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업증언채록

증언채록

납북자-이규호(증언자-이종열)
이름: 관리자
2017-03-16 13:40:32  |  조회: 1253

이 규 호( 李圭浩)
2016. 5. 19. 채록


피랍인
생년월일: 1922년 3월 6일
출생지: 경북
당시 주소: 강원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113번지
피랍일: 1950년 8월 20일
피랍장소: 자택
직업: 농업
직계/부양가족: 할아버지, 어머니, 배우자, 3남 2녀
외모/성격: 미남형이며 온순하고 모범적임.


증언자
성명: 이종열
관계: 장남
증언성격: 직접증언


직업 및 활동
<농업에 종사함>


문_ 증언자의 성함, 생년월일 및 납북자와의 관계는?
답_ 이름은 이종열. 생년월일은 1941년 6월 29일 생입니다. 양력으로. 납북된 이규호
씨는 제 아버지 되십니다. 저는 장남입니다.
문_ 납북자의 성함, 생년월일, 출생지 및 거주 지역은?
답_ 아버님 성함은 이규호. 생년월일은 1922년 3월인가? 저도 호적등본을 봐야 아니
까. 3월 6일. 출생지는 경북, 그 당시는 강원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113번지로 기억
하고 있습니다.
문_ 납북자의 당시의 직업과 출신 학교는?
답_ 농사를 지으셨어요. 학교는 못 다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_ 납북 당시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되셨는지?
답_ 그 당시 가족관계는 우리 아버님하고 어머님, 할머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증조
부님, 조모님하고 우리 형제가 4남매. 지금은 5남매인데 막내는 유복자입니다. 2남 2녀
고 막내가 유복자인데 남자로 태어났어요. 막내가 태어난 것이 1951년 3월이었어요.
문_ 납북자의 경력 및 사회 활동은?
답_ 특별한 건 없고요. 농사꾼으로서 성실하게 가족을 부양한 걸로 기억합니다. 정치라
던가 정당활동 이라던가 그런 건 없었고 오직 농사꾼으로서 가족 부양을 했어요.
문_ 납북자의 외모 및 성격 등의 특징?
답_ 아주 온순하고 미남이었어요. 그리고 동네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법 없이도 살
양반이라고 그러고…. 어머님한테도 그렇게 잘 하셨다고 그래요. 모범적으로 살았다고
해요. 우리 형제들한테도 사랑을 많이 주신 것 같아요. 시간만 있으면 데리고 나가고.
납북된 후 제일 마지막 기억으로는 음력 7월 7일에 납북되었다고. 그걸 계산해보니 양
력으로 8월 20일이더라고요. 그 당시에 내가 마지막으로 아버지하고 작별한 순간을 지
금도 기억하거든요.
문_ 납치 시기와 당시 증언자 나이는?
답_ 열 살이었죠.
문_ 피난은 가셨는지?
답_ 갔죠. 우리 수곡리가 1,2,3구까지 있습니다. 1구하고 2구의 거리가 한 3km 되는
데요. 그 2구가 산골에 접해 있습니다. 동해안 바닷가하고 우리 집하고 한 3km 돼요.
밤에 자는데 큰 군함이 폭격을 했는데 그 포탄이 우리 집 근처에 떨어졌어요. 그래서 놀
라서 그 밤에 짐을 다 짊어지고 수곡2리에 아는 친척 집에 갔어요. 이틀 밤인가 피난 생
활을 하다가 도로 집으로 돌아 왔죠. 인민군하고 대화도 해봤어요. 우린 어리니까 그 때
감나무에 올라가서 홍시를 따먹고 그랬거든요. 그 때가 9월이었어요. 9.28수복 때 인
민군들이 후퇴하는 거에요. 패잔병들인데 키가 요즘 초등학생보다 작아요. 장총을 매고
대여섯 명씩 와서 우리한테 ‘학생 동무, 홍시 좀 달라고….’ 그래서 따서 준 적이 있어요.


납북 경위
<피난 갔다 집에 돌아와 있는데 내무서원 두 사람이 명단을 가지고 집으로 와서 납북자
이름을 대며 같이 가자고 하여 100 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 회관으로 데려감. 동네 사람
한 명과 함께 다른 장소로 이동했는데 어디인지 모름>


문_ 이틀만 피난을 가셨다가 돌아오셨다고 했는데 아버님은 어떻게 붙잡혀 가셨는지?
답_ 그 당시에 참 더웠습니다. 삼복더위 절정이었던 것 같아요. 8월 20일이니까. 저녁
에 시골에 요즘처럼 해충 잡는 약도 없고 하니까 마당에다가 모깃불을 피웠어요. 밑에
는 잘 타는 걸 놓고 잡초를 뽑아다가 위에 놓으면 연기가 나잖아요. 그 연기로 모기를 쫓
는 거에요. 그 날 저녁에도 더우니까 모깃불을 피워 놓고 저녁을 마당에서 먹었어요. 감
자도 찌고 보리밥도 해서 먹는데 그 때가 8월 20일 어두웠습니다. 그 때 두 사람이 왔어
요. 와서 여기가 이규호 댁이냐고 그래요. 아버지가 내가 이규호라고 하니까 잠깐 갈 데
가 있으니 가자고 그러더라고. 아버지가 가시니깐 나도 따라 나섰죠. 그래서 아버지가
내 손목을 잡고 같이 갔어요. 어디로 갔냐 하면 우리 마을에 요새 말하면 회관 비슷하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어요. 거길 갔어요. 우리 집에서 한 100m도 안 될 거에요.
문_ 납치자의 용모 및 신분 확인은?
답_ 모르죠. 내무서원이라고 하더라고. 이북 치하의 간부들이에요. 그래서 보니까 명단
을 다 가지고 있더라고. 그 당시가 마지막이었어요. 아버지도 몇 번 잡으러 왔었는데 도
망가고…. 그 마을에서 두 세 번 잡혀 갔다가 도망 온 사람들도 있었고…. 아버님은 처
음 붙잡혀 간 거였어요. 그 때만 면했으면 우리 아버지도 납북 안 되셨다고.
문_ 납치자들의 복장은?
답_ 군인복장은 아니었어요. 총은 못 봤어요. 두 사람이 서류 같은 거 든 가방을 들고 와
서. 그래서 마을회관에 가니까 동네 사람 몇이 모여 웅성웅성하고…. 그 중에 최사식씨
라고 있어요. 결국 그 분하고 우리 아버지하고 같이 데리고 간 거에요. 어디로 간다 소
리도 안 하고 갑시다 하고 가는데 나도 아버지 손을 잡고 모여 있는 장소에서 한참 내려
와서 파출소 방면으로 내려갔어요. 그런데 나는 계속 따라 갈 수 없잖아요? 그래도 한
40~50m는 따라 나왔는데 아버지가 삼거리 지점에서 갔다 올 테니까 너는 집으로 돌
아가라고 그러시더라고.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어요. 그래서 어디로 갑니까 하고
물어볼 수도 없고. 나중에 얘길 들어 보니까 잡혀 간 거에요. 그 당시에는 젊은 사람들
을 다 데리고 갔어요. 심지어 사망해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사람도 있더라고. 무서웠어.
그게 마지막이에요. 그 날 저녁에 마을 회관에서 사람을 모집하려고 한 모양이에요. 한
30분 있었던가요? 그러다가 더 안 오니까 그 둘만 데리고 내려 간 거에요.
문_ 회관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답_ 분위기는 원래 시골이 무슨 일 있으면 다 모이고 그러잖아요? 방송도 없고 그러니까
이웃끼리 알리고요. 그 때도 모깃불을 피워 놓고 몇이 모여서 얘기들 하다가 그 두 사람
을 데리고 가니까 나도 따라 나왔고, 그 뒤에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모르죠.
문_ 납북된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답_ 언제 찾을 수가 있습니까? 전쟁 통인데. 사방에서 총 쏘는데. 그렇게 한 달, 두 달,
일 년. 자포자기한 거죠.
문_ 적십자사, 정부나 관청 등에 신고하셨는지?
답_ 신고는 안 했죠.


납치 후 소식
<없었음>


문_ 탈출해서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은 들은 적이 있으신지?
답_ 없어요. 살아 나온 분은 별로 없어요. 갔다가 죽어서 시체로 온 사람이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이 있고. 나머지는 전부 행방불명이에요. 소식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물어봤겠죠. 당
신들 도대체 어떻게 돌아왔는가 하고. 그런데 전혀 없으니 물어볼 길이 없는 거에요.
문_ 삼거리 이후에는 어디로 갔는지 전혀 모르시는 건가요?
답_ 전혀 모르죠. 돌아가셨는지 이북에 가셨는지 전혀 모르죠.


남은 가족의 생활
<어머니가 농사 지어 여덟 식구를 부양하고 고생하였음>


문_ 남은 가족의 피난, 생계, 양육 등은?
답_ 말할 수 없죠. 어머니 혼자 여덟 식구를 부양한 거에요. 그렇다고 직장에 가서 돈
을 번 것도 아니고 농사로 겨우 연명하는 거에요. 그 당시에도 저는 초등학교에 다녔어
요. 내 동생하고 둘이. 당시에 제일 애로사항이 땔감입니다. 그 때는 산이 빨갰습니다.
나무뿌리라도 있으면 캐서 불 때고 하는 건데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나무를 해서 놓으
면 아껴서 쓰고. 어머니는 여자의 몸으로 농사지어서 우리 학비 대주죠, 식구들 식량을
감당해야죠. 그렇게 쌀 한 두 되씩 이고 시장에 가서 반찬 사올 때도 있고. 쌀을 팔 수
도 없어요.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팝니까? 그런데도 나가서 팔아서 학용품도 사주
고 그렇게 근근이 젊은 시절을 보낸 거죠. 기가 막히죠. 그래서 하도 벌이가 안 되서 세
월이 좀 흐르고 도저히 농촌에서 못 살겠어서 저는 서울로 올라 왔습니다. 그래서 기술
을 배워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중학교는 나왔어요. 중학교 나와서 강릉사범학
교 시험을 치려고 원서를 쓰다 보니까 울진중학교에서 다섯 사람한테 원서를 써 주는
데 담임들이 보고 붙을 만한 애들만 써줘요. 그런데 차마 어머님한테 얘길 못 했어요.
내가 진학을 하면 돈이 드니까. 사범학교 시험 본다는 소리를 못 하고 원서접수를 몰래
해 놓고 시험 보러 가는 날 얘길 했어요. 차비라도 타서 가야 되니까. 펄펄 뛰는 거에
요. 땅을 팔아야 된다고 하는 거에요. 네가 붙으면 어떻게 학비를 대겠느냐고. 가지 말
라고 울고 난리가 난 거에요.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어떻게 가겠습니까? 그래서 포기하
고 서울로 올라 왔어요. 아 이제는 기술을 배워야겠다. 그래서 자동차 기술학교를 들어
갔어요. 수도자동차 교습소라고. 거기에서 6개월 과정을 삼촌 집에서 하숙하면서 마
치고 1960년도에 면허를 땄습니다. 이제껏 직업으로 했고 지금도 근근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참 고마워요. 그 때 6개월간 구조, 법규, 전기를 배워야 면허를 줬거든. 그것
도 학원에 감독관이 나와서 합격을 해야 돼. 학원 나왔다고 다 주는 게 아니었어요. 그
래서 저는 택시를 했죠. 다른 형제들은 농촌에서 농사를 짓다가 내 다음 동생은 삼척에
장선광업소에 취직을 했어요. 여자동생들은 시집가서 출가했으니 남편 따라 살고. 막
내동생은 인쇄업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죠.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컸다
는 것과 어머님이 우리 자녀들을 위해 고생하다 돌아가신 건 평생을 못 잊습니다


연좌제 피해
<군대 제대 후 서독으로 가려고 할 때 면접에서 떨어졌고, 파월장병으로 가려고 했을 때
도 가지 못함. 적십자사에서 이산가족 찾기 신청 후에, 국정원으로 의심되는 기관에서 만
나자는 전화가 왔으나 거절한 경험이 있음>


문_ 연좌제 피해는?
답_ 있었죠. 제가 군대 제대해서 서독에 가려고 했는데 세브란스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다 됐는데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그걸 보니까 연좌제였고…. 월남 지원을 했습니
다. 파월장병으로 가려고 하다가 안됐어요. 이것이 다 연좌제에 걸린 것 같아요. 한 번
은 내가 적십자사에서 통일부에서 모집하는 이산가족 찾기에 신청했어요. 통일부에 직
접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가니까 기록을 다 조사해. 그 후에 어느 기관에서 전화가 와
만나자고 오더라고. 누구냐고 그러니까 알 것 없고 만나자고. 그래서 어디냐니까 그랜
드 호텔이래. 거기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그래. 이유가 뭐냐니까 만나보면 안대. 그 때
소문이 국정원일 거라는 거지. 들어가면 죽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겁이 나서 너희 신
분을 밝히라고, 그리고 만나더라도 개인적으론 만날 수 없으니 통일부에서 만나자고.
그러니까 머뭇머뭇하더라고요. 괜히 아무 죄 없는 우리한테 피해가 올 까봐 겁이 나더라
고. 그리고는 연락이 없더라고요.
문_ 연좌제 피해를 다른 형제들도 받으셨는지?
답_ 우리 형제들은 초등학교 밖에 안 나왔어요. 그래서 쓸 만한 직장에 들어갈 능력도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특별히 연좌제는 없었습니다.
문_ 누가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은 없으셨는지?
답_ 누가 뒤에서 본다는 건 알 수 없었지만 항상 연좌제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
요. 그런 느낌을 늘 받다가 연좌제가 해제된 뒤로 괜찮아졌죠.


호적 정리
<실종 신고함>


문_ 납북자 호적 정리는?
답_ 토지가 작은 게 하나 있었어요. 그걸 정리하려면 사망신고를 해야 된다고 해서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실종 판결이 났어요. 그게 사망신고랑 똑 같은 거라고 하더라
고요. 사실 사망신고를 할 연세는 아닌데, 부동산 명의 때문에 알아보니까 실종신고를
하면 똑 같은 효력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한 거죠.
문_ 남은 가족들의 생존 여부는?
답_ 할머님, 할아버님은 다 돌아가셨죠. 형제들은 다 생존해 있죠. 그리고 내 자녀들하고.
문_ 형제들이나 어머님께서 납북자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답_ 모이면 아버지 처리를 어떻게 할 거냐고 그러죠. 내가 죽고 나면 자기들한테 부담이
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고민입니다. 과연 사망신고를 해서 어머님 곁에 모셔야 되는가
하는 걸 논의 중입니다. 내가 죽기 전에 처리를 해 놓고 내 자식들에게 짐이 안 되게 하
려고 연구를 하고 있어요.
문_ 다른 형제분들은 아버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있나요?
답_ 그건 모르죠. 내가 10살이었는데. 아버지가 있다는 것만 알지 기억은 못 합니다.
문_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님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있는지?
답_ 항상 내색을 안 하세요. 인내심이 강하고 꽃다운 청춘에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일체
그런 이야길 안 했어요. 그걸 보고 참 대단하구나 생각했어요.
문_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는지?
답_ 2004년도에 85세에 돌아가셨어요.


정부의 노력
<없었음>


문_ 납치 후 정부의 대처 상황 및 지원 노력은?
답_ 없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제가 아는 분 아들이 경찰이라 물어봤어요. 우리 아버지
가 납북이 됐는데 혹시 고향 파출소에 남은 문건이 있는지 알아볼 수 없나. 그러니까 없
대요. 서류를 다 북한이 가져갔으니 증거가 없죠. 그 당시에 우리 마을에서는 의용군으
로 잡혀 갔다는 증언을 해줄 사람들이 있거든요. 우리 마을 뿐만 아니고 주위에 많이 잡
혀 갔는데도…. 내가 납북자 신고하라고 홍보도 많이 했어요. 울진군에서 내가 처음으
로 접수했을 거에요. 그 후로는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하고…. 인근 마을에 누가 잡혀 갔
는지 다 아니까 접수하라고 그랬는데.
문_ 같이 붙잡혀 가신 최사식씨 가족들과는 찾아보려는 노력을 안 하셨는지?
답_ 그 가족이 아직도 우리 마을에 사는데 그 아들은 죽었어요. 그리고 며느리하고 손자
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관심이 있겠어요? 납북자 신고해서 납북자로 돼 있을 거에요.
내가 며느리한테 얘길 했죠. 아무리 아들이 죽었지만 자네 세상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하라고. 그래서 받았어요.


정부에 바라는 말
<정부가 납북자의 생사확인이라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었으면 함>


문_ 현 정부, 대한민국 사회에 바라는 점?
답_ 바라는 게 많지만 생사라도 알 수 있게 해줄 수 없느냐 그겁니다. 내가 내일 모레 80
인데 언제 떠날지 모르잖아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정부에서 생사확인이라도 할 수 있
으면. 그 소식밖에 기대할 게 없어요. 언젠가는 풀리겠지. 우리 세대에 못 풀리면 자손
들 세대에는 풀리겠지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피랍인에게 전하는 말
문_ 피랍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답_ 지금 어디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 진 몰라도 살아 계신다면 꼭 한번 생전에 만나고
싶습니다. 그 이상은 바랄 게 없습니다. 자기 태어난 곳인데 주소도 알 거고. 살아 계시
다면 찾아 올 수는 있을 겁니다. 아직 그 자리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그 날까지 내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문_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은?
답_ 이렇게 힘든 일을 하시는 가족협의회 관계자 분들 노고가 많지만 우리는 힘이 있습
니까? 알 길도 없고 다만 희망을 가진다면 여기에 희망을 가지고 하루 속히 통일이 되던
뭐가 되던 생사 확인이라도 받아낼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83 납북자-오남택(증언자-오순이)
관리자
17-03-16 1486
182 납북자-오해건(증언자-오경자)
관리자
17-03-16 1412
181 납북자-곽한봉(증언자-곽천병)
관리자
17-03-16 1191
180 납북자-김옥진(증언자-김일성)
관리자
17-03-16 1150
179 납북자-이규호(증언자-이종열)
관리자
17-03-16 1252
178 납북자-유정열(증언자-유지순)
관리자
17-03-16 1361
177 납북자-이종식(증언자-이재호)
관리자
17-01-26 1431
176 납북자-박영근(증언자-박옥순)
관리자
17-01-26 1304
175 납북자-이화실(증언자-이영석)
관리자
17-01-26 1444
174 납북자-조수준(증언자-조종숙)
관리자
17-01-26 1546
173 납북자-김구민(증언자-김호길)
관리자
17-01-26 1405
172 납북자-심동구(증언자-심인복)
관리자
17-01-26 1357
171 납북자-유창열(증언자-김수영)
관리자
17-01-26 1544
170 납북자-강신원(증언자-강석문)
관리자
17-01-26 1421
169 납북자-최준경(증언자-최수길)
관리자
17-01-26 1290
168 납북자-유원순(증언자-유재민)
관리자
17-01-26 1376
167 납북자-이순임(증언자-이종철)
관리자
17-01-26 1372
166 납북자-정관만 (증언자-정학운)
관리자
17-01-26 1313
165 납북자-권두한(증언자-권오건)
관리자
17-01-26 1524
164 납북자-염준모(증언자-염세환)
관리자
17-01-26 1806
1 2 3 4 5 6 7 8 9 10