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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채록

납북자-봉재석, 봉재충(증언자-이풍렬, 소명규, 봉필만,봉필회)
이름: 관리자
2021-09-27 15:21:57  |  조회: 228
190909A 봉 재 석 ( 奉在錫)
생년월일: 1922년 6월 10일
출생지: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시미리 367
당시주소: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시미리 367
피랍일: 1950년 7월 20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농업
학력/경력: 무학, 대한청년회 활동
직계/부양가족: 부모, 5남매, 배우자, 자녀 1남

190909B 봉 재 충 ( 奉在忠)
생년월일: 1926년 1월 14일
출생지: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시미리 367
당시주소: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시미리 367
피랍일: 1950년 7월 20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농업
학력/경력: 송전보통학교 졸업, 대한청년회 부단장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자녀 1녀

증언자

성명: 이풍렬(1927년생)
관계: 동네 지인
증언성격: 간접증언

성명: 소명규(1932년생)
관계: 동네 지인
증언성격: 간접증언

성명: 봉필만(1947년생)
관계: 아들
증언성격: 간접증언

성명: 봉필회(1952년생)
관계: 아들(양자)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전쟁 발발 직후, 동네에 군복 입은 군인들이 장악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당시 동네 사람들끼리 좌우로 완
전히 갈려 있었고, 분위기가 험악하고, 먹고 살기 힘든 편에 속했던 동네 사람들이 좌익 활동하였음.
• 봉재석과 봉재충은 결혼하여 어린 자녀가 있었고 대한청년회 활동을 하였음. 동네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
던 나이였던 청년들을 밤중에 데려갔고 갑작스럽게 데려갈 수 있었던 것은 한동네 살던 사람들이 좌익성
향이었던 이들이 있었음.
• 갑작스럽게 밤에 끌려갔고 봉재석과 같이 끌려간 동네 청년들 가운데 하나였던 윤관호는 평양감옥소 근
처까지 끌려가다 도망쳐 나왔음

직업 및 활동
<농사 및 대한청년회 활동. 봉재석님은 대한 청년회 부단장.>
문_ 그 당시 농사도 하셨지만 다른 활동도 하셨어요?
답_ (봉필만) 글쎄 뭐 나는 잘 모르지만 학례 아버지가 청년 단장이고 우리아버지가 부단
장인가 그랬나. 그 당시에.

납북 경위
문_ 어떻게 끌려가셨는지 보셨나요?
답_ (봉필만) 어머니 아버지가 한 살 차이인데. 그런데 집에서 마루에서 우리 셋이 자는
데 그 동네 빨갱이들이 포위해서 아버지 붙들어 가신 걸로 알고 있어.
(소명규) 모르지 우리가 못 봤으니까. 밤에 그냥 데리고 간 거지. 뭐 수갑이 어딨고… 다
동네놈들이여. 다 동네놈들이 동네 사람 잡아간 거야. 딴 사람 없어. 다 동네 사람이여.
동네 살던 사람이니까 그냥 데려간 거지. 아 그냥 꼼짝 못하고 끌려 간 거지. 끌려 간 거
를 못 봤으니까 그런 건 모르고. 어떤 놈들(지방 빨갱이)이 데려간 거 짐작만 해서 아는
거지. 우리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 놈들이 데려 간 거야.
(봉필만) 지금 아저씨가 말씀하시는 사람들은 전부 동네에서 동네일 보시던 분들을 잡아
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잡아 간 사람들)은 좌익으로… 동네 일보시는 분들 붙
들어 간 거지. 내가 들은 얘기로는 밤중에…
(소명규) 밤에 잡아 간 걸 알 수가 있어? 그 사람들이 밤에 와서 잡아간 걸.
어느 날 일어나 보니까 아주 난리였었지. 동네가 아주. 죄 잡아갔잖아 그놈들이.
(이풍렬) 일곱 사람인가 데리고 가다가 저기서 세 사람인가는 죽이고. 가다가 또 어디 가
서 죽였는지 모르지.
(소명규) 동네 빨갱이 놈들이 밤에 이 아버지(봉재석)하고. 밤이니까 잡아갔지. 누가 그
런 줄 알았냐고, 그걸 알면 남쪽으로 피난 갔게. 그걸 몰랐지 전혀. 감쪽같이 잡혀 간 거
지.
(봉필만) 마루에서 주무시다가.
문_ 동네 사람들끼리 좌우가 완전히 갈려 있었어요?
답_ (소명규) 동네가 양쪽으로 분리됐었어(좌우익으로). 빨갱이들이 동네 사람 다 잡아
가고 그런 거지. 완전히 이렇게 양쪽으로 분리가 됐었어. 밤중에 잡아다가 무너미고개
(지금의 은화삼CC 입구 삼거리)서 난리도 못 꾸며 입 봉하고 있는 거지. 아는 체도 못하
는 거야. 끌려간 거 보덜 못했지만 끌려간 것만 이제 그 이튿날 알았지. 그 입도 뻥긋 못
해. 어떤 놈들이 빨갱인지 다 알지만, 실제로 잡아가는 거 못 봤으니까.

납치 이유
<궁핍한 살림에 머슴살이하던 이들의 묵은 감정에 대한 복수로 대한청년회 활동 등 동네
일 보는 젊은이들을 밤에 붙잡아 다 데리고 감.>
문_ 한창 일하시는 분들 젊은 남자분들이 끌려가신 거네요?
답_ (이풍렬) 그렇지 다 일하는 사람들. 동네에 그 빨갱이가 그전에 살던 복수로다가 잡
아 간 거여. 끝내 그 감정이 있으니까 그전부터… 끌고 간 것도 있고 먼저 빨갱이가 좌익
이라 해서 예전에 머슴살이하던 사람들이 주로 많았지. 살기가 곤란하고… 좀 있는 사람
들한테 지배 받았으니까 이제 복수하는 거다 하면서 그런 거지.
(소명규) 다 동네 사람들이여. 같이 자라고 같이 살던 다 동네사람들이지. 밤에 누가 그
럴 줄(잡아 갈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으면 피난 갔지. 전혀 그럴 줄 몰랐는데 잡아갔
지. 맘 놓고 살았는데 잡아 간 거지.
(소명규) 잡아 가던 빨갱이들도 가면서 무너미 고개에서 죽임도 당하고, 나머지는 저 뭐
데리고 갔다고도 하는데 그걸 누가 봤어?

납치 후 소식
<같이 끌려갔다 도망쳐나온 동네 아저씨에게 평양감옥소까지 같이 갔다는 이야기 들음.>
문_ 납치 후 들은 소식은 있나요?
답_ (봉필만) 윤관호 씨라고… 송전 윤관호 씨가 같이 붙들려 가다가 도망 오셨잖아. 그
래서 그 양반 얘기로는 끌려가면서 평양감옥소 얼마 안 남겨 두고서 자기는 도망 왔다고
그러고 그때까지 아버지 살아계시고. 그런데 윤관호 씨가 풀고 도망가자고 했는데 아버
지는 안 도망가고, 그때 당시 포승줄 묶여서 가다가 그 당시 한참 나이에… 윤관호 씨 그
양반은 빠삭 마르다 싶이 해서 포승줄이 빠져 도망칠 수 있었다는 거야. 그 당시에. 그
양반은 논뚝 밑으로 일부러 굴러 떨어져서 그리고 도망 왔다고 들었어요. 윤관호 씨는
도망 와서 여기서 살으셨죠.

남은 가족의 생활
<마을에서 농사일하며 지냄.>
문_ 남은 가족의 생활은 어땠나요?
답_ (봉필만) 그냥 어머니하고 나하고 농사짓고 살았어요. 그리고 큰아버지 계시니까 같
이 하셨으니까 어른들하고 같이.
(봉필회) 서류상으로만 그렇게 돼 있는 게 뭐냐면. 우리 작은어머니가 혼자되신 거 아
냐. 은자라고 있었는데 걔 죽고 혼자 있으니까 우리 큰아버지가 혼자 사시려면 적적하니
까 얘를 양자로 해라 했는데, 그래서 나를 양자로 올렸는데 사실은 작은어머니가 혼자
못 살겠으니까 재가를 하셨어요. 그래서 서류로만 양자로 되어 있고 실상은 우리가족들
과 함께 살았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나 관련 단체의 도움 같은 게 있었나요?
답_ 없어요.

호적 정리
<봉재석-사망, 봉재충-실종.>
문_ 어떤 계기로 사망 신고로 정리하셨나요?
답_ (봉필만) 아버지(봉재석)는 행불로 오래되어 있으니까 사망신고 한 거죠.
(봉필회) 아버지(봉재충)는 실종으로 돼 있어요 지금도. 연세가 지금 아흔둘인가 셋인가
그렇게 되실 걸. 20년생이시니까.

연좌제 피해
<연좌제 피해 겪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봉필만) 내가 공군을 나왔는데 그 당시 군대 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수원비행장.
시찰 온 적이 있었어. 한 달 내내 박 대통령 온다고 주변 청소고 뭐 준비를 많이 하고 나
서 그날 오는 날 10시에 행사가 시작하는데 행정대에서 나를 부르더라고. 행정계로 오
라 그래서 갔더니 한 20명 넘게 있더라고 대대 얘들이. 너희들은 여기 있으라고. 그래
서 영문도 모르고 참석도 안 하고 있었는데 대통령 가고 나서 가라고. 그래서 난 왜 그런
지도 모르고 그래서 한 얘한테 ‘왜 우리들은 거기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거냐.’ 고 했더
니, ‘야 너 모르냐. 너희 식구 중에 북한에 연결된 사람 있느냐?’ ‘우리 아버지가 그렇지’
그랬더니 ‘그래서 너 못 나오게 하는 거야.’ 그것이 뭐냐면 연좌제라고 해서 우리를 빨갱
이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거기 살아 계셔서 남한에 있는 우리들하고 이렇게 내
통할 수도 있고, 그게 따지고 보면 연좌제는 말 그대로 연결고리가 되어 있는 걸로 봐서
요주의 인물로 생각하고 안 내보낸 거지.
(봉필회) 요주의 인물로 본거야. 요주의인물로… 나는 그래서 헌병대 지원해도 거기서
열외 되고 피해를 많이 봤지.
문_ 당시 행사에서 제외된 다른 사람들도 납북 관련된 경우인가요?
답_ (봉필만) 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붙들려 간 사람들이지. 거기서 내가 아는 얘들보고
넌 누구여? 작은아버지다. 삼촌이다. 여기서 일하다가 빨갱이들한테 납치된 사람들. 그
래서 우리는 애국자면서 사상적으로 의심을 받고 그런 적이 있었지. 우리는 사병이니까
진급 같은 거야 없지. 다 똑같은데 단 그때 그거 한번 피부적으로 내가 느낀 거지. 그러
고 나서 이런데 와서 아저씨들도 계시지만 우리들은 떳떳하게 살고 그랬지. 우리는 빨갱
이들하고 연관된 게 아니고 애국자 아들이란 말이야. 따지고 보면… 좌파 우파 하면 우
리는 우익 아니냐 이런 얘기죠. 그런데 좌파들한테 빨갱이들한테 당한 거란 말이야. 그
래서 자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그냥 지금까지 받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것이 지금
도 명예 회복하기 위해서 애쓰시는 분들이 그것 땜에 애쓰시는 거 아니에요.
(봉필만) 저도 거의 그런 거예요. 내가 포천 근무했거든 경기도 청산면. 박정희 때, 국산
포 사격장이 1호인데 고문리에 있어요. 지금도 포 사격장 있거든 거기가 1호 사격장 때
박정희 대통령이 거기 왔어요. 내가 공병대 출신이거든. 대통령 오시니까 한 달 정도 계
속 닦았거든 얼마나 반뜻하게 닦았는지 자갈 깔고 포장도 없이 그런데 막상 대통령 암호
가 불국사에요. 하루 전날부터 물 뿌리고 다 하는데, 막상 그날 지나가는 날은 딱 몇 명
부르데 너희는 내무반 청소해. 그러더라구, 하라니까 해야지 어떡해. 딴 놈들은 일자복
딱 입고 다 나가는데… 그게 나중에 안 사실이지.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걸, 표 나
게 한 거는 아니니까 절대. 그래서 나중에 보니까 그렇더라는 거죠.

정부에 바라는 말
문_ 정부나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봉필회) 나는 뭐 딴 거 바라는 거보다는 명예 회복.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보고 지
금에 와서는 연좌제도 폐지되고 중요치가 않지만, 옛날에는 내가 절실히 느꼈다고. 대
통령이 와도 거기 참석 못 하게 해 놓구 굉장히 분한 마음이(들었지). 이건 나라를 위해
서 일 하신 분들을 그 빨갱이한테 붙잡혀 갔는데, 내 자손들을 보호는 못 해줄망정 이 사
람들을 나쁜 놈으로 보고 그렇게 하는 것이 굉장히 기분이 나빠서 지금이라도 명예 회
복 돼서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한 사람들이다.’ 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지 뭐
딴 거 없어요.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도 아니고 그동안 해온 것도 어쩔 수 없는 거지. 그
러니까 그 사람들이 나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그 빨갱이한테 붙들려 간 것을 오히려 남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할 정도가 됐으니 그거에 대한 명예 회복이 난 중요한 거지.
(봉필회) 생사 확인하고 명예 회복이면 되지. 해 주겠어요? 해 주지 않을 거고 이 정부
들어서 더 하지. 아예 없애려고 할 텐데. 안 할라고 할 텐데. 그렇죠. 다른 건 없어요.
정부에서 바란다고 해줄 것도 아니고 지금에 와서 이 정부는 나는 이 정부를 아예 믿지
않기 때문에. 아 나, 임진각에 기념관 해놓은 거 있잖아요. 그거 누가 한 겁니까? 전 정
부에서 한 거 아닙니까.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 같으면 했겠냐고. 솔직히 얘기하
는 거여. 막는 놈들이 이놈들인데 밝히려 들겠어요? 그래서 바라는 바 없어요. 이런 정
부한테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아버님께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봉필만) 없어요.
(봉필회) 얼굴을 알아야 뭐 얘기를 하지. 글쎄 얼굴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서… 딱히 할
말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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