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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임찬선(증언자-임화순)
이름: 관리자
2021-09-27 15:12:14  |  조회: 64
190905A 임 찬 선 ( 林燦善 / 별명 임화선)

생년월일: 1930년 3월 11일
출생지: 경기도 부천군 대부도 갈마지
당시 주소: 경기도 부천군 대부도 갈마지(옛 지명)
피랍일: 1950년 9월 10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소작농
직계/부양가족: 여동생 2, 남동생 1
외모/성격: 성격이 좋고 착했음

증언자
성명: 임화순(1936년생)
관계: 여동생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부모님이 모두 열병으로 6·25전쟁 직전 사망. 당시 스물한 살 오빠가 동생들을 돌보는 가장이였음. 이
후 오빠가 납북되고 증언자 임화순님이 어린 두 동생들을 돌보는 가장이 됨.
• 대부도 갈마지 마을에서 두 명이 납북, 다른 한 명은 납북자의 동네 친구로 납북 도중 탈출해서 돌아와
얼마 전까지도 생존해 있다가 사망.

직업 및 활동
<대부면에서 심부름 일을 하고, 다른 집 농사일을 도와주었음.>
문_ 당시 오빠가 하시던 일은 무엇인가요?
답_ 농사. 아버지가 남의 농사짓고 살다가 그 3월 스무엿샛날 돌아가셨나? 3월 초이렛
날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월 초이렛날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한 달 사이에 옛날에
왜 열병있잖아요. 옘병병 그거를 앓아 가지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뒤에 어머니
가 돌아가셨어요. 마당에다가 이렇게 새끼줄을 띄워주고, 물도 들여다 줘서 동네사람이
먹고 그랬어요. 옮는다고. 그렇게 살다가 오빠가 살 수가 없어 가지고 나이도 어리고 그
래서 그냥 대부면에서 심부름하고 그랬어요.
문_ 부모님이 돌아가셨나요?
답_ 육이오 나던 해! 아주 잊어버리지도 않어. 그러니까 6·25 나던 그 해! 그러니께 엄
마가 4월 초이렛날 돌아가셨어. 아버지는 3월 초이렛날 돌아가시고 그래 엿샛날이 제
사여. 그렇게 돌아가시고 나서 오빠가 나하고 동생들 셋 데리고 산거예요. 살다가 그해
6·25가 난 거야. 그 해에.

납북 경위
<조개잡이하고 집에 돌아오니, 동네 사람들이 오빠가 방금 빨갱이에게 끌려갔다고 하여
뒤쫓아가 끌려가는 것을 직접 목격함. 오빠가 동생들과 잘 살고 있으라고 곧 돌아오겠다
고 했으나 그 후로는 전혀 소식을 듣지 못함.>
문_ 어떻게 납북되셨나요?
답_ 농사도 짓기는 더러 남의 농사를 지어가면서 거기 가서 심부름을 하고 그랬는데, 나
는 조개를 잡으러 갔어요. 거기는 조개, 바지락, 이런 걸 잡아서 팔아서 먹고 살았거든
요. 내가 조개를 잡으러 갔다가 오는데, 너네 오빠 빨갱이들이 잡아갔다고 해요. 조개를
가지고 집에 왔는데 오빠 어디 갔느냐 니께루 안 왔다고 그래요. 그래 누가 동네 아줌마
가 네 오빠 면에서 빨갱이가 잡아갔다. 빨리 저기 거기. 고여지라고 있어요. 등 넘어 가면
대부도 고여지라고 하는데, 언덕 넘어가면 큰 행길이에요. 면에서 쭉 뻗친 길. 그게 이제
선창으로 가고 인천으로 오는 배타는 데로 그리 가는 거예요. 빨리 넘어가보라고 그래서
가지고 온 조개도 그냥 팽개치고 고여지 고개를 넘어가니까 우리 오빠가 있더라고요. 그
가운데에. 빨갱이들이 양쪽으로 다 서있고, 총 메고 머리에다가 풀을 꽂고 막 그러고 빨
갱이가 넘어와 가지고 섰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오빠가 이렇게 눈짓을 하더라고요, 말 못
하게 하니까. 가운데에 잡아가는 사람 쭉 세워 놓고 양쪽으로 포위를 했더라고요. 못 보
게… 그래서 내가 오빠! 하고 울면서 부르니까 총대로 협박을 하더라고 뻘갱이가, 그래서
내가 ‘아! 오빠! 오빠!’하고 울고 그러니까, ‘저기 경선이하고 영주하고 데리고 오빠가 금방
갔다 올게. 잘 하고 살아라. 나 오걸랑 시집가라’ 그 한마디 했어요. 애들 데리고 살아라
하고… 그러고서 그냥 데리고 간 거야. 연락이 없는 거야.
문_ 몇 명쯤 서 있었던 것 같아요?
답_ 많아요.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는 우리 오빠 하나 뿐이에요. 둘을 붙잡아 갔는데 하
나는 가다가 도망을 왔어요. 그 사람은 도망와서 죽었어요.
문_ 도망 오신 분은 누구신가요?
답_ 몰라요. 그 사람은 아랫동네 살아서… 우리 오빠 친구예요. 근데 나는 몰라. 어려서
그냥 왔다 갔다만 했지.
문_ 얼굴은 익은 사람이었나요?
답_ 그렇죠. 붙잡혀간 사람 형 이름이 정대기라고. 그 집이 지금 다 죽어서 아무도 없어
요. 이름이 그렇다고 그러더라고. 나중에 걔가 왔다고 그래서 거길 갔어요. 정대기네 집
에 갔더니 없더라고요. 그래서 못 봤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살다가 죽었다고 그러더라
고. 그러니까 남이 되고 마는 거죠 뭐. 어디 가다가 도망 왔냐고 물어보니까 서울 노량진
못 미쳐서 도망 왔대요. 어디 개울에 빠져서 돌아왔대요. 그 소리는 들었어요. 남에게서,
그러니까 우리 오빠는 그대로 빨갱이들한테 잡혀서 그냥 그렇게 간 거예요. 가 가지고 소
식이 이날 이때까지 없는 거여. 그러니 뭐 항상 생각만 있지 뭐가 있어… 그러면서 우리
오빠가 하는 소리가 조개망태기 내던지고 쫓아 가니까 양쪽으로 포위를 해서 가운데가 쭉
세워 놨더라고요 많이. 그런데 나더러 하는 소리가 ‘나 올 때까지 네 살 먹고 일곱 살 먹은
동생 둘 잘 데리고 있어라. 내가 잘 댕겨 올게.’ 그 말 한마디 하고 간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오빠 사진 가져오라는데 사진도 없고, 엄마 아버지가 있어야 뭐 옛날에 시골에서 사
진을 찍었것수? 사진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납치 이유
<동네 빨갱이가 있었고 인민군이 동네에 들어오자 해꼬지한 마을 사람들을 다 잡아가고
죽였고, 청년들은 의용군 등 인력으로 활용하려고 납치한 것으로 추측됨.>
문_ 그 동네에 빨갱이가 많았나요?
답_ 아휴… 우리 집 앞에 우리 집은 여기고, 세 집 건너에 바닥 빨갱이(동네 빨갱이)가 하
나 살았어요. 그랬는데 바닥 빨갱이가 들어오니까 점령해 들어오니까 난리가 난 거야. 동
네 사람들 다 잡아가고 잡아다 죽이고 애들 어른 뭐 다 잡아 다 죽이는 거야. 저희들 해꼬
지 한 사람들.
문_ 오빠는 집에서 의용군으로 끌려가신 것인지요?
답_ 네. 빨갱이가 와서 잡아간 거지. 우리 오빠는 피란 가다가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면에서 심부름 하고 스물한 살이니까 왔다 갔다 하다가 면에 쳐들어오니까 잡아간 거야.
면에서도 몇 명 잡아 갔것지만 난 모르지. 우리 오빠는 빨갱이가 잡아간 거야. 우리 오
빠는 피란 가다가 죽은 사람들 하고는 다르지.
문_ 바닥 빨갱이가 그 동네에도 있었는지요?
답_ 그 집뿐이 없어요. 그 집이 아주 동네 다 털었어요. 있는 집 재산도 다 빼 가고… 그
랬어요. 고◯필이가. 그때는 또 말도 못 하잖아요 함부로. 그런데 나는 애들 데리고 고
만고만한 것들 데리고 살 생각만 하고 자고 나면 우리 오빠가 오나, 밤이면 오나 하면서
그걸로 살다가 인천으로 온 거예요.

납치 후 소식
<인민군이 빠져 나가고 국군이 들어와서 면사무소에 가 보았지만 소식을 듣지 못하고 기
다리라는 소리를 듣고 기다렸지만 전혀 소식을 듣지 못함.>
문_ 마을 사람들 많이 잡혀 가셨는지요?
답_ 아니요. 갑자기 쳐들어와서 잡아간 건 둘 밖에 없었어요. 잡혀간 사람이. 면에 갑자
기 쳐들어와서 잡아간 건 그 둘 밖에 없었어요. 우리 동네에서 두 명. 그런데 하나는 도
망 오고, 얼마 만에 도망을 왔어요.
문_ 얼마 만에 돌아왔나요?
답_ 글쎄… 열흘인가 보름인가 후에 돌아왔어요. 돌아왔다는 말을 내가 들었어요. 조개
를 잡으러 갔는데, 조개를 잡아야 먹고 살거든요. 갔다 오는데 누가 그러더라고요. ‘화
순아, 너희 오빠랑 같이 잡혀갔던 사람이 왔단다.’ 그래서 그 집에 가니까 없어요. 모른
데요 그 집 식구는. 숨은 거지. 그때 간 지 얼마 안됐을 때에요. 겨울은 아니야. (가을
쯤) 된 것 같애. 왔다 그래서 쫓아 가니까 아줌마, 아들이 왔다며? 내가 그러니까, 어디
서 와 아들이? 너희 오빠하고 같이 갔는데. 붙들려 갔는데. 그러더라고요. 아, 누구 아
줌마가 그러는데 왔다는데? 그랬더니 난 몰라. 안 왔어! 그러니까 잡으러 다니니까 숨겨
놓은 거지. 바닥 빨갱이가 많았었거든. 우리 오빠 잡아가고 (인민군이) 빠져나가고, 한
참 있다가 얼마 안 있다가 국군이 들어왔어요.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면(사무소)
에 가서, 면에도 없고 그래서 우리 오빠는 빨갱이가 군인으로 잡아갔는데, 연락도 없고
어떻게 하냐고 그랬더니 연락이 올 거라고 하더라고요.
문_ 누가 그 말을 하던가요?
답_ 거기서 누가 그러더라고 면(사무소)에서 그러더라고. 빨갱이들이 잡아갔어도 그 사
람들이 멀리는 안 갔다. 도망이라도 올 거다. 가만히 있어봐라 자꾸 그러더라고요. 그러
고 말았죠 뭐. 연락이 어디 있어.
문_ 피난은 가셨나요?
답_ 안 갔어요. 몇 사람은 대부도라고 섬이 있어요, 바다 건너에. 대부도에 선재라고 섬
이 있었어요. 섬을 걸어가서 건너가요. 그래서 거기로 간다 어쩐다 하는데 나는 동생 둘
데리고 엄두가 안 나니까 생각도 안하고, 죽으면 죽고 오빠가 붙잡혀 갔는데 살면 뭐하
냐 하고 그냥 있었어요, 우리는.

남은 가족의 생활
<생계유지와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결혼, 남편과 일찍 사별 홀로 남아 다시 가
장이 되어 가정부일을 하며 육 남매를 키움.>
문_ 부모님 돌아가시고 오빠 납북되고 어떻게 지내셨나요?
답_ 열네 살 먹어서 엄마 아버지 돌아가시고 오빠 붙들려가고, 내가 열여덟 살에 올라왔어
요. 그런데 나도 눈에 보이는 게 없지. 오빠가 잡혀갔으니까, 오빠만 찾은 거지. 난 누가
갔다는 그런 소리도 못 듣고 그냥 그렇게 살았어요. 이날 이때 지금까지 오빠하고 나하고,
우리 엄마 돌아가신 것도 지게 가마대기에다가 둘러서 우리 오빠하고 가서 묻었어요 그냥.
그렇게 묻고서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하니까 병 옮는다고… 그렇게 살다가 잡혀갔으니까
허망하잖아요? 네 살 먹은 동생, 일곱 살 먹은 여동생 그거 놔두고 나한테 맡기고 갔으니
께. 그러니까 대부도에서 살다가 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도저히 애들을 데리고
살 수가 없잖아요? 거기 뭐 사촌 그런 사람들 있어야 뭐 소용이 있어요? 아무 소용도 없지.
사촌 언니(큰아버지 딸)가 인천으로 시집와서 살았어요. 그 신랑이 지금 이장이지. 인천
서 이사를 와서 통장을 했어요. 그러니까 처제, 애들 하고 고생하니 방직회사 해 줄 테
니 올라와라 그래 가지고 다 버리고 애들 둘 데리고 쫓아 올라왔어요. 그러니까 그때 내
가 열아홉 살 먹었죠, 열아홉 먹어서 내가 올라오니까 그 전에 방직회사 들어가기는 쉬
워요? 거기를 들어가기 쉽냐고. 못 들어가지. 그래 남의집 식모살이하고 일도 해주면서
애도 봐주고 얻어다가 먹고, 동생 둘이랑 사촌 언니 집에서 그렇게 살다가 사촌 언니가
중매를 하더라고요. 네가 동생 둘 데리고 희생을 하면 밥은 먹일 거 아니냐. 회사 들어
가기도 어려우니… 그 당시에 내가 조금 약았어요, 딴사람 보다. 그래서 그럼 어떤 사람
이냐 하니까, 보따리 장사 할머니가 하나 다녔어요, 우리 언니네 집을. 그 할머니가 나
를 그렇게 챙겼어요. 그렇게 동생들을 데리고 언니네 집에서 고생을 하느니, 밥은 먹일
것 아니냐, 가라 그래서 중매를 했는데, 그래서 왔어요. 그때는 창문에 창호지를 발랐
잖아요. 그래서 찢고 보니까 저기 섰더라고요. 그때는 나도 예쁘고 약았었어. 그래서 보
니까 마음에 너무 안 들더라고요. 아무리 동생들 밥을 먹인다 해도 너무 마음에 안 들어
요. 이북서 넘어와서 바다를 넘어온 사람이야 가족을 내버리고. 그런데 내가 이북 놈이
라면 이가 갈리고 내가 우리 오빠도 이북에 잡혀 들어갔는데, 내가 어떻게 이북 놈을 얻
어 가냐고 싫다고 했더니 그 사람도 이북 빨갱이가 아니라 남한에서 살려고 왔다는 거예
요. 그래서 안 간다고 하고 그냥 보냈는데, 사촌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얘 너 그렇게 고
생하고 있으니 밥은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 그래 가지고 내가 다시 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왔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희생하면 얘들 밥은 먹이겠냐고 그랬어요 데리고 가
면, 그랬더니 벌어서 먹인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남의 집 하숙
집에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그래서 나는 결혼식도 못하고 (옷) 입은 채 애들
데리고 갔어요. 가서 살았어요.
근데 그 뒤로 집 짓는데 건축을 했는데, 곧잘 벌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동생들을 다 길
렀어요. 그러다 보니까 나도 애들을 자꾸 낳잖아요. 그러니까 걔들이 크니까 국민학교
졸업 마치고 다 우리 영감이 잘 벌어서, 그 둘을 시집보내고 장가보내고 다 했어요. 그
둘은 지금 잘 살아요. 나만 이렇지. 그래 가지고 영감이 애를 여섯을 낳은 거야. 이북서
혼자 넘어와서 외롭다고, 그래서 있으면 낳고 있으면 낳고 해서 내가 여섯을 낳은 거야.
문_ 증언자의 자녀분만 여섯이신지요?
답_ 네. 딸 셋 아들 셋. 그런데 그렇게 낳다 보니까 우리 할아버지(증언자의 남편)가 주
민등록을 바꿀 때 다시 바꿀 때 가니까 만석동이 본적지인데 본적지로 가니까, 어머나!
나이를 16년을 속였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보다 16년을 더 먹은 거야. 그래서 내가 그때
안 산다고 그때는 내가 첫 애 딸 하나 낳고 안 산다고 내버리고 나왔는데, 사촌 언니가
‘네가 동생들이 있는데 안 살고 가면 어떻게 하냐? 새끼도 낳고 그랬으니 그냥 살아라.’
그래서 그냥 살았어요. 그래서 살다 보니까 애 여섯 낳고 고만고만할 때 죽는 거야, 그
영감이.
문_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나요?
답_ 자기는 나이 먹어서 죽은 거지. 칠십 살 먹어서 죽었으니까. 나는 오십 살 먹고. 그
러니까 큰애 시집보내고 나니까 고만 고만한 애들을 그냥 두고 죽은 거야. 그러니까 내
가 파출부 하루에 다섯 번씩 뛰고, 하여튼 서울 가서 애들 놔두고 식모살이하고 중국집
에 가서 살고, 그렇게 해서 그래도 시집보내고 장가보냈어요. 그래서 이제는 나 혼자 이
렇게 살고 있고 오빠가 그렇게 됐으니까 그 전에 시집와서 얼마 안 되서 나라에서 방송
이 나오더라고요. 북한에 붙들려 간 사람 신고를 해라. 그러니까 그때는 면에도 폭격을
맞아서 다 타서 없고, 그게 없는 줄 알고 난 우리 남동생이 이제 조금 나이를 먹었잖아
요. ‘누나, 그래도 형 신고 해보자’고 그래서 내가 ‘아니, 면이 저렇게 없어졌는데, 장부
가 있겠냐? 장부도 없고 이름도 없을 텐데 뭘 하냐? 그냥 말자 그까짓 꺼 골치 아프다’고
했는데 자꾸만 하자고 해 가지고 했는데 가서 알아보니까 이름이 있는 거야, 명부에. 그
래서 ‘어머! 이름이 있다 야~!’ 하니까 아버지 가족 그거를 떼니까 다 있는 거야. 거기에
그래서 (납북자결정) 신청을 했는데 인천인데 그때는 군이 부천으로 되어 있었어요. 그
래서 부천으로 되어 있더구만.
문_ 누가 납북이라고 올리셨는지요?
답_ 죽었어. 그 동네 대부도에서 본 사람 끌려가는 거 본 임근이라고. 우리 집안 사람이
에요. 먼 집안인데 아래윗집에 살았었어요. 우리를 많이 도와줬어요. 많이. 그냥 불쌍
하다고 부모 없이 살고 그렇다고… 야 너희 오빠 니가 조개잡고 오니까 너희 오빠 빨갱
이한테 붙들려 갔어. 빨갱이가 쳐들어 왔었어. 하고 그 사람이 거기 보증 섰을 거여. (그
리고) 환선이. 임환선이 거기도 그 옆에 살았어요. 먼 친척, 임서방이니까 먼 사촌. 그
오빠도 그러는 거예요. 야 화순아 너희 오빠 붙들려 갔으니까 빨리 뛰어서 행길에 가 봐
라. 거기 지금 서 있다더라. 그 두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대부도 4년 살 때도 누가 신고했는지 조차 몰랐는데, 인천으로 옮기고 시집가서 군청
이나 적십자사 같은 곳에서 혹시 오빠에 대하여 들은 얘기는 있는지요?
답_ 못 들었어요. 없어요. 그냥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거예요. 없어요. (남동생한
테) 내가 먼저 이야기를 했지. 걔가 월남을 다녀왔으니까 너는 이제 군인도 갔다 왔고 장
남이니께 우리 한번 면에 가서 뭘 하자라고 할라는데 테레비에 나오니까 우리 한번 명단
에 있나 보자.
문_ 이산가족 찾기는 하셨나요?
답_ 안 했지. 난 잡혀가는 걸 봤으니께. 그러니까 남동생 하는 말이 ‘그러면, 누나 원이
나 없이 신고나 하러 가 보자’ 그래서.

호적 정리
<남동생과 함께 사망신고 처리함.>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사망 신고 했어요. 내가. 몇십 년 만에 신고했어요. 그때 이거 신고 하고 나서. 너
무 오래되고 나 죽기 전에 사망 신고는 하자 하고 했어요. 그냥 면에 가서 하니께 해줍디
다. 그러니께 지금 살아서 온다고 해도 뭐 사망신고가 되어 있으니까 모르지 인제. 했어
요 내가. 너무 오래 돼서.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연좌제가 뭔데? 우리 동생은 군대 가서 월남 갔다 왔어요. 군인으로. 나도 이북에
잔디 심으러 들어가서 한 달 만에 돌아왔어요. 내가 영감도 죽고 그래서 아파트에 꽃도
심고 잔디도 심으러 9년을 다녔어요. 그런데 이북에서 잔디 심는 거, 현대에서 식당도
하고, 호텔도 지을 때 마당에 꽃 심고 잔디 심고 이러는 걸 아가씨도 데리고 배워주면서
내가 잔디를 한 달을 심었어요. 현대에서 잔디 심는 버스로 들어갔어요. 일하러 간 사장
이 북한의 금강산도 구경시켜줬어요. 여기서 강원도로 가서 일 한 달 동안 하면서 아가
씨들 이북사람들 데리고 호텔 앞에 잔디 심고 꽃 심고 그랬어요. 한 달 동안.
문_ 그때 기분 이상하셨겠네요.
답_ 그러게 나는 딴 정신은 없고 혹시나 우리 오빠 있나? 하고, 그냥 군인들 보면 호텔
에 담을 철로 쌓았는데 이렇게 이렇게 하며 담배 좀 달라 그래 아저씨들 더러, 군인들
이. 아가씨들은 잔디 심으면서도 우유하고 빵하고 새참 주거든, 여기 사람들이 가서. 그
러면 안 먹어요. 이렇게 모아가지고 가서 검사 맡아야 먹는데, 아가씨들 먹어 이러면 못
먹는데 그리고 월급도 타면 돈 타면 다 갖다 바친 데요. 그러면 거기서 조금 준대요. 그
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거기를 가 봤어요. 가니까 잔디 심고 일하러 갔더
니 맨 군인이 많으니까 우리 오빠 있나 하고 그것만 눈에 씌더라구. 그런데 말도 못하게
해요. 담 쌓고. 그 동네 들어가면 대문이 이렇게 있어요. 공장 마냥. 그 동네 들어가는
문. 거기 손님 오면 군인 허락을 받고 문 열어줘야 들어간 댑디다. 사람이 일절 없어 마
당에. 이런 길거리에. 없어요. 그렇게 해서 이북 한 번 갔다 오고, 우리 동생 월남 갔다
오고 그랬었어요. 아이, 나는 이제 옛날에 정신이 참 좋았어요. 그런데 이게 다 머릿속
에 여태까정 파묻혀 있는 거야. 나는 그냥 언제나 죽기 전에 우리 오빠 언제나 볼라나…
보긴 뭘 봐. 다 죽어서 없어 졌겄지…

정부에 바라는 말
<유골 송환이 되면 좋을 것 같고 보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살기가 너무 힘듦.>
문_ 정부나 대한민국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내 생각에는 어차피 오빠는 그렇게 되서 살아도 죽을 나이야. 80 넘어 90 됐으니
께. 뭐 살았어도 넘어가서 이북서 살아서도 죽을 나이고.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남의 나
라에 빨갱이한테 잡혀갔으니까, 나는 유골도 찾으면 좋겠고 보상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솔직한 얘기로 나 살기 너무 힘들어서 너무 힘들어. 난 그거야 어차피 오빠는 올해 90인
가 뭐 그렇게 될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이북으로 넘어갔다 이북군인으로 생활을 한데도
죽을 나이고, 내가 지금 여든넷인데 그런데 바랄 게 뭐가 있갔수? 얼굴 보면 좋지만 그
처지도 안 되고 뼈라도 보면… 그 처지가 안 되잖아요. 내게 대해서는 내가 오늘 죽을 지
내일 죽을지 나는 모르는 거니까. 항상 나는 뼈가 오면 아무개다 하면 좋겠지만, 내가
몇일 전에 한 두어 달 됐었나 보오. 거기 갔다 왔어요. 기념관 가서 우리 오빠한테 가서
‘아후 우리 오빠 뼈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울고 왔는데… 나라가 뒤숭숭하잖아요. 박
근혜도 그렇게도 그렇고. 모든 게 다 그렇잖아. 다 돌아가는 거 다 알어. 그런데 내 생각
에는 그러네요. 아니 진짜 솔직한 얘기로 이렇게 나라에 가서 몸을 바쳤는데, 피난가다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솔직한 얘기로 살것다고 보따리 싸가다 잡힌 것도 아니고, 빨갱
이한테 잡혀갔는데 그런 사람은 그래도 무슨 보상이 있어야하는 것 아니에요? 난 그게
하고 싶어.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고생 많이 했으니, 좋은 데 갔으면 함.>
문_ 오빠한테 남기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좋은 데로나 가서 좋은 세월이나 사는 거지 뭐. 어떡하여? 인자… 고생도 많이 하
고, 부모도 또 그렇게 제 손으로 다 갖다 묻고 그런 사람인데 어떻게 세월을 못 만나서
그러고 갔으니까 항상 가슴이 아파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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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납북자-임찬선(증언자-임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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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7 63
222 납북자-양대현(증언자-양성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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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7 60
221 납북자-김현례(증언자-문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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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7 60
220 납북자-안승우(증언자-안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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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7 59
219 납북자-임명근(증언자-임갑희, 임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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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7 66
218 납북자-이완중(증언자-이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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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7 65
217 납북자-김용진(증언자-김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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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4 57
216 납북자-왕영덕(증언자-왕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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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4 59
215 납북자-박홍구(증언자-박신자, 박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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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4 60
214 납북자-정흥동(증언자-정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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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4 59
213 납북자-방영흥(증언자-방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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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4 58
212 납북자-강복만(증언자-강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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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4 60
211 납북자-이재환(증언자-이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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