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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방영흥(증언자-방재흥)
이름: 관리자
2021-09-24 15:48:41  |  조회: 170
190619A 방 영 흥 ( 方永興)

생년월일: 1932년 5월 6일
출생지: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율곡 1리 83번지
당시 주소: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율곡 1리 83번지
피랍일: 1950년 6·25 발발 후 여름
피랍장소: 파평초등학교
직업: 농업
학력/경력: 파평초등학교
직계/부양가족: 조모, 부모, 형제자매(5남 3녀)
외모/성격: 키가 작고 땅땅한 체격

증언자
성명: 방재흥(1936년생)
관계: 동생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인민군들이 청년들을 데리고 궐기대회를 하면서 문산으로 데려감.
• 집으로 가겠다고 놔 달라고 하면 집안 식구들 몰살시킨다는 말에 그냥 끌려 감.

직업 및 활동
<농사를 함.>
문_ 형님의 당시 직업을 말씀해주세요.
답_ 파주에서 태어나셨어요. 특별한 사회 활동은 없었고 주로 농사일 하셨어요.

납북 경위
<동네 청년회에서 궐기대회를 하니 가평초등학교로 나오라고 해서 나감. 궐기대회 후 평
양으로 가야 한다며 문산역에서 열차타고 감. 도망치면 식구들 몰살시키겠다고 인민군이
위협함. 60~70명 정도 되는 동네 젊은이들 모두 끌려 감.>
문_ 어떻게 납북됐는지요?
답_ 여름이었어요. 며칠인지는 모르겠는데 7월이었어요. 당시에 인민군들이 청년들을
데리고 궐기대회를 하면서 문산으로 데려갔어요. 동네 청년회 일보는 사람들이 그때도
저녁에 회의해서 내일 몇 시까지 국민학교 궐기대회 하는데 가야 한다. 그래서 다들 간
거죠. 근데 도망 나온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 와중에도 우리 부락에, 도망나와서 하는
얘기가 인민군한테 가겠다고 하면 ‘너 가면 집안 식구들 몰살시킨다.’는 거예요. 그러니
까 식구들 생각해서 끌려가는 거죠. 내가 형님이 궐기대회에 나갈 때까지는 같이 있었
어요. 국민학교에서 끌려가는 건 못 봤고, 형님이 문산역으로 열차 타고 간다고. 동네
분들이 문산 가서 열차 타고 평양으로 가야 한다면서 문산역으로 나갔죠. 율곡 1리에서
60~70명 정도가 끌려갔어요. 청년들이 다 갔죠. 다른 부락에서도 그 정도 나가고 국민
학교에 모인 거는 직접 못 봤어요. 율곡 1리 우리가 사는 집하고 하나밖에 없는 큰 도로
가 가까웠어요. 25미터밖에 차이가 안 나요. 그 큰 도로로 사람들이 앞에서 징 치고 장
구 치고 북치고 꽹가리 치고 나가는 거죠. 그러니깐 나가 볼 수밖에요. 동네 분들이 ‘야
너 형도 저기 온다.’ ‘우리 열차 타고 평양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문산역으로 가는 거다.’
그러시더라고요. 우리 동네 앞 도로지만 나가서 서 있는 대도 못 보고 그냥 갔으니까…
그 여러 사람이 나가니까 형님을 잘 못 찾아보죠. 아마 파평면에서 백 명 이상은 될 거예
요. 몇 백 명은 될 거예요.
문_ 당시에 동네 분위기는 어땠나요?
답_ 6월 25일 날 6·25가 나면서 그러니까 애들이 24일 날 넘어온 거예요. 우리는 25
일 날 조반해 먹고 피난민들이 나오니까, 아마 한 20일 넘었을 거예요. 젊은 사람들 궐
기대회 한다고 가평국민학교로 열아홉 살부터 서른 몇 살까지 다 데려간 거예요 부락
마다. 그러고 인민군들이 청년들을 데리고 궐기대회 하면서 즉시 문산으로 나간 거예
요. 데리고 나가서 열차 태우고 이북으로 가는 거죠. 밤새도록 총 소리 포 소리가 굉장
했어요. 그래서 24일에 북한군이 내려온 걸 알았죠. 동네 노인분들이 아군들 훈련한다
고 그랬어요. 최전방에서 훈련한다고 총소리가 이렇게 나는데 훈련도 꽤 오래 한다고 걱
정들 많이 하셨어요. 그러는데 저희 둘째 이모님이 장단군 고랑포에 사셨어요. 근대 둘
째 이모님이 이제 25일에 피난을 나오시는 거예요. 거기는 38선이 더 가까우니까 잠들
도 못 주무시고 걸어 나온 거예요. (인민군이) 그냥 총만 메고 나오고 이틀 후 되니까 탱
크가 나오더라고요. 인민군들이 마을을 점령하고 나서 동네분위기가 이웃들끼리 싸운
것처럼… 그전까지 그러지 않았어요. 그리고 우리 부락에는 6·25가 터지고 나니까 원
래 남로당에 가입한 사람이 몇 사람 있었나 봐요. 그래서 더 험악했어요. 우리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서울에 큰 행사가 있으면 이 사람들이 올라간대요. 그게 어른들이 하신 말
씀이에요. 서울 근교에 채소밭이 많잖아요. 그때는 퇴비 비료 이런 게 귀하니까 밭 옆에
크게 구덩이를 파고 서울 시내에서 인분을 퍼다가 부어놓는 거예요. 그거를 썩혀서 밭에
주느라고. 근데 이 청년들이 서울 갔다 오면 똥구덩이에 빠져서 옷에 구린내가 나서 사
람 곁에도 못 올뿐더러… 우린 어릴 적에 ‘도망을 갈 거면 다른 데로 가지 왜 똥구덩이로
갔나?’ 했더니 어른들이 남로당 패들이 큰 행사할 때 훼방 놓고 하면 이쪽 청년들이 잡아
패고 그랬는가 봐요. 그런데 도망가는 쪽을 똥구덩이 쪽으로 유도를 한대요. 그래서 거
기 빠져서 온다고.

납치 이유
<의용군으로 끌려갔을 것으로 추정.>
문_ 납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답_ 그때는 평양으로 그냥 끌고 가니까 몰랐어요. 근데 의용군으로 끌려간 것 같아요.

납치 후 소식
<율곡 1리 수용소에 있을 때 거제도 수용소에 있던 사람에게 형의 소식을 들음.>
문_ 그 후 형님에 대한 소식은 들으셨나요?
답_ 가평에 수용소 겸 면사무소가 어디 있었냐면 지금 법원읍 동문리 동네 이름이 불기
에요. 면사무소는 거기고 저희는 이 밑으로 거기도 동문리예요. 동막골이라고 하는 동
네. 거기에 율곡 1리 사람들만 따로 모여 있는 수용소가 있었어요. (우리 식구들이) 그
수용소에서 그냥 굴을 파고 움막처럼 몇 년 있었어요. 그러다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석방시켰잖아요 옛날에. 생각지도 않게 우리 형하고 동갑내기 어떤 사람이 집
에 찾아온 거예요. 그 사람은 전쟁터에서 포로가 돼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석
방을 시켜줘서 온 거래요. 그 사람 얘기가 너희 형은 너희 식구 생각하고 그냥 인민군만
쫓아다녔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더라고요. 그 사람도 고향이 거기니까 온 거
죠. 그 사람 이름은 나이대가 비슷하니까 알아요. 강균이라고… 형이 그때까지 살아 있
다는 걸 들었지만, 근데 이제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리라고 어머니가 생각을 안 하신 거
예요. 애가 죽었지 살아 있을 리 만무하다고… 꿈에 그렇게 나쁜 꿈을 꾸셨대요.

남은 가족의 생활
<피난을 갔음.>
문_ 남은 가족은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답_ 형이 떠나고 아버지 어머니는 실성하시다시피 계셨어요. 그러고 1·4 후퇴, 그게
1·4라고 그랬나? 그래서 피난을 또 나갔어요. 막냇동생 둘이 몹시 아픈 걸 데리고 나갔
더니 한나절도 걷지 못했어요. 그냥 지고 가다가 쉬었다 가다가 그랬는데 하루 저녁 자
고 나니까 다리가 부어서 일어나지를 못 하는 거예요. 그때 동생이 아홉 살 열 살 그랬어
요. 피난을 갔어도 어린 동생들 땜에 파주시를 못 벗어났어요.
피난 나갔는데 아이가 일어나지를 못하니까 동네 분들이 방을 얻어줘서 잤는데 그분들
말씀이 이렇게 해서 아이 데리고 가다간 아이 다 죽이니까 애들은 다 두고 가라고 마을
마다 회관이 있었어요. 어느 부락이던지, 그 회관에다가 애들 다 두고 가라고 해서 회관
에 꽤 오래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거기가 주내 같아요. 파주읍. 그때는 주내면으로 있
었거든요. 그렇게 피난 갔다가 집으로 왔어요. 다시 돌아와서는 원래처럼 농사짓고 살
았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형님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셨나요?
답_ 이산가족 찾기나 적십자에는 신청을 안 했어요.
문_ 정부가 지원해준 것은 있는지요?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호적 정리
<사망신고, 시청에 납북자 신고함.>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내가 오래 전에 시청에 납북자로 신고를 했어요. 면에 볼 일 있어서 갔더니 사람들
이 모여 있었어요. 갔더니 6·25 때 의용군 끌려간 사람들 신고를 하라고 공문이 시에서
면으로 왔나 봐요. 이거는 기한이 언제까지냐 그랬더니 기한이 없고 해당되는 사람 빨
리 가서 신고하라고 그러더라고요. 면에서 볼 일 보고 그날로 군청 가서 그런 얘기를 하
고 처음 갔으니까 어디가 어딘지 모르잖아요. 내가 이런 일이 있어서 왔다니까 친절하게
데려다주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하니까 내가 얘기한 대로 신청을 받더니 1호래요. 제일
먼저 했대요. 신고하고 한 2년 정도 지났는데 전화가 왔어요. 전화가 와서 제 얘기를 들
어보고 갔는데 얼마 후에 또 오겠다고 전화가 오더라고요. 와서 유전자검사 해야 한다고
머리카락 뽑아가고 했죠.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농사일 하는데 피해는 없었죠. 다른 가족들은 모르겠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국민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해주면 좋겠음.>
문_ 정부에게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국민이 마음 편히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아무 걱정 근
심 없이. 자기 생활 터전에서 일할 수 있는 그런 세월이 왔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게 있
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하도 공산국가가 거짓말을 잘 하는 나라가 돼서. 김일성
때부터 그냥 남한에서는 계속 이용만 당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애들이 받아먹을 거
다 받아먹고 약속을 안 지키는 게 그거 아니에요. 그래서 더 걔들한테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더 이상 속지 말고 우리 국민들 마음 편이 살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음.>
문_ 형님에게 전하고 싶은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같이 형제끼리 오래도록 같이 살지 못해 미안하고요. 죽어서 좋은 대로 천도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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