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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권두한(증언자-권오건)
이름: 관리자
2017-01-26 14:10:55  |  조회: 1360

권 두 한( 權斗漢)
2016. 3.14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17년 6월 24일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시 운흥동
당시 주소: 서울 종로구 체부동 89번지
피랍일: 1950년 6월 28-30일 사이
피랍장소: 자택
직업: 성동경찰서 사찰계 주임
직계/부양가족: 배우자, 2남 2녀
외모/성격: 고지식함. 꼼꼼하고 세밀하고 자상한 성격


증언자
성명: 권오건
관계: 장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납북자는 성동경찰서 사찰계 주임으로 재직 중이었음.
• 군복을 입고 권총과 따발총을 든 괴뢰군 세 명이 지프차를 타고 집 마당으로 들 어와서 총을 겨누며 아버
지를 끌고 감.
• 동네의 반장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경찰관이나 군인 가족을 찾는다고 하여 알려준 일이 있다고 함.
• 행방을 수소문하고자 했으나, 납치 후 소식을 들은 것이 없고, 납북자가 근무했던 성동경찰서도 폭격을
맞아 1956년 이전의 납북자에 대한 기록이 없었음.


직업 및 활동
<성동경찰서 사찰계 주임으로 근무함>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생년월일은 1946년 1월 15일이구요. 부친 성함은 권두한. 저는 권오건 입니다. 납
북자의 장남입니다.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권두한. 1917년 6월 24일. 경상북도 안동시 운흥동. 전쟁 때 거주지는 서울시 종
로구 체부동 89번지입니다.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경찰이었어요. 성동경찰서 사찰계 주임으로 계셨어요. 출신학교는 잘 모르는데 최
초에는 안동사범대학을 나오시고 그 후로 일본에 잠시 건너가서 와세다대학인가에서 공
부한 기록이 있다고 해요.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저희 아버지, 어머님, 누님 두 분, 저하고 남동생 하나. 2남 2녀였었죠.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어머니한테 늘 들었던 말인데 고지식하셔서 자신이 잘못이 없으면 절대 꺾이지 않는
성격이라고 하셨어요. 꼼꼼하고 세밀하고 자상했다고 들었어요.
문_ 6·25전쟁 도발 전 당시 상황은?
답_ 저희 아버지가 안동에서 올라와서 작은 아버님하고 둘이 서울에 계셨어요. 저희 집
에는 종손이 없었고, 사촌 형이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경찰서에서 근무하다가 퇴근시간
에 항상 들러서 한번 안아보고 가고 그랬다는 얘기만 들었고 자세한 기억은 없어요.
문_ 피난은 가셨는지?
답_ 아버지가 납치되기 전에는 종로구 체부동 89번지에서 살았죠. 피난은, 전쟁 나고
바로는 안 가고 며칠 지나서라고 알고 있어요. 그 며칠 사이에 아버지가 잡혀 가신 거
죠. 전쟁 났을 때에 어머니가 전쟁 났다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장남인 나를 등에 업
고 아버지한테 “밀짚모자 쓰고 경찰이란 신분을 가리고 고향인 안동으로 내려가십시오.
저희들은 뒤따라 가겠습니다.” 그랬는데 아버님께서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어린 자
식들 줄줄이 내버려두고 나 혼자 살겠느냐? 나는 안 간다.” 그래서 하루 이틀 미루시다
가 납치당하셨다고.


납북 경위
<집으로 군복을 입고 권총과 따발총을 든 괴뢰군 세 명이 지프차를 타고 집 마당으로 들
어와서 아버지를 끌고 감>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6월 30일 이전 같아요. 어머니도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모르시지만 전쟁 발발하고
28일에서 30일 사이였던 것 같아요.
문_ 납치 상황은?
답_ 안동으로 피난 가서 5남매를 외갓집에 맡겨 놓고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 오셔서 종로
구 체부동에 있는 집을 다시 찾아 갔더니 집은 흔적이 없고 동네에 살던 반장인지 통장
인지 하는 여자 분을 만났대요. 그래서 물어보니까 경찰관이나 군인 가족들 집안을 묻는
사람들이 있더래요. 어디냐고 그래서 저 집이라고 그랬대요. 그 말을 듣고 어머니가 나
와서 경찰서나 그런 데에 가서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이름이 없는 거에요.
알 길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시골에서 자라 공부를 못 하셔서 한글을 제대로 못 배우셨
기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나 봐요.
문_ 납치 장소, 납치자의 용모 및 신분 확인은?
답_ 제가 네 살 때였는데요. 음력으로 스무 닷새가 생일이에요. 그러니까 네 살 때죠.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뇌리에 박힌 게 있어요. 대문이 컸는데 지프차가 우
리 집 마당에 들어왔어요. 그 차에 세 명이 탔는데 한 사람은 운전대에 앉아있고 두 사람
이 내려왔어요. 괴뢰군복을 입고 있었고요. 한 사람은 따발총을 들고 또 한 사람은 권총
을 들고 있었어요.
문_ 납치 방법은?
답_ 마루에서 총을 대고 나오라고. 그래서 총을 대고 뒤돌아서서 그냥 바로 차에 싣고
가서 아무 얘기도 못 들었죠. 끌어안고 울다가 아버지를 태워서 가는 차 뒤에 매달려서

어머니가 질질 끌려 나가는 걸 본 기억이 나요.
문_ 그 당시 가족 외엔 아무도 없었나요?
답_ 아무도 없었어요. 아버지가 3대 독자로 내려오다가 아버지 때 작은아버지하고 아버
지하고 두 분이 대를 이었어요. 그러니까 친척이 없어요. 손도 귀하고. 그런 상황에서
서울에 살던 사람은 두 형제뿐이었어요.
문_ 납치 당시 납치자가 한 말, 연행되어 간 장소는?
답_ 일체 말을 못 했죠. 순간적으로 끌고 나간 거니까. 어머니하고 붙어있지도 못하게
그랬으니까.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어머니가 결국 찾다 찾다 못 찾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그러다 우리 5남매를 보
따리 장사를 해 가면서 키우다 보니 거기에 신경 쓸 여지가 없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
세월이 많이 지났죠.


납치 후 소식
<납치 후 소식 들은 것이 없고, 납북자가 근무했던 성동경찰서도 폭격을 맞아 1956년 이
전의 납북자에 대한 기록이 없었음>


문_ 납치 후 소식은?
답_ 못 들었죠. 그래서 어머니 대신 제가 젊어서부터 치안본부, 치안경찰전문학교 그런
데를 쫓아다니면서 혹시라도 아버지 명단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가는 데마다 명단이 없어요.
문_ 성동경찰서에도 아무 흔적이 없나요?
답_ 네 없어요. 종로경찰서에서 근무하시다가 성동경찰서에 가신 건데 그 당시 전쟁 때
성동경찰서가 폭격을 맞았대요. 그래서 1956년도부터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제는 찾을 수 없구나 하고 포기하고 있던 차에 인천에서 납북자 신고에 관한 플래카드를
보고, 되든 안 되든 신고라도 해보자 하고 갔어요. 구청에서 접수를 받는데 아버지 재적
등본 떼어서 갔어요. 공무원이 컴퓨터를 치니까 권두한 공무원이라고 뜨는 거에요. 그
래서 제가 소식을 알게 됐죠. 내가 어릴 때 신고했던 게 있기에 이런 정보가 남아 있는가
싶어서 그 자리에 앉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남은 가족의 생활
<피난 가서 외숙모님 댁에서 신세를 지고, 다시 서울에 와서는 어머니가 보따리 장사를
하며 연명함. 유복자 여동생은 어릴 때 병으로 죽고, 남동생도 월남전에 다녀와 고엽제
후유증으로 먼저 세상을 떠남>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은?
답_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면 회곡동 625번지가 외갓집인데 그리로 피난을 갔어요. 외
숙모네도 식구가 많은데 저희 5남매가 얹혀있었어요. 거기에서 한 5년 있었던 것 같아
요. 먹을 것도 없고 농토도 없고. 소나무 껍질 벗겨서 끓여 먹고…. 그러다가 서울 올라
왔죠. 어머니가 보따리 장사 하시고 저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신문팔이도 하고…. 한
동안 떨어져 있었어요. 일단 먹고 사는 게 힘드니까 심지어는 아이스케키 통을 둘러메고
하루에 몇 백 원 버는 걸로 시멘트 봉지에 쌀 한 봉지 사고 연탄 하나 새끼줄에 엮어서
사 들고 그렇게 겨우 겨우 생명을 연장하며 산거죠. 저는 끝까지 어머니와 함께 있었죠.
누님 둘은 남편 만나 출가해서 살았죠. 누님들도 역시 아버지 잃고 배우지 못하고 그러
다 보니까 좋은 신랑 만날 수 없죠. 그래서 우리를 도와주지도 못하고. 서로가 살기 급
급하다 보니까.
문_ 현재 5남매는 다 생존해 계시는지?
답_ 지금 유복자 여동생은 10살 정도에 병으로 타계했고, 남동생 하나는 월남전에 참전
해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합병증이 와서 59살에 먼저 타계했어요. 저도 역시 월남에 다
녀왔는데 형이 간다고 자기도 따라간다고…. 저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죠.
당뇨, 혈압, 전립선암까지 수술 받고 전부 후유증 때문에…. 월남전쟁 다녀왔으니까 국
가유공자로 연금이 조금씩 나와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어머니가 저희 어려서부터 혹시나 아버지가 끌려가신 뒤 북한에
서 아버지 이름을 대고 거짓말 해가면서 자식들한테 피해를 줄까봐 전전긍긍하며 사셨
겠죠.


호적 정리
<증언자가 19살 때 사망 신고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저희들이 취직도 못 하고 그럴까 봐 언제까지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제가 19살 때
인가 아버지 사망신고를 했어요. 영등포경찰서에서 원래 안 되는 건데 돈 몇 푼 주고 겨
우 사망 신고를 했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어머니가 10년 전에 83세로 돌아가셨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자상하셨고 고지식하셨고, 그 외에는 별로…. 너희들을 끔찍이 생각하셨다고 어머
니가 그러셨죠. 어머니도 마음이 아파서 잘 말씀 안 하시려고 그랬어요.
문_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남기신 말씀은?
답_ 목욕하시고 저희들한테 전화 하시다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아무 말씀
도 못 남기셨어요. 딸네 집에서 며칠 가 계시다가 샤워하고 저희들한테 전화하려고 하시
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유언도 못 듣고 임종도 못 지켜드렸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없었어요. 그게 너무 억울해요. 공무원이고, 국가를 위해 희생되어 가신 분인데 정
부에서 이렇게 무관심한 것은 너무한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해요. 일반인만 하더라도 그
럴 텐데 국가의 녹을 먹은 사람이잖아요. 아버지도 그런 면에서 보면 국가유공자 아닙
니까? 전쟁 때 잠깐 다녀 온 나도 국가유공자인데 아버지 같은 경우는 너무 억울한 거에
요. 우리 자식들이 정부에서 10원도 혜택 못 받고 공부도 못 하고. 신고가 되고 인정을
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데, 어머님이 배움이 없다 보니 그런 절차를 밟지 못해서
정리가 안 된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학식이 있고 똑똑한 사람이었으면 변호사
를 사던 그렇게라도 했을 텐데요. 어머님이 경상북도 안동의 농촌에 계시다가 어린 나이
에 아버지한테 오셔서 뭘 모르는 거죠. 집에 있던 사람이니까.
문_ 어머님이 피난 갔다가 서울에 잠깐 오셨을 때 동네 통장이 밀고를 해서 아버님을 붙
잡아 갔다고 하셨는데 그 통장한테 다른 말을 더 들은 건 없는지?
답_ 다른 말은 못 들었어요. 다만 경찰이라는 신분 때문에 저희도 피난길에 올랐고 그것
때문에 정신적 고통과 물질적 피해를 받은 거죠.


정부에 바라는 말
<국가를 위해 일하다 납북된 피해자들에 대해 정부에서 진심어린 위로라도 있었으면 함>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
답_ 경위서에도 제가 쓴 게 있는데요. 보상을 받아도 그만이고 안 받아도 그만이고 금전
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아버지 원을 갚기 위해서라도 정부에서 어느 정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이니 큰 보상은 아닐지언정 위로라도 한 마디 들었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문_ 아버님이 살아계실 거라는 생각은 안 하시는 건가요?
답_ 연세가 있으시니까 살아계실 리는 만무할 것 같아요. 제사도 아버님 생일날짜 음력
으로 5월 4일인가에 모시고 있어요. 아버님 납치되어 간 뒤로부터 계속 지내고 있어요.
끌고 가서 죽였으리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보 다 빼먹고 필요 없으면 죽였으리라….
어머니가 점도 보고 그랬는데 끌고 가다가 죽였다고 여러 군데에서 들었나 봐요. 저희
들한테 일러주시니까. 노동당사에 가서 제가 견학을 가고 그랬더니 이해가 돼요. 미아
리고개에 끌고 가서 노동당사 지하실에서 고문해서 취조해서 정보를 입수하면 그쪽으로
끌고 가서 죽이고. 거기에 철사 줄이 엄청 나왔답니다. 노동당사 지하에서. 그걸로 묶어
서 끌고 가다가 거기서 필요한 사람들은 끌고 가고, 더 이상 필요 없다 하는 인원은 죽였
다는 얘기가 있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지금 회장님이나 여러 분들께서 명예만이라도 찾아 회복해 주려고 노력하고 계신데
많은 위로가 됩니다. 아버지 이름을 찾게 해준 것만 해도요. 그래서 아버지 제사 지낼
때마다 제가 편안히 주무셔도 될 것 같다고 합니다. 이제 기념관이 건립되면 누님들도

모시고 다시 가 보고 싶어요.
문_ 남은 가족의 납북자와의 추억은?
답_ 둘째 누님이 저보다 두 살 위에요. 큰 누님은 저하고 9년 차이니까 연세가 있어서
조금 아실 거예요. 손이 없다가 저를 낳고 나니까 아들 낳았다고 택시를 태워다가 누님
둘 창경궁 구경 시켜주고 그랬다는 얘기, 일요일만 되면 집에서 모든 가사 일, 청소 다
깔끔하게 하시고, 자상하시다는 얘기, 가정적이라는 얘기를 들었죠. 큰 누님이 그런 추
억이 있으시죠. 저는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어요. 밤이면 야경꾼이 있었어요. 창문 너
머로 찹쌀떡 장사, 메밀묵 장사 지나가는 소리하고 아버지가 저를 안고서 ‘신라의 달밤’
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준 것을 기억합니다. 그건 안 잊혀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이
루 말 할 수가 없죠. 보고 싶어요.
문_ 누님들과 아버님에 대한 말씀은 나누시나요?
답_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문_ 유골송환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하셨나요?
답_ 아니요. 그런 말은 없었어요.
문_ 생사를 아시는 분은 가족회에 안 계시거든요. 생사 확인이나 유골 송환을 위해 활동
하고 있는데, 유골 송환을 원하시는 것인가요?
답_ 가능하다면 원하죠. 그래서 아버지 고향 산에 가서 묻어드리고 싶죠. 제가 어린 나
이부터 서울 살지만 경상북도 안동엔 아직도 아버님 산이 있어요. 조그마한 산이 있어서
거기에 윗대 조상들 묘도 있는데 풍수지리 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아버님 유골 찾으면 모
시려고 가장 좋다는 묘 자리를 봐두었어요. 어머님은 거기에 못 모셨어요. 어머님은 납
골당에 계세요. 그건 사연이 또 있어요. 어머님은 저희랑 살다가 저희를 키우기 너무 힘
드니까 재가를 하셨어요. 우리 5남매를 데리고 끝까지 사시다가 돌아가셨으면 그 선산
에 모셨을 텐데. 재가를 하셨단 얘기는 남의 집 집안으로 가셨기 때문에 그 집안의 귀신
이 됐으니까 거기에는 가실 수가 없다고 해서. 아버지 제사 때에는 어머니 밥도 놓고 같
이 모시고 있습니다. 재가한 쪽에도 여식밖에 손이 없으니까 어머님 제사도 제가 모시고
있어요.
문_ 회원님이 몇 살 때 어머님이 재가 하셨나요?
답_ 안동에서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다니다가 올라왔나요? 그 때 올라오니까 재가 하신
거에요. 거기에 의붓아버지 밑에서 같이 있으려니 눈칫밥 먹게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홀로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객지생활 하다가…. 그러다 보니까 누님들이나 동생도
결국 집에 못 있고 뿔뿔이 그렇게…. 제가 죽으려고 자살 시도도 서너 번은 했어요. 청
소년 시절에. 그러다가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수면제 몇 알씩 사다가 한 입에 털어 넣고
결국 죽지 못하고 들켜서 병원에 가서 살고 살고…. 그러다가 어느 날 군대에 가게 되더
라고요. 월남에 가게 된 동기도 일가친척 없고 외롭게 사느니 전쟁터에 나가서 공산당
빨갱이라도 만나면 쏴 죽이겠다고 자원해서 갔어요. 우리 사촌 형님은 월남전에 안 가려
고 돈을 주고 결국 안 갔죠. 저는 목숨 걸고 자원해서 갔어요. 결국 거기에서도 죽지 못
하고 왔어요.
문_ 지금은 자제분이?
답_ 여식이 둘 있어요. 지금은 행복하죠. 그래도 큰 아이는 힘들게 박사학위까지 받아서
기쁩니다. 둘째 딸은 출가해서 사위 보고. 외손주도 보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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