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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김구민(증언자-김호길)
이름: 관리자
2017-01-26 15:31:49  |  조회: 1440

김 구 민( 金丘民)
2016. 4. 8.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10년 3월 17일
출생지: 함경도
당시 주소: 개성시 수창동
피랍일: 1950년 6월
피랍장소: 서울 원효로
직업: 서울시 의경으로 근무하다 개성경찰서로 전근하여
경찰공무원 대공 사찰계 주임으로 재직
직계/부양가족: 2남 2녀
외모/성격: 호탕하고 스포츠맨 타입


증언자
성명: 김호길
관계: 차남
증언성격: 

간접증언


특이사항(납치주체/상황/원인)
• 함경도 출신으로 8.15 때 월남하여 시울시 의경으로 근무하다, 개성경찰서로 전근해서 경찰공무원 대공
사찰계 주임으로 있으며 간접 체포에서 많은 공적을 세움. 서북청년단 단장을 암살한 사람도 체포하여
이름이 나 있었고, 이 때문에 정치보위부 사람들이 납북자의 사진을 갖고 다녔음.
• 전쟁 당시에는 개성에 거주하고 있었고, 6월 25일 새벽에 총소리가 나자 납북자 자신은 총을 들고 전투
복 차림으로 나가고, 아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전갈을 보내 집 근처 도립 병원으로 피신하도록
시켰음. 납북자가 원효로 쪽으로 피신했다가 도강하려고 하는 중 친구 부인의 밀고로 붙잡혀갔는데, 잡
으러 온 내무서원들은 사진을 가지고 와서 이를 얼굴과 대조해보고 붙잡아감.
• 1980년도쯤 아들인 증언자가 교보에서 전쟁희생자들 명단이 적힌 책에 납북자 이름이 있는 것을 발견하
고 며칠 후에 다시 책을 사러 갔는데 찾을 수 없었고, 서대문에 이북5도청이 있어 연락해보니 정부에서
전량 수거해갔다는 말을 들음.


직업 및 활동
<시울시 의경, 개성경찰서를 거쳐 경찰공무원 대공 사찰계 주임으로 많은 공적을 세움>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1940년 3월 18일생 김호길. 납북되신 분이 저희 아버지시고 제가 막내에요.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김구민. 1910년 3월 17일. 출생지는 함경도인데 8.15때 월남하셨죠. 서울시의경
에 근무하시다가 개성경찰서로 전근해서 쭉 종사하시다가 대공사찰업을 하셨어요. 전
쟁 때는 개성에 사셨죠. 개성시 수창동.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학교는?
답_ 경찰공무원 경위셨어요. 대공사찰담당. 간첩들 많이 잡았어요. 출신 학교는 와세다
법대 중퇴하셨다고 해요.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과 수는?
답_ 어머니는 제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4남매가 살았죠. 제일 위에 형님이고 누님 두
분 계시고 그리고 저. 그 때 형님도 경찰 공무원이었어요.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아버지가 서북청년단 단장을 암살한 사람도 잡았거든요. 그래서 유명했기 때문에
누님들이 그러는데 6·25 때 정치보위부 사람들이 아버지 사진을 갖고 다녔다고 해요.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은?
답_ 굉장히 호탕하시고 스포츠맨이었는데 검도, 유도, 야구, 탁구 등등 다 잘 하셨어요.
굉장히 멋있는 분이었어요.
문_ 6·25 전쟁 도발 전 당시 상황은?
답_ 저는 그 때 국민학교 다녔으니까. 서울의 남산같이 개성에 송악산이 있었는데 거기
서 전투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녁을 먹으면 폭격전 하는 거 구경을 나갔어요. 그런 상황
에서 학교 다니고 그랬어요. 개성 만원국민학교 다녔는데 고려의 도시였기 때문에 좋았
어요.
문_ 피난은?
답_ 6·25 때는 못 가고 1·4 후퇴 때 형님이 서울에 근무했었거든요. 그래서 저희를
다 데리고 서울에 살다가 부산으로 피난을 갔죠.


납북 경위
<원효로 쪽으로 피신했다가 도강하려고 하는 중, 친구 부인의 밀고로 내무서원이 사진을
가져와 대조해보고 붙잡아감>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6월에 장마비가 올 때였어요. 총소리가 우박소리처럼 요
란하게 들리더라고요. 총성 소리에 깼는데 아버지가 일어나더니 큰 일 났다고. 전투복
을 입고 헬멧을 쓰시고 아버지가 검도를 하셔서 칼을 차고 기관단총을 차고 나가셨어요.
저희들에게 내가 소식 전하기 전엔 꼼짝 말아라 하고 나가셨는데 동이 밝았어요. 그러더
니 누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까 경찰관이 와서 아버지가 피신을 하라고
했다고 소식을 전해주더라고요. 우리 집 옆에 도립병원이 있었어요. 거기 지하실 뒷문
을 통해서 피난을 했죠. 그 때 아버지 보고 못 봤어요. 제가 세 살 때부터 아버지께서 혼
자 계셨거든요. 그래서 4남매 키우면서 고생 많이 하셨죠. 저는 아버님이 전사한 줄 알
았는데…. 호적을 보니까 전사로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소문이 원효로 쪽으
로 피신하셨다가 도강하려고 하다가 잡혔다고 하시더라고요. 누님들이 이야기 해줘서
알았어요.
문_ 납치 방법은?
답_ 아버지가 친구분 집에 있다가 갔는데 그 부인이 밀고를 했대요.
문_ 납치자의 용모 및 신분 확인은?
답_ 내무서원인가 하는 사람들이 사진 가져와서 대조해보고 붙잡아 갔다고 하더라고요.
문_ 그 때가 언제인가요?
답_ 한강 다리가 끊어진 뒤였죠. 그 바람에 여러 분이 희생당하셨죠. 서울이 뺏긴 다음
이니까….
문_ 남은 3남매는 도립병원에 언제까지 계신 건가요?
답_ 점령군이라고 하나? 병원에 그런 부상자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밑에서 들으니까 총
성이 벌어지더라고요. 보니까 전부 병원에 피난민들이 모여 있었어요. 조금 있다가 원

장이 인민군을 안내를 하고 데리고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국방군 헬멧을 써서 반가워서
봤는데 속에 보니까 인민군 모자를 썼어요. 원장이 우리 동네는 다들 피난민들이 피난
온 거니까 그런 사람은 없다 그랬는데…. 그 중에 경찰관이 있었는데 맹장수술로 입원했
다가 얼굴이 하얗게 된 분인데 딱 그 분을 지적하더라고요. 당신 뭐야 그러니까 나는 장
사꾼이에요. 이러니까 한참 보다가 그냥 가더라고요. 그리고는 원장이 다시 내려와서
다 끝났으니 집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나와서 보니까 시골 지방에는 소방서가 제일 높
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인민군 깃발이 꽂혀 있어요. 집에 오니까 마루에 발이 없어진 남
자애가 자기 형이랑 툇마루에 앉아있더라고요. 개성역에 기차 타러 갔다가 포격 맞아서
그렇게 됐다고. 그 다음부터 저희는 굉장히 떨었죠. 그 당시 누님이 역할을 많이 했죠.
큰 누님이 19살인가? 저는 11살. 누님은 이대 영문과 1학년인가 2학년이었어요. 그래
서 누님이 서울 환도된 후에 문산으로 쌀장사하러 다니고 그러셨어요. 그러다가 형님을
만나서 전부 서울로 왔죠.
문_ 그 때가 언제인가요?
답_ 9.28수복되고 나서 10월인가, 11월인가.
문_ 전쟁 중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누님들이 했었죠.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에 제가 교보에 들렀더니 전쟁 희생자들 명
단이 이렇게 두꺼운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보니까 신고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아
버지 성함이 있어요. 직업별로 쫙 되있더라구요. 굉장히 비쌌는데 내가 그 때 돈이 없어
못 샀는데 집에 와서 얘기하니까 그걸 사라 그러더라구요. 근데 정부에서 다 그걸 걷어
갔대요. 서대문인가에 이북5도청이 있어서 거기에 연락하니까 정부에서 다 걷어갔다고
그래요. 그게 1980년도쯤이었어요. 거기에서 아버지가 납북자 명단에 있었어요. 그러
고 2000년대 들어서서 컴퓨터로 전쟁희생자 검색해보니까 저희 아버지 이름이 처음에
나와 있어요. 강릉대 교수가 작성한 게 있었는데 그 사람이 하기 전에 그게 있었어요.
우리는 신고도 안 하고, 형님도 돌아가셨는데 있더라고요. 우리 아버지 이름으로 세 사
람이 등록이 되어있어요. 주소도 똑같아요.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는?
답_ 모르겠어요. 누가 했는지. 하나는 공무원 하나는 경찰 하나는 경찰공무원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가족은 신고를 안 했는데 누군가가 한 거죠.
문_ 당시 납북 피해가족 단체 결성에 참여했는지?
답_ 아니요. 그 당시엔 포기하고 있었으니까. 아마 미아리고개 넘어가다가 다 죽인 거라
고 생각해서.


남은 가족의 생활
<누님이 쌀장사를 하고 장관 비서로 근무하여 가족을 부양함>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큰 누님이 활동이 컸어요. 쌀장사도 하고 똑똑해서 1·4 후퇴 때는 장관 비서로 근
무했어요. 저희가 그 덕분에 살았어요. 형님은 경찰관으로 공비 소탕하러 많이 다녔거
든요. 그래서 형님은 우리를 옮겨만 놨지 간수를 잘 못 했어요. 작은 누님은 발레를 했
어요. 그래서 군위대에 가입해서 전방으로 위문공연 다니고 그랬어요.
문_ 1·4 후퇴 때 서울로 오신 건가요?
답_ 6·25 끝나고 형님한테 연락이 와서 서울로 왔죠. 1·4 후퇴 때는 부산으로 간 거
죠. 부산에서는 1·4 후퇴 끝나고 서울 환도된 후에 올라왔어요. 누님이 비서로 근무하
면서 올라와서 살았죠. 그리고 저희는 유가족이다 뭐다 해서 혜택도 하나도 못 받았죠.
학교 다닐 때 등록금도 못 내서 시험 치다가 쫓겨나고 그랬었어요. 지금 현재는 대학원
까지 나와서 정년 퇴직 해서 지내고 있죠.
문_ 남은 가족들의 현재 생존 여부는?
답_ 다 돌아가셨죠. 작은 누님만 83세로 살아 계세요.


연좌제 피해
<없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그런 건 없었어요. 누님들 치마폭에서 나가지도 못 하게 하고 그랬기 때문에.
문_ 남은 가족들이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저희 아버지는 정의감이 투철하고 정이 많으셔서 저녁에 늦게 들어오시잖아요? 그
러면 홀아비가 4남매를 키우니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그런데도 술을 잡수시고 들어오
시다가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옷이고 신발이고 벗어주고 그랬대요. 어떨 때는 골목에 들
어오다가 학생 빨갱이들이 많았어요. 손전등이 기역(ㄱ)자로 되어 있는데 그걸 권총인
것처럼 해서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셨다고 그래요. 그리고 제가 학교 마치고 오면 집에
아무도 없잖아요? 그러면 병원 옆에 기와집 동네인데 거기에서 내려오면 경찰운동장이

있어요. 거기에서 혼자 공놀이 하면 경찰서 3층에 아버지가 창문 열어놓고 제가 공 차는걸 보고 계셨는데 거기에서 양말을 꿰매는 장면도 여러 번 봤어요. 한 번은 일요일인데 아버지가 어디 다녀오다가 경찰서에 들렀어요. 그런데 빨갱이들이 송악산을 넘어 가는 걸 잡았다고 하는데 조선 옷을 입은 사람인데 속을 뒤지니까 옷에서 비밀 문서가 나왔다고 그러더라고요. 하여간 자백을 받았죠. 한 번은 겨울에 눈이 덮여 있는데 한 열 살쯤 된 애가 벙거지 모자를 쓰고 걸어 넘어 가는 걸 이상하다, 눈 덮인 벌판을 왜 갈까 그래서 잡았더니 누가 거기 살고 있어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옷을 만져 보니까 누빔 옷인데 소리가 나더래. 거기에 비밀문서를 넣어서 꿰맨 거죠. 그래서 아버지가 제 생각이 나서 걔를 꼭 껴안고 울면서 왜 그런 짓을 했느냐 했더니 주위에 형들이 시켰다고 그래서 잘 교육 시켜서 보호자들 오라고 그래서 보냈다고. 그 얘길 누님한테 들었어요. 여러 에피소드가 많은데 아버지가 독신으로 계시다가 가실 때 개성에 기생들이 유명한데 거기에서 위로도 하시고 저희 남매들 끼시고 돌아가신 걸 생각하면…. 한 번은 우리 형님이 장가를 가서 애를 낳았거든요. 첫 손자죠. 경찰이나 군인은 교육이 있어요. 경찰관들은 부평에 경찰 전문학교가 있어요. 거기에서 간부급들이 집단으로 와서 교육을 받고 있다가 조카 100일 날 40여 명이 왔어요. 그 마당이 굉장히 넓었는데 사진사가 단체 사진을 찍어서 기념사진이 있어요. 그런데 장모님이 사진관에 가서 현상 한다고 했는데 불이 나서 불타 없어져버렸어요. 그게 있었으면 귀중한 자료가 됐을 텐데 없어져 버려서….
문_ 아버님이 경찰 생활을 몇 년 하신 건가요?
답_ 남한에 넘어와서 바로 하신 거죠.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이승만 정부 때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니 우리가 공부하다 쫓겨나고 그랬죠. 박정희 시대부터 군인이나 경찰, 또는 희생당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기 시작한 거에요. 그래서 유가족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죠.
문_ 아버님이 힘들게 키우셨겠네요
답_ 그렇죠. 엄마 돌아가신 걸 제가 본 것도 같아요. 애들이 못 알아듣는 것 같아도 기억을 하더라고요.

문_ 형님이나 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님에 대한 말씀이나 어머님에 대한 말씀이 없으셨나요?
답_ 우리 어머니가 굉장히 미인이셨대요. 그런데 얼굴에 뭐가 나면 짜고 그랬는데 얼굴에 뭐가 났는데 그걸 짰는데 손독이 올라서 부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게 온 몸에 퍼져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죠. 도깨비란 얘기도 듣고 홍길동이란 얘기도 듣고 그랬는데요. 제가 학교 다닐 때 학부형들 모임이 있고 그렇거든요. 그런데 전 그런 게 없었잖아요. 선생님이 날 이해 못 하니까 야단을 치는 거에요. 넌 왜 아무도 안 오시냐고. 그래서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버지만 계신데 바쁘시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래도 그렇지 그러길래 아빠한테 그 말을 했더니 아버지가 오셨어요. 그런데 선생님께 어떻게 말씀을 하셨는지 그 다음부턴 선생님이 절 잘 봐주시더라고요. 아버지는 대공사찰업무 때문인지 저희를 잘 보질 못 했어요. 바쁘셔서. 6·25 전에 학생 빨갱이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 놈들이 무기도 들고 다녔어요. 그래서 그 놈들 잡으러 다니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분이었어요. 개성 아까운 도시를 뺏겼어요 우리가. 거기가 교육도시인데 일제강점기 시대 때 상인정신이 있잖아요. 그래서 일본인들이 거기서 장사를 못 했대요. 한전 세워서 전기를 생산하는데도 전기를 안 켜고 촛불이나 등잔 켜고 그랬대요. 6·25때 인민군이 넘어왔어도 사상교육을 못 했어요. 그만큼 개성 시민들 정신이 장사지. 그랬는데 뺏겨버렸죠.


정부에 바라는 말
<전쟁납북자에게 주택 분양 우선조건 등의 혜택이라도 배려해주었으면 함>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답_ 이번에 아파트 하는데 우선조건이 있더라고요. 전사자, 국가유공자는 되는 거고. 납북자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6·25전쟁 중에 납북된 분은 해당 사항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통일부에 얘기했더니 이북에서 납북자 인정을 안 한대요. 거기에서 인정하면 정부에서도 할 텐데 안 하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혜택을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저만 그렇겠어요? 또 6·25 났을 당시 제가 어렸잖아요. 다들 돌아가시고 저도 팔순을 바라보는데 가족들도 불쌍하고…. 그래서 나는 정부에서 그런 혜택이라도 좀 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거라도 혜택이 돼서 한을 풀어주면 좋겠어요.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우리 아버지는 항상 너희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보다 여러 사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게 쉽습니까? 다들 권력 잡고
자기 욕심에 살지. 저도 하려고 했는데 못 했죠. 그런 위인이 되려고 했는데. 그래서 손
자들한테는 그렇게 말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버님께서 일찍이 상처를 하셨는데 술만 잡
수시면 메기의 추억을 잘 부르셨어요. 그래서 그 추억이 있고. 하늘나라에서 돌아가신
엄마 만나서 편안히 안식을 취하셨으면….
문_ 남은 가족의 납북자와의 추억은?
답_ 그 때 제가 11살이었기 때문에 철이 없어서…. 소풍 갈 때 부모가 없어서 같이 다녀
보질 못 했어요. 아버님은 늘 일에 바쁘셨고. 아버지는 국가를 위해서 정의로운 사람이
셨기 때문에. 그래서 형님도 아버님 따라서 경찰을 하신 거고. 형님도 정년퇴직을 하셨
어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죠. 형님에 대한 기억은 가죽잠바 부대라는 게 있어요. 우리
형님께서는 중부경찰서에 계셨어요. 형님이 거구였어요. 그래서 조병옥씨 같은 분이 가
죽잠바 입은 채로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게 동아일보에 나오고 그랬어요. 우리 매형은
육사 김종필씨 동기인데 마침 우리 아버님하고 호형호제 하시던 분이 중부경찰서 서장
으로 있었어요. 그래서 얼른 사찰에서 빼서 정복을 입혀서 대한극장 앞 파출소 소장으로
나가서 있다가 시대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으니까 강원도로 발령을 내 버렸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하고 돌아가셨어요.
문_ 큰아들의 손자는 어떻게 지내나요?
답_ 이민 가있어요. 엔지니어로 일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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