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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안홍모(증언자-안순일)
이름: 관리자
2021-09-27 15:24:09  |  조회: 60
190918A 안 홍 모 ( 孔利植)

생년월일: 1914년 9월 20일
출생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 323번지
당시 주소: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 323번지
피랍일: 1950년 9월경
피랍장소: 자택
직업: 자택
학력/경력: 6·25전쟁 발발 후 치안대
직계/부양가족: 부모, 남동생, 자녀 1남 2녀
외모/성격: 키가 크고 잘생김. 활발하고 온순한 성격

증언자
성명: 안순일(1935년 생)
관계: 장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수복지역 거주 가족으로 6·25 당시 38선 이북에서 수리조합 일을 하였고 6·25 발발 후 치안대에서 일
하였음.
• 1950년 9월 경 증언자의 아버지 안홍모가 납북되었고, 작은아버지 안산모, 육촌 할아버지 안승인 및
여러 일가친척이 하루 사이에 납북 당함.
• 봉학고개 너머에 있는 철원 노동당사 지하에 감금되어 있는 것을 증언자가 직접 보았고, 다음날 또 찾아
갔으나 평양 갔다는 말만 인근에서 전해 들음.

직업 및 활동
<6·25전쟁 전 농지 배수 시설을 관리하는 수리조합에서 일함. 전쟁 후 지금의 경찰과 같
은 치안대와 청년단에서 활동함.>
문_ 아버지가 당시 하시던 직업은 무엇인가요?
답_ 수리조합이라고 물 공급해주는 일을 했지. 농업인이 아니고 공무원이었지요.
전쟁이 난 후에는 조합이 없어지고 치안대라고 지방 경찰이셨어요.
문_ 당시에 같이 살던 가족은 어떻게 되나요?
답_ 전쟁 전 엄마는 동생 출산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집안 일을 하셨
어요. 할아버지도 계셨고요. 누님과 누이동생이 근처에 작은집 식구들도 있었는데 작은
아버지도 아버지처럼 납북되셨어요.
문_ 작은아버지 성함을 말씀해주세요.
답_ 안산모. 삼촌도 치안대 일을 하다가 납북됐어요. 치안대가 지방 파출소 역할을 했어요.

납북 경위
<동네 머슴살이하던 이○우란 자가 동네 빨갱이가 되어 인민군 복장에 총을 멘 두 사람
과 함께 아침에 집으로 와 아버지를 포승줄에 묶어 데려 갔다고 할머니에게 들음. 증언자
의 작은아버지 안산모도 그날 밤 잡혀갔고, 저녁 무렵 증언자의 육촌 조부도 잡혀갔다고
함.>
문_ 안홍모님 언제 납북 되셨나요?
답_ 가을인데 9월쯤이야. 밤에는 인민군들이 들어오고 낮에는 한국군들이 들어오고 엎
치락뒤치락 할 때에요. 이 집에서 저 집을 찌르고 저 집에서 이 집을 찔러서 서로 붙잡혀
몰살당하고 그런 식으로 많이 죽었어. 우리 집은 아버지하고 작은아버지하고 작은댁 할
아버지(안승인)하고 붙잡혀갔지. 하루 사이에. 아버지는 아침 9시인가 10시쯤 됐을 거
고 작은아버지는 밤에 그렇게 되었어요. 그때는 우리가 학교를 못 다녀서 금학산이라는
유명한 산이 있는데 거기 광물 캐던 굴이 있어. 거기서 가마니 깔고 공부를 했지. 인민
군이 들어와서 치안을 볼 때야. 학교 간 사이에 붙잡혀 갔어요. 학교 갔다 오니까 할머
니가 울고 계시더라고 인민군이 와서 작은아버지랑 아버지를 붙잡아 갔다고. 할머니 얘
기로는 밧줄로 묶어서 봉학 고개 넘어 데려갔대요. 아버지가 가시면서 엄마, 조사받고
오겠습니다 라고 하셨대요. 아침에는 아들을 끌고 가더니, 저녁때는 작은댁 할아버지도
끌려가셨다고 해요. 머슴살이하던 동네 빨갱이가 인민군들하고 와서 잡아갔다고. 우리
는 어렸을 때니까 잘 때지. 밤에는 폭격을 자꾸 하니까 못 돌아다니게 하고 돌아다니다
가 내무서원한테 걸리면 가서 매 직살나게 맞고 그랬어요. 당시에 같은 지붕 아래 살았
는데 예를 들어서 우리 식구는 사랑방을 쓰고 작은아버지는 안방 쓰고 그런 식으로 살았
죠. 잠들어 있었으니 보지 못했고 나중에 할머니한테 들었어요. 우리 또래 삼촌이 중고
등학교 다닐 때니까 낮에 인민군 애들이 와서 총으로 찔러 데려가 군사 훈련 시키고 나
는 나이가 어리니까 못 데려갔지. 이삼 년 전에 돌아가신 막내 삼촌이 할머니 말씀을 함
께 들었지. 막내 삼촌이 나보다 한 두 살 위에요.

납치 이유
<한국군 점령 시 지역 치안 담당이라고 머슴이 밀고당해 잡혀 감.>
문_ 왜 납북되셨나요?
답_ 지역 치안을 봤다고 해서 붙잡아 갔어. 이◯우라고 우리 집 머슴살던 사람이 밀고했
어요. 그 사람의 가족들이 국군에게 붙잡혀갈 뻔 했을 때 아버지가 저 사람들은 좋은 사
람들인데 그냥 놔두라고 해서 구해준 적이 있어요. 그런데도 인민군이 들어왔을 때 삼촌
과 아버지를 밀고해서 잡아가게 했다고 아버지가 쌀도 갖다 주며 도와주고 했는데 설마
그랬지. 그 사람이 이북말로 세포 위원장 이라고 동네에서 활동하고 그랬어.

납치 후 소식
<철원읍의 노동당 당사 건물 지하 2층에 감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간수를 통
해 들어가 사식을 드리며 뵈었음. 나중에 노동당 당사 건물이 폭격을 맞아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이 도망갔으나 아버지는 다시 붙잡혀 왔고 울음산으로 끌려갔다고 들음. 그 후 소
식이 끊김.>
문_ 끌려간 곳은 어디였나요?
답_ 철원읍에 노동당 당사라는 건물로 붙잡혀 갔어요. 지금도 있는데, 일제 시대에 병원
으로 썼던 곳이에요. 6·25 나고 인민군이 활동하면서 죄수들은 전부 붙잡아 그리로 데
려갔어. 6사단 정문 바로 앞에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에요. 지금은 관광지로 사용하
고 있지. 거기 지하 2호에 아버지가 작은할아버지하고 있는 걸 알고서는 밥을 해 가지고
정문 간수를 통해서 밥이랑 담배를 가져다드렸지. 작은할머니랑 갔는데 나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때 소년당 간부여서 마크 달고 완장 차고 있으니까 학교 열성자라
고 생각했나 봐.
문_ 지하 2층에서 안홍모, 안산모, 안승인 세 분을 보셨나요?
답_ 그렇지. 그리고 한 이삼일쯤 있다가 사식을 가져갔는데 인민군들이 못 들여보내준
대. 폭격을 맞아서 죄수들이 다 도망가서 지금 붙잡아 들이는 중이라고 못 들어간다는
거야.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됐냐니까 우리 왕고모 무등을 타고 창문으로 아버지는 도망
갔다고 그래서 소식이 오나 했더니 또 붙잡혀 갔대. 또 붙잡혀서 들어갔대. 같이 도망간
사람들이 차근차근 얘기를 해주는데 당시에 아버지가 속병이 있었는데 힘이 없어 뛰지
를 못해서 붙잡혀 오고 그 후에는 소식을 모르는 거야.

남은 가족의 생활
<서울로 피난 갔으나 뿔뿔이 흩어져 고아원 생활을 함. 나중에 고향에서 만남.>
문_ 피난은 가셨어요?
답_ 한탄강으로 갔지. 멀리 안 갔어요. 바윗돌이 많았는데 그리로 피난들을 가서 그냥
거기 사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 밑으로는 더 안 갔어요. 미 3사단이 65연대에서 피난
민들을 전부 모아 트럭에 싣고 무내리로 피난을 시켰지. 거기서 한 20~30리를 또 피난
을 갔어. 연천군 관인면으로. 뒤에 6사단 있는 곳인데 그리로 이사를 가서 수복될 때까
지 살았어요. 전쟁 끝나기 직전에 천호동으로 피난 가서 살았어요. 할머니는 피난 나왔
다가 고향에 들어갔다 돌아가셨고, 뿔뿔이 흩어져서 나는 인천에 어린이농원이라는 고
아원으로 가고, 누이동생은 대전고아원으로 가고, 누님은 그 동네에서 살다가 시집가고
요. 누님이 우리를 많이 돌봐줬지. 아이구 참 생각하면 기막힌 얘기에요. 누님이 나중에
여동생 찾아다가 혼수 장만해서 시집도 보냈어.
문_ 생활은 어떻게 하셨나요?
답_ 고아원에서 한 1년 있다가 미군 부대 들어가느라고 학교를 못 나왔어. 하우스보이
를 한 2년 했을 거야. 그리고 나서 떠돌이로 공장에도 다니고 했어요. 처남 둘이 있었는
데 같이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했어요.
문_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셨나요?
답_ 고향이라는 데가 없지. 철원이 3·8선 너머니까. 철원도 넓어서 고향은 못 들어가고,
오덕리 내대리는 들어갈 수가 있지. 봉학이라는 곳인데 철조망하고 거리가 얼마 안 되지.

정부의 노력
<전혀 없었음.>
문_ 도움이나 소식 또는 납치피해 조사라도 있었나요?
답 _ 그런 거 없었어요.

호적 정리
<호적 정리 안함.>
문_ 호적정리는 하셨나요?
답_ 아직 못 했어요.

연좌제 피해
<이사하고 경찰관이 찾아와 조사를 한 적은 있음.>
문_ 혹시 연좌제 겪으셨는지요?
답_ 여기 살다가 다른 데로 전출을 가면 그 지역 파출소에서 나와서 조사는 해갔지. 이
북 출신은 거의 다 했을 거야. 군대 제대하고 결혼하고 나중에는 조사가 없었지.

정부에 바라는 말
<소식이 없는 아버지에 대한 답답함을 풀어줬으면 좋겠음.>
문_ 정부 또는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바를 말씀해주세요.
답_ 바랄 거야 뭐 노인들이라 다 돌아가셨겠고. 한 가지 정부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면 지금 우리 아버지하고 헤어진 게 한 70년이 되어 가는데 아버지야 돌아가셨겠지만
살아있을 나이의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라도 어떻게 확인이 되어 가족들의 답답
함을 풀어줬으면 하는 거죠. 혹 내 아버지는 몇 살 쯤에 어디서 봤다 이런 말이라도 들을
수 있을런지…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소식이라도 들어봤으면 좋겠음.>
문_ 아버님한테 남기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지금이라도 행적을 안다든가 살아 계신다든가 그러면 좋겠지만요. 빨리 무슨 소식
이나 들을 수 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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