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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안승우(증언자-안승범)
이름: 관리자
2021-09-27 12:21:29  |  조회: 59
190817B 안 승 우 ( 安承雨)

생년월일: 1922년생(호적상 1934년 12월 19일생)
출생지: 경북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 35번지
당시 주소: 경북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 35번지
피랍일: 1950년 8월 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목수, 농업
학력/경력: 중학교 졸업
직계/부양가족: 조부, 부모, 배우자, 남동생3 여동생1
외모/성격: 원만하고 활달한 성격

증언자
성명: 안승범(1946년생)
관계: 동생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농사지으며 목수로 집을 짓기도 하는 기술자로 동네에서 군수감이라는 소리를 들었음.
• 6·25 전쟁 나고 8월쯤에 쌀 두되씩 가지고 가서 이틀만 밥 해 먹고 오면 돌아온다는 말만 듣고 끌려 나
감.
• 당시 같은 마을 사람들과 친척이었던 임두규, 임병난, 장병우 씨가 끌려갔으나 장병우 씨는 도망쳐 돌아
와 다시 한국군에 입대함.

직업 및 활동
<목공, 농사일을 함.>
문_ 큰형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답_ 농사랑 목공일을 하셨어요. 촌에는 나무 집도 더러 지었죠. 동네에서 좀 똑똑하다고
그랬어요. 지금 있으면 군수감이라고요. 그때 당시에 중학교면 많이 배운 거 거든요. 그
런데 사회활동이나 마을에서 뭐를 하지는 않았어요. 나이가 더 많은 사람도 있었으니까
요.

납북 경위
<동네에 빨갱이 앞잡이인 사람이 나오라 해서 쌀 두 되를 챙겨서 나감.>
문_ 큰형님이 납북될 즈음의 마을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답_ 전쟁 때 기억나는 거는 그 동네가 큰 도로도 없는 산골이니까 6·25 때 빨갱이가 많
이 내려온다. 그래서 거기서 조금 내려오면 2반이라는 데에요. 제가 아까 6개 마을이
만나서 동네를 이뤘다 그랬죠. 근데 2번째 동네인데 거기에는 도로가 있었어요. 인민군
들이 예천에서 밤에 수많은 차가 줄을 지어 계속 달려서 들어왔어요. 옛날에 그런 차도
못 봤는데 군용차가 수십 대가 넘게 오니까 앞에 오는 건 탱크였어요. 근데 그때는 봐도
뭔지도 모르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탱크라는 거예요. 그리고 뒤에는 차가 오는데 뭔 차
인지는 모르고, 그렇게 동로로 수십 대가 오니까 라이트가 불꽃같더라고요. 거기가 문
경군 동로면 소재지거든요. 거기서 전쟁이 나서 들어가다가 간송 2리라는 데가 있었어
요. 동네 이름이 허웅달이라는 데가 있었어요. 냇물 옆으로 도로가 났는데 거기서 인민
군들이 지뢰를 묻었다 그래요. 여러 번 봤어요. 그거를 구경하러도 갔고 지뢰가 폭발하
는 바람에 탱크가 도랑으로 넘어갔어요.
문_ 어떻게 납북되셨는지요?
답_ 전에는 당시에 동로 1리라는 곳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납북될 무렵에는 산에서 빨
갱이들이 내려와서 산중은 위험하다고, 죽는다고 그래서 2리로 이주했어요. 그래서 이
주를 한 거예요. 거기서 이제 집을 지었어요. 형님도 목수고 고모부도 목수고 해서. 산
에는 나무가 많잖아요. 베어다가 임시로 집을 지었어요. 우선 살아야 되니까요. 비가 오
면 피해야 되고 밥도 해 먹어야 되고 그래서 짓고 그러다가 마무리 다 못하고 형님이 가
셨어요. 그거는 다 알아요. 확실히. 납북되신 시기는 6·25전쟁이 일어난 후였어요. 8
월 쯤이였던거 같아요. 나락이 덜 여물어 가지고 쌀 두 되씩 가져오라 그러니까요. 촌
에 쌀이 없단 말이에요. 쌀을 가지고 오면 한 이틀 밥 해 먹고 있으면 들어온다. 그러니
까 쌀을 두 되씩 해 가지고 오너라. 이렇게 됐었어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논도 양지는 미리 익어요. 그걸 훑어다가 방에 불을 때서 익혀가지고 빻아서 그렇게 두
되를 싸드렸대요. 그런 얘기는 수차례 들었죠. 그러신 분이 그 뒤로는 소식을 못 들었어
요. 내가 생각하기엔 형님이 납북될 때 위로 올라가셨을 거 같아요. 밑에는 길이 없으니
까요. 원주로 갔을 거예요.

납치 이유
<목수 기술도 있어 필요한 인력으로 납북된 것으로 추청.>

납치 후 소식
<같이 끌려갔다가 돌아온 사람에 의해 가다가 죽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음.>
문_ 이후에 형님에 대한 소식은 들으셨나요?
답_ 장병우 씨가 (형님이) 가다가 돌아가셨을거라고 하더라고요. 끌려간 사람들도 잘 몰
라요. 그때 당시에는 이웃 사람도 자주 안 만났어요.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자주 만나지
도 못하고 농사일도 바쁘니까요. 같이 간 사람도 얘기를 들어보면 온 사람도 있거든요.
임두규하고 사촌 처남이 되는데, 임병난이 하고 다 죽었어요. 나이가 95, 96이 다 넘었
는데. 임병난. 그리고 우리 형님의 처남 되는 분이 장병우라고 있었어요. 그분도 다 돌
아가시고 그분은 군대에 갔다가 상이군인이 돼서 돌아왔어요.
문_ 큰형님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셨나요?
답_ 이산가족 찾기는 형님들은 계셔도 촌에 농사짓고 계시고 저만큼 약빠르지도 않았어
요. 저는 국민학교만 졸업하고도 객지도 많이 돌아다녔고. 그때 당시는 내가 약았고 그
리고 운수 사업을 많이 했어요. 한 40년 했어요. 마누라 죽고는 안 했는데, 그래서 찾으
려는 마음을 못 먹어도 이산가족 할 때는 형님들이 계셔도 형님들은 할 생각을 안 하더
라고요. 그때 당시 김대중 시기에 내가 전부 신청을 했어요. 그 DNA 검사 전부 내가 했
어요. 나중에는 뭔지도 모르고 보훈청에도 가보고 그랬어요. 근데 보훈청하고는 관계가
없더라고요 가니까.

남은 가족의 생활
<인근 마을로 짧게 피난을 다녔으며, 그냥 농사지으며 생활했음.>
문_ 피난은 가셨나요?
답_ 가긴했는데 멀리 가진 않았어요. 고모부가 계신 유천면으로 밤에 소를 몰고 피난을
한 번 갔어요. 새벽에 도로로 못 가고 산길로 걸어갔어요. 거기서 하룻밤 자고 집에 돌아
왔죠. 그리고 산으로도 올 때 가고 그랬어요. 멀리는 안 가고 산중에서 숨어 있다가 밤에
내려오고, 낮에는 또 소 몰고 나가고 그 다음에 소를 막잡 아먹었대요. 돼지 잡아먹고, 돼
지는 못 몰고 가고 소는 몰고 가요. 소는 잘 따라가니까 끌고 가거나 싣고 가기도 했대요.
문_ 납북이 되시고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답_ 뭐 그냥 맨날 농사짓고 지냈죠. 뭐 더 이상 할 도리가 없잖아요. 어디 물어볼 데가 있
나요 항의할 데가 있나요? 형님을 데려간 마을의 빨갱이 대장인 김◯경이라는 사람이 있어
요. 근데 그 사람한테 물어보지도 못했죠. 이미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뒤가 무서워서요.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우리 형님들 내외 그 밑에 형님들 두 분, 우리 누님 한 분이
있었어요. 총 여덟 식구였어요. 큰형님이 결혼해서 식구가 있었어요. 남자애가 하나 있
었는데 걔가 한, 두 살 됐나 그랬을 거예요.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옛날 6·25 때 홍역이
많이 돌았어요. 그래서 6·25 때 죽었어요. 죽고, 형수씨가 혼자 늦도록 계셨죠. 계시다
가 그 이웃 동네가 친정이라 장 씨인데, 그 친정에 옛날에 면서기인 신◯기라고 그분이
이웃에 살아가지고, 우리는 혼인 신고 해 놓은 것뿐이지 뭐 이혼서류를 정리하고 이런
건 없는데, 그집으로 가더니 안 오시더라고요.

호적 정리
<사망 처리 하지 않고 남겨두었음.>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우리 형님 아직 사망 신고 안 되어 있어요. 죽었다는 증거가 없잖아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없었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납북자에 관한 문제가 위안부 등에 비해 형평성이 없는 것 같음.>
문_ 정부나 대한민국에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나 뿐만이 아니라 다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형님 같은 분은 일단 전쟁에 총 칼 들
고 안 나섰더라도 6·25 전쟁 때문에 끌려간 건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이때까지 몇 년이
고 지금 아직 아무 말도 없고 보상도 없고 천안함이나 세월호 같은 놀러갔다가 죽은 거
는 막말로 그런 거는 돈을 그렇게 물어주면서 이거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아무 응답이
없잖아요. 그래서 서울에서 무슨 집회 한다고 오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갔다 왔어
요. 그리고 며칠 전에도 또 한 번 갔었어요. 그거는 동네에서 하는 거였는데.
뭐 말하자면 편지라도 보내고, 엽서라도 보내고 할라 그러면 경비가 드는데 뭐 하나 나
올 데가 없잖아요. 나도 다달이 이거(가족회 소식지) 와요. 그래서 나도 다달이 내요. 나
라도 뭐 보태야 운영이라도 되지. 한 번도 안 빠지고 냈어요. 하여튼 예산이고 뭐고 정
부에서는 모르잖아요 이거. 사실 우리 같은 경우는 형제인데, 부모는 어떻겠어요? 참
여러 번 눈물 흘리는 것을 봤어요. 술만 잡수면 우리 아버지가 울어… (깊은 한숨) 수고
를 해주시는 분이 감사합니다. 정부도 뭐도 이기(자료가) 없어. (신고를) 안 해 가지고
그래요. 우리 형님들도 이거 할 생각들을 안 하더라고요. 내가 했지 다.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살아 계신다면 반가울 것 같으나 이제 모두 나이들고 죽었을 것이라 생각됨.>
문_ 큰형님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아이고. (말을) 전해 본들 뭐. 우선은 살아 계셨으면 더 반갑고. 통일이 된다 한들
만나보겠나, 나이가 자꾸 많아지는데 뭐. 그렇잖아. 나이가 아마 뭐 왠만하면 죽었잖아
요. 후세들이 나서서 어떻게 하면 모를까 이젠 어려워요. 이제는. 다만 곧이라도 뭐 올
해 내년이라도 이루어지면 기대를 해볼까 뭐. 나도 나이가 많아지는데. 그 양반이 90이
넘어 100이 다 되가는데. 더군다나 이북은 여기보다 경기도 안 좋고 의술도 안 좋은데
거기서 뭐 가능하겠어요. 한 번 만나보게라도 해주면 고맙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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