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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이재환(증언자-이영선)
이름: 관리자
2021-09-23 12:48:44  |  조회: 71
190530A 이 재 환 ( 李宰煥)

생년월일: 1919년 9월 27일
출생지: 평안남도 평덕시 서성리 403
당시 주소: 마포구 신공덕동 128-32
피랍일: 1950년 7월 21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이승만 대통령 정신훈련원
학력/경력: 평양 숭실 고교
직계/부양가족: 부모, 여동생, 배우자, 자녀 1남 1녀,
작은어머니와 그 자녀
외모/성격: 키는 좀 작고 이국적인 외모

증언자
성명: 이영선(1934년 )
관계: 여동생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반공산주의 계열의 직장 ‘정신훈련원’에 다니던 오빠에 대한 기록이 집에 남아있어 완장 찬 빨갱이들이 들
이닥쳐 그 기록을 보고 그 자리에서 오빠를 잡아감.
• 납북자의 아버지는 서울 사람인데 왜정 때 엔지니어로 평양 병기소에서 일하다가 해방되면서 박해를 피
해 월남하였음.
• 을지로 국립도서관 자리에 갇혀 있을 때 빵과 물을 가지고 가서 열려있는 창문 창살 사이로 사람들이 꽉
차있는 속에서 오빠를 발견하여 건네줌.
• 오빠의 납북 이후 피난길에 아버지와도 헤어져 올케와 조카들을 부양하며 살았음

직업 및 활동
<평양 숭실 전문을 졸업하고 정신훈련원에서 근무.>
문_ 오빠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답_ 직업이 이승만 대통령 정신훈련원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학교는 전문학교 평양 숭실 고교. 왜정 시대 때는 일본 빅타 회사에서 가수 박단마 뭐 그런 옛날 가수들의 곡도 만드는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돈 벌어서 친구들 일본에 유학을 보내고.

납북 경위
<군복은 입지 않고, 완장 차고 총을 든 두 사람이 집으로 와서, 조사할 것이 있다고 말하며 데려감.>
문_ 당시 동네 분위기는?
답_ 그 동네는 아무 다칠 사람이 없어요.
문_ 언제 어떻게 납북되었나요?
답_ 7월 21일 시간은 점심때 지나서 자택에서. 6·25사변에 그걸 조사하는데, 우리 아버지한테 오빠가 정신훈련원을 다니는데 미농지를 버리라고 했는데 안 줘서… 그것이 정신훈련원 단원들 다 졸업하고 있는 것 전부래요. 그래서 다 들통이 났죠. 그래서 정신훈련원이니깐 먼저 잡아갈 것 아니야? 그래서 6·25사변이 25일에 났는데 7월 21일에 잡혀갔어요. 군복은 안 입었어. 총 들고 완장 찬 두 사람이 와서 잡아갔어요. 그리고 나서 못 보다가 을지로의 도서관 같은 큰 데가 있었어요. 거기에 갇혀 있더라고요. 그럴 때 한 번 가 보고 그게 마지막이에요.
미군들이 인천으로 들어오고 밀려가면서 끌려가고 자세한 걸 모르는데, 좌우간 잡혀간 날은 7월 21일이고, 거기에 갇혀 있다는 것만 알고 그냥 그렇게 지냈어요.
문_ 끌려가면서 오빠가 한 말이 있는지요?
답_ 뭐라고 해요? 자기가 걸렸구나 했지. 그걸 봤거든. 들어오자마자 오빠가 이렇게 뭘 하는데, 누가 말을 했는지, 딱 그 방에 내가 앉아있을 때, 그 위에 있었어. 바로 그래서 내가 그 방에서 위에서 그걸 봤어. 그 방에 있었어. 완장 찬 사람들이 다 봤죠. 거기 국민 훈련원 명단이 쫙 있지. 총대 메고 왔는데 거기서 완력을 사용하고 그럴 필요가 뭐가 있어. 도망가면 쏠 거고, 그냥 순순히 갔죠. 어떻게 대항을 해요? 총 가진 사람 앞에서.
문_ 다른 마을사람들도 납북되었는지?
답_ 마을 사람들도 몰라서 그렇지 많이 잡혀가고 그랬죠. 우리가 남의 일까지 신경 쓸 수 없으니까, 우리가 불똥이 떨어졌으니깐. 돈 벌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먹고 살 일이 막막하잖아요.

납치 이유
<근무지였던 정신훈련원이 반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일 것으로 추측.>
문_ 무엇 때문에 납치되셨다고 생각하시나요?
답_ 그러니깐 거기정신훈련원 있는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자본주의, 자유국민이니깐 빨갱이가 아니고 사회주의가 아니잖아요. 그러자 이북이 자본주의 사람을 다 죽이고 다 뺏고 그러니깐.
우리 아버지가 옛날에는 여자가 하나가 아니잖아. 또 있고 그래서 작은어머니의 아이를 데리고 나왔지. 같이 와서 살 때 아버지보고 이걸 다 치우라고 했는데, 그 미농지 그게 남아있어서 그때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 때문에 내가 죽습니다’ 하고 나갔다고. 그때 그걸 치웠으면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거기 모든 것이 다 써 있거든. 몇 기 이런 것부터 전부다.
문_ 피난은 가셨나요?
답_ 그때 6·25 때는 못 갔어요. 갑자기 일어난 일인데 어른들이 준비가 되고 그래야 피난도 가지. 아버지는 원래 서울 사람으로 남쪽에 왔으니깐 피해는 없었어요. 이북서 한국으로 왔어요. 서울 살다가 왜정 때는 평양 병기소에서 일을 하고 엔지니어니깐. 일하고 있다가 해방되면서 막 가해하니까 남한으로 내려오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 6·25 때 그랬기 때문에 1.4 후퇴에 인천항으로 막 들어오고 해서 그땐 우리가 피신을 했어. 6·25 때 이제 다 망해버렸는데, 남은 식구가 살아야 할 것 아니야? 그래서 1.4 후퇴 때는 그 겨울에 피난을 했어.

납치 후 소식
<을지로에 있는 국립도서관(현 롯데백화점 위치)에 갇혀 있었음. 한 번 만나러 가서 창문을 통해 얼굴을 보았고 싸 가지고 간 빵과 물을 주었으나 그 후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함.>
문_ 오빠가 끌려가고 난 후 소식은 들었나요?
답_ 국립도서관 같아. 을지로에 도서관이 롯데 자리에요. 아니 나 혼자 갔지. 다 아무것도 안 하니깐. 아버지도 계시고 아내도 있으니깐 하려니 했는데 전혀 안 하니깐. 내가 어느 날 갔어. 빵하고 물하고 손수건에 싸 가지고 주면서 우리 오빠한테 이거 먹어 하고 창에서 손을 내밀어서. 여름이니깐 창을 안 닫고 창살을 이렇게. (사람이) 꽉 차 있었어요. 듬성듬성이 아니라 꽉 차있었어요. 그 꽉 차있는 속에서 오빠를 발견한 거야. 그러니깐 얼굴을 봤으니깐 저기 있다 하고 손짓하고, 건물 밖에서 창살에서 손을 내밀어서 여름이니깐 다 열어 놓고.
남은 가족의 생활
<피란 중 아버지와도 헤어져 올케와 오빠의 자녀 둘을 데리고 전주로 내려가 생계는 증언자가 책임지고 이어나감. 조카 중 한명은 사고로 죽음. 오빠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음.>
문_ 남은 가족들의 생활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답_ 한 달 동안에 집안이 쑥대밭이 됐잖아. 돈 벌던 사람들이 끌려갔으니 일절 한푼도 없고 우린 우선 먹고 살아야 하니깐. 내가 냉차 장사도 하고 막 그랬어요. 레이션 박스에서 나오는 커피를 해 가지고 찬물에 타서 얼음 넣고 설탕 넣고 해서. 우린 당장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깐. 거기 인민군들도 총대 메고 와 있잖아. 그 사람이 물어봐요. 장사하게 안 생겼는데 왜 이렇게 됐냐고 그래서, 전쟁터지고 하는 바람에 학교도 못 가고 지금 그렇다라고 그랬더니 자기네들이 그러냐고 하더라고.
이제 우리 아버지하고 오다가 또 헤어졌어.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우리 올케하고 나 하고만 남았는데, 아이 하나씩 업고. 그래서 이제 아버지가 돈하고 먹을 것 하고 짊어지고 계시다가 잃어버려서 우리는 빈 몸으로 아이들만 업고 갔어. 우리 아버지는 서울로 오고, 동두천 저쪽으로 미군들 와 있는데 그 동네 살고, 우리는 부산으로 피란을 못 가게 해서 전주로 갔어요. 전주에서 우리가 하나씩 업고 갔잖아요. 하나가 죽었어요. 군용차만 봤는데, 군용차에 색칠을 해서 버스를 만들었어요. 그 어린 아이가 버스가 신기해서 만져보다가 뒷바퀴에 깔려서. 그래 가지고 오진을 했어. 배가 터졌는데 그걸 빨리 알았으면 살았는데 아무 일 없다고 해서 나중에 배가 불러서. 물 먹이면 안 된다고 그래서 안 줬더니 지금도 우물 속에 물이 가득한데 왜 안주냐고, 그 네 살짜리가 그러는 거야. 그 영리한 애가, 어렸을 때 네 살짜리가 그렇게 말을 하던 게 지금도 남아 있어요.
그렇게 해서 하나가 가고 정은이 하나 남았죠, 지 오빠가 가고. 올케는 병으로 인해서 일찍 세상을 떴어요. 간경화증이 와서. 정은이는 이모가 키우다가 안 되서 결국은 내가 데리고 있다가 시집까지 보냈지.
우리 아버지는 내가 살아서 만나질 못했어. 우리 아버지가 나 스무 살인가 한 2년인가 더 살고 돌아가셨어. 나는 서울에 오기 전에 전주에 피난 가 있다가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석유불인 줄 알고 댔는데 휘발유여서 불이 확 붙어서.
전주에 있을 때는 내가 간호학교에 갔어요. 거저 공부할 수 있는 데가 간호학교 밖에 없어서 거기 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지금 간호대학이죠. 그 이후에는 세브란스에서 국가의 녹을 먹었으니깐, 딱 1년 일하고 그만뒀어요. 그 다음에 55년도부터 기독교방송국에 들어갔어. 거기 있다가 61년 새로 생긴 MBC에 입사하여 십오년간 근무했지.
그러니깐 오빠가 뭐 끌려갔는지 뭐 어떻게 됐는지 모르니깐 늘 기도하고 살았어요. 하느님 앞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 영혼이 어떻게 있는지 보호해 달라고. 끌려가서 먹지도 못하고 내가 늘 그래서 오빠 때문에 기도하는 거야. 내가 보기를 했겠어 뭐 어쨌겠어. 살아 있기만을… 그게 시집가서 결혼 후에도 기도를 하는데 하루는 오빠는 산속에서 얼어 죽었다고 음성이 들렸고, 그 이후로는 오빠 때문에 기도를 안 했어요. 죽었다는데 어떻게 됐는지 하느님의 뜻이겠지.

정부의 노력
<아버지도 올케도 신고하지 않았음. 그래서 도움 받은 바도 없음.>
문_ 피해 신고는 하셨는지요?
답_ 그러니깐 우리 아버지도 그걸 그냥 내버려 뒀어요. 알아보고 그러지 않고 나는 어리고 모르고 어른들이 하겠지, 아내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했는데 아무것도 안 했어. 모르겠어요. 그렇게 안 했어. 그러니깐 맹꽁이가 돼서 그랬지. 아버지가 안 하면 내가 라도 좀 나가서 알아보고 그래야 하는데 하나도 안 한 거야. 나는 뭐 어리니깐 아버지하고 올케가 있어서 자기 남편이고 아버지니깐 하겠지 하고.

호적 정리
<오빠의 딸이 했을 것으로 생각됨.>
문_ 호적 정리는?
답_ 우리 정은이가 했겠죠. 오빠가 죽었는데 뭐.

연좌제 피해
<연좌제 피해 받지 않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난 그런 건 하나도 없었어요. 나는 기독교방송 크리스천이니깐 거기서 일했고 MBC에서 일했고. 거기서 이십년 일하고 말았어요, 남편이 화가였거든. 아무개 남편 그러면 안 되잖아요. 남편 이름으로써 아무개 아내로써 살아야지.

정부에 바라는 말
<보상을 요구하기 보다는 진실이 밝혀지길 원함.>
문_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답_ 진실을 다 밝혀냈으면 좋겠어요. 국가가 보상을 하고 안 하고가 아니야 이건. 정말 피 끓는 청년들이 죄 없이 죽었다는 거, 그건 알아야지. 보상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전혀 그런 건 없었어요. 나는 뭐 청년단에서 와서 가입하라 그래서, 우리 식구 먹고 사는 것도 부족한데 어떻게 가입을… 그리고 우리를 먹여 살리라나? 그럼 내가 나가서 일 할게 그랬더니 못 옵디다. 청년회에서 날 잡으러 몇 번 왔어요. 가입시킨다고 나라도 중하지만 우리식구가 더 중해. 먹고 살아야 한다고.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끌려간 오빠는 죽었다고 믿고 있어 전할 바 없음.>
문_ 오빠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죽었다고 나는 절대로 믿어요. 하느님이 죽었다고 가르쳐 주신 걸로 봐서. 거짓말 같으면 진작 들려주겠지. 그렇지만 이북에서 넘어온 사람 중에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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