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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임완수(증언자-임재우)
이름: 관리자
2021-09-27 15:14:36  |  조회: 50
190905B 임 완 수 ( 林完洙)

생년월일: 1928년 3월 28일
출생지: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목동리 78번지
당시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목동리 78번지
피랍일: 1950년 8월 1일(양력)
피랍장소: 장기면 동현리
직업: 농업, 동네 품앗이
직계/부양가족: 부모, 큰형 내외, 배우자, 남동생
외모/성격: 성실하고 온순함.

증언자
성명: 임재우(호적상 1954년생, 실제 출생일
1950년생(음력))
관계: 아들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시골에서 농사일로 타지역에 일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납치당해 납북당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음.
• 같이 납치되었던 아버지의 외사촌인 박순철 씨가 도망쳐와서 아버지의 납북 사실을 가족이 듣게 되었음.

직업 및 활동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마을 근교의 일들을 맡아 하거나, 다른 집 일을 해주거나
하였음. 다른 활동은 없었던 것으로 추측.>
문_ 당시 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답_ 그냥 농업이죠 농업. 동네 잡일. 품앗이 같은 거 하고 다니고.
문_ 마을에서 청년단 같은 활동은 하셨는지요?
답_ 글쎄 뭐 그런 건. 그런 건 할 게 뭐 있겠어, 그 당시에 먹고 살기 바쁜데 학교는 제가
알기로는 못 다닌 걸로 알고 있어요. 당시에는 별로 배움에 대해서는 별로 저기 안 했기
때문에.

납북 경위
<옆 동네 일을 해주러 갔다가 아버지의 외사촌(박순철)과 함께 납치됨. 충남 공주 정안면
근처에서 이동하던 도중 외사촌은 도망쳐 돌아왔으나, 피랍인은 돌아오지 못함.>
문_ 언제 납북되셨나요?
답_ 거기(공주) 있다가 그 인근 장기면이라는 곳에서 납북되셨다고 하더라고. 그 인근
장기인가 어디 거기서. 뭐냐면 옛날에는 남의 집에 가서 머슴식으로 일을 해주러 갔다가
그렇게 된 것 같아. 그래서 집에서도 모른 거야 그걸. 그래서 우리 아저씨가 우리 아버
님하고는 외사촌 간이지. 박순철 아저씨하고 우리 아버님하고 둘이 잡혀간 거에요. 그
분이 증언해 준 거예요. 이분이에요. (사진을 가리키며) 지금은 요양원에 계세요. 80 넘
으셨으니까.
문_ 일하다 외지에서 어떻게 끌려갔나요?
답_ 모르죠. 여기 아저씨밖엔. 그냥 무조건 끌고 갔다는 거야. 무조건 잡아 갔다는 거야.
문_ 마을에서 몇 명이나 잡혀갔는지요?
답_ 몇 명인지는 모르고 하여간 많이 갔다고 하더라고. 우리 동네에서는 우리 아버님하
고 딱 두 명 그 박순철 아저씨하고, 이 아저씨하고 우리 아버님하고 둘이 잡혀간 거예
요. 나머지는 어떻게 도망갔는지… 우리 작은아버지도 도망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
어. 어디가 숨었는지 안 잡혀갔어. (내가) 들은 것은 뭐 지금 얘기한 것처럼 주위 어른들
이 너희 아버지 이북으로 끌려갔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 살았으면 소식이라
도 있을 텐데 소식도 없고, 아마 죽었을 거다. 그래서 얼마 정도 기다리다가 이제 몇 십
년 기다렸지. 그러다가 이제 안 되니까 제사를 지내는 거예요. 내가 클 때까지 기다리다
가 혹시나 어떻게 올 수 있는 길이 있나 해서 근데 안 오니까 틀렸구나 하고서 이제.
문_ 피난은 가셨는지요?
답_ 거기는 피난을 안 갔다고 하더라고. 거기까지는 왔는데, 뭐 피난 갔다는 소리는 안
하더라고. 뭐 다 노인들이고. 그리고 나를 이제 어머니가 출산했을 적에도 불빛 안 나가
게 다 가렸다고 하더라고. 막 폭격하고 하니까 피난은 안 갔다고 하더라고. 뭐 다 잡혀가
고 그랬으니까 잡아갈 사람도 없고. 와서 뭐 해봐야 크게 뭐 유지 같은 인물도 없고.

납치 이유
<인력동원을 위해 끌고 간 것으로 추측됨.>
문_ 왜 납치되셨을까요?
답_ 당시 아버님 나이가 스물둘인가 스물하나인가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때 청
년이지 뭐 완전. 양력으로 8월 1일날 끌려가고, 나는 음력으로니까, 한참 몇 개월 후에
태어나게 됐겠지. 모른데. 아버님은 내가 태어난 지도 모르고 그냥 가신거래 그렇게. 그
러니까 (나는) 유복자지.

납치 후 소식
<타지에 일하러갔다가 납북되어 납북사실도 몰랐음. 같이 납치되었다가 도망 온 아버지
의 외사촌(박순철)에 의해 후에 납북 사실을 알게 됨.>
문_ 납치 후 소식은 들으셨는지요?
답_ 아니요. 여기 박순철 아저씨가 막 끌려가는 도중에 도망을 나온 거야. 거기 어디 장
기인가? 정안이라는 데서 어디 쭉 가다가. 쭉 몇백 명이 끌려가는데, 살짝 어떻게 해서
빠져나왔대. 그래서 알았어. 그래서 끌려간 줄도 안 거야. 같이 끌려가다가 자기는 도망
나왔다고 하더라고.
문_ 언제 납북된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요?
답_ 나이가 한 열대여섯. 그때도 열다섯이었어도 옛날에는 어렸지. 너희 아버지는 끌려
갔다 이북으로, 그때 들은 게 처음인지… 여태 들었는지는 그건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래
서 그렇게 끌려간 줄만 알고 있죠. 그리고 동네에서 이 아저씨 만나고 동네 어른들 만나
면 이 얘기를 해줘서 가끔 ‘너희 아버지가 있으면 몇 살이다.’그런 얘기만 해주셨어요.

남은 가족의 생활
<아버지의 납북 당시 증언자는 태중에 있었고, 태어난 뒤로는 큰아버지네와 함께 자람.
증언자가 다섯살 때 어머니가 재혼. 초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에 살던 막내 고모네로 올라
와 기술을 배우고 일에 전념하며 지냄.>
문_ 아버님의 납북 이후 가족생활은 어땠나요?
답_ 여기 나 혼자 나왔어요. 큰아버지 큰어머니는 거기 시골에 계시고. 나는 혼자 여기
인천에 고모네가 살았었어. 그래서 고모네 집으로 왔지 내가. 고모네 집으로 와서 어디
취직해서 뭘 한다고 온 거예요. 우리 친고모죠. 아버지 형제가 누님 한 분, 여동생 두 분
이렇게, 동생하고 우리 작은아버지하고 셋 있어요. 육 남매. 막내 고모가 두 고모들은
시골에서 사시고 유일하게 막내 고모가 인천에 어떻게 와서 살게 되어서, 고모가 와서
‘여기 도시로 와야 뭘 먹고 살 수가 있으니까 와라.’ 해서 조그만 직장 다니고 알바 다니
고 이렇게 하다가 여기서 정착했죠. 그리고 또 우리 작은아버지가 인천으로 오셨어. 친
척이 있으면 계속 연줄 연줄 해서 그래서 이제 또 내가 작은집에서 오래 있었지.
어머니는 원주에 계셔. 원주. 재가하셔서 새 동생들하고 거기서 사세요. 어렸을 때 얘
기 듣기로는 시골에서 내가 다섯 살 때 나가셨다고 하더라고. 그때 그 후로 소식을 몰라
서 또 동네 분이 옛날에 미싱, 미싱을 판매하러 다니시는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분이
돌아다니다 만나신 거야 어머니를. 그래서 ‘어디어디 사신다, 어머니가. 그러니까 한 번
찾아가 봐라.’ 그래서 한 번 그때 나이가 한 스무살 넘었을 때 찾아갔죠. 군대는 보충역
으로 갔다 오고 만났죠. 어머니가 어디로 재가했다 대충 그렇게 얘기를 해 줘서 그렇게
알았죠. 뭐 이제는 가끔 명절 때 같은 때 다니고 (그래요).
문_ 어머님이 납북되신 아버님에 대해서 이야기하신 것은 있나요?
답_ 결혼해서 얼마 안 있고 그렇게 되어버렸으니까 비극이죠 비극이지. 거의 유복자랑
비슷하지 유복자들 많아요 50년생들이.
문_ 증언자님은 학교는 다니셨는지요?
답_ 내가 일찍 나왔어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서 일찍 인천으로 왔어요. 거기서 학교도
안 다니고, 초등학교만 겨우 마치고 이렇게 왔다고. 마지막 학교로 초등학교 나오고 만
거지. 여기서 내가 독학으로 그냥 하고. 인천으로 오고도 (학교는) 안 했어요. 그냥 일
만…
문_ 납북되신 아버지의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답_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때 되면 자식 언제나 올라나 기다리긴 아주 많이 기다렸어
요. ‘너희 아버지가 올라나, 안 올라나 모르겠다. 꿈에도 보인다’고 막 그러고 그렇게.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같이 있었으니까. 사실 기다리시지. 그때는 전쟁 끝나
고 얼마 안 됐을 때니까. 근데 세월이 가다 보니 잊은 거지 완전히 포기를 한 거지. 확실
히 넘어간 건 확실히 아니까. 그냥 없어졌으면 이게 끌려갔는지 어디서 죽었는지 몰랐는
데. 이 아저씨 때문에 그래도 소식을 알아서 다행이죠.
문_ 이산가족 찾기는 하셨나요?
답_ 안 했죠. 아예 안 했죠. 왜냐하면 이렇게 됐고. 또 혹시 살았으면 그쪽에서 먼저 올
것이라고. 거의 사망이라고 본 거예요. 이산가족 신청도 안하고 그러니까 아버님을 찾
으려고 보면 넘어간 걸 확실히 아니까. 여기서 아무래도 찾으려고 그래도 찾을 수 없죠.
그러니까 아주 포기를 한 거예요. 살았으면 그 마을로 왔죠. 무슨 소식이라도 알고. 왜
냐하면 거기서 다 컸으니까. 그리고 또 뭐냐 하면, 살아 계시다면은 솔직히 그쪽에서도
무슨 연락이 있던가 했고. 근데 이산가족 해봐야 우리가 가서 얘기한들 뭐 어떻게 할 수
도 없고 그래서 신청도 안 했어요. 거의 돌아가셨다고 봐. 거의. 다 그렇게 산거야.
문_ 6·25전쟁 납북자 신고는 하셨는지요?
답_ 그때 살짝 듣고 여기 와서 구청에서 이런 게 있다. 그래서 제가 이걸 신청하면 되겠
구나 해서 이런 거 신청하는 것조차도 몰랐지. 그래서 이제 구청에서 납북자가 있으면
그것도 몇 번 연장해서 한 거예요, 마지막에 했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정부의 조사가 있었는지요?
답_ 그건 없고. (납북결정자 통지서를 보여주며) 구청에서 이런 게 있다 그래서 내가
2016년에 해서 이거 받고. DNA 채취해서 한 거 하고 두 가지. 이전에는 없었어요.
문_ 정부 기관에서 아버지 관련해 연락 받거나 도움 받으신 것은 있나요?
답_ 하나도 없죠. 만약에 그런 거 받았으면 그 당시에 어떻게 조치를 했겠지. 정부에서
뭐 지원받을 게 뭐 있나? 정부에서 지원해 줄 능력도 없고 옛날에는. 그리고 특별하게
뭐 내가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은 되니까 그런 거 받을 이유는 없죠.

호적 정리
<언제인지는 모르나 큰아버지가 사망신고를 했다고 함.>
문_ 호적 정리는 하셨나요?
답_ 계속 놔뒀다가 큰아버지가 언젠가는 사망으로 신고를 했더라고, 내가 재적등본 떼
어 보니까. 그것도 뗀 것도 있긴 있는데.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있었나요?
답_ 그런 것은 없었어요. 사회에서는 부모가 있느냐 없느냐만 따지는 거지, 나는 부모
이런 걸 따지는 직업이 아니고 기술자, 전기 공사하는 데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거
별로 관여치 않아요. 그런 대기업처럼 크게 가족사항을 따지고 그런 데가 아니니까.

정부에 바라는 말
<자식된 도리로써 생사 여부와 납북과정과 이후 행방을 알고 싶다. 이산가족 상봉을 비정
기적으로 주최하는 것보다 상시적으로 소통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주면 좋겠음.>
문_ 정부 또는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답_ 뭐 뼛가루라도 찾았으면 하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사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
습니까. 뼛가루도 순수한 본인 사체 뼛가루면 괜찮은데, 막 그냥 섞여 가지고 저런 데
가끔 뉴스 보면 이런 유골들 여기저기서 섞여 나오잖아요. 그럼 DNA를 정확하게 채취
한다고 그래도 그게 정확성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나, 그것도 의심이 가는 거고. 그래서
뭐 그런 거 찾는 건 어느 정도 생사여부만 확실하게 알고. 만약에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어떻게 처리했는지. 거기서 사셨다면 어떻게 해서 유골은 뭐 해 놨는지, 아니면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런 과정을 이쪽에 있는 자식들한테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번
쯤 만약 묘 같은 게 있으면 방문도 하고 돌아가셨어도 행방은 알고 있어야지 자식 된 도
리로써 그런 과정은 좀 알고 싶죠. 그럼 또 거기에서 가정을 가지고 계시다가 돌아가셨
는지 그런 게 제일 중요하지. 그런 게 궁금한 거지 다른 거는 뭐 별로 (유골) 그런 건 의
미가 없는 거고 나야 뭐 어차피 안 계시니까 제사는 지내면 되는 거고 그러면 되는 거예
요. 특별하게 바라는 것도 없고 지금 뭐 이산가족이 그동안에 많이 뭐 만나본 사람도 있
고 그렇겠지만 진짜 그건 어떻게 보면 전시효과나 다름없는 거고, 사실 그거 뭐 이산가
족이 10만명이 넘는다고 그러죠? 납북된 것도 있고 이산가족도 있고 이런 분들을 어떻
게 그냥 많이 어떤 기간을 정하지 말고 수시로 만날 수 있게 해주던가 아니면 그걸 연락
을 해서 어떻게 행방이라도 알게끔 수시로 해서 무슨 때를 만들어서 하지 말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정부에서 그런 제도 좀 만들어서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걸 좀 해줬으
면 좋겠어. 무슨 꼭 날을 정해서 이산가족도 뭐 만났다 헤어지고 이런 거 말고 상시적으
로 수시로 여기서 필요할 때 가서 좀 알아보고 소식도 전하고 그런 걸 좀 해줬으면 좋은
데, 그건 우리가 바라는 마음이지 저 쪽에서 걔들이 그걸 인정을 안 해주지.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아버지 납북 후 태어난 자식도 못 보고 다른 가족분들도 못 보고 고초를 겪으셨을 게 마
음이 아프다. 돌아가셨다면 하늘나라에서라도 편하게 계셨으면 하는 마음 뿐임.>
문_ 아버님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답_ 진짜 아버님한테 전하고 싶은 말은 식구들 자식도 못 보고 나도 아버님도 못 뵙고.
아버님도 가족도 못 보고 돌아가셨잖아요. 만약 돌아가셨다면 내가 컸으니까 어떻게 보
면 상당히 불쌍하지. 그 당시에는 사실 먹을 것도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
요. 배곯는 거 상당히 어렵게 살고 그랬는데… 고생 많이 하시고 있다가 그냥 어렵게 그
것도 끌려가서 많은 고통을 받다가 돌아가시지 않았나… 그런 게 좀 자식된 도리로써 보
진 않았지만 마음이 상당히 아프네요. 사실 돌아가셨으면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계셨으
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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