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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최준경(증언자-최수길)
이름: 관리자
2017-01-26 14:42:52  |  조회: 1325

최 준 경( 崔俊景)
2016. 3. 29.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16년 2월 6일
출생지: 경기도 양평
당시 주소: 서울 종로구 창성동
피랍일: 1950년 8월 20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자전거 상회
직계/부양가족: 부모, 배우자, 2남 3녀
외모/성격: 안경을 쓰고 체격이 좋았음


증언자
성명: 최수길
관계: 장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사이클 연맹의 임원으로 있었고 종로에서 자전차 상회를 했음. 청년단 활동과 의용 소방대에서 소방대장
을 했었음.
• 거주하던 창성동까지 폭격의 파편이 떨어져 아이들만 가전동으로 피난을 보내고 어른들은 한동안 왔다갔
다 하며 지냈음. 그러다 상황이 악화되자 납북자는 길 건너 친구 집에 은신해있었는데, 그곳에서 나오다가
연행되었다고 이를 목격한 동네 사람에게 들음.
• 지금의 롯데호텔 옆의 산업은행 지하에 조직이 있어 그곳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9.28수복 이후, 지하에서 시신을 전부 밖으로 끌어냈다 하여 납북자의 처와 집안 어른이 찾아봤지만 시신
을 찾을 수 없었음


직업 및 활동
<사이클 연맹의 임원으로 있었고 자전차 상회를 했음. 청년단 활동과 의용 소방대에서 소
방대장을 했었음>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최수길. 생년월일은 1942년 6월 4일. 음력으로는 1942년 4월 21일. 납북자와의
관계는 부자간이죠. 제가 장남입니다.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아버님 이름은 최준경. 생년월일은 1916년 2월 6일. 고향은 경기도 양평. 전쟁 당
시에는 종로구 창성동에 살았어요. 효자동 옆에 있는 창성동입니다.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때 직업이 사이클 선수였어요. 자전차 상회를 하셨죠. 대한청
년단 활동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 의용 소방대에서 소방대장도 하시고. 아버지 출신
학교는 보인상고라고 당주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갔죠.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님, 그리고 5남매. 2남 3녀. 다 같이 살았는데 아
들이 피난 가던 중에 죽었어요.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사이클 연맹의 임원으로 계셨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동대문 경기장에서 사이
클 시합이 있으면 쫓아가서 보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운동을 하셔서 그랬는지 체격은 좋았던 편이고, 안경을 쓰셨어요. 작은 아버지는 술
을 좀 많이 드셨는데 아버지는 술을 거의 안 드셨던 것 같아요. 외모라고 하면 사진 봐서
생각이 나는 거지 그 당시 기억은 별로 없어요.
문_ 6·25전쟁 도발 전 당시 상황은?
답_ 적선동에 계속 폭격을 했었는데 적선동 위가 창선동인데 그 때 폭격을 하면 파편이
우리 동네까지 날아 오고 그랬어요. 애들은 위험하다고 그래서 5남매는 세검정에 사돈
댁이 있어서 그 쪽으로 피난을 갔고 또 한 번은 지금의 가전동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 때
만 해도 가전동이면 논밭 있는 시골이거든요. 거기 가 있으라고 해서 집의 사정은 모르
고 있었어요. 어른들은 왔다 갔다 하셨는데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느끼셨는지 동네 친
구분 댁에서 은신을 하셨죠.


납북 경위
<길 건너의 동네 친구 집에서 나오다가 연행됨>


문_ 납치 장소는?
답_ 동네 친구분 댁에서 나오시다가 연행됐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분 댁이 바로 길 건
너거든요? 그 이후로는 일체 소식을 모르죠.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1950년도 8월인가 그랬을 거에요. 제 나이는 9살이었구요.
문_ 누가 아버지가 연행되셨다고 말하셨는지?
답_ 동네 사람이 말해줬어요.


납치 후 소식
<아무 소식을 못 들음>


문_ 납치 당시 납치자가 한 말, 연행되어 간 장소는?
답_ 지금의 롯데호텔, 시내 옆에 산업은행이 있었거든요? 거기 지하로…. 거기 지하에
무슨 조직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 곳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그래요. 9·28수복
이후 지하에서 시신을 전부 밖으로 끌어냈는데 어머니하고 큰 어른하고 가서 찾아봤지
만 없었어요. 그래서 끌려가신 거다 이렇게 추측을 하는 거죠. 그 이후로는 일체 소식을
못 듣고 있는 거죠.
문_ 전쟁 중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삼촌이랑 어머니가 계셨는데 방법이 없었던 것 같아요. 1·4 후퇴 때 대구로 피난
을 갔는데 거기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어요. 아버지 친구 분이 부산에 계시다는 얘기를
듣고, 소식이나 알까하고 어머니가 내려가셨다가 그 때 한창 유행이었던 열병에 걸리셨

어요. 돼지고기를 잘못 드셨다가. 우린 어렸었고 대구 변두리로 가서 한약을 지어 드렸
는데 삼약이었대요. 그래서 열이 더 나서 돌아가셨죠. 제가 9살 됐을 때였어요.


납치 이유
<대한청년단 활동을 한 것이 납치 이유였을 거라고 추측>


문_ 납치 이유는?
답_ 글쎄요. 지역에서 대한청년단 활동을 하셨고 다른 활동도 하셨기 때문에 연행되신
것이 아닌가 해요. 그 때만 해도 북한에 인력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문_ 피난은?
답_ 할아버지, 할머니는 작은 아버지가 모시고 내려갔고 작은 아버지는 수원 밑으로 걸
어서 피난을 가셨다고 하는데 거기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우리는 아는 사람을
통해서 화물차랑 기차를 타고 대구까지 갔죠.


남은 가족의 생활
<아버지 소식을 알아보려고 부산에 내려갔던 어머니가 열병에 걸려 일찍 돌아가시고, 큰
누나가 가장 역할을 하다가 삼촌에게 소식이 전해져 신세를 짐>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은?
답_ 고아가 됐는데 대구 쪽으로 피난 온 동네 사람들이 많아서 큰 누나가 목욕탕에 취직
했죠. 그 때 누나가 중학생이었는데 가장 역할을 했죠. 저는 밥 먹여주는 조건으로 목욕
탕에서 일을 했고. 막내는 4살인가 그랬어요. 그런데 홍역하고 마마를 앓다가 죽었고.
약 쓰고 할 새도 없었어요. 목욕탕에 있다 보니까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동네에서
같이 지냈던 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렇게 인편으로 삼촌한테 소식이 전해져서 삼촌
의 도움을 받게 되었죠. 우리를 데리러 와서 서울로 돌아가게 된 거죠. 그 때가 전쟁 끝
나고 난 뒤였어요. 1952년도에.
문_ 서울로 돌아온 후 생계는?
답_ 우리 집이 옥인동 시장 근방이었어요. 그래서 자전차 상회를 하시고 상가를 세를 주
고 해서 생활을 한 거죠. 그런데 그 때 삼촌도 애들이 있으니까 그 쪽도 네 명인가 다섯
명이 있어서 복잡했죠. 한 집에서 다 같이 살려니까.
문_ 어머님은 몇 살 때 돌아가신 건가요?
답_ 1·4 후퇴가 있던 해에 돌아가신 거죠. 제가 10살 때.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저는 그런 건 없었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지금은 4남매만 남았죠. 출가하기 전까지는 다 같이 있다가….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누나가 저보다는 좀 더 기억을 잘 하죠. 그런데 같이 얘기해 보면 서로 기억하는 게
비슷해요. 그 때 애들은 시골에 내려가 있었기 때문에 집안에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
잘 몰랐어요.
문_ 남은 가족의 납북자와의 추억은?
답_ 그런 얘기는 잘 못 들은 것 같아요.
문_ 회원님은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답_ 자전차 상회를 하셨기 때문에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자전거를 사주셔서 어려
서부터 자전거를 탔어요. 그 때는 자전거 타고 다니는 애들이 거의 없었죠. 피난 갈 때
도 누나들은 삼촌하고 큰 자전거에 타고 가고 나는 혼자 타고 갈 정도로 잘 탔죠. 효자동
쪽에 대중교통도 없고 하니까 걸어가야 하는데 그러진 못하고 자전거를 타고 간 거죠.
문_ 회원님은 어머님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게 있으신가요?
답_ 피난 가서도 우리하고 사는 걱정,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소식, 이런 것 때문에 늘 걱
정을 하고 지내셨어요. 그 때 생활이라는 것이 물건들을 다 시장에 팔아서 생계를 이었
는데, 그런 것 팔러 가실 때 시장에 쫓아가고 했던 생각이 나요.

문_ 어머님의 임종은 지키셨는지?
답_ 저는 임종 기억이 없어요. 그 때는 어렸지만 지금도 후회되는 것이 나는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있었는데 방에서 돌아가신 것 같아요. 외곽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뒤가 공동묘지였는데 지금은 거기에 경북도청이 들어서고 개발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위치도 어디인지 모르게 됐어요. 어머니를 거기에 모시고 나중에라도 찾아온다고 그 앞에 나무를 심어서 표시를 했는데. 가보질 못 했으니까.
문_ 장례는?
답_ 그 때 살던 집주인하고 멀리 친척 되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와서 장례를 치렀던 것 같아요. 사실 장례를 치렀던 기억도 저는 없고 나중에서야 공동묘지까지 갔었지 그 때로선 제가 쫓아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끝나고 난 다음에 갔던 것 같아요. 자식을 키워보고 그러니까 전쟁은 다시는 나선 안 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지금까지 전무하죠. 그래도 그 때 9.28수복 되고나서 삼촌이 신고를 하셨던 것 같아요. 최근 서초구 국립도서관에 가족협의회에서 나와 계셔서 저도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명단을 본 거죠. 제가 그걸 봤을 당시엔 삼촌은 돌아가셨고. 그때는 삼촌이 유일한 어른이었으니까 삼촌이 신고한 걸로 추측하는 거죠.
문_ 삼촌은 언제 돌아가셨나요?
답_ 10년이 넘었죠.
문_ 삼촌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셨는지?
답_ 그런 기억은 없어요. 왜냐하면 하도 집안에 애들이 많으니까 삼촌하고 따로 추억을 얘기하고 그럴 여유가 없었죠. 삼촌하고 작은어머니가 저희를 키워주셨으니까. 그 집이 상가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가보면 전부 도로 확장으로 그 라인의 집들이 다 없어졌거든요. 흔적이 없는 거죠 이제.
문_ 그 집에서 몇 살 때까지 계셨나요?
답_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있었어요. 그래서 상가를 정리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삼촌은 삼촌대로 그걸 판 돈으로 해서 따로 살게 됐죠

문_ 따로 사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답_ 그 때는 큰누나가 은행 다니면서 결혼했고 저도 학교 졸업하고 군대 다녀오고 그 뒤로 직장생활 하면서 살아 온 거죠.
문_ 4남매는 모두 생존해 계신 건가요?
답_ 그렇죠. 누나들도 학교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으니까 크게 생활은 어렵지 않았죠.


정부에 바라는 말
<기념관 건립 등 역사적 기록을 남기는데 노력해주었으면 함>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특별하게 바라는 건 없는데 우리 협의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념관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늦었지만 정부가 서둘러서 지원을 해서 완공되었으면 해요. 그러면, 자식들이 명절 때 대신 기념관에 찾아가서 예를 갖출 수도 있고요. 정부에 바라는 건 그런 거죠. 그 동안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사실 정부가 관심이 없었죠. 그랬는데 최근에 와서 고맙기도 하고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서 기록을 남겨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문_ 회원님 자녀분들은 할아버님이 납북된 것에 대해 알고 있나요?
답_ 알고 있죠. 한 번은 우리 큰애가 기억의 날 행사 때 자기도 가 보겠다고 해서 왔었어요. 그 때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행사했을 때요. 앞으로도 관심을 갖도록 제가 인계를 해 줘야죠.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근간에 와서는 기도를 합니다. 어머니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영혼이 허공에 맴돌고 있는 것 아니냐 해서 안식을 취하실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고 있죠. 사실 지금 100세가 되셨는데 살아 계시리라고는 생각은 안하고 있고….
문_ 항상 하신다는 기도를 해주실 수 있나요?
답_ 주님의 자비로 허공에 떠돌고 있는 저희 부모님의 영혼을 주님께서 받아 주셔서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거둬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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