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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심동구(증언자-심인복)
이름: 관리자
2017-01-26 15:26:25  |  조회: 1400

심 동 구( 沈同求)
2016. 4. 4.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17년 11월 27일 (음력)
출생지: 평양시
당시 주소: 서울 중구 회현동 1가 27
피랍일: 1950년 8월 4일
피랍장소: 서울 중구 회현동 1가 27
직업: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직계/부양가족: 부모, 누이 5명, 배우자, 1녀
외모/성격: 외모가 출중하고 남을 잘 도움.


증언자
성명: 심인복
관계: 외동딸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대구지방법원을 거쳐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었으며 재판소 관사에서 거주했음.
• 나머지 가족들은 벽제면의 외갓집으로 피난가 있고 납북자만 한 달여간 친척집을 전전하며 숨어 지냈는
데, 효자동 누님 집에 있다 나오는 길에 8월 4일 납치됨.
• 형사 재판을 많이 담당한 것 때문에 납북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
• 납치되고 몇 년이 지나 증언자인 딸이 고등학생일 무렵 북에서 넘어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수첩에
적힌 납북자 명단에 아버지 이름이 있었고, 조선일보에도 관련 내용이 실렸음.


직업 및 활동
<대구 지방법원을 거쳐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로 근무>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심인복입니다. 1940년 2월 27일이에요. 납북된 분은 저희 아버지죠. 제가 장녀에요.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심동구. 생년월일은 음력으로 1917년 11월 27일. 출생지는 평양이라고 그러기도
하고 서울이라고 그러기도 해요.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평양에 잠깐 계셨었는데 그 때 낳
으셨나 봐요 아버지를. 우리 본적은 수원이에요. 증조할아버지가 수원에서 변호사를 하
셨기 때문에.
문_ 전쟁 당시엔 어디 사셨나요?
답_ 우리는 서울에서, 재판소 관사에서.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셨어요. 학교는 경기고등학교 나오시고 서울대 경성법전이라
고 그러시던가? 거기에 일본 구주제대 유학 다녀오셨어요.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고모가 다섯이에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하고 어머
니, 저. 형제는 없고요. 무남독녀에요.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아버지는 대구지방법원에도 좀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대구
에 살았어요. 다른 활동은, 공무원이셔서 그런 것 하셨겠어요?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외모는 뭐 출중하시고. 다들 잘 생겼다고 그랬고 성격은 너무 좋으세요. 여유 있는 집
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 단면을 보면 아버지가 남 돕는 걸 참 잘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 집
안에 조카들, 못 사는 조카들 있으면 하다못해 리어카라도 사서 생활 터전을 만들어 주시
고. 그리고 또 한 예로 우리 집에 도둑이 그렇게 드는 거에요. 집이 크고 또 그 때는 다들
못 살 때니까. 그래서 한 번은 재판소에서 괜히 집에 가고 싶으셔서 오셨는데 도둑놈하고
딱 마주친 거에요. 그 도둑이 놋대야를 들고 나온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네가
그게 그렇게 필요하면 그냥 가져가라. 그래서 그냥 보내신 거에요 도둑을. 그럴 정도로
참 인자하셨죠.
문_ 6·25전쟁 도발 전 당시 상황은?
답_ 그 때 제가 남산국민학교를 다녔거든요. 그 때 나는 즐겁고 좋기만 했지.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다 나를 안아주고 그러셨어요. 왜냐면 판사 딸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으니
까. 그리고 반에서 전화 있는 사람 손들어라 그러면 그 땐 한 다섯 명 정도 될까? 그랬으
니까 우리는 유복하게 자랐죠. 그리고 아버지가 저는 꼭 경기여중을 가야 된다고 그러셨
어요. 그리고 제가 공부를 잘 하기도 했어요. 공부는 잘 해서 결국 경기여중을 갔는데 내
가 들어가서 보니까 옆에 서울지방법원장이셨던 김판사님 따님이 과학선생님을 하셔서
저를 불러서 알았어요. 그래서 그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문_ 피난은?
답_ 외갓집이 고향인 벽제면에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거기로 갔고 아버지 혼자 도망을
다니신 거죠. 그래서 외삼촌네도 가셨다가 결국 큰고모네서 납치당하셨어요. 고모가 효
자동에 사셨거든요.


납북 경위
<효자동의 누님 댁에서 나오다가 붙잡혀감>


문_ 납치 시기와 방법은?
답_ 8월 4일이요. 나도 현장을 보진 못 했고 말로만 들었는데 고모네 집에서 나오시다가
붙잡혀 가셨다고 그러더라고요.
문_ 납치자의 용모 및 신분 확인은?
답_ 잘 모르겠어요.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런 걸 따질 수 없었어요. 우리 어머님한테 좀
여쭤볼 걸 그러지 못했어요. 우리 가족들은 너무 가슴이 아픈 거에요. 그런 삶이. 다들 못
먹을 때 외갓집이 너무 잘 살았고 그래서 너무 가슴이 아파서….
문_ 붙잡혀 가셨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셨나요?
답_ 우리 어머니는 왔다 갔다 하시고 그랬으니까요.
문_ 전쟁 중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고모들하고 어머니하고 사람이 많이 돌아가신 장소에 가서 시체들을 많이 뒤졌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랬는데 없었다고…. 그 때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인가 그랬는데 이
북에서 누가 넘어 왔어요. 그런데 그 수첩에 우리 아버지 이름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북까진 가신 거에요.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수첩을 보니까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때가 내가 고등학생 때였을 거에요.
문_ 그 북한에서 넘어 온 분은 아버님을 만나셨다고 하시던가요?
답_ 만나진 못 하고 명단만 가지고 있었나 봐요.
문_ 명단에는 다른 납북된 분들의 성함도 다 적혀 있었나요?
답_ 네, 다 적혀 있었죠.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들은 알지도 못 하는데다가 그 당시 내가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냥 우리 아버지 성함만 보고 왔죠.
문_ 그 때가 몇 년인가요?
답_ 그건 잘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때인데 신문에도 났었어요 그게. 조선일보일 거에요.
우리가 그걸 계속 봤으니까.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 또는 주변의 소문 등은?
답_ 전혀 모르죠. 그 이름 본 것뿐이에요.
문_ 아버님이 납치당하시기 전에 한 달 여 동안 피해 다니신 건가요?
답_ 그렇죠.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워낙 고생을 모르고 자라신 분이라 그런 고생이 너무
싫어서 그런 말도 있었어요. 배를 탔는데 배에 사람이 하도 많아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
고 중간에 다시 돌아 왔다는 그런 말을 들었어요. 그러니까 친척집을 전전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하신 것 같아요.
문_ 아버님이 납치될 당시 회원님 나이는?
답_ 11살이죠.


납치 이유
<형사 재판을 많이 담당했으므로 납치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


문_ 납치 이유는?
답_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보기엔 아버지가 적이었겠죠. 형사 재판을 많이 하신 것 같아
요, 민사보다는. 장덕수 같은 사람들도 재판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적십자사에 했죠. 신고는 제가 했어요.


납치 후 소식
<납치되고 몇 년이 지났을 때, 북에서 넘어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수첩에 적힌 납
북자 명단에서 아버지 이름을 확인>


문_ 납치된 후 내무서원 같은 곳으로 찾으러 다니셨는지?
답_ 고모들이 좀 찾으러 다니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
러다가 나중에 신문에 난 걸 보니까 이북으로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워낙 신분이 좀 높은
사람이다 보니까 데려간 것 같아요.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 또는 주변의 소문 등은?
답_ 전혀 못 들었어요.
문_ 아버님 동료 중 붙잡혀 가신 분은 계신가요?
답_ 감찰원장을 지낸 정인보씨도 관사가 회현동에 있었고 우리 집도 회현동에 관사가 있
었고. 그 분과 우리는 먼 친척이 돼요. 그래서 서로 부산에 피난 가서도 가족들이 왔다 갔
다 하고 그랬거든요. 정양모씨하고 정평완, 정양완씨가 있었는데, 정양완이 제일 누나
죠. 또 정인보씨 큰 누나의 딸이 나하고 경기여고 동창이에요.
문_ 당시 납북 피해가족 단체 결성에 참여했는지?
답_ 단체 같은 건 전혀 없었고 우린 다 개인으로만 (신고하고) 그랬지 단체로 같이 하는
건 없었어요.
문_ 주변에 같이 붙잡혀 간 분들은?
답_ 모르겠어요. 정인보씨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그 가족하고는 워낙 친하기 때문에.
그 정평완씨는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문_ 1953년도에 납북된 분들의 가족들이 데모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런 행사에는 참여를
안 하셨나요?

답_ 고모들하고 어머니하고 사람이 많이 돌아가신 장소에 가서 시체들을 많이 뒤졌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랬는데 없었다고…. 그 때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인가 그랬는데 이
북에서 누가 넘어 왔어요. 그런데 그 수첩에 우리 아버지 이름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북까진 가신 거에요.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수첩을 보니까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때가 내가 고등학생 때였을 거에요.
문_ 그 북한에서 넘어 온 분은 아버님을 만나셨다고 하시던가요?
답_ 만나진 못 하고 명단만 가지고 있었나 봐요.
문_ 명단에는 다른 납북된 분들의 성함도 다 적혀 있었나요?
답_ 네, 다 적혀 있었죠.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들은 알지도 못 하는데다가 그 당시 내가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냥 우리 아버지 성함만 보고 왔죠.
문_ 그 때가 몇 년인가요?
답_ 그건 잘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때인데 신문에도 났었어요 그게. 조선일보일 거에요.
우리가 그걸 계속 봤으니까.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 또는 주변의 소문 등은?
답_ 전혀 모르죠. 그 이름 본 것뿐이에요.
문_ 아버님이 납치당하시기 전에 한 달 여 동안 피해 다니신 건가요?
답_ 그렇죠.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워낙 고생을 모르고 자라신 분이라 그런 고생이 너무
싫어서 그런 말도 있었어요. 배를 탔는데 배에 사람이 하도 많아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
고 중간에 다시 돌아 왔다는 그런 말을 들었어요. 그러니까 친척집을 전전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하신 것 같아요.
문_ 아버님이 납치될 당시 회원님 나이는?
답_ 11살이죠.


납치 이유
<형사 재판을 많이 담당했으므로 납치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


문_ 납치 이유는?
답_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보기엔 아버지가 적이었겠죠. 형사 재판을 많이 하신 것 같아
요, 민사보다는. 장덕수 같은 사람들도 재판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적십자사에 했죠. 신고는 제가 했어요.


납치 후 소식
<납치되고 몇 년이 지났을 때, 북에서 넘어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수첩에 적힌 납
북자 명단에서 아버지 이름을 확인>


문_ 납치된 후 내무서원 같은 곳으로 찾으러 다니셨는지?
답_ 고모들이 좀 찾으러 다니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
러다가 나중에 신문에 난 걸 보니까 이북으로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워낙 신분이 좀 높은
사람이다 보니까 데려간 것 같아요.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 또는 주변의 소문 등은?
답_ 전혀 못 들었어요.
문_ 아버님 동료 중 붙잡혀 가신 분은 계신가요?
답_ 감찰원장을 지낸 정인보씨도 관사가 회현동에 있었고 우리 집도 회현동에 관사가 있
었고. 그 분과 우리는 먼 친척이 돼요. 그래서 서로 부산에 피난 가서도 가족들이 왔다 갔
다 하고 그랬거든요. 정양모씨하고 정평완, 정양완씨가 있었는데, 정양완이 제일 누나
죠. 또 정인보씨 큰 누나의 딸이 나하고 경기여고 동창이에요.
문_ 당시 납북 피해가족 단체 결성에 참여했는지?
답_ 단체 같은 건 전혀 없었고 우린 다 개인으로만 (신고하고) 그랬지 단체로 같이 하는
건 없었어요.
문_ 주변에 같이 붙잡혀 간 분들은?
답_ 모르겠어요. 정인보씨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그 가족하고는 워낙 친하기 때문에.
그 정평완씨는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문_ 1953년도에 납북된 분들의 가족들이 데모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런 행사에는 참여를
안 하셨나요?
문_ 회원님은 어머님과 계속 같이 사신 건가요?
답_ 제가 결혼한 뒤에는 할머니하고 두 분이 사셨죠.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집으로 오셨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우리 어머니는 참 말이 없으신 분이에요. 그리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어요. 그래서 그런 말씀을 통 안 하셨어요. 나도 그런 부분을 건드리기 싫어서 그냥 여쭤보지도 않았어요.
문_ 회원님은 아버님과의 기억이 어떤 게 있으신가요?
답_ 일요일 같은 때는 아버님 주위 판사들하고 놀러 다녔어요. 그 때는 배를 타고 보문사를 간 기억이 나요. 6·25 나던 해 굉장히 많이 돌아다녔어요. 또 나하고 동갑인 고모가 있는데 그 고모도 같이 다니고 그랬죠. 경기고등학교 동창들이 있으셔서 그 분들하고도 다니시고. 우리 아버지는 주로 사냥을 다니셨기 때문에 주로 우리 어머니의 삼촌하고 많이 다니셨죠. 그래서 맨날 총 닦고 그러셨죠.
문_ 아버님이 회원님께 자주 하신 말씀은?
답_ 일요일에 교회를 가라는 것과 너는 꼭 경기여중에 가야 된다는 말씀. 아버지가 하바드에 가야 되니까 (잡혀가시기 전 8월말에 납북자가 하바드 대학에 갈 일정이 있었음) 경기여고에 가면 너를 꼭 거기 집어넣어 주겠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바드에 갈 줄 알았어요.
문_ 아버님은 교회에 다니셨나요?
답_ 아니요. 전부 불교 집안이셨어요. 우리 아버지도 할머니가 100일 기도를 드려서 낳은 분이에요. 그런데도 교회를 가야 된다고….
문_ 회원님이 외동딸이셨으니까 아버님이 사랑을 많이 주셨을 것 같아요.
답_ 그렇죠. 그런데 나하고 동갑인 고모가 있었어요. 그래서 고모 눈치도 많이 보고, 내가 어리지만 내 눈에도 보였어요. 역시 동생보단 딸이 더 하구나 (먼저구나) 그런 생각을 어린 생각에 했어요.
문_ 그래도 회원님은 아버님이 하라고 하신 것들을 많이 지키셨네요.
답_ 그렇죠. 경기여중, 여고도 갔었고. 대학교도 원래 의과대학에 가려고 했는데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학비를 누가 대겠어요, 그 때. 할아버지가 내가 고등학교 시험을 마친 날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그러기 바로 전에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널 의과대학에 보내주고 싶은데 내가 죽으면 누가 네 학비를 대겠느냐? 그러니까 네가 원하는 과를 가라. 그래서 저는 이화대학 교육과를 갔어요.
답_ 그 당시에 저는 학교 다니느라 정신이 없고 그래서 모르겠어요. 우리 어머님은 너무 얌전하신 분이라 그런 건 없으셨던 것 같아요.


연좌제 피해
<특별한 것은 없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모르겠어요. 그런 건 없었어요.


호적 정리
<사망 처리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했어요. 하도 오래돼서…. 원래 용인에 땅이 좀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했을 거에요. 행방불명도 사망이나 마찬가지로 되나 봐요.


남은 가족의 생활

<할아버지가 늦게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가족들을 부양함>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할아버지가 부산에 계셨기 때문에 부산으로 피난 갔죠. 할아버지가 계속 직장생활 하시고 오랫동안 돈도 버셨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할머니가 98세까지 사셨어요. 우리 어머니도 98세까지 사셨는데.
문_ 회원님이 자라실 때 이야기를 해 주세요.
답_ 우리 어머니의 삼촌이 보사부 차관이셨거든요. 그래서 어머니도 직장생활을 하셨고 그러셨어요.

문_ 회원님은 어머님과 계속 같이 사신 건가요?
답_ 제가 결혼한 뒤에는 할머니하고 두 분이 사셨죠.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집으로 오셨어요.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우리 어머니는 참 말이 없으신 분이에요. 그리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어요. 그래서 그런 말씀을 통 안 하셨어요. 나도 그런 부분을 건드리기 싫어서 그냥 여쭤보지도 않았어요.
문_ 회원님은 아버님과의 기억이 어떤 게 있으신가요?
답_ 일요일 같은 때는 아버님 주위 판사들하고 놀러 다녔어요. 그 때는 배를 타고 보문사를 간 기억이 나요. 6·25 나던 해 굉장히 많이 돌아다녔어요. 또 나하고 동갑인 고모가 있는데 그 고모도 같이 다니고 그랬죠. 경기고등학교 동창들이 있으셔서 그 분들하고도 다니시고. 우리 아버지는 주로 사냥을 다니셨기 때문에 주로 우리 어머니의 삼촌하고 많이 다니셨죠. 그래서 맨날 총 닦고 그러셨죠.
문_ 아버님이 회원님께 자주 하신 말씀은?
답_ 일요일에 교회를 가라는 것과 너는 꼭 경기여중에 가야 된다는 말씀. 아버지가 하바드에 가야 되니까 (잡혀가시기 전 8월말에 납북자가 하바드 대학에 갈 일정이 있었음) 경기여고에 가면 너를 꼭 거기 집어넣어 주겠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바드에 갈 줄 알았어요.
문_ 아버님은 교회에 다니셨나요?
답_ 아니요. 전부 불교 집안이셨어요. 우리 아버지도 할머니가 100일 기도를 드려서 낳은 분이에요. 그런데도 교회를 가야 된다고….
문_ 회원님이 외동딸이셨으니까 아버님이 사랑을 많이 주셨을 것 같아요.
답_ 그렇죠. 그런데 나하고 동갑인 고모가 있었어요. 그래서 고모 눈치도 많이 보고, 내가 어리지만 내 눈에도 보였어요. 역시 동생보단 딸이 더 하구나 (먼저구나) 그런 생각을 어린 생각에 했어요.
문_ 그래도 회원님은 아버님이 하라고 하신 것들을 많이 지키셨네요.
답_ 그렇죠. 경기여중, 여고도 갔었고. 대학교도 원래 의과대학에 가려고 했는데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학비를 누가 대겠어요, 그 때. 할아버지가 내가 고등학교 시험을 마친 날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그러기 바로 전에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널 의과대학에 보내주고 싶은데 내가 죽으면 누가 네 학비를 대겠느냐? 그러니까 네가 원하는 과를 가라. 그래서 저는 이화대학 교육과를 갔어요.

문_ 할아버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어머님이 생계를 책임지신 건가요?
답_ 할아버지가 남겨두신 게 있으셨고 그 다음엔 어머님이…. 그리고 우리는 외갓집에서 지원도 받고 그랬죠.
문_ 할아버님은 아버님에 대한 말씀을 안 하셨나요?
답_ 워낙 할아버지가 판사가 되기를 원하셨는데 그걸 이루셨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기대를 하셨는데 그렇게 납치되니까 할아버지의 상심이 너무 크셔서 그 때부터 조금씩 아프셨던 것 같아요. 우리는 증조할아버지도 6·25때 대포소리에 놀라서 돌아가셨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 때문에 집안이 박살이 났죠.
문_ 할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말씀은?
답_ 그런 말씀은 따로 없었어요. 그냥 학교를 네가 원하는 데로 가라. 그 말 밖에는…. 아버님이 돌아오실 거라는 그런 기대도 안 하셨고. 우리 할머니도 매일 점 보러 다니시고 그러셨죠. 아버지에 대해 점을 보면 항상 내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너는 잘 살 거라고 그랬는데 잘 살긴 뭘 잘 살아. 그냥 하시는 말씀이지….


정부에 바라는 말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나는 이게 왜 이렇게 시간을 끌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햇수가 지날수록 돌아가실 가능성도 높은데 다른 문제보다 이걸 빨리 해 줘야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나 몰라라 하는지…. 이렇게 끌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렇게들 돌아가시고. 우리 어머니만 해도 작년까진 살아계셨는데. 물론 연세가 있어서 돌아가셨을 것 같지만 그런 걸 확실하게 진작부터 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죠. 정부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죠. 지금도 그런데 지금은 다 돌아가신 상황이니까….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전혀 없어요. 지금까지도 전혀. 그러고선 그냥 끝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섭섭하더라고요

문_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가 돌아오실 거라는 말씀을 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답_ 기다리시긴 하더라고요. 회담만 끝나면 어떻게 되지 않겠냐 이러시면서. 그랬는데 나중엔 거의 포기 상태더라고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너무 어려서, 그리고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없어요. 보고 싶은 거야 당연한 거고. 글쎄요. 요즘 100세 시대니까 혹시라도 살아 계시면 건강하게 살아 계시면 감사한 거죠.
문_ 아버님이나 어머님에 대해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면 더 해주세요.
답_ 어머님하고는 계속 쭉 살아왔기 때문에 얘기도 많이 했고. 아버지는 너무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오히려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에 6·25라는 것 때문에 나처럼 손해를 본 사람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이렇게 뼈아픈 상황을 당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요. 물론 다 그렇겠지만 나는 아버지가 판사까지 하시고 그랬기 때문에 나는 더 피해가 크지 않았나 싶어요.
문_ 아버님이 계시다면 해드리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답_ 연세가 많은데 뭘 해드리겠어요. 잡수시는 것 말곤….
문_ 아버님 제사는 지내시나요?
답_ 돌아가신 날짜를 모르기 때문에 제사는 못 지내요. 어머님은 고향의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죠.
문_ 어머님이 아버님 제사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하셨나요?
답_ 그런 말은 안 하셨죠. 돌아가신 날을 알아야 제사를 지내는데 그걸 모르니까요.
문_ 어머님은 특별한 유언이 있으셨나요?
답_ 그런 건 없으셨어요. 주무시다가 돌아가셔서. 여기 영동세브란스에서 사망진단서가 자연사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한테 감사한 게 요양병원을 간다든지 이렇게 많이들 하시는데 그런 것 없이 편안하게 돌아가셔서 어머니한테도 너무 감사하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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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16 1186
179 납북자-이규호(증언자-이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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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16 1299
178 납북자-유정열(증언자-유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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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16 1401
177 납북자-이종식(증언자-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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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472
176 납북자-박영근(증언자-박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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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339
175 납북자-이화실(증언자-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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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485
174 납북자-조수준(증언자-조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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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588
173 납북자-김구민(증언자-김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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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439
172 납북자-심동구(증언자-심인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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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399
171 납북자-유창열(증언자-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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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589
170 납북자-강신원(증언자-강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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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460
169 납북자-최준경(증언자-최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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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324
168 납북자-유원순(증언자-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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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414
167 납북자-이순임(증언자-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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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410
166 납북자-정관만 (증언자-정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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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348
165 납북자-권두한(증언자-권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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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568
164 납북자-염준모(증언자-염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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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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