주시곤 그랬어요. 저는 자라
면서 청계천 다리에서 주워 온 아이라고 할머님이 그러셨어요. 왜 그러냐 하면 아들 둘
을 낳으니까 딸을 바라셨는데 또 아들이 나왔거든요. 그래서 너는 청계천 밑에서 주워
온 놈이라고 그러셨는데. 그렇다고 홀대하거나 이러신 건 아니고 귀엽게 잘 돌봐주셨
는데 아무튼 아버님하고 추억은 회사 갔다 오시면 형들이 달라는 걸 안 주고 저한테만
붕어과자를 주시고 안아주시고 그랬던 기억만 나지 다른 추억거리는 없었습니다. 형님
한테 물어보지도 않았고 제가 들은 기억도 없습니다.
문_ 할아버님 할머님이 돌아가시며 아버님에 대한 말씀은 없으셨는지?
답_ 전혀 없으셨던 것을 보면 가슴에 상당히 맺히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너
희들에게 들려줘 본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런 차원에서 일절 아버지에 대해서는 말
씀을 안 하시고 가끔가다 할머니가 제가 고집을 부리고 그러면 제 애비 닮아서 고집통
이 세다고 하셨어요. 네 아버지는 고집이 세서 잡혀 갔다고. 그래서 제가 어릴 때부터
쭉 들어 왔던 것이 그 얘기라 아버지께서 고집이 세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납치인사 명단 올려 준 것이 고작입니다. 이것도 서울시에
가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자료 찾는데도 국회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카피해 왔는데 분명 국회에서 알 정도면 정부에서도 자료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게
다가 나중에 서울특별시 통계국에서 만들었다는 책자를 구입해서 보니까 여기 명단에
나와있더라고요. 이 정도입니다. 또 정부에서 찾아와서 뭐 문의를 했다든가 이런 건 전
혀 없었습니다.
문_ 정부 관청 등에서 납북자 송환 노력은?
답_ 전혀 없었습니다. 연락조차 없고 지금까지도 아무 연락 없습니다. 말하자면
6·25 가족협의회가 생기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참 어려운 활동을 이사장님 이
하 다른 분들이 하셨기 때문에 이나마 존속되고 활발히 움직이는 거지 정부차원에서는
전혀 없었습니다. 체신부에서는 어머니가 물어보니 잘못해서 끌려가신 걸로만 알고 있
다고 얘기하더랍니다. 회사차원에서 깊이 있게 들려준 것은 없습니다.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그런 것들은 없었습니다.

정부에 바라는 말
<개인 차원에서 해결이 안 되므로 가족회에서 정부와 국회의원을 상대로 납북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주기를 바람>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제가 개인적으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 보고요. 그나마 가족협
의회에서 활발하게 국회의원들도 동원을 하고 미국에 가서도 활동하시고 그래서 이나
마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지 정부에서 나서서 힘써주고 하는 것은 지금도 없습니다. 마
지못해 이쪽에서 요구하고 그러면 응해주고 그런 것이지 무슨 물어보는 것조차 없고
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창피한 이야기지만 주변에서 납북과 상관없는 사람
이 그렇게 하면 정부에서 돈 준다 그러더냐고, 이런 소리나 하고 그러는데 가슴 아프고
창피해서 제가 사실 인터뷰 응하라고 해도 안했습니다. 그 후 국무총리실로부터 연락
받고 제가 서류를 준비해서 접수시킨 후에 형님들께 6·25가족협의회가 있다는 것과
현재 이런 활동을 하고 있으며 내가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하였습니다. 큰형님 내외분
은 나름대로 알아보다가 중단하였노라 하시더군요. 그래도 저는 협의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회원으로 활동을 해 오고 있고 협의회에 도움 드린 것은 없지만 회원의 한 사람으
로써 잘 되길 바라고 있는 것이죠. 제가 뒤늦게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는다던가 하는 것
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_ 사회적인 시선이 어떻게 바뀌면 좋겠는지?
답_ 정부 차원에서 홍보를 해야 국민 인식도 바뀌지 않겠나 싶습니다. 개인이 말해서
도, 가족 협의회에서 한다고 해도 실효가 없을 것입니다. 가족협의회가 정부를 상대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납북인사들에 대한 명예 훼손이라던가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심어줘야지 개인이 나서서 해 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때만 되면 이름 있는 사람 몇 사
람만 거론하고 지금도 확실하게 몇 명이 납북되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개인이 그래서는 안 되고 가족협의회가 무던히 노력하신 것
이 지금까지 쌓여서 현재까지 왔고, 앞으로도 지속이 되어서 정부 차원에서 일들을 진
행해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살아계시다고 하면 우리 나이로 아흔 아홉이 되시는데 저는 이미 총살형을 안 당하
셨다 하더라도 돌아가셨을 것으로 생각하고. 자식 된 입장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 제일 한스럽고요. 만에 하나 생존해 계시다고 그러면 글쎄요. 만
나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문_ 집에 아버님에 관한 물건이 있나요?
답_ 집을 몇 번 옮기면서 다 없어져서 제가 지금 소장하고 있는 것이 아버님 어머님 결
혼사진 밖에 없고 형님이 뭘 가지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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